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버전으로 오프닝을 썼다가, 그냥 처음부터 사랑과 행복과 복을 던지는 시작을 써보고 싶었어요. 커다란 선물 자루를 메고 다니는 산타 할아버지처럼, 무작위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랑과 행복과 운과 복을 던져줄 수 있는 거대한 주머니가 있으면 좋겠다. '아, 이렇게 많이 나눠주다가 모자라면 어쩌지?' 하는 걱정할 필요 없이, 무한대로 큰 주머니면 좋겠네. 정말 오랜만에 다정한 상상을 해보는 새해입니다. 현실에선 N도 아니고 F도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잃은 사람이 종종 되지만요. 덕분에 사랑주머니, 복주머니, 행복주머니 쥔 산타 상상을 하며 조금 더 즐거워졌어요. 

 연말-새해로 넘어가는 시점엔 스크린샷 폴더를 뒤져봅니다. 한 해 동안 좋아했던 문장들의 힘을 빌려서, 한 해 동안 제대로 못했던 안부 인사를 몽땅 전하고 싶어서요. 2022년 새해를 맞이할 때에는 배우 김태리님의 인터뷰를 빌렸습니다. '좋은 잠을 자고 일어나서 설레는 아침을 맞으세요. 저도 제가 그랬으면 좋겠으니까요.' 지금 다시 읽어보니 좋은 잠+ 설레는 아침 콤보는 정말 드문 일이네요. 좋은 잠, 설레는 아침 둘 중 하나라도 꼭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씩은 좋은 잠+설레는 아침 콤보가 있는 럭키한 날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아끼는 사람들이라도 얼굴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을 테니까, 저 짧은 인터뷰 구절에 이런 마음을 다 접어둘게요. 

 Ps. 새해를 핑계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손편지 쓰는 마음으로 오프닝을 써봤어요. 메일함이 아니라 우편함에 꽂힌 편지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평소와는 다른 오프닝 감성일 수 있지만, 새해니까 다들 포근하게 읽어주세요! 한 발 늦은 연말결산 이야기도 재밌게 즐겨주세요🍋

 

 올해 망설임없이 가장 사랑했던 드라마. <망고네 슈퍼>에서도 무려 4번을 언급했더라고요. <나의 해방일지>가 방영하던 5월에는 하루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지냈는데요. 힘겹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엔 하루에 딱 5분만 채우라던 미정의 말이 위로가 되었는데, 연말/새해가 되니 '환대'하라던 미정의 말이 떠올라서 이 영상을 가져왔어요. 유난히 바쁘고 지쳤던 5월, 퇴근하고 폭신한 이불 속에서 <나의 해방일지> 보는 게 가장 큰 낙이었어요. 어떻게든 버티려고 좋아하는 것마저 악착같은 마음으로 찾아다녔던 5월 - 그때 썼던 일기의 한 구절을 옮겨봅니다. 

 

  소몰이하듯이 나를 어떻게든 끌고 간다는 미정의 대사가 생각나는 요즘. 어떻게든 악착같이 행복한 순간을 쌓으려고 애쓴다.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한 순간이 생기지 않는데, 행복하지 않아도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잘 흘러가길래. 어떻게든 좋아할 만한 것들을 모으고 찾고 애쓰면서 악착같이 나를 몰아간다. 어떻게든 내 자신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서, 결국 내 자신을 돌보는 건 나뿐이라서, 소몰이를 하듯이 몸을 일으켜서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아다니면서 지냈다. 악착같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게, 어떻게든 악착같이.

  올해 잘한 일이 있다면, 아무 스포 없이 개봉 이틀 차에 <에에올>을 보러 간 것. 맥주+영화 티켓 패키지를 구매해서, 대낮부터 맥주 마시면서 영화 보는데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렇게 요란법석일지도, 시끄러울지도, 아름다울지도, 신선할지도, 따뜻할지도 모른 채로 이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결국 사랑이 이긴다'라는 뻔한 메시지를, 수없는 멀티버스를 거쳐 이렇게 다채롭게 전달할 수 있다니. 이 영화는 <망고네 슈퍼> 115화에서 소개했는데, 그 이후에도 인류애가 떨어지고 무언가를 좋아할 자신이 없어질 때마다 이 영화를 종종 생각했어요.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는 것에만 힘을 써도 아까울 세상이다! 사랑의 힘을 믿고 싶을 때마다 떠올리게 될 영화. 12월에 썼던 일기의 한 구절을 같이 덧붙입니다. 

 이상한데 재밌고 이상한데 따뜻하고 이상한데 슬픈 것들이 좋다. 세상이 변하고 취향이 변해도 내가 사랑하고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아마 계속 그런 것들일 거야. 조금씩은 이상하고 조금씩은 서툴고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고 싶어하는 것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거창하게 말하면 구원이고, 가볍게 말하면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들. 올해 사랑했던 <나의 해방일지>도 그렇고 <에에올>도 그렇고 <첫사랑의 악마>도 전부 그랬다. 시간이 흘러 좋아하는 장르는 변해도 여전히 좋아하는 이야기들은 비슷하다. 

 언제 가도 편안한 아지트 같은 공간을 잃은 지 N년차. 그래도 행복 필승 조합을 자주 발견한 2022년이었는데요. 정말 충동적으로 떠났던 정동진, 예측하지 않았던 즐거움 속에서 행복했던 부산 등 곳곳에 남긴 여행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즐거웠어요. 최애 장소를 고르긴 어렵지만, 갈 때마다 120% 행복했던 경희궁을 소개합니다. (진짜 많이 갔는데 찾으려니 왜 사진이.. 이것밖에 안 보이는지 의문이지만..) 각 계절의 색감을 선명하고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라 좋아했어요. 경희궁에서 평화롭게 계절을 맛보고 나서, 가까운 에무시네마에 가서 어울리는 영화를 보는 루트도 추천하고요. 그 근처에 귀여운 밥집 및 카페도 많기 때문에 호로록 하루 보내기 딱 좋아요. 사람 많지 않은 곳에서 사박사박 낙엽 밟고, 초록빛 나무들 원없이 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 

 2022년 가장 소중했던 노래를 고르려다가, 도무지 못 고르겠어서 새해 첫 곡을 가져왔습니다. 매 시기별로 좋아한 음악들은 많았지만, 한 해를 표현한다면 이 곡이지! 할 정도로 강렬했던 곡이나 뮤지션은 없었거든요. 대신 새해가 되면 '이 노래처럼 한 해를 살고 싶다' 하는 곡을 심사숙고해서 고르는데, 2023년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첫 곡을 골랐어요. '난 요즘 하늘이 아름다워 / 잘 알던 서울이 새삼스러워 / 비가 오면 그대로 다 맞고 싶어 / 애쓰지 않더라도 행복하고 싶어'. 쑥스러워서 매번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익숙함 속에서 새삼스럽게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참 행복했거든요. 새해엔 평온한 행복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익숙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서, 사랑한단 말을 더 쉽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좋은 게 좋은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서. 적당한 설렘과 청량함,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담은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서 골라봤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어떤 곡으로 새해를 시작하셨나요? 같이 나눠주세요!       

라우드 플레이리스트-  서울 종로구 수표로20길 17

이 골목에 이런 가게가? 싶은 종로3가의 아담한 일식 주점. 사장님의 친절한 한줄설명이 덧붙여진 다양한 주류 메뉴, '오늘의 사시미'를 비롯해 뭘 시켜도 성공하는 다양한 안주 메뉴가 사랑스러운 곳. 

문화식당- 서울 성북구 혜화로 88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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