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닌 베놈이라는 이름 하나로

우리가 아닌 베놈이라는 이름 하나로

- 루벤 플레셔, <베놈> & '테세우스의 배' 역설 -

2025.01.24(금)

님과 de tour, 우리의 열다섯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은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대중적인 장르 중에서도 히어로 영화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장르는 많지 않을 겁니다. 실험적인 예술 영화나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들은 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히어로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고 쉽게 다가오는 장르죠.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우리가 익숙하게 즐기는 히어로 영화에도 충분히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시선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특히, 안티히어로 장르는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다루며 마니아 층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베놈’은 클래식하면서도 독보적인 캐릭터로 손꼽히는데요. 유명한 스파이더맨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빌런인 베놈이, 영화 <베놈>(2018)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개봉 전부터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은 <베놈>을 오늘은 색다른 시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영화는 우주로 탐사를 떠났던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오던 중, 돌연 사고를 당해 말레이시아에 추락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조종사 한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 전원이 사망한 대형사고였지만, 라이프 사는 사람들의 희생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우주에서 회수한 물건을 찾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죠. 그 물건은 바로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였습니다.

한편, 정의감 넘치는 탐사 저널리스트 에디 브록(톰 하디)은 라이프 사의 회장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의 인터뷰를 제안받습니다. 에디는 드레이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직장의 강경한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이를 수락하게 되죠.

그런데 애인인 애니(미셸 윌리엄스)와 식사를 하던 중, 그녀가 근무하는 로펌에서 우연히 라이프 사의 내부 문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문서에는 충격적인 사실이 적혀 있었죠. 라이프 사가 심비오트를 이용해 생체실험을 진행하며 노숙자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불의를 참지 못한 에디는 인터뷰 자리에서 드레이크를 직접적으로 추궁합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그의 질문에 불쾌감을 느끼며 인터뷰를 강제로 중단시키고, 에디의 직장에 압력을 가해 그를 해고시킵니다. 심지어 에디의 애인 애니마저 직장에서 해고되고, 에디는 순식간에 자신의 명성, 직장, 그리고 사랑을 모두 잃게 되죠.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르는 동안, 라이프 사는 여전히 심비오트를 활용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심비오트는 지구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외계 생명체였지만, 생존을 위해 지구 생명체와 결합하여 숙주의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드레이크는 이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 너머에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심비오트에 적합한 숙주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고, 실험은 실패를 거듭하며 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라이프 사의 과학자인 도라는 드레이크의 비인도적인 실험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에디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렇게 에디는 도라의 도움으로 라이프 사의 비밀 실험실에 잠입하게 되죠.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됩니다. 한 심비오트가 에디의 몸에 기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비오트는 바로 베놈이었습니다.

뜻밖의 사건으로 외계 생명체와 공생하게 된 에디. 그 후 에디와 베놈은 라이프 사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처음에는 베놈의 과도한 폭력성과 행동에 두려움을 느꼈던 에디였지만, 라이프 사의 무장 요원들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점차 베놈과 협력하게 되죠. 의외로 베놈 역시 에디와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심비오트 무리 사이에서 약체로 취급받던 베놈은 에디의 감정에 공감하며 둘 사이에 묘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에디와 베놈은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에디는 점차 베놈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베놈 역시 인간과의 공생에 적응해 갑니다. 한편 드레이크는 심비오트인 라이엇에 감화되어, 그들의 목적인 지구 침공을 돕기로 결정하는데요. 한때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에디와 베놈은, 이제 힘을 합쳐야만 지구를 구하고 자신들의 독특한 공생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 둘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매력적인 외계종족, 베놈

사실 '베놈'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베놈>의 개봉 이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였습니다. 이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2007)에서 강렬한 첫 등장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덕분이었죠. 1984년 마블 코믹스에서 처음 등장한 베놈은 심비오트(Symbiote)라는 외계 생명체로, 숙주에게 기생하여 그들을 타락시키고 끝내 파멸로 몰아넣는 위험한 종족입니다. ‘심비오트’라는 이름은 ‘함께’를 뜻하는 ‘sym’과 ‘생명체’를 의미하는 ‘bio’를 합친 말로, 공생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본성은 공생이라기보다는 지배에 가깝습니다. 자신에게 적합한 숙주를 찾아 그를 갈망하며, 서서히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영화 <베놈>에서 드러나는 드레이크와 라이엇의 관계가 대표적입니다. 공생보다는 한쪽에서의 일방적인 기생의 형태를 가지고 있죠.

