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목차]
- 화폐민주주의연대 논평
소상공인 코로나 손실 보상금 지급 대선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 기재부와 한은은 재정건전성, 물가상승 핑계대지 말라-
- 서익진의 1) Q&A 2) 용어해설
은행은 새 돈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 시뇨리지란 무엇인가?
- 국내소식
이창용 IMF 국장, 차기 한은 총재 취임
- 김영식의 국채, 지방채, 채권 이야기
- 이동근의 지역공공은행 소식
- 시로 풀어보는 돈 이야기
- 화폐민주주의 연대 활동 및 공지사항
|
|
|
화폐민주주의연대 논평1
소상공인 코로나 손실보상금 지급 대선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 기재부와 한은은 재정건전성, 물가상승 핑계대지 말라-
소상공인 코로나 손실 보상금 관련 대통령직 인수위의 발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국세청 자료 활용 차등 지급 원칙만 밝히고, 언제 얼마를 어떻게 지급한다는 핵심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요 재원도 예산 구조조정을 통해서만 확보할 것으로 보이므로 지원총액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재정 건전성’을 18번 곡목으로 삼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국채 발행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고, ‘물가 파수꾼’ 한국은행은 50조 원의 주입으로 초래될 인플레이션을 경고해왔다.
새 정부가 이 두 가지 반발을 핑계 삼아 대선 공통 공약이자 국민적 공감대까지 확보한 공적 약속을 출범도 하기 전에 공약(空約)으로 전락시키지는 않을까 지레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소상공인 코로나 손실 보상금 50조 원 지원 공약은 공익을 위해 손실을 감수했던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당선자의 제1호 공약(公約)으로서 새 정부의 신뢰도를 가늠할 최초의 잣대라는 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주권화폐 개혁을 통한 화폐·금융 민주화를 추구하는 ‘화폐민주주의연대’는 신속한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상기의 반발과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재원마련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가 지급보증 하는 영구채를 발행해 중앙은행에 전액 인수케 하는 것이다. 이는 현행 한국은행법도 허용하는 방법이다. 국가부채는 명목상 늘어날 뿐 사실상 갚지 않아도 된다. 이자를 낸다 해도 같은 정부기관끼리 주고받는 거니까 사실상 부담이 아니다.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는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는 연간 이윤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배당한 뒤 나머지를 재무부에 되돌려주기까지 한다는 사실도 참고할 만하다. 게다가 추가로 풀린 돈이 수요와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키면 이에 따른 부가세 증가분만 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둘째, 주권화폐 이론은 좀 더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을 가르쳐준다. 한국은행이 본원통화를 발행해 정부에게 그냥 주면 된다. 쇼킹한가? 사실 돈을 찍어서 자신이 가지거나 누군가에게 그냥 주는 게 역사상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법적으로 한국은행에 독점 부여된 법정통화의 발권력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중은행들에 의해 행사된다. 한국은행이 무상으로, 심지어 법적 근거도 없이 양도한 통화 발행권을 언제든지 되찾아오면 그만이다.
상기 두 가지 재원조달 방법은 국가부채를 한 푼도 늘리지 않는다. 둘 중 어떤 방법을 채택할지는 정부가 결정할 일이다. 그래도 돈이 그만큼 추가로 풀리는 만큼 인플레이션 우려는 여전하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현재의 물가상승의 주범은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에 있다고 봐야 하지만 그래도 걱정된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상시로 활용하고 있는 ‘공개시장 운영’이나 ‘통화안정채권’의 발행이 그것이다. 일단 적당한 국공채의 발행으로 풀린 돈의 상당량을 흡수하면 될 것이다. 물론 이자 부담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어떤 방안을 채택할 것인지 그리고 채택된 방안의 실행에 필요한 세밀한 기술적인 설계와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긴급 상황에는 긴급조치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처음은 있다. 선례가 없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맹꽁이 같은 소리는 소상공인들의 희생과 고통을 외면하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는 필요하다면 바꿀 수 있고 또 바꾸어야 한다. 사실 인간사회는 제도 개혁을 통해 발전해왔다.
코로나 사태로 삶의 궁지에 몰린 소상공인들에게 은행대출을 통한 빚을 더 이상 안겨서는 안 된다.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국가부채보다 더 심각한 폭탄임을 명심해야 한다. 새 정부는 우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적극 검토하고 세부 실행방안을 조속히 만들어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를 바란다.
