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월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실행되었습니다. 이 결정에 반대하며 KBS 김의철 사장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까지 했죠.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진짜 수신료 안 내도 되는거냐’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신료 분리징수를 둘러싼 논란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주 폴라리스의 주제는 ‘수신료 분리징수’입니다. 먼저 수신료 분리징수 법안이 어떻게 통과되었는지 그 절차를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수신료 분리징수 법안이 추진되는 절차와 근거엔 문제가 없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폈습니다. 공영방송 수신료가 과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인지, 공영방송의 역할과 그 필요성도 알아보았습니다. 나아가서는, 수신료 분리징수 논란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이야기하고 고민해야할 언론 지배구조도 다뤄보았습니다. 이번 레터를 통해, ‘우리 사회에 공영방송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여러분들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실화가 되면 수신료 수입의 축소로 국제방송, 재난방송, 여러 가지 공공 서비스형의 대폭적인 감소가 불가피하게 되고, 재원 구조도 더 많은 광고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공영방송에서 상업적 콘텐츠의 비중이 증가하고 공적 책임 실현은 더욱더 어려울 것이 명확하다. 제일 큰 피해자는 시청자가 될 것이다.”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7월 11일 국무회의에서 TV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의결됐습니다.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따로따로 나눠 낼 수 있게 된 건데요. 지금까지는 TV 수상기를 보유한 가구라면 전기요금을 낼 때 2500원의 수신료를 함께 납부해야 했어요. 수신료는 KBS, EBS와 같은 공영방송의 재원으로 쓰여요.

따로 낼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으니, 이제 수신료를 안 내도 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수신료 납부 의무를 명시한 방송법 64조는 그대로거든요. TV가 있는 가구는 여전히 수신료를 내야 합니다. 수신료 체납 시 가산금을 징수할 수 있고, 가산금 체납 시 국세처럼 강제 징수할 수 있다는 내용도 여전히 방송법에 명시되어 있죠. 다만 전기요금에 포함되지 않고 따로 걷기 때문에, 수신료를 내지 않으면 단전되는 불이익은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당분간은 신청자에 한해서만 분리 징수가 될 예정입니다. 그간 위탁징수를 맡았던 한국전력공사와 방송사 간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개정안이 시행됐기 때문이에요.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대통령실 권고 한 달 만에 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현재 방통위는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추천 상임위원 임명을 미루고 있어 총원 5명 중 2명이 공석 상태인데요. 방통위는 재적 위원 3명만으로 표결을 진행했어요. 국무회의 당일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일정으로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이었지만, 현지에서 전자결재를 하여 개정안을 통과시켰죠.

졸속으로 처리된 개정안에 방송사와 야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가 현실화하면 연간 예산의 30% 정도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김의철 KBS 사장은 시행령 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죠. 야당은 ‘분리징수는 정부의 공영방송 길들이기’라며 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시행령의 상위법인 법률 개정에 수신료를 전기료와 결합하는 것을 못 박아 ‘원상복구’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죠. 여당은 분리징수에 이어 TV 수상기를 가지고 있어도 KBS를 시청하지 않으면 수신료를 안 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 발의를 계획 중이라 밝혔고요. 법률은 국회 동의 없이 변경이 불가능한 만큼 여소야대 국면 속 법률 개정을 둘러싼 공방은 불가피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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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뜨거운 논란 속에 있는 수신료 분리징수 이슈는 지난 3월 대통령실이 직접 국민제안에 ‘텔레비전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이라는 의제를 띄우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의제는 5만 6천 건의 추천과 2천 건의 반대 응답을 받았는데요. 이에 여당 국민의힘은 “96% 이상이 수신료 분리 징수에 찬성”이라며 “그동안 공영방송이 편파 불공정 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주장했죠. 이런 국민제안 응답을 국민 대다수(96%)의 여론으로 보는 것, 과연 적절했을까요?

국민제안 응답을 통해 국민 대다수가 수신료 분리징수를 요구한다고 해석하는 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실이 내건 의제 ‘수신료 분리징수’가 아닌 ‘텔레비전 수신료 제도 논의’였기 때문입니다. 국민제안에 올라왔던 글은 ‘수신료 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들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5만 6천 건의 추천수엔 ‘수신료 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포함됐을 수 있다는 거죠. 이를 싸잡아 분리징수 찬성 요구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5만 6천 건의 추천수를 5만 6천 명의 추천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복투표 논란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100% 실명제를 통해 중복투표를 막겠다고 했던 국민제안이었음에도, 수신료 글에서는 동일인의 중복투표와 반복적인 의견 작성이 가능했죠.

