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스레터가 달라졌어요!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2021.05.13

#38

안녕하세요! 예스레터입니다.

지난주 레터가 도착하지 않아 다들 놀라셨죠? 😅

예스레터 정비가 늦어져 불가피하게 한 주 휴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다려 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럼 예스레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 로고가 생겼어요!

🔘 추천 콘텐츠를 모아 볼 수 있어요.

- 많은 분들이 요청하셨던 아카이브가 드디어! 지금까지 예스레터에서 추천한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검색 기능을 활용하여 항목별로 에디터별로 분류할 수도 있어요. 아직 모든 콘텐츠를 아카이빙하진 못했지만, 구독하기 전 예스레터에서 어떤 콘텐츠를 추천했는지 궁금하시다면 여기로!

🔘 공개 방명록을 열었습니다 😆

- 그동안 받은 소중한 피드백들을 다른 구독자와 나눌 수 없거나, 에디터들이 답장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요. 앞으로 방명록을 통해 공개 피드백을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추천 콘텐츠에 대한 감상, 같이 보면 좋을 콘텐츠 등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주세요! 물론 비공개 피드백 및 문의사항도 계속 받고 있습니다.

🔘 구독 확인 메일이 달라졌어요.

- 앞으로 구독하시는 분들께는 구독 확인 메일과 예스레터 최신 호를 발송해 드립니다. 기족 구독자분들도 여기에서 메일을 구경하실 수 있어요.

새 로고와 아카이브, 방명록은 예스레터 홈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철딱선희의 PICK

✔️ 기사 : 지난주 출판 이슈

🕯 아세틸렌 램프의 PICK

✔️ 게스트 : 뚜이부치 "소비에트의 재담꾼"

안녕하세요! 에디터 철딱선희입니다🎈

책을 적지 않게 사는 편인데도 레터 발송을 준비하려고 보면 소개할 책이 없는 건 왜일까요. 😂

필요한 책은 가능한 동네서점에서 주문하려 하는데도 화요일쯤 조바심이 나서 온라인 서점으로 책을 주문해 버리기도 합니다. (‘남의 책’이 더 재밌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오전에 주문하면 그날 저녁에 도착하기도 하고, 늦어도 다음 날이면 문 앞에 무심히 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한 번도 높은 책장에서 책을 찾아 상자에 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라인 서점 '총알 배송' 클릭 하자마자 벌어지는 일들>을 읽으면서 값싸고 편리한 것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스트리밍을 고칠 때입니다(1) / 고건혁(곰사장)>을 읽으

며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CD 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요즘 음악 창작자들은 스트리밍 수익으로는 절대 먹고 살 수 없다며 고충을 말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고 있는데 말이죠.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수는 1000만 명을 겨우 넘긴 데 반해 음악 플랫폼 이용자수는 어림잡아도 1300만 명을 훌쩍 넘길 정도고요.

곰사장(붕가붕가레코드 대표)은 현 상황의 원인을 플랫폼이나 수익 분배 구조에서 찾지 않습니다. 애초에 만 원 남짓한 돈으로 한 달 내내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콩 한 쪽을 나눠봤자 콩 한 쪽도 안 되니까요.

결국 창작자들에게 회당 3원을 주기로 결정한 건 ‘악덕한 플랫폼’이 아닌 우리들입니다. CD나 음원을 구매하는 대신 무제한 이용권을 결제한 서비스 이용자들이요.

다시 온라인 서점 총알 배송으로 돌아와 봅니다. 수요가 먼저냐 공급이 먼저냐 하는 이야기는 좀 지루한가요? 하지만 제가 더 저렴한 것, 더 빠른 것을 찾는 만큼 누군가는 원치 않는 노동을 강요받고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그 자리에 제가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이미 '지금, 여기'일 수도...)

이렇게 글을 쓰고도 내일이 되면 쇼핑몰에서 산 옷이 늦게 온다고 짜증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화요일이 되면 레터를 걱정하며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를 비울 수도 있고요. 하지만 혼자서 당일 배송 10건을 줄이진 못하더라도 10명이서 1건씩 줄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요? 이름을 알려주세요!도 조금 느리게 걷기에 동참해 보시겠어요?