2022년 5월 5일
화폐민주주의연대
|
|
|
서익진의 화폐민주주의 Q&A-4
은행은 새 돈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
|
|
앞선 3호에서 우리는 시중은행이 어느 누구의 돈도 아닌 새 돈을 만들어 대출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은행은 자신의 돈이나 예금이 없어도 그리고 중앙은행에 빌리지 않아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새 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무(허공)에서 유(돈)의 창조야말로 은행들이 진정 감추고 싶어 하는 최고의 비밀입니다. 이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으신 분은 뉴스레터 3호를 다시 찬찬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그렇다고 친다면, 이제 은행은 과연 자신이 원하는 만큼 무한정으로 새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전문용어로 은행의 신용통화 창조에는 한도가 없는가? 하는 의문이 이어질 수 있겠네요. 오늘은 이 의문을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은행과 강단경제학이 제공하는 공식적인 설명부터 살펴본 후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강단경제학이 말하는 은행의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은행의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 그림은 한국은행 누리집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지만 강단경제학의 수많은 교재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
|
먼저 알아둘 것은 우리나라와 미국 등 상당수의 나라들은 부분 지급준비금(이하 지준금)과 법정 지급준비율(이하 지준율) 제도를 운영한다는 사실입니다.(주1) 여기서 지준율은 편의상 10%로 가정합니다. 최초에 한국은행이 100의 본원통화를 발행해 A은행에 빌려줍니다. 중앙은행으로부터 100의 예금을 유치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A은행은 지준율에 의거해 100 중에서 10(=100*0.1)을 자신의 중앙은행 지준금 계좌에 남겨두고 나머지 90을 대출할 수 있습니다. 이 90이 모두 대출되고 대출받은 사람이 이 돈을 B은행에 예금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B은행은 예금 90을 확보하게 되고 이 중 10%(이젠 9가 되겠죠)를 지준금으로 남기고 나머지 81을 대출할 수 있습니다. 81을 대출받은 사람이 이 돈을 C은행에 예금한다고 하면, C은행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72.9를 대출할 수 있고, 그러면 72.9의 예금이 창조됩니다.(주2)
이러한 과정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최초의 본원통화 금액과 대출이 이루어질 때마다 창조된 예금들의 총합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100 + 100×(1-0.1)] + [100×(1-0.1)×(1-0.1)] + [100×(1-0.1)×(1-0.1)×(1-0.1)] +...] 이것은 무한 등비급수로서 그 합은 100×(1÷0.1)로 표현될 수 있고, 그 값은 1,000입니다. (뭐 이런 수학 지식까지 알아야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식이 나쁜 건 아니죠). 따라서 최초의 종자돈(본원통화, 즉 중앙은행의 예금)이 주어지면, 은행이 창조할 수 있는 신용통화의 최대금액이 주어집니다. 그 크기는 최초의 본원통화 금액에 법정 지준율(10%=0.1)의 역수(10)(이를 ‘통화승수’라 부릅니다)를 곱한 값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 설명이 말하지 않는 것
상기의 공식적인 설명이 정말 멋있어 보이지 않나요? 지적 허영도 만족시켜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이른바 ‘그것이 말하지 않는 사실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상과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먼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법정통화는 전부 신용통화입니다. 지폐, 동전, 은행 예금계좌에 기록된 전자수치 등 그 형태가 어떠하든 발행자가 누구이든 모든 돈은 ‘원’으로 표현되고 또 언제든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동일한 (법정)신용통화죠. 모두 신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법정통화이거든요. 그런데 이 신용통화의 발행이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에 의해 분담되는데, 전자가 발행한 신용통화를 ‘본원통화’, 후자가 발행한 신용통화를 ‘예금통화’ 또는 ‘은행통화’로 구분해 부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상기 메커니즘을 다시 살펴보면, 지준율이 4%일 때,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100을 창조해서 은행에 빌려주면 그 25배인 2,500의 신용통화가 생기죠. 이 중에서 중앙은행이 창조한 본원통화 100을 공제한 나머지 2,400은 은행들에 의해 창조된 예금통화죠. 그러나 공식적인 설명은 이처럼 통화 발행이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간의 분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물론 통화 창조에서 시중은행이 중앙은행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강조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통화의 발행과 대출은 이익(이자수입)을 가져다주는데 그 이익의 극히 일부(예컨대 4% 정도)만 공공은행인 중앙은행이 가져가고 나머지 거의 전부(예컨대 약 96%)를 시중은행이 가져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이 금이다’라는 격언을 고수합니다.
다음,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에 관한 공식 설명은 다음 두 가지 착시를 조장합니다. 하나는 예금이 있어야만 대출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의 신용창조에는 상한이 있어 무한정 대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착시부터 살펴봅시다. 이 착시는 은행은 법정 지준율에 의거해 예금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대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이는 사실을 말하자면 이 예금이란 게 그에 앞선 대출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망각한 데 기인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돈이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이죠―사실은 예외가 있습니다만 다른 기회에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은행대출이 없다면 애당초 시중에 돈 한푼은 없을 것이고, 돈이 아예 없는데 예금이 있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죠.
