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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해서 잊고 사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환경호르몬입니다. 지난번 유자학교 편에서도 어른들이 만든 칠판과 지우개가 아이들에게 환경호르몬을 끼얹고 있다는 이야기를 썼었는데, 사실 그 이후로는 에디터도 잊고 살던 중이었어요. 그러나 미래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유해물질을 줄여나가야만 한다는 건 외면할 수 없는 사실. 최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김원 박사님을 만난 이유예요.  

📌환경호르몬이 뭔데? 
우리 몸의 밸런스를 유지해주는 호르몬을 흉내낸 외부 화학물질이에요.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과거 살충제로 썼던 DDT. 살충제를 맞은 곤충을 먹은 물고기가 죽고, 그 물고기를 먹은 새가 죽고...대부분의 환경호르몬은 당장 생명을 죽이지는 않지만 생식기능의 이상, 당뇨, 비만, 암 등을 야기해요. 특히 어른보다 아이들이 유해물질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아토피·ADHD·성조숙증 등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태아-영유아-청소년 순으로 취약하고 똑같은 수준의 환경호르몬에 노출돼도 아이들은 어른 대비 2,3배 높은 수치가 나온대요.  

참고로 환경호르몬의 정식 명칭은 내분비계교란물질. '환경호르몬'은 더 이해하기 쉽게 일본에서 지은 이름.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이달 초 '환경호르몬Free 가족캠프'를 열었어요. 충남 공주의 한 연수원에서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모여 환경호르몬이 덜한 물건을 쓰고, 좀더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서 캠프 전후의 소변검사를 통해 유해물질 수치를 조사한다는 컨셉. 배달음식 용기, 화학제품인 샴푸와 치약, 일회용품 등에 환경호르몬이 다 들어있거든요. 

👆🏻8월에 열린 환경호르몬Free 캠프. /사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그러면 아무래도...전후 수치 차이가 제일 궁금할 수밖에 없잖아요. 박사님께 냉큼 여쭤봤는데, 아쉽게도 이번 조사 결과는 10월 말에나 나올 예정이라고. 잊지 않고 있다가 그 때 되면 레터로 전할게요. 

작년에는 생활 조건을 통제한 캠프가 아니라 각자 일상 속에서 '바이오 모니터링'을 했는데, 작년의 경우 모니터링 전후 수치 차이가 미미했대요. 환경호르몬 문제가 별 것 아니라서는 아녜요. 김 박사님은 "바이오 모니터링의 경우 가장 중요한 음식을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환경호르몬의 90% 정도는 음식을 통해 인체에 유입된다는 거예요. 

👆🏻캠프에서 환경호르몬에 대해 배우는 아이들. /사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에디터들은 이 대목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어요. 전문가들조차 환경호르몬에서 자유로운 음식을 찾을 수 없었다니, 이게 무슨 절망적인 소리요...? 김 박사님은 "우리가 PVC를 이미 너무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프탈레이트가 물, 토양, 공기까지 오염시켰고 이제는 누가 식품에 프탈레이트를 억지로 넣지 않아도 제조, 생산, 가공, 유통 단계에서 계속 오염된다"고 설명하셨어요. 프탈레이트는 지방에 잘 녹는 성분이라 원래 육류나 유제품에서 많이 검출되는데, 채소조차도 질 수 없다는 듯 프탈레이트에 오염돼있다고 하고요. 

김 박사님은 "그래서 어디서 식재료를 구하라는 팁을 드리기가 어렵다"고 미안한 듯(!) 말씀하셨어요. 원래 연구소도 캠프 참가자들에게 생협 식자재, 로컬푸드 같은 환경호르몬 탈출 팁을 전달할 계획이었는데, 실제 분석 결과를 보니 생협·대형마트·온라인마켓 전부 똑같더래요. 

박사님(사진)은 "농부님들께 물어보니 농가에서 쓰는 비닐, 플라스틱이 너무 많기 때문에 농사 시작 단계부터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유기농, 무농약은 어떨까요? 이마저도 김 박사님은 회의적. "유기농, 무농약은 제초제를 안 써야 하는데 그러려면 잡초 등을 막아줄 비닐을 많이 써야 한다"는 설명이에요.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360개의 식자재 중 아무런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은 식자재가 딱 2개, 인삼과 자두였대요. 김 박사님은 "인삼과 자두 자체의 요인이라기보단, 특정 생산자들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면서도 그 생산자들을 조사하고 안전한 식자재 유통망 리스트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앞으로 업데이트되는 내용들은 레터에서 알려드릴게요. 

식자재는 그렇다치고, 샴푸나 치약 같은 생활화학제품들은 어땠을까요. 다행히 우리나라는 애초에 식약처의 기준치가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고, 특히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로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지기도 했고, 생활화학제품들은 전성분표기가 의무라 박사님은 환경호르몬 없는 제품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대요. 다만 "소비자가 직접 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말씀. 100개도 넘는 성분들이 뭔지 일일이 기억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향이 없는 제품, 파라벤 없는 제품 등 유해물질을 뺐다고 강조하는 제품들을 믿고 사면 된다는 팁은 주셨어요.

인터뷰 전에 찾아봤는데, 녹차, 버섯, 아몬드, 알로에 과일 등이 환경호르몬 배출에 도움이 된다는 썰(!)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박사님은 근거가 없어 보인면서 "이들 식품이 이미 환경호르몬을 함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박사님은 '수제'란 수식어를 믿지 말라고 하셨어요. 수제 식품, 제품 제조자들이 모든 소재와 성분을 확인해줄 수 있으면 믿어도 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캠프 참가 가족들의 귀여운 후기. /사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대안이 제시될 수 있도록, 안전을 지켜줄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환경호르몬을 시민 의제로 만든다는 것이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목표예요. 예를 들어 학교에 무농약 식자재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이미 갖춰진 것처럼, 환경호르몬 관리를 받은 식자재를 급식으로 공급할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겠죠.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2022년부터 카카오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을 받아서 시민들과의 바이오 모니터링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는데요. 올해로 지원이 끝나서 내년 프로젝트의 향방은 아직 불투명한 상태. 이런 연구와 제안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용사님들도 관심 가져주세요. 이번 캠프에 대한 내용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페이지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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