반면 베놈이라는 캐릭터는 에디 브록과의 진정한 공생을 이뤘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소 평범하면서도 정의로운 기자인 에디와 그의 몸을 공유하는 흉포한 포식자 베놈. 이 모순적인 조화는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하며, 코믹스와 영화에서 베놈을 독보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영화 <베놈>이 개봉하기 이전, 미디어에서는 이러한 아이러니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철학적 논점들을 조명하기도 하였는데요. 특히 그중 '테세우스의 배' 역설로 살펴보면 <베놈>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

님은 '테세우스 배(Ship of Theseus)' 역설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테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으로,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른 인물입니다. 아테네인들은 영웅 테세우스를 기리기 위해, 그가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후 타고 돌아왔던 배를 오랜 시간 보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무로 만들어진 테세우스의 배는 시간이 지나면서 썩었고, 그 부품들을 새로운 목재로 교체해야 했는데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테세우스가 탔었던 원선을 이루던 노와 판자, 돛대 등의 부품들은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되게 되었죠. 하지만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모든 부품이 새롭게 교체된 '수리선'을 과연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로부터 시작되어 플라톤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서양철학의 오랜 논제입니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은 비단 고대의 배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인데요. 인간의 몸은 꾸준히 신진대사를 수행하기에,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는 금방 노화되어 버리는데요. 따라서 약 7년마다 새로운 세포로 몸을 대체하게 됩니다. 즉 '7년 전의 나'와 '7년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인데요.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말이죠.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경계 그 사이

님은 이전의 '나'는 사실 다른 사람이며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를 수긍할 수 있나요? 아마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나'에게는 태어날 적부터 '나'라는 자아 즉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만 보자면 나는 7년마다 소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이죠. 이렇듯 테세우스의 배는 '살아가며 변화하는 모든 대상들의 정체성 지속'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자신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질문인 셈입니다. 세포의 변화뿐 아니라, 기억이나 성격 등의 급격한 변화가 있다면, 나는 유지되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 태어난 존재가 되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바로 영화 <베놈> 속 에디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숙주인 에디는 베놈이라는 외계 생명체와 공존하며 점차 자신이 변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물리적 능력이 강화된 것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본능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죠. 본래의 설정대로 숙주가 폭력적인 심비오트의 영향을 받아, 성격이 변화하게 되는 것인데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베놈에게도 동일한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심비오트 본능에 충실했던 베놈은 에디와의 공생을 통해 인간적인 정과 윤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나지만, 결과적으로는 악인을 처단하고 인류를 구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데요. 그러한 모습을 보면, 베놈은 정말 타락한 포식자인지, 아니면 에디와 함께 변화의 여정을 걷는 또 다른 모습의 영웅인지 더욱 모호해집니다. 영화에서 자주 말하듯 'WE"라고 칭하는 이 존재는 과연 에디 혹은 베놈인지, 선인 혹은 악인인지,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모습을 띠고 있죠.

약체로 이루어진 공존체

베놈이라는 캐릭터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인 약체와 공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놈이 에디에게 끌리는 이유는 단순히 생리적 호환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 베놈은 자신을 ‘루저’로 규정하며, 에디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이미 드레이크라는 거대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을 잃은 에디는 외면으로나 내적으로나 약자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드레이크의 악행을 폭로하려 노력하며, 약자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는데요. 에디의 이러한 정의감이 베놈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며, 베놈은 자신이 속한 심비오트 무리와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합니다. 그 결과 베놈은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에디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할 절대적 힘을 얻게 되죠. 이 두 존재는 서로를 보완하며 점차 ‘WE’라는 하나의 존재로 거듭납니다.

완성된 'WE'는 이타적이지도, 명확하지도 않은 기준에 따라 행동합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힘을 합친 약체로서, 그리고 악인만을 해친다는 애매모호한 도덕적 잣대를 세운 공생체로서 활동합니다. 그 기준은 에디의 말처럼 “악인은 그냥 보인다”는 직관에 의존하며, 이는 관객들에게 불완전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함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히어로의 면모로 다가옵니다. '약자들이 힘을 모아 강자에게 도전한다' 그리고 '선인이 아닌 악인만을 해친다'라는 이 두 가지 기조는 두 사람의 결핍과 과거를 반영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완전한 공존체로 성장하지만, 그 자체로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무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누가 식인을 하였는가?