따라서 현행 시스템에서는 ‘예금이 대출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출이 예금에 선행’합니다. 다시 말해서 은행은 예금이 있어야만 대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대출을 하는 만큼 예금이 창조되고 통화량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수중에 돈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은 남의 수중에 있는 돈을 가져올 수 있거나(이 경우 통화량은 늘어나지 않죠) 아니면 누군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그의 예금잔고가 늘어남과 동시에 시중 통화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
|
|
두 번째 착시를 보겠습니다. 이것은 이 글 서두에서 제시한 질문과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상기의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은 은행은 최초의 본원통화에 통화승수를 곱한 값만큼 통화를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공식 설명은 은행이 창조할 수 있는 신용통화의 양에 상한이 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부분 지준금과 법정 지준율 제도에 근거해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상한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아! 나하고 똑같은 민간인 자격을 가진 시중은행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특권을 누리고는 있지만, 이 특권을 무한정 행사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공적 규제를 받으면서 하는구나”. 그래서 이 시스템이 통화승수, 무한등비급수 등 현란한 수학을 동원해 설명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것이긴 하지만, 아니 오히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니, 뭐 부당하거나 부정한 건 없을 거야”라고 착각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 은행은 신용통화를 무한정 창조할 수 있습니다만, 현실에서 이 이론적인 가능성을 결코 온전하게 실행하지 않으며, 그래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은 독과점 기업이 무한정의 가격 인상이라는 가능성을 누리지만 가격을 무작정 높게만 책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독과점기업이든 은행이든 자신의 이윤 극대화를 가져다주는 생산량과 대출 수준을 유지하고자 하죠. 그러나 이러한 실제의 행태가 무한 가능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잘 인식되고 있지는 않지만, 은행(들)은 사실상 돈의 발행권을 독과점하고 있는 민간기업(들)이죠. 안 그런가요?
현실 부적합성과 지적 허영
끝으로 상기의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 설명은 은행 대출의 실상을 반영하지도 않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 말은 이론이 현실에서는 그대로 관철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하죠. 그런데 돈의 발행과 관련해 이론과 현실은 서로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충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실상은 어떨까요? 민간은행은 고객의 대출 요구가 있을 때만 돈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고객 요구만 있으면 무조건 그에 응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은행이 대출 여부를 결정할 때 지준금 잔고나 고객예금 잔고 또는 법정 지준율 따위는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습니다. 은행은 오로지 대출 신청자가 과연 자신이 해준 대출금을 온전히 상환할 능력이 있는지(신용등급, 담보나 보증인 여부) 그리고 정기적인 원리금(원금과 이자) 납입을 위한 소득이 있는지(직업, 직종, 지위, 소득 등)만 따집니다.
은행은 민간기업으로서 이윤 극대화라는 목적이자 지상명령에 충실할 뿐이죠. 만약 어떤 은행이 일정 시점에 일정 기간 동안 대출을 시행한 결과 예금 잔고가 증가로 지준금 시재가 법정 규모에 미달하는 상태가 될 수 있죠. 그러면 일단 이 부족분을 콜 시장(은행 간 초단기자금시장)에서 지준금에 여력이 있는, 즉 초과 지준금을 가진 다른 은행에서 차입해 메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호황이 도래해 은행들이 너도나도 대출을 늘려 은행 시스템 전체 차원에서 의무 준비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은행들이 콜 시장 거래로 지준금 부족액을 메울 수는 없죠. 이제 은행들은 중앙은행에 호소합니다. 중앙은행은 은행들의 부족한 지준금을 메울 수 있도록 본원통화를 그만큼 발행해 해당 은행들에게 빌려줍니다. 이때 중앙은행도 은행이 그 고객에게 하는 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해당 금액을 컴퓨터 자판으로 두들겨 만든 돈을 해당 은행의 지급준비금 계좌에 기입해주면 그만입니다. 즉 이미 말했듯이 본원통화도 예금통화처럼 신용통화인거죠.
중앙은행도 자판으로 두들겨 만든 새 돈을 빌려준다는 사실은 양적완화 관련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의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그린스펀 의장도 인정했었죠. 하기야 민간은행도 신용창조를 하는 마당에 중앙은행이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진실을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돈을 만드는 것은 중앙은행에게만 허용된 특권인데, 무슨 이유로 그리 되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어쨌든 소수의 민간은행도 중앙은행과 똑 같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아니 이 특권을 중앙은행보다 예를 들어 25배나 더 많이 행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실상을 알아챈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중앙은행의 행태를 ‘중앙은행의 수동성’이라고 부릅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오히려 민간은행의 ‘능동성’ 또는 ‘선제성’을 봅니다. 중앙은행은 은행의 자율적이고 선제적인 대출 활동에 따른 통화량 변동으로 야기되는 은행들의 지급준비금 수요에 수동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 공급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은행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은행 파산이 일어날 수 있고, 한 은행의 파산은 다른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은행 간 네트워크와 지급결제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고, 극단적으로는 경제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능동적으로 통제하지도 않으며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이걸 은행의 ‘협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
|
그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라는 것도 통화량의 사전적인 결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은행들의 대출 규모에 따라 시시각각 변동하는 통화량을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유도하기 위해 이른바 기준금리와 공개시장 운영이라는 수단을 사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통화정책은 화폐경제 시스템의 안정과 경제의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 시행된다고 설명하죠. 정말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요컨대 강단경제학이 말하는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은 현실과 부합하지도 현실을 해명하지도 못하는 쓸데없는 지적 허영의 산물로 전락했습니다. 강단경제학자들 중에는 이러한 이론적 설명의 허망함을 자각하고,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설명은 교재에서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상기의 그림과 설명은 여전히 경제학 교재들에 실려 있어 강단에서 가르쳐지고 있으며, 중앙은행 누리집에도 버젓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왜 이들이 이토록 무용한 이론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솔직히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을 고집하는 것은 어떤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누차 말하지만 감추고자 하는 진실이 ‘돈의 본성’과 ‘은행의 비밀’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다음 호부터는 ‘이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재미있는 얘기가 많죠. 기대해 주세요.
