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lks; 그 꽃의 이름은 왜 큰개불알풀일까?

식물이 다정하다는 착각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2003~2021년 사이 산림청 산불 데이터에 따르면, 산불이 가장 많이 난 날은 식목일이었다. 산불 발생 원인 1위는 ‘사람의 실수’다. 식목일을 앞두고 만난 이소영 식물세밀화가는 식물이 다정하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식물에 가져야 하는 다정한 책무를 강조했다. 식목일에 필요한 따끔한 이야기였다.

꽃 피는 봄이다.

따뜻한 남쪽 지역부터 꽃이 핀다. 제주는 매화가 다 지고 매실이 열릴 때, 우리나라 최북단에 속하는 광릉숲은 조금 늦은 봄을 맞는다. 지역을 오가며 거의 두 달째 긴 봄을 즐기고 있다. 계절이라는 마감을 두고 일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매년 나오는 논의가 있다. 식목일을 앞당기자는 논의 말이다.

나무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 보는 기념일로서 식목일이라면 특별히 바뀌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무 심는 날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앞당기는 게 맞다. 기후가 따뜻해진 것은 사실이고, 이에 맞춰서 나무 심는 시기가 빨라져야 한다.

향나무ⓒ이소영

짧은 봄에 맞춰 마감하려면 한창 바쁠 것 같다. 식물세밀화에 대해 소개해달라.

세밀이라는 표현 때문에 극사실주의 그림으로 잘못 불리는 부분이 있다. 식물세밀화(Botanical illustration)는 식물학을 위한 그림이다. 다시 말해, 식물을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한 그림이다. 비유하자면 인체 해부도 같다. 생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불필요한 부분 등을 삭제하는 작업을 거쳐서 식물의 생애를 종이 한 장에 옮긴다.

꼭 그림이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사진은 눈앞에 있는 하나의 개체에 대한 기록물이다. 햇빛의 양에 따라 꽃잎의 색깔,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식물세밀화는 다양한 환경에서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그린다. 환경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해당 식물종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을 기록하는 것이다. 또 사진 한 장만으로는 이파리의 뒷면, 줄기 속까지 담을 수는 없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그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식물세밀화는 수백 장의 사진묶음으로 볼 수 있다.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려면 작업 기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식물 하나를 보고 바로 그림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 그리고 씨앗까지 봐야 한다. 한 식물이 어제와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관찰하는 과정을 1년 동안 반복한다. 또 식물들이 순차적으로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피우기 때문에 어떤 식물을 먼저 관찰하고 그릴지 정하는 것도 일이다.

우리나라 식물세밀화 역사는 얼마나 됐나.

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식물학자들이 많지 않아서 글 기록은 많은데 그림 기록은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연구한 이창복 박사와 육종에 힘쓴 우장춘 박사도 모두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창 우리나라 식물을 명명하던 때가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에 파견됐던 일본 학자 나카이 다케노신 등이 명명하고 가져간 것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 자생식물 중에는 첫 증거 자료가 없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선나무가 그렇다.

식물을 기록하는 일은 왜 중요한가.

식물 주권에 관한 것이다. 이 시대, 이 장소에 식물이 존재했다는 증거 자료가 된다. 일본, 영국 등 식물 연구가 발달한 나라는 식물 문화도 발달해 있다. 식물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식물의 효용성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원예용, 식용 식물 모두 연구를 통해 그 효용을 찾았기 때문이다. 자생식물은 원산에 따라 로열티가 붙기도 한다. 식물이 가지는 효용 중에는 경제적 자원으로서의 역할도 있다.

차나무ⓒ이소영

식물세밀화가를 따로 채용하는 곳은 국립수목원이 유일하다고 들었다.

20년 전 국립수목원에서 본격적으로 식물세밀화를 자료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보통 그림 전공자를 식물세밀화가로 뽑는데, 나는 원예학을 전공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원예학을 전공한 식물세밀화가로서 주의 깊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내가 이 그림을 왜 그리는지 늘 생각한다. 나의 목적은 좋은 작품을 남기겠다는 것이 아니다. 식물 종 보존을 위해 기록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림 그릴 재료를 찾을 때 자연을 최소한으로 훼손하고자 한다. 열매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면 채집하지 않는다. 마음먹으면 언제든 식물을 훼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직업윤리에 관해서도 많이 고민한다.

