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de tour, 우리의 열두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은 평소에 사전을 많이 찾아보나요? 우리는 뜻을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검색창에 줄곧 그 뜻을 검색하곤 하는데요. 그만큼 인터넷 사전이나 위키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그러나 만약 님이 믿어온 사전의 뜻이 틀렸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더 나아가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세계가 부정된다면? 많이 당황스러울 것만 같은데요. 여기 미술을 통해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서는 미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입니다. 오늘은 그러한 르네 마그리트에 대해 흥미롭게 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The lovers, Oil on canvas, 54 x 73.4 cm, 1928

 막내 동생이 잠결에 일어나 보니, 어머니가 사라진 것이었죠. 가족들은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지만, 발견된 어머니는 잠옷으로 머리를 덮고 강에 익사한 상태였습니다. 평소 우울증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죽음은 마그리트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그리트는 “나는 나의 과거뿐 아니라 다른 누구의 과거도 관심 없다”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러한 유년기의 시절의 흔적이 많이 묻어나 있습니다. 더불어 그의 지인은 그 또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평생에 걸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했죠.

 마그리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여러 번 사는 곳이 바뀌게 되는데요. 그중 그가 성장기에 보낸 벨기에 샤를르와는 벨기에의 전통성에 도전하는 지역적 성향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다다이즘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죠. 기존의 미술의 질서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성향의 다다이즘에 이어, 초년기의 마그리트는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29살에 브뤼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나, 그는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고 기분이 상해 파리로 떠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초현실주의의 대표자인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 그의 사상에 홀딱 빠지게 되죠. 훗날 마그리트가 초현실주의 회화의 대가로 유명해진 것을 떠올리면, 매우 재밌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마그리트는 많은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리며 수많은 대작들을 남기게 됩니다. 미술가뿐 아니라 그는 시와 철학 그리고 사진과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여러 분야의 창작물에도 참여하게 되는데요. 대표적으로 잡지와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였죠. 1965년 뉴욕의 근대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전시 중 하나입니다. 그는 그 전시를 통해, 미국의 팝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주목을 받은 또 다른 전시, 보이만스 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릴 때, 그는 아쉽게도 브뤼셀의 자택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당시 그의 나이 69세였죠.

나는 미술가가 아니다

 님은 초현실주의(Surrealism)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사실 초현실주의는 이전에 저희 뉴스레터에서도 잠깐 언급된 적이 있었는데요. 바로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플록에 대해 다룬 <수면으로 부유하는 폴록의 플로우>편에서였는데요. 여기서 추상표현주의는 초현실주의를 계승한 사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시다면, 플록 편을 이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다시 설명으로 돌아오자면, 초현실주의는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이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기존의 질서를 무시하는 다다이즘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다다이즘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태도보다는 창작자의 무의식과 꿈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이성적인 구조로 짜인 작품보다는, 무의식에 기반하여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을 빠르게 받아 적는 자동기술법(automatisme)과 마그리트가 자주 애용한 기법인 데페이즈망 기법(dépaysement)을 개발하기도 하였죠.

Elective Affinities, Oil on canvas, 41 x 33 cm, 1933

 그중 마그리트의 관심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세계 그 너머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신비’라고 종종 말했는데요. 어느 날 밤 그는 우연히 새가 들어가 있어야 할 새장 속에 달걀이 들어가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사실 자다 깨어난 그가 착각한 것이었는데요. 그는 이 순간 세상의 비밀을 깨닫는 기분을 느낍니다. 새장과 달걀이라는 두 오브제, 이 둘은 평소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간 잊고 있었을 뿐이지 둘 사이에는 충분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었죠.

 이후로 마그리트는 이러한 ‘신비’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과 이미지들을 최대한 관습적이지 않게 배열하며, 감상자에게 신비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였는데요. 그런 마그리트에게 텍스트와 이미지는 모두 오브제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에 있는 것들은 다른 미술가들처럼 자신만의 붓 터치로 독창적으로 표현되기보다, 다소 중립적이고 평범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고, 그의 친구이자 시인인 루이 스퀴네르는 “마그리트는 위대한 화가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마그리트 본인도 미술가보다는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고 알려졌죠.