👀 기사 | 지난주 출판 이슈

1.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 재개

작년 12월 예스레터 20호에서 소개했던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가 올해도 각 지자체에서 재개되었습니다. 도서관 홈페이지/어플에서 희망 도서를 신청하고, 가까운 동네서점에서 대여하는 서비스로, 지역 주민의 큰 호응을 얻어 서비스를 이어나가게 된 것입니다.

현재 서울시 강서구‪・강동구‪・금천구, 부산, 광주, 인천, 용인, 세종 등 많은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데요. 서비스를 반기는 주민들도 많지만, 신간 위주, 3-5만 원을 초과하지 않을 것, 전문서적‪・만화・원서 제외 등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제한 규정에도 완화를 검토해 달라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책을 읽을 수 있게 돕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 직접 사거나 도서관에서 직접 대출해야 할 책마저 새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는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에 의존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기획회의> 523호의 일부를 인용했던 예스레터 20호도 다시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별도 예산 확보 없이 추진하다 보니 (...) 결과적으로 도서관 사서의 전문적인 큐레이션이 들어설 자리가 거의 사라졌고, 도서관은 주식투자‪・재테크・처세술 등 반짝 관심을 끌다 금방 시효가 끝날 특정 분야의 책들로 채워져 갔다.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지적이었어요. 지역 주민이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양서를 공급하고 보존하는 것도 도서관이 하는 일 중 하나겠지요.

- 예스레터 20호

2. 출판유통전산망 :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알려주진 않을 거야 🔮

출판사 아작이 인세와 계약금 미지급, 판매 보고 불성실, 전자책과 오디오북 무단 발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특히 판매 보고 누락에 대한 부분은 올 9월 정식으로 시작되는 출판유통전산망에 가입하여 판매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했으며 문제를 제기한 장강명 작가도 출판사와 서점의 전산망 가입을 촉구했어요.

문체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만든 출판유통전산망은 쉽게 말해 책과 관련된 정보를 한곳에 모아 누구든지 열람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인데요. 관객 수, 매출액이 전부 공개되는 영화처럼 책도 정보는 물론 판매량까지 모두 공개하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올 9월부터 오픈 예정임에도 5월인 지금까지도 어떤 데이터를 얼마나, 어디까지 공개하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관해 정해진 바가 없어 출판계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1년에 300개 남짓 개봉하는 영화와 달리 8만 종이나 되는 책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전산화하며 작가들은 어떻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고요. 매출액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서점들도 부담스러워 가입을 꺼려하고 있다고 해요.

취지는 좋지만 요 시스템… 잘 안착할 수 있을까요?

📋 참고 기사

✔️ 작가 울리는 ‘깜깜이 서적 유통’ 출판전산망이 눈물 닦아줄까요

✔️ 출판유통통합전산망, 9월 개통인데...업계는 이견 여전

3. 서점 : 조금만 더 깎아주세요🥺

출판사 :저희도 남는 거 없습니다✋

가끔 책을 만드는 제작비가 얼마인지 알게 된 사람들은 책값이 이렇게나 비싼 것에 대해 그리고 우리 불쌍한 작가님들이 인세를 고작 정가의 10% 가져간다는 것에 분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단순한 계산을 시도한 출판사 대표가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아요.

정가 10000원인 책을 팔아 보아요💸

서점 위탁 판매로 6500원을 얻었다!

제작비 -1500원

인세 -1000원

물류‪・유통 -1000원

마케팅 -500원

남은 돈 2500원, 자 이제 인건비를 정산하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서점에서 받은 6500원입니다. 위 예시는 출판사 입장에서 운이 좋은 경우일 뿐, 6000원 혹은 그 이하로 받는 경우도 많거든요. 지금 출판계에서 도서정가제만큼이나 뜨거운 이슈인 공급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출판사 : 6500원! 그 이하로는 못 받아

🔵 서점 : 우리도 남는 거 없다고, 6000원 가져가!