(주1) ‘지급준비금’이란 은행이 예금(특히 요구불예금)을 한 고객들의 인출에 대비해 간직하고 있는 준비금입니다. ‘지준율’이란 고객 예금잔고에 대한 지준금 잔고의 비율을 말합니다. ‘법정 지준율’은 은행들이 법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 지준율이며, 그 수준은 중앙은행에 의해 결정됩니다. 은행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가급적 예금 총액 전부를 대출하고자 하는 유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불필요하다며 호주나 캐나다처럼 법정 지준율을 폐지한 나라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은행들은 이 제도가 없어도 뱅크런(다수 고객의 동시 예금인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은행이 지급 불능에 빠지는 상황)을 피하려면 경험적으로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비율의 금액을 지급준비금으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또 실제로 뱅크런이 발생하면 쥐꼬리만한 법정 지급준비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명약관화합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서 지준율 변경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수단입니다. 게다가 법정 지준율이 있으나 없으나 현행 은행 중심의 통화 공급 및 배분 시스템과 지급결제 시스템의 작동에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주2) 참고로 신용창조 메커니즘의 설명에서 은행의 수효가 여럿이든 단 하나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현실에는 여러 은행이 존재하지만 모든 은행이 하나의 은행으로 합병한 것으로 가정하거나 은행 시스템 전체를 하나의 총체로 간주하면 되니까요. |
|
|
서익진의 용어해설 - 4
'시뇨리지'란 무엇인가?(1) |
|
|
혹시 우리말로 ‘통화 발행 차익’으로 해석되는 시뇨리지(seignorage 또는 seigniorage)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아마 들어봤다는 분이 거의 없을 겁니다. 강단경제학 교재에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경제학자조차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적지 않거든요. 안다고 자신하는 경제학자라 해도 그 자세한 함의까지 알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그것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가 지난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이래 화폐금융 분야에서 가장 핫(hot) 하게 뜨고 있습니다. 특히 현행 통화 발행 시스템의 부당성과 화폐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논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화폐 민주화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이 용어의 외연과 내포를 제대로 이해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시뇨리지’라는 용어의 어원
시뇨리지라는 용어는 어원상 프랑스어 세뇨르(seigneur, 영주)에서 파생한 단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세 영주나 왕(대영주이거나 영주들의 영주)이 금속화폐 발행과 관련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을 지칭했다는 겁니다.
과연 통화 발행 차익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나요? 차익이란 단어로부터 시뇨리지가 돈을 발행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과 돈을 발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차이를 떠올리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시뇨리지는 돈의 ‘명목가치’(액면가치 또는 표시가치)와 ‘소재가치’(실제가치, 사용가치 또는 효용)의 차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런데 명목가치와 소재가치가 차이가 나는 다른 상품이 없는 건 아니죠. 일반 상품 중에서도 가격(명목가치의 시장적 표현)이 그 소재가치(실제가치, 효용, 생산비)를 상회하는 상품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아파트’를 생각해보세요. 이런 상품은 이 차익의 획득하고자 하는 투기거래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죠. 그럼 화폐의 경우도 이런 상품과 동일할까요?
차익이 발생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발생 원인이 정반대입니다. 즉 앞선 투기성 상품의 경우엔 정해진 비용 이상으로 명목가치(가격)이 올라서 차익이 생기는 반면, 화폐의 경우엔 거꾸로 명목가치는 일정한데 그 소재가치(생산비)가 너무 낮아 차익이 생기죠. 예를 들어 5만 원 권 한국은행 지폐의 경우 명목가치는 5만 원인데 그 소재가치를 형성하는 생산비는 100원 정도로 알려져 있거든요.
시뇨리지는 이러한 돈의 발행 권한을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이득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불로소득인 시뇨리지를 독점하기 위해, 달리 말해서 통화 발행권을 쟁취하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져왔을 것으로 짐작되지 않습니까? 이 투쟁의 역사를 알고 싶은 분에게는 영국 학자 마틴(Martin)의 <돈>이라는 책을 진심으로 강추합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는 누가 이 시뇨리지를 가져가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죄송하지만 궁금하신 분은 계속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시뇨리지라는 통화 발행 차익은 사실 이론적으로 그리고 추상적으로만 존재합니다. 이 차익을 실제로 현실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시뇨리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과 그로써 획득하는 이득의 형태는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이 변화는 특히 상품화폐와 명목화폐라는 화폐의 성격 및 형태 변화와 더불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
중세 상품화폐의 시뇨리지
고대 이래 인간사회는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 또는 동이나 철과 같은 일반금속으로 만든 금속화폐를 오랫동안 사용해왔습니다. 예컨대 로마의 데나리우스 은화는 로마제국의 흥망을 결정했을 정도였죠. 로마제국의 멸망한 뒤 중세에는 이런 금속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은 누구나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주화를 만들어 사용했고, 또 주화를 녹여 금속 자체의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금속 없이는 통화를 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황금계곡을 둘러싼 인간들 간의 생사결투를 그린 유명한 서부영화 ‘맥켄나의 황금’(1969년)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니 금속화폐의 역사는 정말 오래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암호화폐도 그것을 발굴하는 사람만이 사실상 돈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금속화폐나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죠. 지금(地金)과 금화를 어딘가 안전하게 맡겨놓고 거래와 지불의 편의를 위해 보관자가 발행한 금 보관증(태환지폐의 원조)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지금(地金)이나 금화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금화와 같은 금속화폐의 경우 ‘소재가치=명목가치’이므로 그 자체가 발행자에게 시뇨리지를 가져다줄 수는 없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죠? 그런데 당시 영주(또는 왕)는 이러한 민간의 자유로운 금속화폐 제조 행위에 주조세를 부과했다는 겁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는 식으로 돈의 발행과 관련해 금 보유자가 아닌 영주가 이득을 보았으니 이를 진정한 시뇨리지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시뇨리지와 전혀 무관하다고 치부하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금속화폐 제조자는 주조세를 내더라도 그것이 제공하는 거래상의 편익이 더 크다면 제조를 계속 할 겁니다.
