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예방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소중하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킨다. 숱한 무고한 생명을 부질없게 희생하고 난 뒤 승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2023년 10월7일 오전 6시30분.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로켓 5000여 발을 쏘았습니다. ‘알아크사 홍수 작전’의 시작이었죠. 하마스 대원들은 가자지구를 둘러싼 콘크리트 장벽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로 침투해 민간인들을 납치, 살해했습니다. 이날 이스라엘 남부의 음악축제 행사장에서 발견된 시신만 260구에 달했고, 하마스는 150여명의 유대인과 외국인을 납치해 가자지구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피의 보복’을 선언하며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했고, 지구 내 주거지역까지 공습을 퍼부었어요. 가자지구 주민들은 전기, 식수, 가스, 인터넷 모두 중단된 채 고립되었습니다. 주민들 중 일부는 이스라엘군의 철수 명령에 따라 피난길에 올랐으나, 임산부와 영유아, 장애인과 노약자, 위중증 환자 등은 가자지구를 떠나지 못했고요. 그 결과 가자지구 내 전체 희생자 중 어린이, 노인,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60%가 넘는 상황입니다.

세계 각국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하 이-하 전쟁)에 대해 일제히 규탄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선 하마스의 기습을 ‘이스라엘판 9·11 테러’로 규정하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공습에 국제법상 금기시되는 화학무기 ‘백린탄’까지 활용했다는 정황이 확인되자,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도 나왔고요.

그러나 반복되는 규탄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보리 등 국제기구는 실질적인 전쟁 억제에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휴전’과 ‘전투 중단’ 중 무엇을 택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기 때문인데요. 미국은 구호품 공급을 위해 일시적으로 공격을 중단하자(전투 중단)는 입장인 반면, 러시아는 공식적이고 장기적인 공격 중단(휴전)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10월 16일 러시아가 낸 ‘휴전 촉구 결의안’에 반대 표를 던지기도 했죠.

빈손 회의가 반복되는 동안, 팔레스타인에서는 최소 8000명의 사망자가, 이스라엘에서는 최소 1400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10월 29일 기준). 28일,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전면전 전환과 지상군 투입을 예고했고요. 지상군 투입이 본격화 되면 가자지구에 잡혀간 이스라엘측 인질을 포함하여 민간인들의 희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이-하 전쟁발 비고는,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요?

‘왜 꼭 지금, 하마스가 이 정도로 대규모 공격에 나서야 했나’ 의문이 생깁니다. 국제 정치의 시각에서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근래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 간 관계 회복이 촉진제 역할을 했다는 해석입니다. 근데, 이스라엘이 일부 중동 국가와 잘 지내는 것이 하마스에겐 왜 위협이 되는 걸까요?

팔레스타인 내부 정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은 크게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로 나눠져 있어요.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하마스고, 이들은 ‘정치이슬람,’ 이스라엘 투쟁을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 세력이 주축이 되어 통치하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라고도 불립니다. 이들은 부정부패 문제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비판받지만, 서구 및 이스라엘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입니다. 그리고 하마스가 이스라엘만큼 싫어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한다고 인정한 서안지구 자치 정부 입니다. 이러한 내부 주도권 다툼에서 사우디 아라비아가 등장합니다. 근래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에 나섰고, 중동 지역의 반발을 의식해 팔레스타인 처우 개선을 수교 조건에 넣었어요. 하지만 사우디와 협력하는 팔레스타인은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였죠. 경쟁관계인 하마스 입장에선 달가울 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 하마스 공격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에 있다는 의견도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은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를 칭하는 말이기도 하죠. 이 별칭이 붙은 까닭은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이 이곳을 전면 봉쇄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16년 동안 무력 충돌이 이어졌고요. 이 연장선상에서 가자지구의 주민들은 억압받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2007년 봉쇄 이후, 가자지구는 극한의 실업률과 빈곤율이 일상이 됐죠.

특히 네타냐후 극우 정권 집권 이후, 가자지구 내 비인도적 상황은 악화됐습니다. 네타냐후 정부는 분쟁의 핵심 원인인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주 정책으로 추진하기도 했는데요. 정착촌이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일으켜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을 이주시켜 건설한 유대인 거주지입니다. 국제 법령상 불법이지만, 유대 민족주의와 유대교 근본주의, 이스라엘 최대 우방국 미국의 자본 등의 힘을 받아 규모를 계속 키워왔습니다. 정착민 보호를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켜 무력 충돌이 자주 일어나기도 하고요.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둘러싼 역사적인 맥락과 국제 정치의 흐름을 살펴봤는데요. 여러 책임 주체들이 얽혀있는 만큼, 해결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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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타냐후 정권 어디로 갈 것인가

이번 분쟁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내각의 중대한 기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하마스 침공에 대해 네타냐후 내각 책임론이 일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내각은 서안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밀어붙였고, 총리 본인과 주요 인사의 언행으로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영토 불안과 증오심을 자극해 왔습니다. 네타냐후 내각은 사법부 무력화 시도로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도 큰 반발을 사, 분쟁 발발 직전까지 291일 간 최대 50만 명이 참가한 이스라엘 최대 규모 시위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모사드가 하마스의 공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도 국내 반발 진압에 신경이 모두 쏠렸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오히려 이번 분쟁을 위기 탈출에 이용할 것이란 관측도 있는데요. 12일 네타냐후 내각과 이스라엘 제2야당 국가통합당의 전시 비상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국가통합당은 사법부 무력화와 관련해 가장 크게 대립해온 정당이지만, 기자회견에서 양측 대표들은 국가위기 앞에서 단결이 우선이란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통합 내각이 분쟁에서 성공적으로 승리한다면,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 불만도 잠재우고 정권 생명도 연장할 수 있는 셈입니다.

