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러분을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곳에는 어둠 속에서 은은한 미소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조각상 두 점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한 발짝 한 발짝 그들 가까이 다가서 봅니다.
# 나만의 한국사 편지 20 #
영원한 맞수, 두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시실 안 두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한쪽 다리는 다른 쪽 무릎에 올려놓고, 한 손은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겨있는 상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전시 중인 국보 78호, 83호 두 반가사유상이 유명하다.
 
'반가'(半跏)의 가(跏)는 책상다리를 의미한다. 두 다리를 맞은 편 무릎에 올려놓는 것을 말한다. 반가는 한쪽 다리만 다른 무릎에 올려놓는 것으로 보통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려놓는다. '사유'(思惟)는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말한다.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말로 표현했다.
 
왜 이런 모습의 조각상을 만들었을까.
조각상의 모델은 누구일까.
싯다르타 태자일까.
여기 다른 표정의 반가사유상을 보자. 
천룡산 석굴의 수하 반가사유상 (출처: 황수영, <반가사유상>, 대원사, 1992)
싯다르타 태자는 어느 날 나무 아래서 사람들이 밭 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쟁기를 갈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흙이 뒤집히면서 벌레들이 드러났다. 그러자 새들이 와서 벌레를 쪼아먹었다. 평화로운 모습 속에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태자는 생각에 잠겼다. 경전에는 '나무 아래서 밭 가는 것을 본다'고 해 ‘수하관경(樹下觀耕)’이라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 아래 생각에 잠겨있는 반가사유상을 수하반가사유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생명이 죽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태자사유상의 모습은 우리의 두 국보 반가사유상과 같은 모습일 수 없을 것이다. 은은한 미소를 띄울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근심 어린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을 테다.
 
석가는 열반에 들기 전 걱정하는 중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대신할 미래의 부처가 와서 중생을 다시 제도할 것이라고. 56억 7천만 년 뒤 미륵이 이 땅에 내려와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 것이라 했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미륵을 불러내고자 했다. 후고려를 세운 궁예가 그랬다.
 
그럼 56억 7천만 년 동안 미륵은 어디에 있는 걸까. 도솔천이란 하늘에 있다. 미륵이 하생 하기 전 미리 미륵을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은 직접 도솔천에 올라 미륵을 보기를 빌었다. 그렇다면 미륵불이 되기 전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싯다르타의 모습을 했을 것이라 상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태자반가사유상과 비슷하게 만들었고 둘의 모습은 구분하기 어렵게 됐다.
서산 마애삼존불 (사진. 송선례)
우리나라에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의 반가사유상을 보자. 가운데 석가(싯다르타)가 있고 양옆에 보살들이 있다. 석가 기준 왼쪽에 앉아있는 보살이 반가사유상이다. 석가는 현재불이고 미륵보살은 56억 7천만 년 뒤인 미래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반가사유상은 생각에 잠겨있다. 지구 반대편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둘의 생각은 비슷할까 다를까.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생각의 목적이 뚜렷하다. 56억 7천만 년 뒤 이 땅에 내려와 어떻게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 수 있을까 '미소를 지으며' 고민한다. 
(왼쪽부터) 78호, 83호 반가사유상
우리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기도 버겁지만, 미륵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사랑한다. 하늘에 뜬 하나의 달이 세상 모든 강에 그 모습을 비추듯 미륵은 세상 모든 이의 각각의 마음속에 다 다가간다. 반가사유상의 알 듯 모를 듯 매력적인 미소가 마치 나를 기다리면서 짓는 미소처럼 느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두 국보 반가사유상은 각각 다른 특징을 지녔다.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르다. 83호는 심플하다. 생몸이다. 78호는 화려하지만 단아하다.
(왼쪽부터) 83호, 78호 반가사유상
눈에 들어오는 큰 차이점은 모자의 모양이다. 83호는 산이 세 개인 ‘삼산’ 모양이다. 78호는 ‘해달’ 모양(노란색 표시)이다. 달은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두 반가사유상을 ‘삼산관 반가사유상’, ‘일월관 반가사유상’이라고 구분했다. 지금은 국보에 번호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삼산’과 ‘해달’이 좋은 구분법이 될 수 있겠다.
 
83호의 삼산은 미륵과 관련이 있다. 3은 미륵의 세 번 설법을 상징한다. 산은 미륵이 하생하는 용화산(龍華山)을 의미한다. 익산 미륵사에는 세 번의 설법을 상징하는 세 개의 탑이 세워져 있다. 미륵사 뒷산의 이름은 용화산이다. 김제의 금산사 미륵전도 3층이다. 금산사 2층 현판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라고 적혀있다.
 
