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웨이브 뉴 라이브러리 32호
뉴 웨이브 뉴 라이브러리 뉴스레터 32호 2021.3.21.
2022년 1월 25일, (재)도쿄어린이도서관의 설립자 마쓰오카 교코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서관운동가이자, 느티나무의 길동무인 마쓰오카 선생님을 기억하며 편지 띄웁니다. 
마쓰오카 교코 선생님을 기억하며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세 가지 소원을 누군가 들어준다면, 어떤 소원을 말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미 한 가지는 정해두었는데요. 온 세상의 말을 알 수 있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2009년 느티나무에서 열린 심포지엄의 주제발표를 마쓰오카 선생님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선생님다운 소원이라고 생각했지요. 평생에 걸쳐 도서관인으로 활동하는 내내 선생님은 타고난 스토리텔러이기도 했으니까요.

선생님의 부고를 들은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코로나로 발이 묶여, 떠나시는 길에 꽃 한 송이도 올리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도쿄어린이도서관(TCL)에서 상황이 나아지면 이별식을 마련하신다고 하니 기다리기로 하고 도서관에 추모 컬렉션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49일째가 되는 3월 14일까지 유지하여, 선생님이 쓰신 책들과 느티나무와 쌓은 인연을 한국의 벗들과 나누며 선생님을 기리려고 합니다.

2009.5. 한일교류심포지엄의 첫 순서로 열린 스토리텔링 워크숍에서 시연을 하고 있는 마쓰오카 선생님과 시미즈 님

헤아려보니 18년을 이어온 우정이더군요. 출발은 2004년이었습니다. 처음 TCL을 방문하고 돌아나오는 길에, 좋은 기운을 얻어 앞으로 5년쯤은 버틸 수 있겠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선생님께서는 ‘그럼 앞으로 5년은 꼭 더 살아야겠다’고 하셨지요. 더할 나위 없는 응원이었습니다.

짧은 첫 만남이었고 언어의 장벽도 있었는데 어디서 그렇게 단단한 신뢰가 비롯되었는지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꼭 5년이 지난 2009년, 느티나무에서 심포지엄을 열어 마쓰오카 선생님을 초청하고, 1년여 행사를 준비하면서 주고받은 자료들을 통해 10주년, 20주년, 25주년, 마디마다 굵게 새겨진 TCL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었거든요. (중략) 

2009.5. 느티나무도서관 아랫마당에서 열린 심포지엄 뒤풀이 교류회

그리운 선생님께

마쓰오카 선생님, 느티나무는 지금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6년 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으며 ‘사회를담는컬렉션’ 워크숍을 기획해서 2년째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대된다며 격려해 주셨지요? 그 덕에 이제 느티나무도서관 1층 홀은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뺏길 만한 컬렉션들로 채워졌습니다. 컬렉션으로 버스킹도 열고 있어요. 미술관, 맥주 펍, 시청사 로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상 속 공간으로 찾아가 컬렉션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거죠. 도서관 3층은 메이커 스페이스로 변신했어요. ‘지식의 동사化’를 모토로 이웃들의 온갖 실험을 응원하고 있지요.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요리도 하고 술도 빚어 나누는 동네부엌에 오시면 아마, TCL에서 선생님 댁으로 가는 길에 있던 선생님의 세컨드 키친을 이리로 옮기고 싶다고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어린이서비스에 천착해온 TCL과 다르게 지역 커뮤니티를 북돋는 데 힘을 쏟겠다는 느티나무의 바람이 어떻게 구현되어갈지 몹시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하셨던 선생님. 요사이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느티나무에서 하루하루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들으시면, 아마 선생님의 커다란 눈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어서 더 이야기해보라 재촉하셨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지역의 수십 개 단체와 힘을 합해 이곳 용인을 더 나은 삶터로 바꿀 작당모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늘 걱정하셨던 재정적인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도서관 운영을 지속해나갈 방안도 꾸준히 찾고 있습니다. 시민기금도 시작합니다. 막연하게 꿈꾸던 ‘시민자산화’의 실마리를 찾을 것 같기도 해요. 몇 년째 도서관에 기부를 늘릴 방안만 고민했는데, 시선을 돌려, 도서관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는 시민들을 더 적극적으로 응원하기로 한 겁니다. 시민들의 작당모의가 지역의 사업으로, 이웃들의 일상으로 자리잡으면 그 과정을 함께한 이들이 도서관을 이어갈 것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늘 그랬듯이, 도저히 넘지 못할 것 같은 장애물도 만나고 생각지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올초에도 한 해를 맞으며 선생님이 더 간절하게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새로 내딛는 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생각하며 다시 찾아뵐 날을 기다렸는데… 너무 느긋했던 게죠. 백세시대이고 설립자 이시이 선생님도 101세까지 장수하셨으니 1935년생으로 올해 미수를 맞으신 선생님은 십 년은 더 그 자리에 계실 거라 여겼던 모양이에요.