그 뒤 영주는 민간의 주조 행위를 아예 금지시켜 버린 뒤 스스로 (왕립)주조소를 설립해 주조사업을 독점해 버립니다. 그러고는 금속화폐가 필요한 사람에게 제조를 해주고는 주조 수수료를 받습니다. 이제 시뇨리지의 실현형태가 세금에서 수수료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죠.
더욱이 왕은 머리를 더 굴려 묘안을 짜냅니다. 예를 들어 금의 시세가 10g=1달러였다고 한다면 1달러짜리 금화를 주조해주기 위해 10g의 금을 받은 후 예컨대 9g만 사용해 1달러 표시 금화를 만들어주고는 1g을 떼어먹었죠. 백성들은 이 사실을 모를 수도 있지만, 알았다 해도 왕에게 대들 수는 없었죠. 통화 발행권을 가진 자의 횡포가 분명하지만, 이것도 시뇨리지를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임에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금을 비축할 수 있었던 영주나 왕은 스스로 자신의 금화를 발행하기도 했죠. 그러나 영주나 왕이란 족속은 전쟁이나 사치 등으로 지출하기 바빠 금을 지속적으로 비축할 수는 없었고, 오히려 늘상 돈이 부족했죠. 그래서 자신의 돈을 발행하던 왕은 일정량의 금속으로 더 많은 양의 돈을 만들기 위해 금속화폐의 금속 함량을 이전보다 줄이는 방식으로, 즉 명목가치는 그대로인데 소재가치를 낮추는 방식을 궁리합니다.
당연히 돈의 단위당 가치는 감소하고, 이 돈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하락하겠지만 여전히 1달러의 가치를 가진 모든 상품을 구매할 수 있죠. 이러한 감가 발행은 영주에게 또 다른 이득을 가져다주었죠. 빚이 많은 영주라면 동액의 채무를 전보다 더 적은 양의 금속으로 상환할 수 있으니 채무 부담도 경감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감가 발행을 넘어 심지어는 아예 명목가치(얼마짜리인지)를 새겨놓지 않고 왕의 상징만 새긴 주화를 발행한 뒤 그 명목가치를 칙령을 통해 임의로 인하한 경우도 있었다 해요. 이러한 영주의 폭력적인(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행태는 오늘날의 정부들이 통화를 남발해 인플레이션(통화가치의 하락)을 일으켜 정부채무의 부담을 줄이는 행태, 이른바 ‘인플레이션 조세’ 추구가 이미 봉건시대에도 만연했음을 알게 해주죠. |
|
|
다시 말하지만 금화 같은 금속화폐는 시뇨리지를 창조하지 않습니다. 어떤 주화의 명목가치와 동일한 양의 금속을 투입해야 정상이니까요. 왕처럼 폭력을 기반으로 화폐주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금화의 소재가치를 인위적으로 명목가치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려 양자 간의 차이를 만듦으로써만이 시뇨리지를 도모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악화(惡化, good money)가 양화(良貨, bad money)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법칙, 들어보셨나요.(주1) 그레샴은 16세기 영국의 금융업자이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재무 고문이었죠(cf. 네이버 경제학사전). 그는 시중에 유통하는 금화의 상태를 관찰한 후 이 유명한 명언을 남겼는데요. 양화는 소재가치가 명목가치와 일치하는 금화를, 악화는 의도적으로든 자연적으로든 소재가치가 명목가치보다 낮아진 금화를 말합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악화만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고 양화는 축장하거나, 녹여서 실물금속으로 사용하거나, 외국으로 유출하는 경향이 생겼죠.
