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알지 못했던 우리가, 책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더 많은 분과 연결되어 <나는 거 [북토크: 우리를 연결한 두 권의 책]
서로를 알지 못했던 우리가,
두 권의 책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더 많은 분과 연결되어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와
<이것은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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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옹호 활동] 칼럼
‘미혼모’가 있는 풍경, 그 변화와 변주
#장면 1, 보이지 않았던 존재
2008년 여름 미국의 안과 의사로 은퇴한 리차드 보아스 박사는 한국의 미혼모를 돕고자 한국에 사무소를 내고 책임자를 뽑았다.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지 잘 몰랐지만 당시 한 여성단체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던 나는 유사한 일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원서를 냈고 최종 선발되었다. 한국 사무소는 곧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라는 공식 명칭을 갖게 되고 내게는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일을 시작하자 첫번 째 충격이 찾아왔다. 도무지 어디를 가야 미혼모를 만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혼모 지원 정책 토론회를 가도 학자, 공무원, 시설 관계자뿐이었다, 간혹 미혼모 당사자가 사례자로 나왔지만, 이름도 성도 없이 사례자 1 또는 미혼모 1이 그들의 이름이었다. 때로는 칸막이 뒤에서, 때로는 조명이 꺼진 어두운 공간에서 발표를 했기에 누구인지 식별할 수 없었다. 사진 촬영 금지는 사례자가 나오는 토론회에서 늘 보는 경고문이었다. 발표가 끝났다 해도 사적으로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들을 “보호”하는 시설 관계자의 허락 없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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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옹호 활동] 칼럼
보호출산제, 인공지능은 아는데 우리는 모르는 것
시행 한 달째인 지난해 8월 보호출산 선택 산모는 16명이었다. 그런데 시행 6개월째 52명으로 늘었다. "원가정 양육 지원"이라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했는데 왜 더 많은 임산부가 보호출산을 선택했나? 이런 유체이탈 화법은 보호출산제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게다가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신생아가 최종 보호기관 확정 시까지 돌봄을 받도록 긴급보호비(월 100만원, 약 3개월 지원)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산모가 임신 기간 받는 지원금은 여전히 100만원인데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열고 보호출산제가 아동의 생명권을 충분히 존중하는지 문답을 나누었다. 인공지능의 의견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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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 2월 세미나 안내
* 참여비: 1회 5천원
(하나은행 563-910001-36804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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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빙 활동]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서구 사회의 미혼 임신과 출산에 대한 차별과 낙인은 심했다. 결과적으로 수십 만 명의 백인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이 기혼 부부 가정으로 입양 보내졌다. 이 시기를 ‘아기 퍼가기 시대’라고 부른다
참조: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 제2의 페미니즘 물결 영향으로 여성들의 성적자기 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미혼모가 더는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양육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입양할 아기가 없어지자 미국에서는 미혼모의 아기를 확보하고자 아동 거래 암시장이 형성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종간 국제입양이 증가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미혼모 아기의 해외 입양 급증은 이러한 미국내 입양 시장의 변화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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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명: "미혼모의 유아 암시장 성업, 미상원 법적 문제로 청문회 열어"
- 부제: 공급 달려 서독서 임부 공수해 오기도, 마이에미선 버젓이 '신생아 농장' 경영
- 게재지: 경향신문
- 게재일시: 1975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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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명: "뱃속 아기를 경매"
- 게재지: 동아일보
- 게재일시: 1975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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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연의 학술논문 공모에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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