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힙지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을지로지만, 십분의일이 시작된 2016년엔 그런 명칭이 없었다. 귀여운 목돈으로 익선동, 연남동, 홍대를 돌아다녔지만, 권리금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교통의 요지지만 아직 주목받지 않는 을지로를 선택했다. 퇴사 후 낭만도 낭만이지만 생존을 위해 구석진 골목 끝 인쇄소를 인수하고 테이프로 입구에 ‘맥주’ ‘와인’ 등의 글씨를 덕지덕지 붙여 의도치 않은 트렌디함을 완성했습니다. 실제로 처음 방문한다면 한 번쯤은 헤맬 수 있을 정도로 구석에 있으니 지도를 꼭 붙잡고 들어가보자.

내부로 들어가면 오래되고 투박한 건물을 감각 있게 리모델링 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엔 여관으로 2015년까지는 인쇄소로 쉼 없이 돌아가던 공간을 팀원들이 함께 리모델링에 참여해 기둥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리모델링하였다고 한다. 

하우스 와인, 그 가게의 얼굴과도 같은 와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직접 양조한 술이 아닌 이상 글래스 와인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맛만 있다면 그리고 저렴하다면 합격 아니겠는가. 종류는 레드와 화이트 총 두 가지다. 메뉴 판 설명에는 “많이 무겁지 않고 부드러운 맛입니다” 라고 적혀있다. 첫 잔으로 입가심하기엔 가벼운 화이트와인 만한 게 없다. 게다가 뒤에 함께 주문할 뱅쇼와 포르투 와인은 모두 레드와인 혹은 레드와인 베이스기 때문에 화이트로 주문했다.

에디터의 취향은 당도가 그리 높지 않고 깔끔한 “샤블리”다. 지난 애니오케이션 베이스먼트에서 해산물과 함께 마시고 사랑에 빠져버렸는데 와인 바틀 가격이 사회 초년생에겐 쉽지 않은 가격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십분의일 하우스와인은 대만족이었다.

마셔야 할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깔끔한 화이트와인이 한 잔에 5,800원, 더 설명이 필요한가?” *바디감도 낮고 도수도 높지 않아 가볍고 깔끔한 와인이다. 화이트와인을 좋아하는 당신이 십분의일에 방문했다면 꼭 마셔보길 바란다.

*바디감 : 와인을 마셨을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무게와 점도 등을 표현하는 말로, 무게와 점도가 높을수록 바디감이 높다. 여기서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포르투 와인, 영국식으로 포트 와인이라고도 부르는 이 와인엔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과거 영국이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에 패하며 와인 생산으로 유명한 보르도 지방을 프랑스에 넘겨주게 되면서 프랑스와 국교가 잠시 단절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와인이 절실했고 새로운 와인 수입지를 물색하던 중 포르투갈을 고르게 된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 탓에 와인이 식초처럼 변하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배송 중 발효를 막기 위해 *브랜디 또는 **주정을 첨가해 도수를 높였다. 그렇게 포르투(Porto)와인이 탄생했고 영국식으로 포트(Port)와인이란 표현이 굳혀졌다.

이야기를 한 모금 나눈 뒤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 포트와인답게 18도라는 도수가 무색하도록 달콤했다. 꿀을 타 넣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달콤했는데 브랜디 특유의 과실 향이 베어 들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알코올에 약하더라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도수에 지레 겁먹지 말자.

마셔도 마셔도 줄지 않는다. 정확한 용량이 적혀있진 않지만 을지로에서 8천 원을 내고 이정도 양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브랜디 : 프랑스의 코냐크 지방에서 와인을 증류해 생산되는 브랜디의 일종이다. (브랜디는 과일주를 증류하여 만든 술의 총칭이며, 좁은 의미로는 포도주를 증류한 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술을 가리킨다.)

**주정 : 순수한 에틸알코올(에탄올), 크게 곡물을 발효하여 증류한 곡물 주정과 에틸렌을 원료로 증류한 합성 주정으로 나뉜다.

연말은 한참 전에 지났지만 글래스 와인 메뉴 중 마지막 순서인 뱅쇼를 주문했다. 프랑스어로 따뜻한 와인이라는 뜻을 가진 뱅쇼는 레드와인에 레몬 오렌지 등의 과일을 넣고 마지막에 계피를 넣어 완성한다. 주문할 때 어느 정도의 디테일한 커스텀이 가능하다. 계피 향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에디터는 계피를 조금만 넣어달라고 했다.

맛은 특별한 것 없는 뱅쇼 맛이다. 와인의 달콤하면서도 떫은맛과 과일의 향긋함 그리고 은은하게 베어 있는 계피향까지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지만 뱅쇼만이 낼 수 있는 맛과 감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와인 두 잔에 뱅쇼 한 잔 그리고 안주 두 개를 시켰는데 45,300원이 나왔다. 그것도 을지로에서 말이다. 을지로에서 꽤 괜찮은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십분의일을 추천한다. 감성은 감성대로 챙기고 지갑의 온기 또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예약을 따로 받지 않는 덕에 오픈시간에 거의 맞추어 6시 15분경 방문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이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락방 같은 포근한 공간 안에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분명 10명의 사장님이 시작부터 이런 성공적인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처음엔 작은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 시작이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 어느덧 을지로에 떳떳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새해의 첫 달 마지막 수요일 작은 시작을 하기엔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다.

PS. 장소로 향하는 길이 꽤 복잡하니 십분의일이 남긴 길 찾기 메모를 첨부한다.

십분의일

ᑯ 서울 중구 수표로 42-9 2층

ᑯ 영업시간

   매일 18:00 - 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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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커피 을지

: 십분의일에서 걸어서 9분

아차산에서 즐길 수 있던 푸쉬커피가 을지로에 나타났다. 아기자기한 초코칩과 합리적인 가격의 아메키라노(스타벅스보다 싼 4,000원)를 판매한다. 을지로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는 기본이다.

ⓒ 푸쉬커피 을지

아게루

: 십분의일에서 걸어서 3분

세 번째로 소개하는 곳은 뜨끈한 샤브샤브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을지로를 여행하던 중 전골요리가 당긴다면 스키야키 또는 카레우동과 함께 속을 든든히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을 추천한다.

ⓒ 아게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