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왜 부담스러워졌을까요?
💬뭔가를 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 아닐까요? 5월엔 ‘뭘 해야 할까’보다 ‘돈을 얼마나 쓸까’란 마음이 강해서라고 생각해요. 10만원은 적은 것 같은데, 20만원이나 30만원은 또 과한가? 매번 얼마를 드려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마음이 무거운 거죠. 용돈이나 선물에 대한 인플레이션(물가 수준의 지속적인 상승)도 너무 커졌고요. ‘효도 플렉스’란 말까지 나왔잖아요.
🎙️️부모님한테 돈을 많이 드리면 좋은 거 아니에요?
💬무리해서 돈을 쓰잖아요. 영끌이라고 할까요? 남들에겐 그럴듯하게 보일 순 있지만, 한 번 생각해보세요. 무리한 관계가 잘 된 경우가 있나요?
🎙️️전혀 없나요?
💬관계는 할부라고 생각해요. 마음 표현을 몇 개월, 길게는 수십개월 나눠서 써야 하는데 일시불로 플렉스 하고 싶은 거죠. 글이나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데, 봉투를 주는 건 상대적으로 쉽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 엄마가 요즘 뭐가 필요할지 고민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보단, 20만원 보내는 게 빠르니까요. 어버이날에 대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도 있어요.
🎙️️어떤 경험이요?
💬외국에선 크리스마스에 3대가 자연스럽게 모여서 밥을 먹고 며칠씩 시간을 보내잖아요.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찾아뵙는 건 명절 정도? 부모님이 그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거나 감사하다는 감정 표현을 하는 걸 우리가 본 적도 없고요. 보고 배운 게 없다 보니, 우리도 뭔가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감정 표현이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꼭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있잖아요. 근데 왜 엄마,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어려울까요?
💬부모님 말을 잘 들어보면요.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런 말 할 사람 나밖에 없어’란 말이 전제돼 있어요. 그러면서 무언가를 꾸준히 요구하죠. 타인과 대화할 땐 돌려 말하거나 선의의 거짓말도 하잖아요? 내 말이 불편하진 않을지 고민하면서요. 부모님 말엔 그게 없는 거예요.
🎙️️엄청 직설적이긴 하죠.
💬부모님 말은 도로로 따지면 국도가 아닌 고속도로죠. 포장이 없는, 그냥 날 것이랄까. 그러다 보니 상처받기 쉽죠. 서로의 취약점을 잘 알기도 하고요.
🎙️️그렇죠. 가족이니까.
💬감정이 격해지면 순간 ‘저 사람을 이기고 싶다’거나 ‘상처 줘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오잖아요. 그럼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취약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요. 가족은 서로의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을 너무 잘 아는 거죠. 그렇다 보니 급소를 찌를 확률이 높고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 같아요. 팬이 돌아서면 제일 무섭단 말도 있잖아요?
🎙️️함께 보낼 시간도 별로 없잖아요. 서로 바쁘니.
💬물론 일요일 저녁이면 함께 모여 개그콘서트를 보는 일은 사라졌죠. 가족 드라마, 가족 예능이란 프로그램도 찾아보기 어렵고요. 함께하는 절대적 시간이 줄었긴 하지만, 서툰 대화 방식이 부모 세대 간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더 큰 요인이라고 봐요.
🎙️️예를 들면요?
💬부모 세대는 항상 자식 세대에게 말을 걸려고 하거든요. 회사에서 부장님이 신입사원에게 하는 대화를 잘 보면 “요즘 MZ는 뉴진스 좋아한다며?”라고 질문을 던져요. 친해지고 싶어서 한 말인데, 접근 방법이 잘못된 거죠. 좋은 대화란, 상대방의 말을 듣다가 공통으로 나오는 단어나 관심있는 주제를 키우는 거예요. 달고나에서 소다를 넣어서 부풀리듯이요.
🎙️️일단 잘 들어라?
💬사실 경청은 진부한 말이잖아요. 말하기 책에 빠지지 않고 나오고요. 근데 카페에서 2명 이상 앉은 사람들의 대화를 10분만 들어보세요. 다들 집단적 독백을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이 말할 때도 다음에 자기가 무슨 말 할지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거죠.
🎙️️왜 우린 자기 말만 하기 바쁠까요?
