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날 안경이 부러졌습니다. 렌즈가 깨진 게 아니라 안경테가 똑 하고 부러지면서 두 동강이 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 안경테를 샀습니다. 렌즈도 바꿔야 했고요. 새로 바꾼 안경은 예전에 비해 동글동글한 디자인입니다. 눈매도 덩달아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랄까요. 악당에서 정의의 사도로 변신할 정도의 드라마틱한 관상적 변화는 아니지만 아무튼 7년 만에 새 안경테로 바꾸고 기분 좋게 안경원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안경 렌즈를 바꿀 때면 매번 어느 정도는 시각적 위화감이 있습니다. 렌즈 도수를 이전과 똑같이 한다고 해도 말이죠.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금세 적응하겠지. 하지만 계속 이상하더라고요. 안경테가 예전이랑 달라서 그런가? 내 눈이 문젠가? 그러다 번갈아 한쪽 눈을 가리고 어떻게 보이는지를 확인했습니다. 확실히 이상했습니다. (안경을 쓴 상태에서)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보통은 양쪽 눈의 교정시력을 비슷하게 맞추기 때문에 차이가 나면 안 되는데, 안경사가 무슨 실수를 했나? 안경 생활 수십 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2
새 카메라를 샀습니다. 집에 카메라가 없지는 않습니다. 오래되어 사용하지 않거나 고장 나서 방치된 것들을 빼고도 두 대가 있긴 합니다. DSLR 한 대와 똑딱이 한 대. 그동안 요긴하게 잘 썼습니다. 둘 다 연식이 오래되긴 했지만 고장 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잘 쓸 수 있는 카메라들입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카메라가 따로 필요 없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상생활이든 특별한 날이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잘 없을 정도로요. 하지만 희한하게도 카메라 시장엔 신제품이 계속 나옵니다. 알아듣기 힘든 말로 뭔가 좋아졌다면서 계속 새로운 모델들이 출시됩니다. 거기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 있는 카메라로도 웬만하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새 카메라를 왜 샀냐고요? 당연히 웬만하지 않은 일 때문인데요. 한 놈은 너무 무거웠습니다. DLSR 본체 850g에 줌렌즈 465g, 도합 1.3kg이 넘는 무게를 둘러메고 다니기엔 체력이.. 어느 순간부터 잘 안 들고 다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새 카메라는 무조건 가벼운 걸로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똑딱이도 한 대 있다면서, 그건 가벼울 텐데..? 예리하시군요. 하지만 저는 스마트폰으로도 똑딱이로도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뷰파인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장면 1과 2는 언뜻 보기에 아무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공통점이 숨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老眼! 오늘 ‘소소한 리-뷰’의 주인공 노안입니다. 노안을 무슨 리뷰까지 하나 싶으시겠지만 그 사용법에 이미 능숙해진 노안 유저로서 이 공포의 증상을 한 번쯤은 살펴야 한다는 의지가 발동했습니다. 노안이 공포스럽다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지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실제로 무서움을 느끼곤 합니다. 독서의 가장 큰 장애물은 부동산 즉, 책을 쌓아둘 수 있는 공간이라는 농담도 있긴 합니다만, 그건 노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못 됩니다. 책을 둘 곳이 없다 해도 의지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책장을 정리해서 버리거나 나누는 방법도 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당한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일이기는 해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안은 독서를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게 만듭니다.(노안이 주제다 보니 전자책, 오디오북, 점자책처럼 장애인접근성이 보장된 책에 관한 언급 없이 비장애인의 독서로 한정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읽으실 때 양해 부탁드립니다.)
“노안은 수정체의 탄력이 감소되어 근거리 시력이 떨어지는 눈의 변화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비가역적입니다. 보통 40대 초반부터 증상을 느끼기 시작하고, 60대까지 증상이 점점 심해집니다. 근거리용 안경을 이용하는 것이 기본적인 치료입니다.”
