윤 일적인 얘기를 빼고 소개하려니 너무 어렵네요. mbti 먼저 얘기해도 되나요...? (하하하) 저는 재미있는 것을 잘 ‘발견하는’ 사람 같아요. 재미가 동력이 되는 사람이라 아무리 지루한 상황이라도 웃긴 지점을 잘 찾아요.
은 그럼 편집자라는 직업에도 그 장점이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 편집자는 결국 무수히 많은 책들 사이에서 새로운 지점의 재미를 발견하고 그걸로 책을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율 업무 얘기 하지 말라고 하셨으면서 편집자님이 업무 얘기를 하시다니요! (은 죄송합니다….) 중요한 건 자기가 찾은 재미를 남들에게 전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윤우 편집자님은 그냥 그걸 혼자 간직하는 거 같아요. 농담입니다.
윤 앗… 맞습니다. 그게 문제예요. 편집자로서 그 장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그래도 재미를 잘 찾는 사람이라 그럭저럭 편않 일과 회사 일을 병행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율 윤우 님이 재미를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그걸 좀 차용하면, 저는 재미를 ‘발명하려고’ 하는 사람 같아요. 사람들 모이게 하고 조직하는 것도 좋아해서 일을 벌이는 편이죠. 편않 활동 이외에도 저는 ‘오도카니’라는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입밖으로 말하기는 왠지 너무 부끄럽지만,) ‘웅크린 자들의 공동체’라고 소개해요. 거창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때로는 혼자 있는 게 좋고 사람을 안 좋아하는 사람도 와서 놀고 쉬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요. 공간에서는 원래 관심이 있던 저널리즘과 예술문화, 페미니즘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나 북토크를 기획하고 있어요.
은 지금 ‘편않’의 구성원은 어떻게 돼요?
윤 같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편집자들끼리 처음으로 ‘편않’ 활동을 시작했고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과 함께하다가 헤어지다가 하면서 중간중간 구성원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편집자 셋에 디자이너 한 분에다가 홈페이지 및 전산 관리를 하시는 분도 한 분 계셔서 총 5명이에요.
은 편집자는 편집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로 ‘편않’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편집자가 편집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는 걸까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름인데, 편집자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편집하지 않는(못한)다는 의미 같기도 하고요. (보통 출판사에 들어가면 회사가 원하는 방향의 책을 만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좀 더 큰 뜻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인데요. 어떤 맥락에서 이 이름을 짓게 되었는지 궁금해져요.
윤 이름 후보가 많았는데(파주를 탈출하자는 의미의 ‘파탈’도 후보였어요), 어떤 분이 가볍게 던진 이 이름이 만장일치로 선택됐어요. 은우 편집자님이 말한 것처럼 편집자가 하는 일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이름 같았어요. 사실 실무를 하면 할수록 편집 이외의 업무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기도 했고요. 아마 많은 편집자들이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감할 것 같아요.
율 부정형의 이름이 ‘그럼 편집자가 편집 안 하면 뭘 해?’ ‘그럼 도대체 하는 일이 뭔데?’ 하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어요.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고 선언하잖아요. 그러면서 일련의 사건이 계속 벌어지는데, 저희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한 거죠.
은 처음에 구성원들이 비용을 갹출해서 『편않』을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그렇게까지 하신 게 저는 대단하게 느껴져요. 무엇이 그렇게 하게 만드셨나요? ‘기존 출판의 권위적, 퇴행적 관행’을 타파하고 새로운 장을 여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고 하셨죠. 일하기에 열악한 출판사가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서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만, 이것만이 ‘편않’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아닐 것 같아요. 각자 ‘편않’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윤 모임명에 관해서 이야기했을 때도 잠깐 나왔지만,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라는 이름 혹은 문장을 곱씹으면서 결국에는 편집자, 더 나아가서 출판인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런 고민을 같이 나눌 출판계 동료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고요. 다른 출판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한데, 각자가 미묘하게 고립되어 있는 것 같은 업계 분위기가 답답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전 재미있어서 해요.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잖아요. 만들고 싶은 책도 만들기가 어렵고 담당 원고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편집하기가 어렵고. 물론 회사 일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편않’에서만큼 어떤 책이 좋은지, 출판 편집이라는 게 어떤 일인지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워요. ‘편않’ 구성원들과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아직은 그런 재미를 크게 느껴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율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계속해요.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겠죠. 사실 처음엔 제가 계속 무가지로 내자고 의견을 냈었어요. 4년을 겪다 보니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첫 유가지를 냈죠. 정식으로 출판사로서 활동하려고 출판사 등록도 했어요. 아직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장에 나갈 생각이에요. 10월에는 언리미티드에디션 북페어에 참여할 예정이에요. 그래도 잡지는 계속 무료입니다.
은 ‘편않’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든가, 혹은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특별한 순간이 있다면요?
윤 『편않』 4호의 주제가 예비 출판인이었어요. 준비하면서 출판사에 지원할 때의 제 모습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신입을 잘 뽑지 않는 데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모르겠고… 이런저런 걱정 속에서 새벽까지 북에디터를 떠날 수 없었거든요.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죠. 지금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예전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예비 출판인의 밤’을 기획해서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분끼리 서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는지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많은 분들이 신청해 주셨고 이 자리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떤 대단한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만든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어요. 예비 출판인이든 현직 출판인이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맞물리게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작용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율 출판관계자가 보는 잡지들이 많잖아요? 어떤 분이 다른 잡지에 비해 『편않』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많이 실어서 너무 좋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 말을 듣고 더 열심히,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은 무가지인 『편않』만 내시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단행본을 내셨다고요. 다음 단행본은 무엇인가요?
율 다음 단행본은 「우리의 자리」라는 ‘언론·출판인 에세이 시리즈’를 준비 중이에요. 지금 예스24에서 그래제본소 펀딩을 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세 권을 먼저 선보이는데, 박정환 방송기자, 손정빈 기자, 고기자 님이 저자입니다. 언제부턴가 ‘기레기’라는 오명이 자연스러워진 언론인들, 늘 불황이라면서도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는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하면서,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저널리즘과 출판정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 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