게다가 작은 서점은 7000원에서 많게는 8000원을 주고 정가 10000원짜리 책을 사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케팅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서점은 조금이라도 책을 싸게 얻어올 수 있지만, 도매상을 한 번 거쳐서 오는 작은 서점은 비싸게 살 수밖에 없거든요. 출판사들은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작은 서점과의 직거래를 꺼리기도 하고요.

10% 할인에 5% 적립, 무료 배송까지 해주는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과도한 공급률 경쟁은 작은 출판사에게는 최대한 싸게 책을 넘겨야 하는 부담을, 작은 서점에게는 비싸게 산 책으로 온라인 서점과 경쟁까지 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깁니다.

심지어 도매에 나선 온라인 서점들이 작은 서점에 책을 팔아 남긴 마진으로 할인 경쟁의 손해를 메꾸기까지 합니다. 작은 서점의 돈으로 책을 무료 배송 해준다고 봐야 할까요?

도서정가제처럼 제도나 협약으로 공급률을 조정하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지 앞으로도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참고 기사

✔️ 출판계, ‘도서공급률 문제’ 해결 위해 머리 맞대

✔️ 대형 서점은 빠진 '도서 공급률' 반쪽짜리 좌담회

✔️ "도서 공급률 해법? 온라인 서점 무료배송만 제한해도 방안있어"

안녕하세요, 아세틸렌 램프입니다.

5월 첫째 주 레터를 과감하게 건너뛰었네요.

5월... '가정의 달'로 알려진 달이기도 하지만

또 어딘가(?)에서는 '자위의 달'로 정한 달이기도 합니다.

네, 바로 그 자위 말입니다🤪

5월(May)과 자위(masturbation)이 같은 'M'으로 시작해서라나 뭐라나.

사실 여기에는 뜻깊은 사연이 있는데요.

미국 클린턴 정권 당시 미국의 역사상 두 번째 여성이자 첫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 보건 총감이었던 조슬린 엘더스(Joycelyn Elders)가 에이즈를 주제로 한 UN 회의에서 "자위는 인간 성생활의 일부이고, 청소년 교육 활동에 포함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것을 빌미로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1994년 사임되었습니다.

엘더스는 이전에도 아프리카계 여성들에 대한 적극적인 성교육, "태아에 대한 외도를 멈추고 우리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시작해야 한다"와 같은 임신중절에 대한 견해, 청소년 피임 교육에 대한 발언 등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발언을 한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에 대해 한 섹스토이숍이 불합리하게 사임 당한 엘더스에게 존경을 표하고 자위 행위의 중요성을 상기하기 위해, 또 그들 사업의 상업적 홍보를 위해 5월 7일을 국제 자위의 날로 정하고, 그것이 퍼져 5월 전체가 자위의 달이 되었다네요.

혹자는 5월 7일 UTC(협정세계시)로 밤 10시 30분에 전 세계인이 함께 자위로 오르가슴에 도달하자는 이벤트를 온라인으로 기획했다고 하는데요...???

(그럼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아침 7시 30분에...?)

....뭐 기념일이 원래 발생 취지랑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지요.

오늘은 게스트로 뚜이부치님을 모셨습니다.

제 인트로와는 아무 상관 없지만 무척이나 재미있는 글을 쓰셨답니다.

좋은 글로 참여해 주신 뚜이부치님 감사합니다🙇‍♀️

뚜이부치님의 글을 더 보고 싶으신 분들은 하단의 코너에서 많은 피드백 부탁드려요 ㅎ_ㅎ)/

🕊 게스트 | 뚜이부치 - 소비에트의 재담꾼

안녕하세요! 게스트로 글을 얹게 된 뚜이부치입니다.