이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새로 주입되는 양화가 유통에 주입되자마자 사라진다면 통화량은 늘어날 수 없고, 이에 따라 거래는 줄고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물품화폐나 금속화폐를 사용하던 상품화폐 시대의 고질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품화폐의 시대는 사실상 1930년대 초반 대공황 속에서 주요 선진국들이 금본위제를 폐지되고 태환지폐를 불환지폐로 전환할 때까지 계속되었죠. 그 후로 아직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현대 법정화폐의 시뇨리지
기술 발전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화폐는 종이나 전자에 기록된 수치에 형태를 취하고 있어요. 이러한 현대화폐가 가진 속성에 따라 법정화폐, 증표화폐, 명목화폐, 신용화폐 등으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가 필요하지만, 여하튼 현대화폐가 현대 이전의 모든 상품화폐과 결정적으로 중요한 차이점은 그것이 진성 시뇨리지를 가진다는 사실이죠.
앞서 예를 들었던 5만 원 짜리 한국은행권이 그러하구요. 여러분의 은행계좌에 들어 있는 100만 원의 생산비는 컴퓨터 자판에 수치를 두드리는 수고비에 지나지 않죠. 이처럼 현대의 불환지폐와 전자수치로서의 예금화폐의 시뇨리지는 어마어마합니다. 중세에 탄생한 시뇨리지라는 단어가 현대에 와서 비로소 제 값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로 인해 생긴 부작용의 하나는 위조화폐 제작과 해킹 그리고 금융사기입니다. 이러한 부정행위의 유인이 현대화폐가 지닌 이토록 엄청난 크기의 시뇨리지에 있고, 이것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러한 부정행위의 존재를 이해할 만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역으로 왜 각국이 화폐의 위조와 동 행사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화폐법을 시행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또 다른 부작용은 이러한 통화의 발행권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투쟁이 더욱 치열해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투쟁이 어디서 벌어지고 있나요? 현대판 ‘맥켄나의 황금’ 골짜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은 이제 그런 투쟁도 있나 하며 의아한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투쟁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품은 사람은 없다시피 하죠.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나요?
현대 통화 시스템에서는 누가 이 막대한 시뇨리지를 어떤 방식으로 누리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시뇨리지를 누가 가져가야 마땅할까요?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바로 이 문제가 현행 통화 발행 시스템의 근본적인 모순 그리고 개혁의 당위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겁니다.
죄송합니다만 글이 너무 길어져 이 문제는 다음 호에서 다뤄야겠습니다. 궁금하시더라도 한 달 동안 기다리시면서 스스로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주1) 여담이지만 그레샴 법칙은 적어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정치판에 대한 비유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정치판에는 악화 정치인만 있고, 그래서 스스로 양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정치판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죠. 악화만 유통하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듯이 악화 정치인만 있는 정치판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
|
|
국내소식
이창용 IMF 국장,
차기 한은 총재 취임
신임 한국은행 총재로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이 선임되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그의 화폐통화 분야의 화려한 경력과 청와대와 대통령 당선자 측간의 사전교감 등 때문인지 인성보다는 전문지식과 정책 관련 질의로 메워져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뭐그러나 화민연의 입장에서 보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통화정책에 관한 입장일 것이다. 그래서 4월 21일에 나온 그의 총재 취임사가 더 관심을 끈다.
그의 취임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은행의 본령인 통화정책의 수행 어려움 요인이 많지만 최선을 다해 최적의 정책결정에 노력하겠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안목에서 보면 한국경제는 대전환의 기로에 서있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세계화 흐름의 후퇴가 향후 뉴노멀로 정착할 가능성이 크고, 신기술 확보 경쟁, 지정학적 경제 블록화 등에 따른 국가 간 갈등 심화, 정치경제안보 등 여러 이슈의 연계에 따른 국제정세의 복잡화가 예상된다. 이 도전에 잘못 대처하면 장기 저성장 국면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래서 경제정책의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간 주도의 창의적이고 질적 성장 도모, 수출과 공급망 다변화, 구조개혁 통한 자원 재배분이 중요하고 과거의 성공에 사로잡혀 새 말로 갈아타기를 주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와 동시에 구조개혁에 따른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문제와 가계와 정부 부채의 급증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한은이 통화정책의 테두리를 넘어 재정정책과 경제구조 개혁까지 신경 써야 한다. 우리 경제의 올바른 방향과 현안 과제의 해결책 제시에 한은이 싱크탱크로서 힘을 보태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은맨의 개인 전문성 강화와 공유, 외부와 소통 활성화, 중앙은행 디지털통화(CBDC)와 녹색금융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관심 증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은이 모두에게 지적 리더(intellectual lesader)가 되는 원팀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요구한다.
취임사만으로는 향후 이창용 총재가 이끌 한국은행의 행보를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취임사만 놓고 보면 신임 이창용 총재는 한은의 역할의 대폭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통화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기존의 본업을 넘어 거시경제적 문제 전반에 관한 나름의 해법은 물론 미래의 방향까지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은의 역할 확대가 기재부 등 여타 정부 기구들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도 있지만 싱크탱크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지키는 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박사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 학계 경력과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IMF 등 국제금융기관 실무 경력이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관변경제학자이자 국제기관 관료로서 그가 가진 화폐금융 관련 지식과 경험이 우리의 화폐 민주화라는 문제의식과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당장 그의 말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경제성장과 물가 간의 이론적인 상충관계를 전제로 물가를 잡기 위해 상당한 금리 인상이 예상되므로 서민들에게는 고통스런 시절이 다가올 것이 틀림없다. 그의 머릿속에도 역시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고리타분한 교리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
|
자동차등록에 채권매입을 강제하는 것에 대하여:
새 정부 법무장관후보자 부인의 위장전입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외자차를 구입하면서 자동차등록에 필요한 채권구입액이 서울은 차값의 20%, 경기도는 12%로 차이가 나서 그랬다고 합니다.