(왼쪽) 2004년 10월 처음 방문한 TCL에서. 마쓰오카 선생님, 아라이 님, 한일교류의 모든 과정을 함께해준 한일아동문학연구회 박종진 님과. (오른쪽) 2016년 7월 선생님 댁에서, 2014년 느티나무로 방문연수를 다녀간 연수를 마치고 도쿄도립도서관에서 활동하던 TCL연수생 미쓰노 사야카 님과.

참, 선생님 그거 아세요? 처음 만난 2004년 10월 4일과 마지막으로 뵌 2016년 7월, 사진 속 선생님이 입고 계신 옷이 같은 조끼더군요. 선생님의 영면 소식을 듣고 추모 컬렉션 코너를 만드느라 선생님 쓰신 글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꺼내 보다가 발견했어요. 이렇게 황망함과 아쉬움으로 슬픔이가 되었다가, 또 잊고 지냈던 작은 기억들을 되찾는 행운을 만나 기쁨이가 되기도 하면서, 선생님이 늘 강조하시던 ‘뜻’을 되살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립 기관은 가장 먼저 뜻이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시작됩니다. 사립 기관의 위기는 그 뜻이 약해지거나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외부의 힘으로 부서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뜻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존속의 열쇠입니다.” (마쓰오카 교코, 2009, 한일교류도서관심포지엄 주제발표 중에서)


 2016년 7월 선생님 댁 부엌에서 차를 끓여주시던 모습.

선생님, 세상 모든 언어를 알고 싶다던 소원 이제 이루셨는지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무, 새, 빗방울에게도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옛이야기만큼 수수께끼도 좋아하셨을 선생님, 지난 한 달 느티나무 열람실 한복판에서 웃고 계신 선생님 사진을 볼 때마다 되뇌었던 말이 뭔지 맞춰보세요! (답은 ‘워리그튼무아’입니다.)


선배이자 멘토이고 벗이자 동지였던 마쓰오카 선생님. 당신이 몹시 그립습니다.

2010년 교류회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시던 날 공항에서 겹겹이 싼 용돈을 담아 건넸던 십자수 책커버. 느티나무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다. ‘절대 도서관에 쓰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쓰고 싶은 데 쓰라고 당부하셨던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받아들었던 기억과 그 무한대의 신뢰와 응원을 오롯이 담은 채.
컬렉션 코멘트: 책에 마음을 둔 사람들의 계보
🐶사서: 18년 동안 쌓인 아카이브 상자를 열어 자료를 살폈다. 이 상자에 그야말로 책과 도서관에 마음을 둔 사람들의 계보가 담겨 있었다. 마쓰오카 선생님과의 인연은 2004년, 느티나무 직원들이 도쿄어린이도서관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2008년과 2009년에는 한일교류 도서관 심포지엄을 열어 각 도서관이 걸어온 길과 나아갈 방향을 나눴다고 한다. 
🐱사서: 당시 두 도서관이 편지를 수없이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모두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10년도 전에 주고받은 구김 하나 없는 편지, 오래전 도서관 리플릿, 현장을 녹음한 CD··· 기록에서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일교류 도서관 심포지엄에서 오간 이야기는 자료집 「한일교류 도서관 심포지엄」(느티나무도서관재단)에서 볼 수 있다.
교류 당시 주고받았던 편지
🐯사서: 박영숙 관장님은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알마)에서 느티나무와 도쿄어린이도서관이 도서관의 규모나 환경은 달라도, 으레 겪게 되는 시행착오까지 마치 정해진 순서를 밟는 것처럼 닮아 있었다.”고 회상한다.
🐶사서: 사립공공도서관으로서 두 기관이 걸어온 길이 놀랄 만큼 비슷해 뒤늦은 반가움이 크다. 마쓰오카 선생님은 어린이와 책의 관계를 늘 고민했다는데, 이 기회에 소개하자. 
교류 당시 마쓰오카 선생님이 건넨 선물. 작은 크기의 『기쁨이 슬픔이』책과 『구리와 구라』메모장.
🐥사서: 그림책 『기쁨이 슬픔이』(재미마주)는 길을 나선 주인공이 상황에 따라 활짝 웃거나 울상을 지으며 제목 그대로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이야기다. 마쓰오카 선생님은 이 책을 앞에서부터 읽고 뒤에서부터 읽고, 한가운데서 만나는 이야기라고 했다.
🦆사서: 『책과 함께 자라는 어린이』(창지사)에서 마쓰오카 선생님은 출판 시장에서 중요성이 덜하게 여겨지는 옛이야기가 가진 힘과 전래 동요 운율의 즐거움을 강조했다. 글자를 거꾸로 읽는 왕자가 등장하는 『워거즐튼무아』(바람의아이들)와 욕조 안에서 어디선가 등장한 동물들을 그린 『목욕은 즐거워』(한림출판사)를 읽다 보면 다른 이유를 붙일 수도 없이 무작정 어린이가 좋다던 말처럼, 그 누구보다 어린이가 재미있게 읽을 어린이책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사서: 『어린이·책·사람 그 만남을 위해』(느티나무도서관재단)는 사서가 다시(!) 질문을 품고 도서관을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마쓰오카 선생님과 일본어린이도서연구회를 운영한 히로세 쓰네코 두 분이 어린이와 책을 어떻게 이을지 고민하며 나눈 대담으로, 책과 사람의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길 전한다. 자료집을 읽은 🦆사서가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치며 읽었다는 후문도. 
🦆 사서: 유독 인상 깊은 구절이 많은데, 하나를 골라 전한다.

