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현장에는 돌봄의 지평이 필요하다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공동대표)
‘추상적인 얘기는 지긋지긋하다. 당장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당면한 문제의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만나는 건 철학의 빈곤이다.’
국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돌봄 관련 토론회를 여는 시대다. ‘돌봄 위기’나 ‘돌봄 절벽’이란 말로 절박감이 표출되고, 구체적 양상으로 돌봄 인력의 태부족과 돌봄 현장의 열악한 환경 등이 꼽힌다. 그런 자리에서 나오는 의견들은 당장의 필요 충족을 위한 대책과 근본적 가치와 이념을 재고하자는 당위로 압축되곤 한다. 그런데 실용적인 논의와 돌봄의 철학이나 이념은 과연 대립되는 것일까? 대립되는 것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의 뿌리가 아닐까? 이론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단지 메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분법이 아닌 것으로서 둘 사이의 관계를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돌봄을 둘러싼 동시대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 태도, 실천을 붙잡을 수 있는 틀이 철학과 이념이라면, 그런 틀 없이 돌봄 현장의 문제를 포착하고 고쳐나가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현장과 이론의 이분법은 돌봄이 홀대받게 된 고질적인 근본 원인과 맞닿아 있다. 돌봄에서 벗어나는 삶을 자유롭고 생산적인 것으로 추구했고, 돌봄 받는 몸이나 돌보는 몸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거리두기를 했다. 누구나 몸을 갖고 있고 돌봄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그런 몸과 의존을 부정하는 경제적·정치적 권력과 지적 논의와 담론을 돌봄을 홀대하는 데 사용해 왔다. 주로 여성에게 전가한 ‘공짜’ 돌봄에 익숙했고, 그것이 막다른 길에 봉착하자 되도록 싸게 오래 맡아주는 것에 치중했다. ‘더 싸게’를 구현하기 위해 돌봄 노동을 가치의 위계질서에서 맨 밑바닥에 두었고, 생산노동을 더 중시하고 더 오래 노동해야겠기에 ‘더 오래’ 맡기는 것에 치중했다. ‘공짜’ 돌봄도, 시장화된 돌봄도 ‘더 싸게’와 ‘더 오래’를 선택의 여지 없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처지의 성별, 나이, 계급, 인종의 사람에게 주로 몰아주었다. 그렇게 돌봄을 착취하려고만 할 때, 우리는 돌봄 받고 돌보는 힘 모두를 동시에 잃게 된다.
이렇게 켜켜이 누적된 부정의한 조건에서, 돌봄의 필요성만 강조하는 것으로는 돌봄이 숨구멍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늙고 병들고 장애가 생기는 몸, 먹고 싸고 자고 입고 씻고를 반복해야 하는 몸, 살아가야 하는 필요에 종종거리는 삶을 열등하고 비참한 것으로 묘사하고 그것과는 거리를 둔 지식이나 학문이나 정치활동에 맞서 싸워야 한다. 고상한 일과 노동자의 일을 나누고, 노동자의 일 중에서도 재생산 노동을 경시해 온 것, 감정이나 정서보다는 이성이나 의지를 중시해 온 것, 이런 중첩된 모순들을 총체적으로 내파하는 철학과 실천이 돌봄 이념일 것이다. 다른 이의 돌봄 노동을 착취하고 수탈함으로써 얻는 돌봄이 아니라, 도구적으로 쓰고 버리는 관계가 아니라 재생적인 방법으로 관계 맺고 돌봄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누구나 익혀야 한다. 이를 위한 돌봄 이론의 과제는 돌봄을 음침한 뒷방이 아니라 볕이 잘 드는 한가운데에 두는 것이고, 삶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돌봄을 두는 것이고, 그렇게 돌봄의 현장을 삶의 전반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평평한 대지의 끝과 하늘이 맞닿아 보이는 경계선이 지평선이고 이를 비유하여 전망이나 가능성을 말할 때 지평이란 말을 사용한다. 돌봄 현장에는 그러한 지평이 필요하다. 돌봄의 이념은 이념형대로 있어야 되고, 또한 그런 것으로서 필요하다. 그런데 돌봄의 가치가 너무 선언적으로 공포되고, 돌봄의 어떤 이상적인 형태가 공익 광고나 선전선동처럼 말해지는 가운데 그에 비추어 본 현장들은 얼마나 초라하게 훼손되고 상처받고 있는가? 이는 또 다른 문제이다. 가령, 현실의 법들과 법의 이념형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보통 사람들은 정의를 구현하려고 법을 구하는데, 개별적인 법이 모두 정의로운 것은 아니기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개별법을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 분투한다. 이렇게 상관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이념형으로서의 법은 다른 말로 정의를 말한다. ‘정의로서의 법’과 척박한 인권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법들’ 사이의 간극을 계속 아프게 뼈저리게 인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념형을 버려도 안되고 현실을 너무 추레하다고 사소하게 취급해서도 안된다.
이런 사회적 역량이 너무 중요하고 특히 돌봄에서 그러하다. 현재 돌봄 담론에서는 선언적 구호가 너무 세고, 그런 담론이 돌봄 현장의 품행을 평가하는 식으로 작동하는 문제가 있다. 돌봄 현장을 겨냥한 품행 평가가 아니라 일종의 지평이 돼야 한다. 돌봄 이론이 지평이 되지 않고, 현장의 종사자와 실천을 비난하는 식의 도구가 되고, 그런 식으로 도구화된 이념에 비해 현장은 너무 열악하고 초라하니, 반사적으로 이념을 버려야 될 것으로 적대시하고 자꾸 실용으로 가게 될 것이 우려된다.
돌봄 이론은 돌봄 노동을 맨 밑바닥에 두는 가치의 위계질서를 뒤집기를 바란다. 지금의 돌봄이 어떤 가치에 의해 조직되었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빠져나올 구멍을 찾을 수 있다. 전복이 단순히 이론만으로 될 수는 없기에 당장의 돌봄 필요와 맺고 있는 구체적 관계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 관계는 주간보호센터, 요양병원, 요양원 등 직접적인 현장에서의 관계만이 아니라 그런 장소를 조성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관계들을 말한다. 돌봄을 삶에서 추방한다면, 돌봄 현장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면, 돌봄 받는 몸과 돌봄하는 것에 대한 공포와 무기력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그대로 놔두기보다는 의식적으로 다른 관계의 지평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