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더티레터는 '한강의 찻잔'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어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을 기념해 노벨 재단에 기증한 물건 하나가 화제가 됐어요. 바로 작은 청자 찻잔. 한강 작가는 일상을 보내다가 글을 쓰러 갈 때면 항상 이 작은 찻잔에 홍차를 따라 마시고 집필을 시작하셨대요. 카페인을 조절하고 있어서(현재는 아예 끊으셔서 허브티만 드신다고) 딱 그 한 잔, 한 모금을 마셨는데, 그 루틴이 언제나 자신을 책상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힘이 됐다고.

한강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지나치게 연약한 인간들과 지나치게 잔인한 현실이 동시에 존재해요. 작가님 역시 "세상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동시에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하는 질문이 작품을 쓰는 원동력이라 고백한 바 있어요. 정치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저이지만 요즘의 뉴스를 보면 한강 작가가 던진 이 질문이 여전히, 어쩌면 영원히 유효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 거대하고 막막해 보이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풀어나가게 하는 건 다름아닌 사소하고 작은 일상의 힘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뜨거운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책상 앞에 의자를 당겨 앉았을 한강 작가의 수많은 하루 하루처럼.

아주아주 오랜만에 차편지 시리즈가 돌아왔습니다! 차편지는 초초초심자들을 위해 차에 대한 기본 상식을 알아보는 코너로, 차를 대표하는 '6대 다류' 도장깨기를 하고있는데요. 오늘은 드디어 6대 다류의 마지막 주자, 흑차에 대한 내용을 들고 왔습니다.

녹차나 홍차, 우롱차 같은 차 이름은 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아주 익숙하죠. 차에 대해 살짝 관심이 생겼다면 백차나 황차도 많이 들어보셨을테고요. 하지만 흑차는 좀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왜냐면... 흑차 중에서도 너무도 유명한 '대스타'가 있어서 흑차라는 이름을 삼켜버리다시피 했거든요. 그게 바로 보.이.차입니다. 생소한 듯 익숙한 흑차와 보이차에 대한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할게요!

보이숙차를 만들때 신기한 과정이 있어요. 잘 건조시키고 열을 가하고, 맛있으라고 열심히 비벼 놓은 찻잎을 무더기로 쌓은 뒤, 젖은 천으로 덮고 방치하는 거죠. 습도가 떨어진다 싶으면 종종 물도 뿌려주고, 온도도 떨어지지 않게 유지해줍니다. 다 된 찻잎에 왜 물을 뿌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게 바로 흑차의 '키포인트'인 발효를 촉진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네, 된장이나 김치를 만들 때도 일어나는 그 발효 말이에요.

앞서 다뤘던 6대 다류 5가지(녹차/백차/황차/청차/홍차)는 차를 만드는 핵심 원리가 '산화 작용'이에요. 사과를 깎아두면 산소를 만나 갈색으로 변하죠? 그 작용이 찻잎에도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흑차는 여기에 발효라는 요소가 더해져요.

괜히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냥 보이차의 향과 맛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지푸라기(?) 같기도, 어떤땐 조금 쿰쿰하게도 느껴지는 향이 있습니다. 녹차나 우롱차, 홍차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이 독특한 풍미가 바로 발효 덕분에 생겨났단 얘기.

앞서 말한 것처럼 흑차에는 보이차 외에도 다양한 차가 존재해요. 만드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고 당연히 맛도 차이가 있죠. 대표적으로는 복전차와 육보차, 천량차, 천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차는 복전차에요. 복전차를 포장한 종이를 벗겨내면 노란 가루들이 퍼져있는 걸 확인할 수(위 오른쪽 사진 참조) 있어요. 이를 '금화(금색꽃)가 피었다'고 표현하는데요. 금화의 정체는 '관돌산낭균'이란 유익균이에요. 김치나 된장에 유산균이 많다고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볼 순 없잖아요? 근데 관돌산낭균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으로 느껴졌어요. 균이 있다고 하니 혹시나 맛이 시큼하거나 텁텁할 거란 생각은 금물. 예상외로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니, 혹시나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면 한 번쯤 시도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다양한 흑차가 있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건 뭐니뭐니해도 보이차죠. 보이차란 이름은 다른 많은 차들과 마찬가지로 지역 이름에서 유래했어요. 운남성에 위치한 푸얼현(普洱縣)이란 곳인데요. 푸얼의 한자 발음이 바로 보이입니다. 별거 없죠?

찻집에서 메뉴판에 적인 보이차 이름을 보면 처음보는 중국 지명과 연도가 길게 적혀있어 무슨 외계어처럼 보이기까지 해요. 물론 저는 그 차가 다 무슨 차인지 전혀 모릅니다만, 어떤 맛일지 짐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하나는 있어요. 바로 '보이생차'와 '보이숙차'입니다. 생차와 숙차가 뭔지는 예전 레터를 참고하시기 바라고요. 숙성 햇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생차, 특히 만들어진 지 몇 년 안된 생차는 신선함과 꽃향기 그리고 쌉사름한 맛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요. 녹차나 우롱차를 선호하는 분들께 추천해요. 숙차, 그리고 발효 기간이 오래된 생차는 깊은 숙성향(a.k.a 지푸라기 향...)과 바디감, 부드러움이 장점이에요. 발효차, 홍차 등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보이차를 마시려면 많은 도구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요즘에는 보이차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티백 제품이 많이 나와 있어 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대륙의 오설록이라 할 수 있는 대익차 공식몰에서도 티백을 판매하고 있고 브라운즈, 다심헌, 공부차 등에서도 티백 형태의 보이차를 판매 중입니다.

자, 오늘은 이렇게 흑차 그리고 보이차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흑차와 보이차의 세계가 워낙 깊고 넓어 저의 부족한 지식과 짧은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데요. 부디 오늘의 레터가 흑차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춰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다음주, 올해의 마지막 더티레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안녕!

박물관 굿즈 붐을 일으켰던 반가사유상이 무려 스노우볼로 나온거 아셨어요? 폭풍 같은 눈보라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반가사유상, 당신은 대체...! 그런데 스노우볼의 가격은 저의 미소를 잃게 하네요. 9만9000원. 가위(Kawi)의 크리스마스 포장지들은 90년대의 크리스마스 바이브를 뿜뿜해요. 뭔가 그리운 느낌의 일러스트와 알록달록한 색감이 사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