2) 흔들리는 미국 패권, 드리우는 새로운 전선?

이번 분쟁을 계기로 한 때 전세계를 제패했던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데 큰 부담이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이미 미국은 작년부터 패권 경쟁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상당한 무력을 투입해왔습니다. 이미 부담이 큰 와중에, 유독 고전하던 중동 지역에서 또다른 대형 분쟁이 발발한 것이죠.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굴욕적으로 후퇴한 이후 미국은 우방 이스라엘을 통해 새로운 중동 거점을 마련하려 했습니다. 그를 위해 미국은 이스라엘과 이슬람 주변국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그 중 한 곳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마스 침공 후 수교 협상 중단을 선언하며 초장부터 계획이 무너졌습니다. 미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 앞에서 직접 하마스의 목적이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협의 파탄일 것이란 추측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의 부담이 커진 틈을 타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대만 정부는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발발 후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영향력 약화와 중국의 침공을 우려하는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대미 무력행사를 시작한다면, 우리나라 역시 충돌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위험이 큽니다. 북한의 도발이 한층 강력해질 수 있단 사실도 빼놓을 수 없고요.

각국은 미국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 할 테고, 미국은 흔들리는 패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겠지요. 허나 패권 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지구촌 작은 곳에서 벌어진 남의 일로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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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찢고 죽이는 전쟁은 필연적으로 혐오를 불러옵니다. 한반도 분단이 그 예시이고, 여전히 남은 반공주의도 그 증거겠지요. 이스라엘 시간으로 지난 10일, 이스라엘 측은 피해 지역에서 참수된 영유아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발표합니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고, 행위의 주체가 불분명합니다. 지금까지도 ‘사진’이랄지, 명확한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주장이 사실이 된 과정은 이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그러나 국내외 커뮤니티 및 여론은 두 갈래로 나뉘어 싸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전쟁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치열합니다. 커뮤니티에는 크게 참수를 기정사실화하고 하마스를 비난하는 쪽과 분쟁 원인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맥락으로 보는 쪽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온라인을 벗어나서는 어떨까요? 한국 대학가에 실린 팔레스타인 지지 대자보는 논쟁의 시발점이 되는 게 아니라 “하마스 맘”이라는 멸칭과 함께 비난만 증폭되었습니다. 대학교 내에서도 건전한 공론장에서, 중동 전쟁을 논의하려는 시도를 찾기 어렵습니다.

혐오는 퍼지기 마련이죠. 유대인 혐오 정서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독일의 상황도 심상치 않습니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유대 회당 등 유대인 시설에 신원미상의 사람들이 화염병을 투척했습니다. 이 기사는 작금의 혐오 정서를 두고 “수십 년 동안의 역사적 분쟁이 빚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코멘트가 “응, 하마스 맘” 한 마디로 귀결돼 버리는 끔찍한 현실”이라고 못 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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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고 언론은 다양한 분석과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스라엘 우방국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쏟아 내는 뉴스부터, 팔레스타인 지지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불법 군사점령을 지적하는 목소리들까지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다보니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겠더군요. 공론장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이분법으로 가득한데, 오히려 이 전쟁은 무 자르듯 ‘내 편-네 편’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여러 사실들이 겹겹이 쌓인 문제니까요.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을 위한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은 정당화될 수 없고, 이스라엘의 유구한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 또한 정당화될 수 없듯이요.

전쟁을 둘러싼 이분법과 흑백논리,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을 떠올려봅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억압 정치에 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전쟁을 두둔할 수 없겠죠. 하지만 하마스를 두둔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의 존엄과 평화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둘 수 없겠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둘러싼 분리 장벽을 설치하고 팔레스타인들의 이동을 통제해왔고, 유대인 정착촌을 빌미로 팔레스타인 토지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들은 실업과 경제난, 생필품 공급 부족, 극심한 식수 및 전력난에 시달려왔죠. 게다가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주권은 매우 약한 상황입니다. 대표자가 없어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반면, 이스라엘은 대조적으로 미국과 여러 나라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억압에 맞서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평화를 촉구하는 이스라엘 소수의 목소리들은 비폭력으로 대항해왔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들은 비폭력 시위인 ‘귀환을 위한 행진’을 비롯해 파업, 학생들의 휴업, 단식 투쟁, 인권 및 사법 제도의 활용 등의 방법들을 총동원하면서요.

홀로코스트 당시 희생자의 아들이기도 한 유대인 교수 노먼 핀켈슈타인은 어머니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에 태어났다는 것 말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요. 민간인 사상자가 점점 늘어나고 극한으로 치닫는 지금 이 상황 속,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국제구호단체에 작은 액수를 기부하거나, 사태를 둘러싼 맥락들을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겠지요. 가장 먼저 생존권을 위협받는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길, 그곳에 거주하는 모두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