78호의 해달은 페르시아 이란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화려한 보관은 미륵보살이 머무는 도솔천의 화려한 하늘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도솔천에 왕생(往生)하고픈 소원도 담았을 것이다. 일월관 반가사유상은 도솔천에서의 56억 7천만 년 긴긴 세월을 길다 여기지 않고 그저 미소를 띤 반가사유상이다.
(왼쪽부터) 83호, 78호 반가사유상
두 반가사유상은 옷 스타일도 정말 다르다. 심플한 모자를 쓴 83호는 상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아래에만 얇은 옷을 걸쳤다. 반면 78호는 화려한 모자에 머리띠를 하고 팔찌를 끼고 위아래 옷을 다 걸쳤다.
(왼쪽부터) 83호, 78호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의 뒷모습을 살펴보자. 두 반가사유상 머리 뒤에서 광배를 끼운 흔적을 찾을 수 있다. 83호는 못처럼 튀어나온 부분에 광배를 끼웠고 78호는 광배를 끼워 넣는 구멍이 뚫려 있다. 
(왼쪽부터) 83호, 78호 반가사유상
두 반가사유상은 부분 부분 서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그중 단연 재미있는 발견은 발가락 모양에 있다. 83호의 오른발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다. 화려한 78호도 아니고 심플한 83호에 힘이 들어간 발가락이라니. 하나의 돌발이다. 생각에 잠겨있다 깨달음을 얻은 순간일까. 이제야 중생을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의 순간일까. 번개가 번쩍하듯 한순간의 절정을 표현한 듯하다. 우리도 전기가 들어오는 것 같은 짜릿한 순간을 느낄 때가 있는 것처럼. 불교 경전에는 이런 순간을 전광삼매(電光三昧)라고 한다.
(왼쪽부터) 78호, 83호 반가사유상
56억 7천만 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사람에겐 영원의 시간에 가깝다. 영원히 우리를 생각하고 있는 저 일월관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나는 ‘영원의 미소’로 부르고 싶다. The Smile of Eternity.
 
56억 7천만 년이 흐른 뒤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는 순간의 미소는 어떨까. 깨달은 순간의 미소는 어떨까. 얼굴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발가락에 전해지는 삼산관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나는 ‘순간의 미소’로 부르고 싶다. The Smile of Moment.
옆에서 보면 포개져 보이는 두 반가사유상. '순간의 미소' 팔 사이로 보이는 '영원의 미소'
순간과 영원의 시간 차이는 얼마나 될까.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만날 수 없는 순간과 영원이 함께하고 있다. 앞에서 ë³´ë©´ 두 반가사유상이지만 옆에서 ë³´ë©´ 두 반가사유상은 겹쳐져 있다. 영원 속에 순간이 포개져 있고 순간 속에 영원이 포개져 있다. 
 
두 반가사유상의 중생에 대한 사랑이 이렇다.
영원한 사랑도 모자라, 영원을 순간처럼 사랑하는 사랑이다.
 
순간과 영원, 두 반가사유상은 둘이 서로 만날 줄 알았을까.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두 반가사유상의 국적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두 반가사유상이 천년을 훌쩍 넘어 대한민국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란히 앉아 있을 줄을 알았을까. 
 
그러고 보니 순간의 반가사유상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옆에 있는 영원의 반가사유상에 반했는지 발가락이 움찔했다.
 
글. 역사학자 조경철
편집 & 사진. 집배원 부
이달의 핫-한 '한국의 맛과 멋' 타래 _ 글. 집배원 부 ðŸ’Œ
🎨 이달의 핫-한 전시
집배원 부가 직접 다녀온 전시 중에 좋았던 곳들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 (11.12~)
수요일 야간 개장 시간에 찾은 '사유의 방'의 전경입니다. 관람객들이 벽에 기대앉아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관람이 곧 쉼이자 머뭄이 되는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번 편지를 읽어보았다면 안 가볼 수 없는 곳이지요. 사유의 방 입구부터 걸어 들어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직접 만나보세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1.11~2022.3.1)
단풍잎이 퍼석하게 깔린 요즘의 가을 길을 생각나게 하는 박수근의 그림들을 만나보세요. 두텁게 마른 물감층에 숨겨져 있는 밝고 옅은 색과 표정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림에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죠. 박수근 그림 속 인물들의 움직임과 표정은 무척 단순한데요. 그러나 그 인물들이 어떤 상황인지 왠지 알 것만 같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나목>(1976)과 함께 보시길 추천합니다.
🎭 ì´ë‹¬ì˜ 핫-한 K-역사/전통/문화 콘텐츠
출처: 국립박물관 문화상품 웹사이트
** 반가사유상 굿즈 특집 **
국립중앙박물관이 '사유의 ë°©'을 열면서 다양한 반가사유상 굿즈를 내놨습니다. 신상이 나올 때마다 한국의 맛과 멋 트위터와 나만의 한국사 편지 인스타그램에 소식을 전했는데요. 그때마다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친구들을 한자리에 모아보았습니다. 벌써 6ì°¨ 주문을 받고 있는 강렬한 색감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완전히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고요. 백설기 색감(=파스텔톤) 시리즈의 미니어처가 새롭게 출시됐습니다. 머리가 커져 생각이 더 많아 보이는 반가사유상 방향제도 나왔고요. 금속 재질의 미니어처 세트, 인센스 홀더까지! 점점 더 귀여워지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아이돌 반가사유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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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íŽ¸ì§€ 마다 소장하고 있는 옛 우표를 붙여 보내드립니다.
 
1979년에 발행된 '순간의 미소' 반가사유상 우표입니다.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가사유상으로만 꽉 채운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번 편지로 각자의 마음속에 나만의 반가사유상이 자리잡길 바랍니다. 😊  - 집배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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