절대 의미를 해체하라

 이러한 마그리트의 작품과 철학관은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Deconstruction)’와 많은 면에서 닮아있습니다.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오랜 서양의 철학을 비판하기 위해 탄생한 20세기의 반철학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형이상학에 이어 로고스 중심주의 철학이 주도해왔습니다. 'Logos'는 인간의 이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말하기의 명사형 즉 ‘말한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요. 로고스 중심주의 철학은 오래전부터 이분법적인 사고관을 가져왔습니다. 이 이분법적 사고관은 필연적으로 우열을 가르는 장치로써 작용하는데요. 이것을 이항대립이라고 합니다. 감성보다는 이성을, 악보다는 선을, 변화보다는 불변을, 여성보다는 남성을 그리고 문자보다는 음성을 더 우월한 것으로 치부해버리죠.

 로고스 중심주의에 의하자면 문자는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신의 목소리 그리고 하다못해 자신 내면의 목소리마저도 모두 음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발화자와 더욱 가까운 것에 비해, 문자는 그에 비해 발화자의 것과는 먼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죠. 본래 뜻과는 먼, 왜곡되기 쉬운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데리다는 기호의 본질을 연구하고 기존의 구조 체계를 해체하려 합니다. 기존의 구조는 그 중심이나 총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환상이며 대체물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하죠. 또한 데리다는 “최초의 언어는 형상적이었다”라며 말하기 이전에 그리기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을 근원 문자, 에크리튀르(écriture)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모든 기호는 사실 기호가 아닌, 중심이 없이 단지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에크리튀르일 뿐이라는 것이죠.

소쉬르가 남긴 소산들

 님, 사실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쉬르의 언어 기호학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소쉬르는 모든 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이해했습니다. 기표는 문자, 이미지와 같이 물질적이지만, 기의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쉽게 비유를 들자면, ‘귤’에서 ‘ㄱ+ㅠ+ㄹ’은 일종의 몸체이자 기표일 뿐, 그것을 보고 떠올리는 ‘과일 귤’은 정신이자 기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기호는 다른 기호들과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데요. 이를 기반으로 언어를 만들어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죠. 그러나 데리다는 그러한 소쉬르의 대부분의 이론을 긍정하지만, ‘차이’에서만큼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데요. 그는 사실 하나의 기호와 다른 기호를 구별 짓는 ‘차이’는 실제로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이를테면 ‘해체주의’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고스 중심철학’이라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항 대립’의 뜻을 찾아야 하며, 또 이것은 ‘에크리튀르’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야 하죠. 하나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다른 개념들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실 어느 단어 하나 뜻을 알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 뜻에 대한 이해가 지연되겠죠. 이것이 소쉬르의 ‘차이’의 자리에 데리다가 ‘차이’와 ‘지연’을 합친 합성어, ‘차연’을 대체한 이유입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선언

The treachery of images(This is not a pipe), Oil on canvas, 63.5 x 93.98 cm, 1928-1929

 이러한 양상은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에서도 드러납니다. 딱 봐도 파이프의 형태를 띤 그림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단순한 글귀. 하나의 그림과 하나의 문장의 아주 단순한 구조로 이뤄져 있는 작품이지만,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의미는 무겁습니다. 파이프 형태의 그림은 단순히 물감으로 이뤄진 덩어리일 뿐, 진짜 우리가 잡고 물 수 있는 파이프가 아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즉 파이프 그림이라는 기표와 진짜 파이프라는 기의는 결합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이 그림을 본 감상자는 이러한 질문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저 파이프 그림이 파이프가 아니라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 이 순간, 차연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죠.