이러한 영화 <베놈>이 가지고 있는 힘의 유무와 선과 악의 기준이라는 두 가지 주제는 베놈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행위로 함축되어, 관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줍니다. 이 하드코어한 액션은 심비오트 특유의 육중한 몸과 괴수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베놈을 설명하는 핵심적 요소로 작용합니다. 심비오트는 기생하는 숙주에게 지속적인 허기를 느끼게 하며, 결국 숙주에게 식인 행위를 유도하여 허기를 충족하는데요. 그러한 베놈에게 에디는 단 하나의 약속, 즉 "악인만을 해친다"는 조건을 받아내지만, 표면적으로 봤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인륜적인 행동에 가깝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악에 대한 통쾌한 처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간성을 무시하고 포식하는 단순한 살육으로만 보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님은 식인 행위를 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위 질문은 테세우스의 배 역설과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수리선'이 테세우스의 배인가 아닌가를 규정하는 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본질적 동일성과 물질적 동일성에 따라 말이죠. 본질적 동일성을 중시하는 플라톤과 토마스 홉스 등의 철학자들은 새롭게 구성된 '수리선'도 테세우스의 배라고 주장합니다. 테세우스의 배의 본질은 변화할 수 있는 질료인 판자가 아니라 변치 않는 배의 형상이기에, 그 형상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죠. 반면, 19세기 유물론자들과 20세기 인지과학자들은 이를 정반대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재료의 변화는 원선의 변형을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인간의 신체로 보면 간략하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서양철학자들은 자기동일성의 본질을 정신으로, 인지과학자들은 그 육체의 역할로 규정한 것이죠.

이를 영화 <베놈>에 적용해 보면, 정신은 에디의 것으로 또한 육체는 베놈의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본질적 동일성을 따진다면, 인간을 위한 정의와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삼았던 에디의 정신은 꾸준히 지속되므로, 베놈은 에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생존을 위해 살인과 식인을 일삼는 파괴적이고 원시적 존재의 육체를 가진 존재로 파악한다면, 물질적 동일성을 따지는 관점에서의 해석일 것입니다. 결국은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의 해석에 따라 그 존재는 달라질 것이죠.

우리가 아닌 베놈이라는 이름 하나로

영화 <베놈>의 이야기와 철학적 질문들은 2020년에 발표된 코믹스 외전 <베놈: 디 엔드(Venom: The End)>에서도 이어집니다. 이 외전은 마블 코믹스의 주류 스토리와는 별개의 상상 속 이야기로, 베놈과 에디의 마지막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베놈은 우주의 끝에서 홀로 살아남은 존재가 됩니다. 에디는 이미 생명을 다해 죽음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베놈은 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심비오트의 세포로 에디의 신체를 대체하며 그의 생존을 이어갑니다. 결국 베놈은 에디의 정체성과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융합된 상태로 우주의 종말을 맞이합니다. 과연 섬뜩하면서도 감동적인 결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에디는 과연 언제 죽은 것일까요? 최후의 순간에 베놈은 에디의 신체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에디라는 존재를 기리기 위해 유지되고 있을 뿐, 그의 신체는 이미 베놈의 세포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에디가 심비오트의 세포로 대체되던 순간부터 그의 존재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한편, 이런 관점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베놈이 에디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다면, '에디가 되기 위한 삶을 살기로 한 순간부터 베놈의 정신은 죽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죠. 앞선 에디의 정신 그리고 베놈의 육체라는 관점에 반전이 일어난 아이러니한 양상인 셈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WE’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잘못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베놈과 에디는 ‘WE’를 넘어 ‘ONE’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공생체와 숙주의 범주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결핍과 한계 그리고 인간성과 괴물성을 뛰어넘어, 서로를 통해 새로운 하나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에디와 베놈의 진득한 우정을 살펴보았다면, 앞서 물어보았던 질문에 답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님은 그가 베놈으로 보이시나요 혹은 인간으로 보이시나요?