차량등록에 필요한 채권은 서울의 경우 도시철도채권을, 경기도는 지역개발채권을 구입하도록 법으로 강제됩니다. 서울도시철도채권은 7년만기, 금리는 1.05% 5년복리후 2년단리로 계산한 이자를 만기에 원금과 함께 지급한다는 서울특별시의 약속이고, 경기지역개발채권은 5년만기 1.05%의 복리로 계산한 원리금을 만기에 일시지급하는 채권입니다.
이것들은 채권시장에서 지방채로 분류되지만 자동차등록이나 지방정부에 물품이나 용역의 납품을 입찰할 때에 강요되는 일종의 강제 끼워팔기입니다.
만기에 원리금을 상환받지만 그 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낮아서 대부분의 채권매입자는 현장에서 4~6%의 할인이자를 부담하면서 금융기관에 즉시 팔아버립니다. 1억원짜리 고급차를 등록하면 서울은 2천만원, 경기도는 1200만원어치의 지방채를 사야하는데 채권매입확인서를 발급받는 비용이 서울은 120만원, 경기도는 48만원인가 봅니다. |
|
|
72만원의 부대비용 차이가 이와같은 위장전입을 감행케하는 원인이고, 지인찬스를 이용하여 잠시 주민등록만 옮겨서 몇십만원을 절약하는 편법을 쓰는 사람이 주변에 흔하다고 항변합니다.
소형차를 구입하는 사람에겐 채권매입의무를 면제하고, 고급차에 대하여는 고액의 추가부담을 시켜서 도시철도와 같은 교통인프라 건설 혹은 지역개발을 위한 기금조성을 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이 제도는 한마디로 정부와 할인매입 금융기관이 답합하여 시민에게 행하는 갑질이라고 하겠습니다.
국민주택채권도 마찬가지로 주택등기시에 강제되는, 5년 만기 1% 복리의 원리금을 만기에 일시지급하는 형태로 발행되어 대부분 금융기관에 손해보고 되팔아 버리는 채권인데 원래 한국주택은행이 발행하던 것을 1982년에 정부가 넘겨받아 국채로 격상된 것입니다.
지난 주말 통계로 국채는 990조원, 지방채는 28조원의 발행잔액인데 이중에 국민주택채는 81조원, 도시철도채와 지역개발채는 19조원입니다. 즉, 강제판매된 국채와 지방채 잔액이 100조원에 달하며 매달 신규발행물량과 만기상환물량이 큰 차이가 없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름의 존재이유로 그 역할을 하여온 이들 국민주택채권, 도시철도채권, 지역개발채권이지만 이제는 등기와 등록, 입찰과 같은 정부기관의 서비스에 강제로 끼워넣어 국민에게 불리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갑질행위라는 것을 인정하고 일반 국채와 지방채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즉, 더이상 이런 갑질채권의 발행은 중단하고 만기상환금은 정부와 지자체의 일반예산과 재정운용계획에 포함시켜 순차적으로 상환하면 5~7년이면 완전 정리됩니다.
국·공채 시장에 대한 국민일반의 관념과 접근성을 왜곡하는 갑질/강매체권을 정리하고 주식이나 펀드처럼 일반국민이 자신의 증권계좌를 통하여 직접 국공채시장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증권시장에 관한 전반적인 제도개선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한 선결과제는 국공채의 발행금리와 유통시장금리에 대한 정부와 한국은행의 확고한 관리목표제시와 관리의지의 표명이 중요합니다. |
|
|
아래의 글은 The Northeast-Midwest Institute에서 펴낸 <White Paper: Public Banking in the Northeast and Midwest States, 2019년 9월>라는 연구보고서의 일부를 편역한 것으로서,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호에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공공은행 사례로 알려진 노스다코타 주립은행에 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
|
|
노스다코타 주립은행(BND)
BND(The Bank of North Dakota)는 노스다코타 주정부의 예금에 대해 매우 낮은 이자율을 매겨서 BND의 수익을 늘리지 않는다. 실제로 BND는 주정부 예금에 대해 시장 평균금리를 지불한다. 예를 들어, 2010년에 주정부는 예금에 대한 이자지급으로 BND로부터 2,340만 달러(약 295억원)를 받았다. 그 해에 주정부가 BND에서 받은 이익배당금과 합치면, 예치된 달러당 수익률은 모든 자금을 민간은행에 예치했던 인근의 워싱턴 주보다 훨씬 좋다. 워싱턴주는 달러당 2.53센트를 받은 반면, 노스다코타주는 달러당 5.28센트를 받았다.