“어른이 권하는 책을 아이들이 언제나 읽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아주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어른과 아이들이 늘 일치한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고, 다른 것이 당연하지요. 그래도 어른은 책을 고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책을 고른다는 것은 영원한 테마일 겁니다. 따라서 이렇게 하면 좋습니다, 하는 말씀은 드리기 힘듭니다. 책에 대한 평가란, 어른과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관점, 흥미, 감성이 관계되고 거기에는 저마다 자기만의 가치와 관점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_62p.
사서: 밑줄 그은 사서 여기도 있다. 오래된 책을 언급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마쓰오카 선생님은 읽는 사람이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가슴이 찡하고 울리는 생각,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준” 책으로 도서관을 채우는 일이 매우 중요한 사서의 몫이라며, “옛날 책이라도 아주 재미있어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오래된 책도 소중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절판돼 다시 구하기 어려운 옛날 책이 가득한데 쉽사리 버릴 수가 없다. 어떤 사서는 낡은 책을 제적할 때 그 책을 꼼꼼하게 읽고 보내주는 자기만의 의례를 만들기도 했다. 좀 꼬질꼬질하더라도 즐거운 이야기를 선물해준, 그래서 서가에 더 머물게 하고 싶은 책이 한 아름 생각났다. 
🐯사서: 『어린이·책·사람 그 만남을 위해』나 「한일교류 도서관 심포지엄」을 보면서, 어린이였던 한 사람으로서 보우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 즐겁게 읽었던 책이 종종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꼭 읽으면 좋겠다. (자료집을 구하려면 느티나무에 연락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사서의 사심을 가득 담아 말하건대 감수할 가치가 있다!)
느티나무도서관을 왜 후원하시나요?
도서관 친구 김인진, 백종윤 님에게 물었습니다. 💬
아이가 네 살이 된 후부터 쭉 느티나무와 함께해 왔는데, 아이들에게 열린 공간이라 참 좋았어요. 함께 미끄럼틀을 타거나 피아노를 칠 수도 있었고요. 아이는 이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느티나무에 달려가 책을 읽어요. 
아이와 함께 간식비를 아껴 그 돈으로 도서관을 후원하고 있는데요, 도서관 입구에 붙여진 후원자 명패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보고 느티나무의 친구가 되어 뿌듯해하는 아이를 보며 저 또한 기뻤습니다. 이런 경험들로 아이가 도서관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애정하는 느티나무도서관! 앞으로도 열심히 이용하겠습니다.
오늘 느티나무 이야기, 어떠셨어요?
오늘 받아본 글에서 특별히 재밌는 부분, 아쉬운 점, 앞으로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를 느티나무에게 전해주세요. 피드백 언제나 환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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