세상 모든 영웅은 사실 안티히어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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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스파이더맨과 베놈의 관계에 대해 아시나요? 원작 코믹스에서 베놈은 스파이더맨의 영원한 숙적으로, 스파이더맨으로 인해 탄생해 스파이더맨으로 끝나는 빌런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영화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3>(2007)에서도 재창작되어 나타나기도 하였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스토리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스파이더맨은 망가진 자신의 슈트를 대체하기 위해, 착용하기 시작한 심비오트인 베놈을 착용합니다. 하지만 추후 이 힘이 위험한 것임을 깨닫고, 베놈을 떼어놓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베놈은 강력한 힘을 지닌 스파이더맨에게 집착하게 되고, 자신을 버린 그를 증오하게 됩니다. 그렇게 평소 스파이더맨에게 복수심을 가지고 있던 에디 브록과 함께하게 되죠.

그렇다면 스파이더맨에게 베놈은 단순히 적일까요? 스파이더맨에게 베놈은 안타고니스트입니다.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란 주인공과 대립하는 반동 인물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서사물은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에, 안타고니스트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을 방해하는 안타고니스트를 빌런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안타고니스트는 단순히 주인공의 행동 동기와 대립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스파이더맨에게 베놈이 그러하듯, 베놈에게도 스파이더맨은 안타고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안고 있는 환경과 신념에 의해 대립되는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죠.

스파이더맨과 베놈은 서로에게 마치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평소 스파이더맨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대사입니다. 이 대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를 가장 적절히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평범한 시민이었던 스파이더맨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이후, 자신이 통감해야 할 책임감을 느끼는 인물인데요. 그가 히어로로서 활동하는 원동력은 일종의 이타심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이 가진 힘을 책임지기 위해 타인을 위해 헌신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는 개인으로서는 망가진 삶을 살고, 주변인의 죽음과 지키지 못한 시민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에디 브록에게도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약자라고 생각하며, 그와 대립하면서도 미안해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죠.

반면, 베놈의 원동력은 이기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는 스파이더맨에게 피해를 입은 약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과 같은 억울한 약자가 생겨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악인들을 처단하기 시작합니다. 이 둘 모두 이타성과 이기심으로 다른 원동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어쩌면 유사한 양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둘 모두 단순히 선을 위해 행동하는 것만이 아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주 현실적이고 한계가 명확한 한 명의 고뇌하는 사람, 즉 안티히어로라는 것이죠.

세상에 완전한 히어로는 없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이는 굉장히 위험한 개념일 것입니다. 완전무결한 히어로가 존재한다는 것은, 즉 절대적인 선의 개념을 긍정하기 때문이죠.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히어로는 안티히어로일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 홉스는 일전에 테세우스의 배 역설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킴과 동시에, 이를 비틀어 꽤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아테네인들은) 테세우스의 신화를 기리며 여전히 자신들도 테세우스와 함께 위대한 업적을 쌓은 자신들의 선조들만큼 덕을 쌓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 과거의 아테네인들이 거둔 승리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이 질문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이 배가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것이냐를 묻기 이전에, 이 배를 정의하려는 아테네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베놈은 과연 빌런인가 히어로인가'에 대해 집중해 왔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홉스는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그가 빌런이건 히어로이건, 혹은 심지어 스파이더맨이 빌런이더라도. 그것을 정의하고자 하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를 행하냐고'라고 말이죠.

오늘의 de tour의 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님은 히어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에는 전형적인 히어로의 상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히어로들이 유난히 각광받는 것 같습니다. 아이언맨, 배트맨, 데드풀 등, 이들은 때때로 현실에 타협하기도 하고 오로지 자신의 삶의 기준에 맞춰 히어로 생활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히어로 영화의 최근 동향은 관객들이 가지고 있던 선과 악의 관념이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전처럼 단순한 선역과 악역으로 나뉘는 구도를 벗어나, 다양성을 가진 인물들을 이전보다 더욱 수용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냉철해진 히어로를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관중이라니, 굉장히 아이러니한데요. 님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님만의 히어로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요? ' 피드백 하러 가기 ' 버튼을 통해 님의 생각을 전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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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Ruben Fleischer, <Venom>(2018)

Outline

Directed by: Ruben Fleischer
Written by: Jeff Pinkner
Distributed by: Sony Pictures Releasing
Cast: 톰 하디, 미셸 윌리엄스, 리즈 아메 등
Running Time: 1h 44m
OTT Service: Watcha | Wavve | coupang play | Apple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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