저는 소비에트 출신의 작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책들을 이 지면을 빌려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에서 번역된 러시아 작가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생소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러시아 영화 <도블라토프>(2018)가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지요.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의 체호프라 불리며 대중적인 작가로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생전의 도블라토프는 작가가 되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민을 택한 1978년까지 15년 동안 고국 소비에트에서 자신의 작품을 하나도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첫 등단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구로 남몰래 반출시킨 단편들이 러시아 이민자 잡지에 실리며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서구 잡지에의 투고는 딱히 시작된 적도 없는 소비에트 작가로서의 경력을 확실히 끝장내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도블라토프는 KGB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되었고, 일자리를 잃었고, 다시 취직할 수도 없었고, “포주, 모위도식, 권력에의 불복종” 등등의 죄목을 받습니다. 도블라토프는 70년대의 이민 열풍을 타고 먼저 떠난 아내와 딸이 있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택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한 명의 소비에트 작가가 냉대와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면, 체제 비판적인 의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을 썼던 미하일 불가코프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그리고 묵직한 주제 의식만큼 기에 질리게 하는 책의 두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도블라토프는 자신의 글쓰기의 본령을 비참한 현실에의 폭로나 첨예한 이념 비판보다는 쉽게 또 빠르게 읽히는 우스갯소리에 발휘해온 작가입니다.

가령 젊은 적 형사범 수용소에서의 간수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인 <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원고에 동봉해 서간문으로서 연속성을 부여해 여러 개의 단편을 엮은 것인데요. 그는 이 책을 출간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며 말문을 엽니다.

거절 동기는 납득이 갈 만합니다. 여기, 원하신다면, 주된 요인들은 이렇습니다.

수용소 주제는 고갈됨. 끝도 없는 감옥 회상록에 독자들은 신물 남. 솔제니친 이후로 이런 주제는 끝났어야 했음....

이런 논리에 잠자코 있을 비평가는 없지요. 물론, 저는 솔제니친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제 생존권까지 박탈할 수 있는 걸까요?

<수용소-교도관의 수 기>,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김현정 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20, 10p

꼭 모두가 솔제니친이며 톨스토이가 되어야 하냐고 툴툴거리는 그는 저녁을 먹고 난 뒤 침대에 들기 전에 해치워버리는 그런 “저녁 식사용” 소설을 지향했습니다. 지만지에서 내준 한국 번역본들도 아무 가방에나 쏙 들어가는 판형과 두께지요.

도블라토프 소설의 화자들은 술안주 감의 일화를 풀어 놓을 때와 같이 적당히 허물없는 어조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듣는 이가 웃기 전에 먼저 웃어버리는 실수 따위 하지 않는 코미디언의 직업적인 덤덤함을 유지하며 모든 주제로 재담을 풀어놓습니다.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힌 뒤 마지막으로 그가 구할 수 있던 직업은 푸시킨 문화 보존 지구에서 관광 가이드 일이었습니다. 푸시킨 보존 지구는 전제정치 러시아에 저항했던 국민 푸시킨이 유행에 처했던 장소입니다. <보존 지구>는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궁지에 몰렸던 시기를 기리며 쓴 우울한 시트콤 연작인 동시에 “옳았던 내 아내에게” 헌정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보존 지구>를 처음 읽을 당시에는 국민 작가에게 헌정된 테마파크와 같은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순수히 초현실적으로 다가와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나는 박물관 관리자를 찾아 인사를 드렸다. 빅토리야 알베르토브나는 마흔 정도로 보였다. 긴 주름치마, 물 빠진 웨이브 가발, 음각 액세서리, 우산…베누아의 작위적인 그림 같다. 여기서는 이 몰락한 지방 귀족 스타일이 확실히 의도적으로 숭배되었다. 지방 연구자들 모두가 자신만의 색깔이 있었다. 누구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집시 숄을 졸라 묶었다. 누구의 세련된 밀짚모자는 어깨까지 닿았다. 누구는 깃털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부채를 들었다.

빅토리야 알베르토브나는 이상야릇한 미소를 띠며 나와 담소를 나눴다. 나는 이런 태도에 벌써 적응하기 시작했다. 푸시킨의 우상을 지켜나가는 이들 모두가 경이로울 정도로 질투가 심했다. 푸시킨은 이들의 공동 자산이었고, 이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랑이었으며, 이들의 귀여운 아이였다. 이들은 개인 성물을 해치려 드는 모든 것에 흥분했다. 나의 무식, 냉소, 금전욕을 드러내려고 발버둥 쳤다.