국민건강정보포털*에서 설명하는 노안의 개요를 보면 무서운(?) 단어의 연속입니다. ‘탄력이 감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러운 현상’,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말 ‘비가역적’, 일단 시작된 노안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새로 맞춘 안경의 좌우 교정시력이 차이가 났던 건, 알고 봤더니 노안에 대한 안경사의 처방이었습니다. 어느 한쪽만 잘 보이는 게 아니라, 왼쪽 눈이 오른쪽보다 선명하게 보이는 동시에 오른쪽 눈이 왼쪽보다 선명하게 보이는 상태였습니다. 무슨 양자역학 같은 얘기냐 싶으실 수도 있지만, 양자역학과 달리 안경과 시력의 이러한 얽힘 혹은 중첩 상태는 현실에서 명확하게 관찰되고 측정 가능했습니다. 먼 곳을 볼 때는 왼쪽 눈이 오른쪽보다 잘 보입니다. 가까운 곳을 볼 때는 오른쪽 눈이 왼쪽보다 잘 보입니다. 거참 이상하네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안경을 맞출 때 보통은 원거리를 기준으로 시력을 교정합니다.(시력표 측정 거리가 4m 정도) 젊을 때는 이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원거리 초점이 잘 맞게 근시를 교정해 놓으면 근거리를 볼 때도 별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안 Ver1.0 이상이 적용된 안구 사용자는 두 상황이 따로 놀기 시작합니다. 멀리까지 잘 보이게 교정시력을 맞추면 가까운 거리(이를테면 30~50cm 정도의 독서 거리)에 초점이 안 맞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멀리 잘 보이는 걸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근시 안경 착용자라면 반드시 오게 마련입니다. 이번에 안경을 맞춰준 안경사는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양쪽 교정시력에 차이를 둬서 원거리와 근거리 시력의 적당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안경을 써도 되나 싶었지만 계속 지내다 보니까 적응되더라고요. 그전보다 책 또는 스마트폰의 글자를 읽을 때 편해진 것도 같습니다.
아직도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셨나요? 여기 있습니다. 노안 때문이긴 하지만 100%의 원인이라고 말하기는 또 애매합니다. 저보다 노안 버전이 훨씬 높은 사람들(으르신들?)도 오직 스마트폰만으로 모든 사진 욕구를 해소하곤 하니까요. 여행지에서의 단체 사진, 일상의 기록들, 손주 사진들부터 셀카까지. 아, 셀카는 어차피 뷰파인더로 찍을 수 없군요! 아무튼,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동의어 비슷하게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신제품을 론칭할 때 제일 강조하는 것 역시 카메라의 성능이고요. 이런 첨단 시대지만 저는 카메라 앱을 잘 실행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무엇보다 자세가 나오지 않습니다. 노안 때문에 스마트폰을 눈으로부터 40~50cm 정도는 떨어트려야 화면에 보이는 피사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팔을 쭉 뻗은 자세는 영 폼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만한 순간도 웬만하면 그냥 눈으로 감상하고 맙니다. 멋지게 불타는 노을, 화려하게 흩날리는 벚꽃 그 무엇이라도요. 아, 고양이는 예외입니다.
스마트폰 혹은 뷰파인더가 없는 카메라를 ‘앞으로나란히’의 어정쩡한 자세로 들고 있으면 마치 뷰파인더에 눈을 댄 채 반대쪽 눈을 감지 않고 사진을 찍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렇게 찍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뭔가 어색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진의 탄생은 셔터를 눌러서 카메라가 작동했을 때가 아닙니다. 뷰파인더의 화면에 집중한 채 이리저리 구도를 바꾸다가 혹은 잽싸게 어떤 피사체를 포착하고 나서 ‘지금이야’라는 결정을 내리는 잠깐의 시간, 셔터를 누르기 직전의 그 순간에 사진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을 포착하는 즐거움에 사진을 찍는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 대단히 ‘결정적 순간’이 아닐지라도 말이에요. 새 카메라는 무조건 가벼운 걸 고르겠다는 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애매하게 가벼운 카메라를 사게 되었습니다. 이걸 쓰라고 달아놓은 건가 싶은 뷰파인더가 달린 모델들을 제외하고 났더니 부피도 작고 가벼운 카메라는 없더라고요. 그래도 DSLR에서 미러리스로 바뀌면서 본체 445g에 줌렌즈 135g으로, 둘을 합쳐도 예전 본체의 70% 정도 무게니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