 차연(différance)은 데리다가 만든 신조어로써, 차이(differ)와 지연(defer)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말입니다. 프랑스어로 차이를 뜻하는 ‘différence’는 다르다와 지연시키다는 뜻을 모두 가진 ‘différer’에서 유래합니다. 여기에 데리다는 ‘e’ 하나를 ‘a’로 교묘하게 비틀어, 영어의 ‘-ing’와 같은 프랑스어 진행형 ‘ant’를 연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차연은 한 단어의 정의는 또 다른 정의를 이어지며 그 의미를 끝없이 지연할 뿐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단어는 결정 불가능해지며, 로고스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당연히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의미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부재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됩니다. 더불어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 또한 변화하기 때문에, 항상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개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탈구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남아있는 흔적들이 의미하는 것

The Son of Man, Oil on canvas, 116 x 89 cm, 1964

 이렇듯 데리다는 언어가 가진 불완전함을 통해, 기존의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언어 해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단어는 이제 확고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 또한 변화하기에 일종의 ‘흔적(trace)’처럼 우리 앞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주변의 맥락과 같이 해석해야 하죠.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발견됩니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이라는 기법을 주로 활용하였습니다.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란 ‘추방’ 혹은 ‘떠나다’라는 뜻으로 번역되는데, 일상적인 오브제의 용도를 파기하고 엉뚱한 현실과 결합시키는 방법입니다. 즉 기표로서의 오브제와 그 뜻인 기의의 결합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관습적인 것을 떠나, 미지의 신비함과 깨달음을 감상자에게 전달하고자 한 의도에서 고안된 것이죠.

The Castle of the Pyrenees,

Oil on canvas, 200 x 145 cm, 1959

 그는 일반적 사물들을 병치시킵니다. 사람의 코와 비슷한 과일을 달아 놓거나, 물을 막아야 할 우산과 물을 담아두는 잔을 결합시킵니다. 이렇듯 어느 정도 유사성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두 친숙한 사물들의 조합을 통해 마그리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스러움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또한 그는 일종의 자연법칙마저도 파괴합니다. 중력을 무시한 체 무거운 섬을 공중에 올려놓거나, 커다란 장미와 사과를 통해 방안을 가득 채워놓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는 의미되지 않은 것들을 의미할 뿐이죠. 마치 흔적처럼 말입니다

안과 밖은 구분할 수 없다

Not to be Reproduced, Oil on canvas,

81.3 x 65 cm, 1937

 또한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거울’은 아주 흥미로운 소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회화에 사실 거울 이미지는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현실을 비트는 방식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죠. ‘거울’의 특징은 실제를 복제한 듯이, 재현해 내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이 나를 보듯이, 나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장치로 거울을 활용합니다. 따라서 거울을 좌우가 반전되며, 거울 속 나의 모습은 대칭되어 그대로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마그리트 작품 속에서 거울은 현실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숨겨진 잠재적인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타인이 바라보는 객관적인 내 겉모습을 재현해 내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나의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하게 해주는 것. 마치 기존의 미술이나 철학에서 추구하던 것을, 아주 쉽게 비꼬는 가벼운 수라고 할 수 있죠.

The human condition, Oil on canvas,

100 x 81 cm, 1935

 거울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마그리트는 시선의 이중성에 집중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과 밖의 경계를 오히려 무너뜨리며, ‘무엇이 안이고, 무엇이 밖인가’라는 질문을 이끌어 냅니다. 이를테면, 위 작품들을 보고 이러한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과연 캔버스 속의 나무와 바다는 캔버스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도 존재할까”, “화가가 나무와 바다를 이어 그렸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누군가가 본다는 행위는 항상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나”와 같은 질문들이죠. ‘그림 안에 그림’이라는 주제는 이렇듯 두 가지 시선을 교묘하게 섞어,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현실 세계와 잠재 세계는 서로 뒤섞이게 되어, 명확한 정답을 내놓기 어려워지죠.