정부는 수신료를 폐지·인하한 해외의 사례를 들며 수신료 분리징수가 국제적 흐름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언급한 프랑스와 일본은 수신료를 인하·폐지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미흡한 ‘여론조사’를 국민여론으로 호도하며 국민과의 논의과정을 생략시켜버린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는 겁니다. 프랑스는 수신료를 폐지한 후 공영방송 민영화 논란이 불거지자 수신료 폐지를 철회했고, 일본은 수신료 인하를 결정한 후 수신료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취했습니다. 일본 총무성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스마트폰으로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수신료를 징수하는 식의 온라인 수신료 도입도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제대로 된 논의 없이 부족한 근거로 수신료 분리징수를 통과시킨 것에 대해, 언론탄압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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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은 수신료 분리징수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KBS를 보지 않는데 수신료를 왜 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국민에게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고요. 하지만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이 축소되면 오히려 국민들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 김현 위원도 “수신료는 서비스 이용 대가가 아닌 공영방송의 공적책무 수행을 위한 특별부담금으로 국민의 의무”라고 지적했죠.

어쨌든 공영방송이 이윤 창출보다 공익을 우선시해야 된다는 골자인데, 이 차별점은 ‘2022 사업연도 KBS 경영평가보고서’에 조금 더 잘 드러나있습니다. 보고서에 담긴 지난해 주요 방송사 재난재해 첫 특보 현황에 KBS는 ‘울진 산불’, ‘밀양 산불’, ‘수도권 집중호우’, ‘괴산 지진’, ‘이태원 참사’, ‘과천 고속도로 화재’ 등 6건에 대해 모두 특보를 실시했습니다. MBC와 SBS, JTBC는 절반인 3건을, TV조선과 MBN, 채널A는 특보를 하지 않았고요. 손익을 따져 특보를 할지 말지 언론사는 고려하는 반면,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에선 의무에 가까운 것이지요.

노인, 장애인 등 정보소외계층을 위한 방송을 만드는 것도 공영방송의 책무입니다. <아침마당>, <6시 내 고향>,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KBS 제3라디오 프로그램, 북한 주민이나 북방 동포를 위한 한민족방송 등이 대표적인 사례죠. 물론 재미나 화제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전통 매체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복지, 정책, 일상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KBS 작가들은 “넷플릭스가 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가 피사체인 방송, 사회적 약자가 시청자인 프로그램을 하는 게 공영방송의 의미”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렇듯 재원의 출처는 방송 운영방향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KBS 구성원들은 독립적인 재원 없이는 공영방송이 책무를 다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명합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향후 공영방송의 재원 마련이나 방향에 대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사례와도 닮아있는 이유죠.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2027년 BBC 수신료 완전 폐지를 선언했습니다. 수신료를 빌미로 언론 장악을 한다는 비판에는 국민들의 불만을 근거로 내세우며 강경 추진했죠. 하지만 그는 2022년 사임 전까지 BBC 재원 마련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퇴장했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조치를 취하기 전, 변화에 대한 설명이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선행되어야 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정부가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결정하면서도, 향후 공영방송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이나 비전이 흐릿하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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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방송자금을 충당하는지’ 이외에도, ‘누가 방송을 운영하는지’. 즉, 방송사의 ‘지배구조’ 역시 독립성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죠. 지금까지 공영방송의 독립성에 대한 논의는 주로 이 지배구조와 관련해 이뤄져 왔어요. 공영방송의 이사진을 선출할 권리가 사실상 집권여당에 있기에, 친여당 인사가 이사・사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집권여당과 공영방송 간 결탁이 생기기 쉬운 구조인 거죠. 실제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임원진이 친정부인사로 바뀌는 경우가 잦기도 했고요.

따라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려는 시도 역시 지배구조를 중심으로 이뤄졌어요. 여당 중심으로 이뤄진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던 기존의 관행에 맞서, 학회 등 전문성이 보증된 외부 기관에 이사 추천권을 이양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법 개정안’ 역시 그중 하나이고요. KBS와 MBC 등 방송사들은 숱한 파업을 통해 ‘보도국장 임명동의제’ 등 경영진으로부터 편집권을 보호하는 제도들을 만들어왔어요.

그런데 **수신료 분리 징수가 위협하는 것은 ‘지배구조’가 아닌 ‘재원’**이죠.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셈입니다. 수신료 징수율이 떨어질 때 공적자금이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다면 공영방송은 자체적인 수익을 통해 재원을 충당해야 하겠죠. 방송 산업의 특성상 광고 수익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텐데, 이 경우 광고 수주와 직결되는 자본에 의해 방송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이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방향 역시 달라지겠죠. 어떻게 ‘공적 자금’을 재원으로 삼을 수 있을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사회적 논의의 장을 열어 시민들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새 과제로 주어질 전망입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는 ‘공론조사’를 벌일 것을 제안합니다. 일방적 여론조사가 아닌 서로 간의 토의가 가능한 공론조사 형식을 통해 공영방송 스스로가 공적 재원의 필요성을 직접 입증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내부운영에 있어서도 공적 책무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방송국 내 만연한 비정규직과 하청인력에 대한 임금차별과 고용불안정 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공익적 가치’를 대변한다는 공영방송의 당위가 무색해질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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