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현녕입니다.

굵은 이마의 땀방울은 배신하는 일이 잘 없습니다. 결과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 노력은 단순히 결과가 아니어도 언젠가 써먹게 되는 날이 오리란 겁니다. 어제는 또 다른 배드민턴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대진운이라는 게 있잖아요. 실력 앞에 운은 아주 작은 요소이긴 하지만, 저희 팀과 만나는 팀들은 꼭 그 대회에서 우승을 하더라고요. 그 덕에 저희는 토너먼트라 항상 첫 판에서 가방을 싸서 집에 오지만요.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도전할 수 있다는 즐거움만 있습니다. 취미로 하는 거니까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또 열심히 다음 대회를 준비해 봅니다. 언젠가는 나의 순서가 오리라 믿으면서요.

독자님은 결과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는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건강한 마음으로 도전하는 우리가 참 좋습니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아,

어릴 적 내가 살았던 동네 시장엔 장난감 가게가 있었다. 쇼윈도 앞줄에는 좀 비싸고 눈에 띄는 고급 장난감들이 진열돼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뺏어버린 그녀는 긴 금발머리에 분홍색 딱 달라붙는 공단 드레스를 입고 구릿빛 피부의 서양인 모습을 한 짝퉁 바비 인형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그녀를 보기 위해 멀리 돌아서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 집에 오곤 했다. 여러 가지 장난감들 사이에 한 팔을 들고 서있는 그녀가 보이면 안심하며 집으로 향했다. 어린 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고급진 모양새를 한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기엔 당시 우리 집 형편은 많이 어려웠다. 그걸 느낄 만큼 눈치도 있었기에 엄마에게 운조차 띄우질 못했었다. 꽤나 오랫동안 그 인형을 짝사랑하는 연인처럼 먼발치에서 만 지켜보다 어느 날 '어차피 갖지도 못할 거. 보고 있으면 속상하기만 하네.' 그런 어리지 못 한 생각을 하고서 이후로 난 그 가게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냥 갖고 싶은 마음을 닫아 버렸다.

얼마 후, 명절 준비를 하는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을 때 인형이 쇼윈도에서 없어진 걸 보고 집에 와서 서러움에 그만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몇 번을 물어보다 이내 산더미처럼 밀린 당신의 일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며 같은 패턴으로 많은 것들을 겁내고 포기하고 밀어냈다. 갖고 싶은 마음은 가득 가지면서도 그 마음을 스스로 눌러 잠재우고, 뭔가를 갈망하다 그것을 취하기 좀 어렵다 싶으면 해보지도 않고 도망쳐 버렸다. 그것은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결국엔 끝까지 시도하지 못한 나의 무능함으로 남아 상처로 쌓여 갔다.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숙제가 된 것이다. 습관처럼 되어버린 포기가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때 엄마가 단칼에 잘라 거절을 하든, 야단을 치든 말든 인형을 사달라고 말이라도 꺼내보았다면, 아이처럼 울며 불며 생떼를 부리고 삐지기라도 해봤으면 어땠을까? 지금의 내가 달라졌을까. 그것도 아니면 시간이 좀 오래 걸려도 가끔씩 받던 용돈을 모으는 시도를 했다면 어땠을까? "엄마! 나 저 인형 갖고 싶어. 근데 엄마가 사주기 어려우면 돈 모아서 언젠간 사볼까 봐." 라고 속엣말도 하면서 말이다.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어린 나에게 그렇게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럼 지금의 내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 답답하면서도 지금의 나는 인형 하나 노력하면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쉬이 포기하지말자고 말해주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