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를 넘어 참여까지 기어코 하고 말겠다는, 이 이상한 욕구는 어디서 발현되는 걸까요?
아마추어 예술가의 기쁨과 슬픔
안녕하세요 탐구자님,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저의 두 번째 이야기로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춤추는' 늘보가 아닌 '피아노 치는' 늘보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추어 예술가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그리고 향유를 넘어 기어코 내가 직접 해보고야 말겠다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취미 피아노의 무용(無用)
매주 한 번씩 피아노를 치고 있습니다.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1평 남짓의 작은 연습실에 틀어박혀 길어봤자 5분도 안 되는 곡 한두 개를 치고 또 칩니다. 한 곡을 마스터하기까지 길게는 3개월도 걸립니다. 형편없는 초견 실력과 테크닉으로 더듬더듬 치는 날이 대부분이죠. 수많은 거장의 연주로 익숙해진 귀는 하늘같이 높아져서,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제 연주에 짜증과 좌절을 반복하면서요.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은 채 같은 마디만 반복하는 날이면, 이 무용(無用)한 취미 행위에 대해 의문이 들곤 합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저의 또 다른 취미인 현대무용은 운동이라도 되죠. 피아노란 당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저는 남들 앞에서 멋들어지게 치고 말겠다는 목표도 딱히 없거든요. 특별히 지금보다 더 잘 치고야 말겠다는 성장 욕구도 크지 않아요. (어차피 주 1회로는 느는 데 한계가 있어요 😅) 돈도 들고 시간도 드는, 이 지루하고 지난한 연습을 왜 하고 앉아 있는 걸까요? 🤷 
기어코 내가 '직접' 해보고야 말겠다는 이상한 욕망
대부분의 '참여형' 취미는 향유에서 시작됩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멋지고 재밌고 좋은 건 다 '직접'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어요. 4살 때 발레 공연에서 발레리나한테 반하고는 엄마에게 발레학원을 보내달라 떼썼고, 중학교 땐 영화에 미쳐서 결국 직접 만들었고, 대학교 땐 <댄싱9>에서 현대무용의 매력에 빠져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클래식 음악에 빠진 이후론 어렸을 때 관둔 클래식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죠. 

향유에서 참여로 넘어온 취미러들에게는 고충이 있습니다. 바로 향유자 모드일 때 나를 행복하게 해준 프로의 세계입니다. 프로의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터라, 그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지만 매번 좌절하곤 합니다. 쏟은 시간도 에너지도 (그리고 재능도..😅) 턱없이 부족한 취미러가 감히 프로의 세계를 넘보다니! 스스로도 황당하지만, 괜히 저 자신을 더 괴롭히고 고통스러워하는 거죠. 그러면서도 저는 계속 '직접' 하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합니다. 


참여는 향유보다 훨씬 고달픈 형태인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향유자야말로 책임도 부담도 없는 가장 편안한 형태로 즐기는 위치죠. 향유에서 멈추면 우리는 계속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도대체 왜... 저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참여까지 기어코 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아마추어 예술가의 기쁨과 슬픔
무용한 피아노를 계속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입니다. 내가 즐겁기 때문이죠. 가끔은 그냥 도미솔만 치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내 손끝에서 소리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요. 언제든지 내 손가락이 가는 대로 시작할 수도, 그만할 수도, 느리거나 빠르게 칠 수도 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희열이란! (물론 테크닉 부족으로 원하는 만큼의 연주는 어렵지만.. 😅) 내 몸으로 직접 부딪쳐서 물리적으로 발산하고 표현해내는 기쁨은 서툴게나마 참여해 본 자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참여는 분명 향유보다 힘겹지만, 참여자가 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곡을 직접 치다 보면 들을 땐 몰랐던 숨은 화성이나 음악적 구조에 감탄하곤 합니다. 완성된 결과물로서만 즐겼던 것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비하인드를 엿보게 된 느낌이랄까요. 내가 왜 이것을 이토록 사랑했는지 그 배경과 메커니즘을 납득하게 되기도 하고요.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것을 더 깊이 이해해 보려는 지적 호기심이 참여까지 넘보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향유를 넘어 참여하는 기쁨에 대해서는 <참여자로서의 예술>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하죠. 자신의 결과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해서 밥벌이를 해야만 하는 프로와 달리, 아마추어는 자기만족 외엔 딱히 목적이 없습니다. 이유가 없음, 목적이 없음, 쓸모가 없음은 역설적으로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임을 의미합니다. 아마추어의 예술은 무용하지만, 무용하기에 순수한 사랑입니다. (참고로, '아마추어'에서 아마ama의 라틴어 어원이 ‘사랑한다’라는 뜻으로, '아마추어'는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래요. 🥰

무용한 것을 알면서도 그 무용한 것을 하겠답시고 애쓰며 나의 내면에 가장 단단하게 남는 것은, 바로 고양감입니다. 타인의 인정이나 외부적인 대가 없이도 오직 내 자신의 내면을 위해 무언가를 추구할 때 느끼는 고양감. 나에게는, 인간에게는, 이다지도 고차원적이고 근원적인 욕구가 있다는 사실에 벅차오르는 고양감. 그렇게 한없이 부족한 실력으로 겨우 빚어낸 서툰 음악에 괴로워하고 황홀해하며, 좁은 연습실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혼자 피아노를 칩니다. 아마추어 예술가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자 슬픔이죠. 

제가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게끔 만들어준 책이기도 한 <아무튼, 피아노>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오늘 레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의 느릿느릿한 쇼팽도 예술이며 그 안에는 아마추어의 미학이 있다.
아마추어의 미학이란 유창한 곡 해석을 의도치 않게 배제하는 악기와 곡에 대한 애정으로
더듬더듬 이어지는 불완전성의 미학이다.
아마추어가 연주하는 곡은 매끄럽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틀리고 더듬거리기 때문에 아름답다.
역설적으로 그 더듬거림이 악기와 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 <아무튼, 피아노>, 김겨울

덧붙이는 말 

앞으로 2번 정도는 더 개인 레터로 찾아뵙게 될 것 같아요. 😥
조금만 더 저의 이야기와 함께해 주세요. 🙏

다음 레터의 주제는 취미의 대표적인 효능인 '자아를 잊는 완전한 몰입, 명상 효과🧘 '입니다. 
너도나도 내면 소통과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요즘,
취미에서 찾은 명상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님도 '기어코 내가 직접 해야겠다'는 욕망이 샘솟는 분야가 있나요?
님은 그 욕망의 이유를 찾으셨나요?

앞으로 <취미학개론>에선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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