💬뭔가를 말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침묵을 못 견디는 사람들요. 뭔가 말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말을 하다 보면 실수할 수밖에 없는 거죠.
🎙️️아무 말도 안 하면, 너무 어색하잖아요. 침묵을 못 참겠어요.
💬아까 말씀드린 달고나와 소다 이야기와 연결되는데요. 억지로 분위기를 풀려고 말을 꺼내기보단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뭘 보고 있어요. “그럼 뭐 보고 있어?”로 시작하는 거죠. 이후에 “그게 왜 재밌어?” “뭐가 재밌어?”란 식으로 이어갈 수 있고요. 이 사람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부모님이나 남편과 대화하다 화날 때도 많아요. 그럴 때는요?
💬화가 나면 최소 10분은 쉬어요. 부모님에게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말이 “화나면 무슨 말을 못해”였어요. 무작정 화를 퍼부으면 당장 기분이 후련해질지는 모르지만, 상황이 달라지진 않잖아요. 뒤끝만 찜찜해질 뿐이죠. 10분간 쉬면서 내가 상대방에서 원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생각해요. 남편과 싸울 일이 있으면 요구사항을 종이에 써서 정리한 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10분이 지나도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때는요?
💬장면을 사진 찍고 제3자 입장에서 설명한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예를 들어 배우자가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왔어요. 그럼 우리는 보통 “미친 거 아냐?”란 말부터 나오는데요. “새벽 2시에 들어왔네? 술도 취했고. 무슨 일이야?”라고 묻는 거죠. 설거지 담당인 배우자가 이틀째 설거지를 하지 않아 싱크대에 그릇이 쌓였을 땐 “설거지가 안 돼 있네. 무슨 일 있었어?”라고 하고요. 이런 방식이 대단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아니지만, 최소한 화가 나진 않잖아요.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도 적용해볼 수 있어요.
🎙️️어떻게요?
💬“오늘 화장을 야하게 했네?” 같은 성희롱을 들었을 때요. 그럴 땐 침묵하거나 동조하지 말고, 그 말을 똑같이 되돌려주는 거죠. “제게 화장을 야하게 했다고 하셨네요?”라고요. 명확한 의사표현을 해도 좋지만, 그게 어려울 땐 그 사람이 한 말을 똑같이 되돌려주기만 해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이 한 말을 들어보라는 거죠. 일종의 거울 치료랄까요? 칭찬을 들었을 때도 가능해요.
🎙️️칭찬에도 거울치료가 필요해요?
💬저는 20대 때 칭찬을 듣는 게 너무 어색했거든요. 한번은 누가 귀엽다고 한 적 있었는데요. 그럼 뭐라고 하면 될까요?
🎙️️감사합니다?
💬그렇죠. 근데 저는 그렇게 말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거짓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어요. 칭찬을 한 사람도 무안해졌고요. 근데 “제가 귀엽다고 생각하셨군요?”라고 하면 어떨까요? “말씀을 참 잘하시는군요”라고 하면 “그렇게 들어주셨군요.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거죠. 칭찬이든 비난이든 익숙하지 않으니까 표현이 어려운 건데요. 그럴수록 더 입 밖으로 표현하는 연습이 중요해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대본을 많이 썼어요. 20대 때는 공적인 대화 연습이 안 돼 있잖아요. 학교에서 수업듣고 친구들과 말하는 정도니까요. 그래서 무례한 말을 들었거나, 당황해서 대처를 잘 못한 경우엔 적어봤어요. ‘다음에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복기하면서요. 일종의 오답노트 쓰기라고 생각하면 쉬운데요. 특히 회사처럼 공적인 말을 할 때 이 방법이 유용한 것 같아요. 라디오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됐고요.
🎙️️어떻게요?
💬지금은 라디오 말고도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로 대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예전엔 고차원의 대화를 들을 기회가 라디오뿐이었거든요. 특히 오래 진행하는 라디오 DJ들의 특유 화법이나 말투가 있어요. 아침인지 밤인지, 오전인지 오후인지에 따라서 대화하는 방식도 다르고요. 또 게스트가 보통 뭔가를 홍보하러 나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경우에 본래 목적인 홍보 전에 어떻게 분위기를 푸는 지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