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츠픽: 서해인, <콘텐츠 만드는 마음>
콘텐츠 소화불량에 걸린 당신에게
SNS 외에도 유튜브와 OTT 서비스가 다양화되면서 우리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게 되었다. 내 경우를 생각해봐도,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입고할 책들을 찾아 업데이트 하며 틈틈이 읽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배경음악처럼 팟캐스트를 틀어놓는다. 회자되는 추천 콘텐츠는 메모장에 입력해두었다가 살펴본다. 지하철을 탈 때면 이어폰을 꽂고 미리 골라둔 음악을 재생하며 책을 읽는다. 식사를 할 때도 짧은 시트콤을 틀어둔다. 이쯤 되면 콘텐츠에 잠식당한 삶이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콘텐츠라는 말을 들어도 기대나 설렘이 생기지 않는다. 쏟아지는 콘텐츠를 꾸역꾸역 소비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나 이들을 한층 더 자극하기 위한 썸네일과 카피 같은 것들이 떠오를 뿐이다. 우리는 결핍된 상황보다 모든 게 과잉된 풍족한 상황에서 더 쉽게 물리고 지루함을 느낀다.
서해인의 <콘텐츠 만드는 마음>은 그런 나의 관점을 의미심장하게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책이다. 콘텐츠를 소비와 소모의 관점에서 보는 한 우리는 소화불량에 걸린 불행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돌아보니 콘텐츠라는 단어가 오염되었다고 느끼게 된 것은 이를 ‘만들고/소비하는’ 행위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애정을 담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과,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즐겁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었던 것이다. 이 책은 콘텐츠를 둘러싼 ‘사람’을 상기시켜줌으로써 우리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콘텐츠를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 책의 1부는 ‘보는 사람’, 2부는 ‘만드는 사람’, 3부는 ‘일하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음악페스티벌, 영화, 팟캐스트, 케이팝, 코로나 시대의 콘텐츠 등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의 이야기다. 특히 팟캐스트를 챙겨 듣는 심리를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단박에 이해했다. 퇴사 후 저자가 배 과수원의 인공수분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목이었다.(콘텐츠를 다룬 책이지만 중간중간 저자의 삶을 읽는 재미도 쏠쏠한 책이다.)
나는 당시 끝도 없이 하얗게 핀 배꽃 사이에 서서 내가 한 일이 언제 어떻게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겠다는 막연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왜 언제나 내가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만 생각하는 사람이지? 배 과수원에서 일일 아르바이트생인 내 지분은 한 줌도 되지 않는데도. 매일 팟캐스트 일고여덟 편을 무작위로 들었던 건, 서사화되지 않는 경험을 위로하는 데 또 다른 서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_본문에서
번역 프리랜서이자 서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회사에서와 달리, 내가 일한 결과물이 극히 드물게 보이는 직업이다. 그럴 때면 나의 하루는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끊임없이 어떤 콘텐츠를 읽고 보고 듣는 데에는 그처럼 서사화되지 않은 일상에 어떤 서사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콘텐츠의 단점을 말하고 싶을 때의 체크리스트’ 편은 조급한 평론가가 되고 싶은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소비자인 당신은 콘텐츠의 맥락(세계관)을 익히는 데 충분히 시간을 들였는가? 혹은 ‘고객이 왕’이라는 마음으로 가성비라는 잣대만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기준까지 고민해가며 콘텐츠를 대하는 저자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이제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면, ‘이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 이야기가 왜 잘 팔리지?’와 ‘이런 (중요한) 이야기는 왜 팔리지 않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창작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에 주목하는지, 왜 나는 그것과 결을 달리하는지를 숙고해보는 것이다._본문에서
작년 <오징어 게임>이 대세 콘텐츠였을 때, 또 어떤 잘나가는 작가나 유튜버의 행보를 둘러싼 못마땅한 공기가 주변에서 오고갈 때 꽤나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어떤 콘텐츠가 흥행에 성공하면 이를 둘러싼 찬탄과 비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작품을 비판할 땐 적어도 먼저 그걸 보거나 읽은 후(직접 체험한 후),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관점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콘텐츠가 널려 있는 만큼 사람들은 이를 값싸게 재단하는 데 익숙해졌다. 책을 읽으며, 콘텐츠를 무작정 소비하는 것만큼이나 가차 없이 난도질하는 우리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이 책의 2부에는 10일마다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발행하는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뉴스레터의 특징과 구독자에 대한 분석, 큐레이션에 대한 의미 등을 세세히 다루고 있어, 앞으로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은 유익한 조언을 접할 수 있다. 3부에서는 그동안 저자가 쓴 책과 영화, 드라마 리뷰를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큰 수확이라면, 나를 둘러싼 콘텐츠들을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삶이나 지식을 기록한 책은 부지런히 내 뇌를 자극하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세계를 이해하는 관문이 된다. 물걸레질과 설거지 시간의 동반자인 영화 팟캐스트, 산책이나 이동시 함께하는 음악, 손가락에 파스텔을 묻혀가며 그림을 그릴 때 켜놓는 유튜브 채널이나, 철지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바보처럼 웃는 시간까지도 내 일상을 무리 없이 굴러가게 하는 나름의 역할을 맡고 있다.
콘텐츠를 애호하는 사람들은 같은 대기열에 서서 이를 관람하며 꼭 필요한 한 줌의 구원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나북스 레터도 누군가에게 도달해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사람에게 보낸 메일이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다는 답신을 읽으며 안도했을 설희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여기서 메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연대의 출발점이 된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가 더 이상 사적이지만은 않은 이야기로 널리널리 퍼져나간다._본문에서
마지막으로, 이 책을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 매일매일 열심히 콘텐츠를 소비하면서도, 뭔가를 본 건 같은데 뭘 본 건지 모르겠는 사람
- 유튜브 한번 해봐? 뉴스레터 시작해봐?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독자, 혹은 이미 시도했으나 자신만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고민하느라 정체중인 독자
- 콘텐츠라는 단어도 지겹고, 쏟아지는 콘텐츠를 따라가는 것도 물린 무기력한 분들(네, 저요?^^)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가진 함정을 생각해볼 때가 있다.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확보된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네가 이걸 좋아할지도 모르지”라고 말을 걸어봤자, 결과는 어디까지나 운의 소관이다. 실패할 확률이 절반보다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채 거듭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 드러내는 일이 큐레이션이라기보다는 ‘큰 소리로 자랑하는 독백’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독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이런 걸 좋아할 것 같다”라고 말하는 대화라니 어딘가 좀 일방적이지 않은가!_본문에서
내가 해왔던 일의 덩어리를 해체해서 질서를 부여해야 다음에 뭘 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콘텐츠도 비슷하다. 틈나는 대로 온갖 것에 노출되고, 마음 가는 대로 보다보니,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맥락 없는 덩어리만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하지 않으면 늘 뭔가를 본 것 같긴 한데 뭘 봤는지는 모르는 상태가 돼버린다._본문에서
내 것을 만들어 밀고 나가는 사람은 어느 지점부터는 본인이 전혀 몰랐던 사람, 익숙한 세계의 바깥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닿아야 한다._본문에서
(by 밤의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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