식물세밀화 작업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도 식물세밀화가로서 느끼는 책임감 때문인가.

국립수목원에서 일하며 배운 것이 있다. 연구자들이 연구만 한다고 종 보존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은 대중이 동참해야 한다. 세밀화 작업에서의 연구, 결과, 사유를 대중에게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식물의 책》, 《식물과 나》, 《식물 산책》 등 책을 쓰고 칼럼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과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도 연재하고 있다.

작업 중인 이소영 식물세밀화가ⓒ이소영

기후 변화로 인해 봄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졌다고 한다. 이른 개화가 세밀화 작업에도 영향을 끼치나.

생식 구조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꽃과 열매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꽃 피는 시기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 놓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사실 기후 변화도 있지만 인간의 활동이 크다. 담배꽁초로 인한 산불, 건축물 짓기 위한 산림 훼손 등 때문에 모니터링하는 식물들이 중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꽃은 봤는데 열매는 못 보게 되는 식이다. 모든 것을 기후 변화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식물을 보면 인간의 활동이 보인다. 식물 중에는 특정 성별과 생식기에 빗댄 이름을 가진 것들이 있다. 큰개불알풀, 며느리밑씻개, 처녀치마 등이다. 한자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잎이나 줄기가 뾰족한 식물에는 며느리를 붙이거나 하는 식이다. 결국에는 식물 이름도 인간이 명명하는 것이다. 그 시대, 그 장소에서 인간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들어가 있다.

지금의 반려식물 트렌드는 어떻게 보고 있나.

조금 비판적인 시각일 수 있지만, 식물은 고정되어 있다. 이동할 수 없고 오롯이 내가 의도하는 대로 존재한다. 동물은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똥도 치워줘야 하고 집도 맘대로 비울 수 없다. 필란드시아, 페라리움, 마리모 등 유행하는 식물들을 보면, 관리를 잘 안 해도 혼자서 살 수 있는 종들이다. 식물을 판매하는 일을 했었는데, 사러 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공기정화 되나요? 음이온 방출 되나요?’ 등 식물이 얼마나 유용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물 자주 안 줘도 되는지, 분갈이 자주 안 해줘도 되는지 묻는다. 식물은 나한테 무언가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식물에 무언가를 해주는 건 버거운 것이다.

식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인 것 같다.

식물을 둘러싸고 불거지는 문제의 원인은 보통 인간에게 있다. 식물을 훼손하는 것은 식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사진 찍기 위해서 화단에 들어가고, 좋은 각도를 잡기 위해서 다른 식물들을 밟는 등이다. 흔히 식물은 다정하다고 하는데, 그건 알 수 없다. 인간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대신 인간에게 부여된 다정한 책무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반려동물을 대하듯 반려식물을 대하면 좋겠다. 내 소유의 식물만이 아니라 온 지구의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 보존하려는 마음으로 확장되길 바란다.

따끔하지만 식목일에 꼭 필요한 말인 것 같다.

식물세밀화, 식물도감의 목적은 식물의 이름을 알기 위함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종을 식별한다는 뜻이다. 식테크(식물+재테크)라고 해서 희귀종에 대한 관심이 많다. 특별하고 이색적인 식물 말고도 주변에 있는 식물을 둘러 봤으면 한다. 버스정류장에 핀 들꽃, 가로수의 이름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 제비꽃도 수십 종에 달한다. 하나하나 식별하다 보면 도시에서도 많은 식물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사계절은 지켜봐야 진정으로 봤다고 말할 수 있다.

식물에 대한 작가님의 첫 기억이 궁금하다.

도시에 살았지만 자연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식물이 많은 곳에 갈 일이 많았다. 근처 산에도 가고 공원에도 가며 식물과 친근하게 지냈다. 마당에 앵도나무가 있었는데 꽃이 벚꽃보다 예쁘게 핀다. 꽃이 한가득 피고 날이 더워지며 빨간 열매를 맺는다. 바구니를 들고 있으면 아버지가 열매를 따서 넣어주셨다. 그때부터 식물은 예쁘기도 하고 열매도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한 부분일 뿐이다. 식물도 지구에 같이 살아가는 생물의 한 종이다. 식물을 다정한 존재로 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기울여야 할 다정한 책무를 늘 생각한다.

글 정원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