 이러한 양상은 데리다가 말한 ‘파레르곤(parergon)’의 개념과도 동일합니다. 파레르곤은 칸트가 처음 제시한 것으로, 작품이 아닌 그 주변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액자를 뜻하죠. 이성과 형식에 우위를 두었던 칸트는 파레르곤을 통해 작품의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구분 짓고자 하였습니다. 그러한 칸트를 두고, 데리다는 비판했습니다. 파레르곤 즉 회화 프레임은 작품의 내부와 외부가 모두 포함되는 이중적 경계이자, 내외부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독자적인 형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현실과 잠재 세계에 모두 맞닿지만, 그렇기에 오로지 이 그림 안에만 존재할 수 있는 마그리트의 두 그림처럼 말이죠. 결국 존재하지도 않고 부재하지도 않는 애매한 차연의 상태인 언어와 마찬가지인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 없는 오브제들이 있다

Attempting the Impossible, Oil on canvas, 105.6 x 81 cm, 1928

 이렇듯 마그리트의 작품들과 데리다의 이론은 현실의 것을 비틀며, 우리에게 일종의 당혹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마치 시야가 넓어진 듯한 개방감을 주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와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둘 다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파고들었습니다. 그 결과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결론을 내었죠. 데리다는 텍스트와 언어가 가진 모순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언어학, 심리학, 인류학 등 많은 분야에서는 언어 구조가 언어 사용자의 사고방식이나 문화 양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우리의 케케묵은 사고관을 해체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언어의 해체를 통해 오랜 이성 중심의 사고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데리다가 언어를 통해 해체를 일으키고자 했다면, 마그리트는 회화의 오브제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말과 이미지들>에서 회화적, 언어적 체계의 위험요소를 분석하여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그림 속 말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사고와 언어 구조 속에서 감추어진 모순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 자체로 아이러니, 역설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데페이즈망’기법은 초현실주의 기법이기도 함과 동시에 오랫동안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집중한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익숙한 것들을 왜곡하여, 낯설게 만들어 새로움과 흥미로움을 부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예술이 가진 본질적인 재미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de tour, 저희가 님에게 주고자 하는 재미처럼 말이죠.

이름은 사라지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님은 영화 <매트릭트 2- 리로디드>(2003)를 보셨나요?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많이 기억하는 영화인데요. 영화 속 스미스 요원들과의 전투 장면이 사실 마그리트의 작품, <골콩드>를 오마주한 것, 알고 계셨나요? 그리고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로 마그리트를 설명해 드렸는데요. 사실 마그리트는 이성 철학의 대가 헤겔을 평소 동경해왔습니다. 데리다가 헤겔의 철학을 부정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던 것을 떠올려보면, 굉장히 아이러니한데요. 이처럼 마그리트의 작품은 폭넓은 해석을 부여할 여지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이 되어서도 우리는 마그리트를 오마주한 듯한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이외에도 대표적으로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또한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예술가들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준 미술가 중 한 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마그리트의 작품은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 것일까요?

 님은 내러티브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주로 영화계에서 사용되는 말인 내러티브는 쉽게 말해 서사라는 뜻으로 활용됩니다. 허구의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 영화 특성상, 이야기 전개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이나 기법들을 차용해야 하는데요. 그럴 때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 내러티브라고 하는 것이죠. 미술에도 내러티브의 개념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뭉크의 <절규>를 본다고 했을 때, 우리는 절규를 하고 있는 남성이 다리 위에 있으며 뒤에 존재하는 몇몇의 남성들의 실루엣을 통해, 그가 여러 동행자들과 다리를 거닐다가 절규에 빠졌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주변 자연 경관과 시대적 상황까지 내러티브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죠.

  이렇듯 많은 미술 작품들은 제 나름의 내러티브를 가지게 됩니다. 이에는 당연히 작가의 의도도 포함됩니다. 작가는 작품 속의 요소들을 활용해 나름의 이야기를 짓고, 이를 감상자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1차원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달랐습니다. 그는 모든 사물들의 의미를 허물고, 그들과의 관계성도 비틀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감상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죠. 즉 창작자는 사물의 이름을 허물고, 이야기를 짓는 일은 감상자의 몫으로 넘기려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창작가로서 자신의 주관을 작품에 담아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객관적으로 보이는 사물들 그렇지만 어딘가 어색한 배열을 통해, 감상자들이 마음껏 그들을 보며 머릿속에 상상을 펼치기를 바랐죠.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보며 님이 상상해낸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 피드백 하러 가기 ’ 버튼을 눌러, 님의 생각을 전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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