이익배당금의 최종지급액을 얼마로 할지에 대해서는 노스다코타주 산업위원회(BND의 최고의사결정기구), BND의 고위임원, 그리고 주정부의 입법부가 함께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주정부가 필요로 할 때는 이익배당금을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경제 호황기와 같은 시기에는 이 이익금을 BND의 자본을 늘리는데 재투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익배당금의 자본재투자는 BND가 대출활동을 더욱 확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BND의 영향력을 배가하고 있다.
BND는 주정부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단지 이익금을 배당해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BND는 지난 경제 침체기 동안에 주정부 재정의 안정적인 운영에 수시로 도움을 주었다. 닷컴 거품이 터진 후, BND는 주정부에 특별 배당금을 지급하여 거의 4천만 달러(약 500억 원)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대공황 기간에, BND는 어떤 지역은행도 문을 닫지 않고 지역금융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 그 역할을 다하였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 BND는 산업위원회가 정한 이자율로 주정부에 돈을 빌려줄 수도 있다.
BND는 또한 주정부 아래의 하위 기초지자체(municipal governments)의 공공투자를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 BND는 기초지자체가 저렴한 비용으로 자본을 구할 수 있도록 상담을 해주고 있다. BND는 설립 이후 현재까지 기초지자체들이 가졌던 225건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둘째, 기반시설 대출기금에서 (the Infrastructure Loan Fund)강조한 바와 같이, BND는 중요한 공공투자 중 일부에 대해서는 낮은 이자로 직접 투자를 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BND의 신탁부서는 기업신탁 서비스를 주정부 및 그 하위부문에 제공하고 있는데, 현재 52건에 대해 수탁업무를 맡고 있다.
BND의 2018년 재무자료를 통해 BND의 활동규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2018년에 BND는 1억 5,900만 달러(약 2천억 원)의 기록적인 연간이익을 냈다. 총 자산은 70억 달러(약 8조 8천억 원)가 넘었고, 예금은 47억 7,000만 달러(약 6조 원)였다. BND는 투자 포트폴리오에 거의 20억 달러(약 2조 5천억 원), 대출에 45억 8,400만 달러(약 5조 8천억 원)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대출 중에 분야별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14.5%는 농업, 44.5%는 비즈니스, 15.2%는 주택대출, 25.8%는 학자금대출로 구성되어 있다.
거시경제적인 측면에서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은행이 매우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제지표 영역에서 노스다코타주는 미국의 다른 비슷한 규모의 주에 비해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BND는 지역경제에 이익을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위기가 있었던 2007년에서 2009년 사이에도 BND의 기업대출은 35% 증가했다. 위험한 경제상황에서 대출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BND는 유사한 규모의 은행과 비교하여 미국 평균보다 낮은 대출손실을 보였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확대대출의 결과, 위기가 끝난 후 5년 동안 노스다코타의 1인당 대출금액은 미국 평균보다 175% 높았다. 같은 기간 동안 노스다코타의 은행들은 이웃하는 와이오밍(Wyoming),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몬태나(Montana)와 같은 유사한 경제규모를 가진 주의 은행들보다 높은 대출비율을 유지해왔다.
|
|
|
위의 차트는 BND가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유지함으로써 노스다코타 경제를 지원했다는 것을 더욱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노스다코타와 인접 주, 그리고 미국 전체에 대한 커뮤니티은행의 1인당 대출을 나타내는 위의 데이터에서 두 가지를 관찰할 수 있다. 첫째, 노스다코타주 커뮤니티은행의 1인당 대출은 이미 금융위기 이전의 모든 측정치보다 높았다.
둘째, 2009년에 경기침체가 있었지만 노스다코타주 커뮤니티은행은 다른 은행보다 훨씬 더 빠르고 더 많이 대출을 하였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인접 주와 미국 전체 평균으로 보자면 대출이 계속 감소했지만, 노스다코타주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증가했다. 분명히 BND는 금융위기와 그 여파 속에서도 노스다코타주의 금융투자를 지속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음호에 계속) |
|
|
숫자와 시스템이란 이름에 갖힌 자 들에게
송지현
(인제대 겸임교수, (사)시민정책공방 지역순환경제센터장)
우리는 본시 시간과 자유를 갖고 태어난 존재.
허나 면섬유 조각 하나에 그것을 뺏기고도, 아무도 그럴리 없다한다.
자유로운 선택이라 멋지게 포장된 우리 삶은, 그들이 차려놓은 숫자놀이 게임.
숫자를 위해 앞으로 나가다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뒹군다. 진정 인간으로 얻었던 최초의 그것들은 어디 있는가?
면조각 하나 위해 그렇게 살았던 삶은 자본주의 아포칼립스 아래 버려졌다.
이제 처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유를 찾아야 할 때.
절대 그들이 놓아주지 않을 행렬의 테이블에 오류되는 삶을 이젠 시작해야 한다.
원래 우린 어두운 자궁 속에 살다 새로운 빛을 본 자들 아닌가? 두려워 말고 원래 우리 것을 찾으러 가자. |
|
|
후원계좌 : 농협 301-0301-9029-51 화폐민주주의연대
문의사항 및 단체카톡방에 초대를 원하시면 연락주세요(010-3900-3740 김준강 사무국장)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