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독서라고 답한다. 대외용으로 무난한 답변이기도 하지만, 그때문만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스스로 완결성을 가진 행위라서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다. 누군가와 공유할 필요도 어떤 결과물을 내놔야 할 필요도 없다. 책을 고르고 읽고 가끔 감상을 쓰면 그만이다.
극내향형 인간은 십수년째 회사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본래 가진 사회성의 120%를 꺼내 소진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여가 활동마저 외부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책 읽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자극이 전혀 없다면 지속이 불가능하다. 첫째, 어떤 책을 읽을지 선택하기 어렵다. 보통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쭉 훑어보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보내주는 메일을 살펴본다. 단순하게 표지나 제목이 맘에 들 때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거나 MD의 추천이 인상적이어서 메모해놓을 때도 있다. 결국 취향대로 고르게 된다. 일종의 '자체 알고리즘'이 형성되어 낯선 도전은 성사되지 않는다. 세계는 확장은커녕 유지도 어렵고 축소된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은 매달 나오는 것이 아니고 표지가 예뻐 들었던 책 중에 사할 정도는 다시 내려놓게 되는 내용이었으니까. 결국 나의 성향을 잘 아는 누군가, 혹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누군가가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나에게 추천해주면 좋다. 취향이 비슷하지 않아도 된다. 나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그런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둘째, 책을 다 읽고 나서 남는 것이 없다. 나에게 독서가 꼭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읽은 책을 또 읽다가 중간쯤 아, 이거 읽지 않았나? 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기억이나 감상이 내 안에 새겨져 있어야 하는데, 혼자 읽고 나면 그대로 증발되어버리곤 한다. 때로는 정말 좋았던 책이었는데 이것이 왜, 어떻게, 얼만큼 좋은지 표현하지 못하고 혀끝 손끝에서만 맴돌다 흩어져버리는 것이 아쉽다. 또 가끔은,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흐지부지되는 것이다.
주변에서 독서모임을 추천받기도 하고 실제로 독서모임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보며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역시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방황과 고민 끝에 내 나름대로 찾아낸 방법이 독서 팟캐스트다.
책 관련 팟캐스트는 보통 방송 회차마다 한두권의 책을 중심적으로 다루게 되는데, 따라서 제목만 봐도 어떤 책을 읽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제목만으로는 끌리지 않았는데 방송을 듣다가 홀린듯 온라인 서점 결제를 하거나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끔 나 혼자 짝사랑하듯 읽고 좋아하던 책이 선정된 회차에서는 아껴두었다 듣기도 한다. 어느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는지, 어떤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타인의 정제된 언어로 듣다보면 한 번 더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작가님 본인이 출연했을 땐 더 즐거워진다. '그' 문장, '그' 장면, 나아가 책 자체를 쓰게 된 의도를 설명하고, 뒷 이야기를 풀어주면 꼭 책을 한 번 더 읽은 기분이 들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애초에 우리나라 출판 시장이 크지 않은 만큼 도서 팟캐스트도 거기서 거기라 추천의 의미가 없긴 하지만, 스스로의 독서 생활을 돌아보는 차원에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감히 말해보자면,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도서 팟캐스트의 기준이지 않을까. 팟캐스트를 알게 되고 빨간책방을 들었던 건지, 빨간책방을 듣기 위해 팟캐스를 알게된 것인지 그 전후 순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나에게 팟캐스트=빨간책방이던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가장 사랑했고 내 독서 생활에 큰 영향을 준 팟캐스트였다. 소개된 작품은 물론이고 공동 진행자인 김중혁 작가나 이다혜 기자의 저서들도 찾아읽게 되었다. 특히 나의 눈부신 친구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같은 경우 이미 주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었지만,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다. 빨간 책방이 아니었다면 인식하지 못했거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설국이나 데미안이 왜 고전인지, 총균쇠와 사피엔스를 왜 읽으면 좋은지 설명해주는 동시에, 13.67이나 강남의 탄생, 아날로그의 반격같은 책의 재미도 선사해주었다.
빨간책방을 듣다보니 다음 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관련 카테고리를 기웃거리다가 발견하게 된 게 책읽아웃이다. 첫화부터 이다혜 기자가 함께했고 최민석 작가가 출연한 회차를 들으면서 충성 청취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빨간책방이 진행자인 이동진 평론가의 요약과 해석 위주라면, 책읽아웃은 작가가 게스트로 출연해 직접 말하기 때문에 상반된 매력이 있었다. 특히 진행자인 김하나 작가가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주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오은 시인, 황정은 작가, 이혜민 크리에이터 삼인 체제인데 각 진행자별로 개성이 뚜렷하고 구성이 색달라 챙겨듣게 된다.
책읽아웃을 들으며 왠지 비슷한 결의 제목을 가진 팟캐스트가 눈에 띄었다. 책 이게 뭐라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굿라이프, 평균의 종말 같은 책들은 이들의 호들갑섞인 감상을 통해 호기심이 생겼고, 김민식 PD나 유시민 작가들이 청산유수로 이야기할 때 책 너머의 이야기들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진행자들과 제작진은 책을 읽고 구글 닥스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정리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다각도로 이슈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의견도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유투브가 급격하게 성장, 활성화되면서 팟캐스트들 역시 포맷 확장이나 변경을 고려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쉽지는 않았는지 많은 팟캐스트들이 막을 내렸다. 빨간책방은 온전히 마침표를 찍었고, 책 이게 뭐라고는 진행자 한 명이 남았지만 더 이상 업로드되고 있지 않다. 책읽아웃 또한 변화를 겪으며 과도기 중에 있었는데, 이 시기 찾게 된 것이 YG와 JYP의 책걸상이다. 처음엔 들을 건 정말 없고 이건 대체 뭐야 싶어 방황하다가 찔러본(!) 콘텐츠였는데, 주례사 비평을 거부하고 재미가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고 편안하게 표현하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고 김혼비 작가나 박혜진 평론가의 정돈된 의견이 좋기도 해서 계속 듣고 있다. 가끔 아저씨들의 고집스러운 태도나 멘트에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전신이나 커피 정도는 나오는 시대배경이어야 한다거나 400쪽이 넘어가면 읽기 힘들다거나 하는 반응에 괜히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유발 하라리에게 질투를 느낀다는 말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른 도서 팟캐스트들도 있겠지만, 내가 즐겨듣고 좋아했던 것은 이렇게 네개다. 처음엔 독서라는 취미의 확장 차원에서, 책을 고르기 전에 또는 책을 읽고 나서 감상을 확인하며 들었다면 이제는 팟캐스트 그 자체가 재미있는 콘텐츠가 된 것 같다. 가끔은 팟캐스트에서 들은 내용만으로 그 책을 읽은척 하기도 하고, 도서가 아닌 다른 분류 팟캐스트를 들으며 읽을 책들을 꼽아보기도 한다.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나아가 활용할지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책을 읽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면 가볍게 팟캐스트부터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듣다보면 그 책을 읽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