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글을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손현녕입니다.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제때 메일이 가지 않아 기다리셨을 마음에 우선 죄송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는 게 저 스스로 인간성을 잃어가는 일 같아 자괴감이 듭니다.

지난 일주일에 보내드리지 못한 세 가지 글을 이번 메일에 모두 실어 보내 드립니다. 더불어 독자님께 먼저 조심스레 전해 드리고 싶은 공지가 있습니다. 저희가 일주일에 세 번 글이 발송 되는데, 한 달에 총 열두 개의 글을 랜덤으로 발송해 드리는 것으로 포맷이 변경되어도 괜찮으실까요. 아프거나 또는 어떤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해당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마다 마음이 많이 불편하고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달에 열두 번의 분량은 꼭 지켜서 보내드리며, 비정기적인 메일은 어쩐지 좀 더 기다려지시지 않을까 하는 작은 아양을 부리며 이 말씀을 드려 봅니다.

기탄없이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괴물이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커튼콜이 올라가고 객석에 등이 켜진지가 한참이었지만 나는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옆 사람이 민망해할 만큼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남자 아이는 햇살이 쏟아지는 초록 풀 사이로 사라지는데 눈물이 그저 쏟아졌다. 잠시 여운도 없이 객석에 환한 불을 밝히는 영화관에 짧은 탄식을 내뱉고 싶었으나 몰골이 우스워 보일 걱정이 들 여유도 없었다. 그만큼 강렬하고 아팠으며 지독한 자기반성 하게 하는 영화였다.

‘괴물’이라는 영화를 봤다. 한강에서 괴물이 나타나 배두나 배우가 양궁 활사위를 당기는 장면으로 기억되는 ‘괴물’과 제목이 똑같아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전혀 다른 내용인 걸 알면서도 활을 맨 자주색 추리닝의 배두나가 자꾸 생각났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찾아보지 말고 가기를 추천받았다. 함께 보러 간 일행은 이 영화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광고가 나올 때쯤 어떤 종류의 영화냐 나에게 물었다. 나는 모르고 싶어서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가 시작할 때, 제작사와 투자사가 소개되고 마지막에 칸 영화제의 어떤 부문인지 수상했다는 짧은 화면이 지나갔다. 네이버 영화 평점 9점에 더 하여 칸 영화제 수상작만으로 내 기대치를 더욱 올렸다. 첫 화면에 등장한 주인공 아이의 엄마는 최근에 ‘브러쉬 업 라이프’라는 일본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으로 이미 깊게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그의 아들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어딘가 계속해서 불안해 보이는 채로 나온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설정, 학교를 다녀오면 스스로 머리를 자르거나 신체 일부를 다쳐오는 모습들로 영화는 엄마의 걱정어린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밤에 아이가 사라져 찾으러 간 으슥한 굴다리의 장면은 내가 뽑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다.

아이는 그 밤의 어두운 굴다리에서 “괴물은 누구인가? 괴물은 누구인가?” 노래를 부르는데 후레쉬를 들고 아이를 찾던 엄마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엄마의 후레쉬가 관객석을 정면으로 향한다. 그때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 내가 괴물이구나. 곧 내가 괴물이 될테지. 영화가 끝나고 나면 빼도 박도 못 하게 나는 괴물이었음을 알아차리고 말겠구나.’

그 이후 영화는 쉬지 않고 관객을 흔들어댄다. ‘너 이렇게 생각했었지? 그거 아닌데.’, ‘또 봐라. 너 이렇게 생각했지? 어쩌냐. 너 또 틀렸네. 너 그거 선입견 아니냐?’, ‘것봐, 네가 괴물이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내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짚어내지 못 했다. 나의 일행은 무엇이 슬퍼 우느냐 물었는데 제법 우습게 대답했다. ‘저기서 학대당한 아이 다리의 멍이 너무 아파, 불쌍해.’ 사실 그 아이가 불쌍해서 운 것이 아닌데. 나는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괴물인데, 괴물인 걸 알면서 쉬이 고치지 못하는 내가 괴물이라서 말이다.

영화에서 말한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누구든 쉽게 가질 수 없는 걸 행복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나는 누구의 행복을 빼앗았나. 나는 어떤 행복을 가지려 했는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야 말로 최고의 영화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참 좋은 영화를 보고 왔다. 내가 괴물임을 알아차리게 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