<보존지구>.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김현정 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0. 61p.

<우리들의>는 러일전쟁에 복무했던 조부부터 시작해서 소련 말기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태어난 “나”의 아들에 이르는 가문의 연대기입니다. 1.5t 트럭을 잡아 세우던 조부, 지진이 내 집이 폭삭 무너져도 안락의자에서 뜰 생각을 하지 않던 아르메니아인 외조부, 죽을 고비가 눈앞에 닥치면 갑자기 공산주의를 저주하기 시작하는 열성 당원 외삼촌, 서로를 천재라고 여기던 아들의 친구들 사이에서 군중 역할을 하던 어머니,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사람을 닮아가는 개 그루샤, 눈치 빠른 딸에게서 실패자란 걸 알아 차려진 “나”… <우리들의>는 굉장히 간결해진 소련판 <백 년 동안의 고독> 같이도 느껴지는 구성입니다. 돼지 꼬리 달린 아기 대신 러시아계 미국인 소년으로 끝났지만요.

예전에 나는 형에게 말한 적 있었다.

“형은 수용소에 있고…. 나는 수형 소에서 복무하고…무슨 차이가 있어? 그게 그거지…”

이제야 나는 알았다. 이건 절대 그게 그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세하게 기술하고 싶지 않다….

그 후 갑자기 나를 내보냈다. 그리고 떠나도록 제안했다. 나는 동의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떠날 준비가 되셨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를 아연케 하는 것은 이 문제를 오랫동안 비극적으로 상의해야 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글리샤도 별문제 없었다. 개에 대한 얼마의 돈을 지불해야 했다. 개 무게의 킬로그램당 2하고 60. 글리샤를 돼지보다 조금 비싸게 측정했다. 그리고 대구보다는 훨씬 싸게…

지금 우리는 뉴욕에 있고, 더 이상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도 헤어지지 않았었다. 내가 오래 떠나 있었을 때도….

<우리들의 >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김현정 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 115p

<여행 가방>은 핀란드제 축면사 양말, 노멘클라툴라 단화, 근사한 더블 버튼 양복 등등의 소제목들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가져왔으나 열어보지도 않고 새까맣게 잊은 여행 가방을 벽장 안에 벌을 받으러 들어간 아들이 발견하면서, 화자는 가방 안의 사물들에 얽힌 사연을 풀기 시작합니다. 사랑에 빠져 돈을 벌려 밀수를 도왔다가 재고 처리에 실패한 양말도 있고, 레닌그라드 시장에게서 “실질적으로 훔친” 단화도 있습니다. 끄나풀 짓을 하는 척해서 당국으로부터 뜯어낸 양복도 있지요.

도블라토프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여간에 작가와 마찬가지로 품행 방종으로 인해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형사범 수용소에서 교도관으로 복역하고, 작가가 되고자 하지만 소비에트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검열 앞에서 뜻대로 되는 법이 없어 오기와 질시를 기르고, “더럽고 작위적인” 서정 시인들과 어울리며, 조국에서의 마지막 나날 동안 푸시킨 문화 보존 지구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합니다. 주인공의 아내들은 항상 실존 자체가 믿기지 않는 미국이란 나라로 어느덧 먼저 날아가 버린 여자들이며, 주인공은 그녀들의 "도를 넘은 침착함"에 충격을 받고 번번이 할 말을 잃습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어정거리는 그의 글들은 항상 작가 자신의 개인사에서, 소비에트의 일상에서 농담의 살이 되는 구체성을 얻어 옵니다. 여러 술자리를 전전하는 동안 술안주 감으로 구술하는 일화들에 세부사항들과 극적인 효과가 추가되어 계속 변주되듯이 말입니다.

💌 오늘 예스레터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달라진 예스레터에 대한 리뷰와 본문 콘텐츠 감상,까지 다른 구독자분들과 나눠 보세요! SNS 공유도 환영입니다 📱

방명록 남기기

문의사항

좋은 뉴스레터를 만들고 전하는 일,
스티비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