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점이 커트라인인데 당신은 380점이니 불합격”이라는 말이, 교육학적으로는 헐겁지만 막상 반박하기는 어렵다. 수능은 공정한 게 아니라 평가자가 방어하기 쉬운 시스템일 뿐이다.

- 박도순 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수능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건 비교적 ‘공정’한 걸까요? 수능은 학업 성취도를 정확히 측정할까요? 수능의 킬러 문항으로 학생들을 변별하는 건 “수시처럼 사람의 개입이 없으며 때문에 투명하고 공정하다”라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이는 지금껏 수능의 공정성을 뒷받침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저희가 소개할 시사IN 기사는 이 전제가 흔들린 근거를 ‘킬러문항의 족보화’라고 지적합니다. 이 주장은 우리가 수능을 계속 측정 기준으로 삼아도 되는지 고민하게 하는데요.

기사는 지난해 39개 의대 정시 총정원인 941명 중 입학생 470명을 배출한 대치동의 A 학원에 주목합니다. 무려 49.9%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기사는 평가원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2010년 어느 시점부터 수능은 ‘족보화’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질 좋은 문제를 반복해서 풀면 맞힐 수 있는 문제가 된 건데요. A 학원은 대학생을 포함한 숙련자가 직접 문제를 내게 하고, 이러한 ‘킬러 콘텐츠’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수능 문제 패턴에 익숙한 사람은 역시 대학생(구 수험생)일 겁니다. 이들이 만든 콘텐츠는 A 학원 수강생만이 얻을 수 있었는데요. 요즘 수능 변별력의 핵심은 킬러 문항입니다. 그리고 이런 콘텐츠를 반복해 풀어온 학생이 수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한두 문제 더 맞히며 변별력이 생깁니다. 이 콘텐츠를 얻기 위해 학생들이 A 학원에 내는 월 수강료는 208만 원(독서실 포함)입니다.

기사는 수능만이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에 또 다른 근거를 듭니다. 먼저, 지역 격차입니다. 우리는 흔히 온라인 강의가 생기고, 대치동 자료를 온라인으로 사고팔 수 있는 형태가 자리 잡으면서 지역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사에 따르면, 서울과 지역의 성적 격차는 주요 과목에서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킬러 문항으로 인한 변별력이 강한 수학 과목은 서울, 지역에서 1등급 비율이 3배 차이 나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는 N수생이라는 변수입니다. 그들은 대개 재수종합학원(재종)에서 공부하고, 올해 정시 의대 정원 중 80%가 N수생입니다. 어쩌면 수능은 모든 학생에게 공정하지 않습니다. 서울에 사는, N수생에게 특히 유리한 시험이 된 건데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시험을 준비해야 할까요? 애초에 대학 입학에 꼭 수능 같은 시험이 필요할까요? 이번 레터에서 폴라리스가 답을 제시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그간 여론은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쪽이었는데요.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었죠. 수능이 정말 ‘좋은 평가 방식‘인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능도 처음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저희가 소개하는 시사IN의 기사는 수능 창시자라 불리는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입니다. 그는 암기 위주 평가에서 탈피하기 위해 수능을 도입했다 말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얼마나 잘 외웠는지 평가했던 학력고사와 달리, 일종의 지능검사처럼 학생들의 논리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려 했던 것이죠.

당시 평가원은 대학이 수능을 일종의 자격고사로 여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학생을 선발할 때, 수능 점수는 ‘300점 이상’ 같은 기준만 제시하여 300점을 넘는 학생들은 같은 선상에 두고 대학이 별도 평가를 하는 것이죠.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대학은 수능 점수가 높은 사람을 학력이 높은 사람이라고 판단해 수능 점수로 학생들을 줄세우기 시작했고, 1~2점 차이로 운명을 가르는 시험이 된 수능은 난이도 조절이 매우 까다로워졌습니다.

문제는 수능 점수가 학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수능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다, 선다형 평가의 근본적 문제인 ‘오차‘까지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난 30년 간 수능은 선택과목 제도 도입, 문·이과 통합 등 여러 변화를 겪었지만 학생들을 변별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로 인해 ‘객관식 상대평가’라는 기본 틀은 바뀌지 않았죠. 현재 교육과정은 학생의 선택권 강화와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 등을 목표로 합니다. 수능의 견고한 틀인 객관식 상대평가는 그 모든 것과 상충하고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됐던 ‘킬러문항(최상위권 일부만 맞출 수 있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문제)’은 객관식 상대평가하에서 최상위권을 더 잘 변별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대학 교육과정을 수학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본래의 목적과는 상당히 멀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대통령이 킬러문항을 없애라고 지시한 뒤, 예전처럼 단순 암기력을 요구하는 스타일의 문항이 늘어나면 교육이 후퇴한다는 비판과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겁니다.

수능을 이야기할 때 킬러문항은 어쩌면 핵심적인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현재 수능, 대입, 그리고 한국의 교육은 대공사가 필요한 시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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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수능은 ‘공정’한 시험도 아니고 좋은 학력 측정법도 아니다”라는 주장은 거세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학은 학생을 선발할 때 수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걸까요? 수능 100%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 전형’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 걸까요?

수능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주장하는 게 정시 전형 없애기입니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꿔 자격고사로 만드는 동시에,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온전히 줘서 대학이 알아서 전형을 설계하고 학생을 뽑게 하자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 글에서 소개해 드린 박도순 교수가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입니다. 아예 대학 입시를 폐지하고 수능을 통과하면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주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가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인데요, 그는 주로 독일의 사례를 듭니다.

정시가 사라지고 수시만 남았을 때 일어날 폐해를 걱정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정시는 일부분이어도 학생 선발 과정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앞으로 조민 씨 입시 비리 사건처럼, 본인의 능력을 넘어선 다른 큰 힘이 개입한 사건이 일어나도 비판할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전형을 짜는 권한은 대학에 있고, 대학에서 거기 맞는 학생을 선발하면 그만이니까요.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소장이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입니다.

다만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다루는 문제가 ‘입학제도의 평준화’이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가 사례로 든 독일은 대학의 교육 품질을 평준화해 우리나라처럼 대학에 따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범 교육평론가의 칼럼은 “설령 입학제도의 평준화를 이루는 것이 목표라 할지라도, 교육 품질의 평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박 교수는 2021년 칼럼에 불평등으로 대학 진학의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고 썼습니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란 단어로 대표되는 대학 서열화는 굳건합니다. 또 가정환경‧지역‧학교는 수능의 공정성을 해친다고 지적받아 온 요소들이었습니다. 이 둘을 해결하지 않는 한, 정시 전형의 영향력을 바꾼다고 한들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피 튀기며 경쟁하는 모습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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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능 날이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가 보도됩니다. 어린 학생이 사회에 진입하기도 전에 좌절하고 세상을 등지는 일은 크나큰 슬픔이자 손실입니다. 이처럼 학생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공정’하지도 않은 수능에 모두가 이토록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경향신문 기사는 교육 개혁의 근본적인 해법이 ‘노동 격차 해소’라고 말합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불평등이 심각하고 소수의 정규직 대기업 사원을 뽑는 기준이 ‘학력’인 사회에서, 경쟁 심화와 서열화 등 교육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실제로 한국은 학력별 노동 격차가 극심한 국가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학력별 정규직 비율은 대졸이 76%인데 반해 고졸은 48%, 중졸은 21%에 불과합니다.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도 심각한데요. 고졸자 평균 임금이 100만 원이라고 할 때 대졸자 임금은 134만 원, 대학원 졸업자 임금은 179만 원 가까이 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최종 학력에 따른 불평등만큼이나 학벌에 따른 격차의 골도 깊습니다. 2023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상위권 16개 대학 졸업자들은 20대 때 하위권 대학 졸업자에 비해 25%가량 많은 임금을 받습니다. 학벌에 따른 임금 격차는 40~44세가 되었을 땐 50%까지 벌어지고요. 고학력·고학벌이 고임금 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대입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거죠.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결국 학력별 임금 및 시간당 임금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박 교수는 “모든 사람에게 학력에 관계없이 국가가 제공하는 근사한 평생 소득, 근사한 평생 노동시간이 보장된다면 굳이 높은 사교육비와 등록금을 지불하며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어진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죠. 그러나 한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는 5년 연속 증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불평등이 강화되는 와중에 교육 개혁에 관한 담론은 공회전하고 있고요.

2028 대입 제도 개편안이 나오고 얼마 뒤, 교사 서부원씨는 수능을 앞둔 학생의 하루를 옆에서 보고 기록한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에너지 음료를 물처럼 마시고 5시간 이하로 자는 게 ‘평균’이라는 학생들을 보며 말합니다. “새삼스럽지만, 교육개혁의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한 삶'이다.” 아이들이 스스로에게 가혹해져야만 하는 교육을 바꾸기 위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해, 우리 사회는 손봐야 하는 지점은 대입 제도보다 훨씬 깊고 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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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수를 했다는 유튜버보다는 못하지만, 저는 수능을 3번 봤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11월이 되면 마음이 찌르르하고, 교정을 걷다가도 코가 찡해지더라고요.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는 ‘남기자의 체헐리즘’에서 20년 만에 수능에 도전한 모습을 담았습니다. 기사 마지막에는 수능을 먼저 마친 어른 선배들의 응원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수능을 본 지 한참이 지났는데, 그 응원을 보고 왜 제가 눈물이 나는지 몰라요. 수능에 대한 어떠한 추억이라도 있는 분이라면, 이 기사를 일독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응원 메시지는 대부분 “수능에서 실패한다고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한국에서 수능은 30년간 어떤 시험이었길래, 모든 어른이 온 마음을 담아 수험생을 위로하는 걸까요? 왜 영어 영역 듣기 시험 시간에는 모든 비행기가 이륙을 멈출까요? 학생과 직장인의 등교, 출근 시간까지 조정하면서 수험생을 ‘배려’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번 주 폴라리스는 전 국민을 들썩이게 하는 하루, 그 하루가 학생들에게 주는 억압과 부담을 어떻게, 왜 완화해야 하는지 담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꼭 수능이 아니어도, 모든 경쟁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패배를 안겨줍니다. 누군가가 기뻐할 때, 누군가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겁니다. 레터를 쓰면서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수험생에게 그러하듯,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따뜻해지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수험생에게는 “수능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쉽게 말하지만, 우리는 나 자신의 실패에 그렇게 너그러워 본 적이 있었나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지금 이게 인생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나에게 남은 날과 기회는 셀 수도 없이 많다고. 고3에게 필요한 응원만큼이나, 나에게도 응원과 위로가 필요한 나날입니다. 수능이 다가오니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런 현상은 매일 겪는데도 신기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차림 든든히 하세요. 목도리는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