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뉴스레터
안녕하세요! 무임승차입니다.
도서, 영화, 전시, 음반, 공연, 방송, 맛집, 신제품 등 분야의 경계 없이
각자의 콘텐츠 경험, 배경 지식, 취향을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문화 자산에 무임승차합니다.
월 2회, 마트 쉬는 다음날 발송됩니다.
마트 가는 즐거움 이상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내...내가....코.....코로나라니...!]🤘

결국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2년 6개월이나 잘 버텼는데 진짜 어이없게 걸려버렸어.

8/7

목이 따끔따끔했다. 전 날 오랜만에 저녁 늦게까지 놀아서 그런가, 생리 시작해서 그런가 컨디션도 별로였다.
원래 비염도 있고 기관지도 약하고 겨울마다 한 번 씩 기침 감기가 지나가는데 그것처럼 목이 따끔따끔하고 기침도 나오고 코랑 목 사이에 가래가 가득 찬 느낌. 너무 조짐이 좋지 않았다.

8/8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병원에 갔다. 이건 코로나 각이다. 검사하면 양성 나오겠다 싶었는데 신속항원검사 음성이 나왔다. 엥.
선생님이 목구멍을 보시더니 편도가 조금 부었다고 3일치 약을 줄테니 먹어보고 낫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하셨다.

8/9

약을 먹으니 상태가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럭저럭 생활을 할 수 있었다.

8/10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뜨끈뜨끈하고 머리가 아팠다. 체온을 재보니 37.3도 아 이상하다. 음성이 나왔지만 믿을 수 없다. 자가검진키트로 다시 검사해봤다. 결과는 선명한 두 줄. 증상이 있어도 바로 양성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더니ㅠㅠ 와 3차 백신까지 꼬박꼬박 맞고 어디 가도 마스크 꼭 쓰고 손소독제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예방했는데!!!!! 억울한 마음으로 보건소에 가서 PCR검사를 했다. 결과는 하루 후에 나온다고 한다.

8/11

여지없이 코로나 확진. 16일까지 격리조치에 들어간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아침에 확진 문자를 받고 밥을 먹는데 후각 상실로 아무 맛도 나지가 않는다. 닭죽과 소고기미역죽을 시켜먹었는데 둘 다 같은 맛이 난다. 그나마 미각은 살아 있는지 싱거운 맛과 짠맛, 단맛은 느껴진다.

격리되어 있는동안 먹을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야하는데 다른 과보다는 이비인후과를 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 월요일에 갔던 이비인후과에 연락했다. 근데 아직 내가 음성으로 조회된다는 것이다. 오전에 보건소에서 전화가 와서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이제 나를 코로나 양성으로 등록하면 병원으로 자료가 넘어갈 것이라고 했는데 오후 4시가 되도록 그 과정이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다른 병원은 너무 멀고 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한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기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계속해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5시쯤 양성으로 처리되어 병원에 방문할 수 있었다. 의사는 그저께 내가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이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럼 뭐하냐고 지금 양성인데요.....나는 목 아파 죽겠는데 목은 많이 나아졌는데요 이러니까 진짜 얄미웠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 보다 더 괴로운 건 멈추지 않는 기침이다. 누워있어도 앉아있어도 어디에 기대있어도 물을 마셔도 계속 기침이 나온다. 기침이 나올 때마다 가래가 한바가지씩 나온다. 내 몸에 이렇게 많은 가래가 있을 수 있다니 가래로 가득찬 가래인간이 된 기분이다. 피티병을 잘라서 가래받이를 만들었다. 자다가도 기침가래가 쏟아져서 계속 화장실 왔다갔다 할 수 없으니 임시방편으로라도 만든 것이다.

근육통은 아닌데 골반과 무릎, 겨드랑이가 많이 아프다. 주로 림프선이 있는 쪽이 아픈 건가. 백신 맞았을 때도 아팠던 곳들이 똑같이 아팠다. 앉아있으면 골반이 아프고 누워있으면 기침이 쏟아져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편한 자세를 찾을 수가 없다.

8/12

점심을 먹는데 코가 조금 뚫렸다. 너무 행복하다. 어제까지는 맛이 똑같던 두 개의 죽이 오늘은 각각의 맛이 느껴진다.  코 뚫리니까 새로운 세계를 만난 느낌이다. 뭐 먹을 때도 중요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어도 공기냄새 같은게 밀려들어오는게 완전히 공간을 다르게 느끼게 해준다.

8/13

목이 아픈건 거의 사라졌는데 기침 가래가 사람을 너무 괴롭게 한다.
그리고 땀이 진짜 많이 난다. 온 몸이 끈적끈적하다. 에어콘을 틀면 코가 막히고 기침이 나서 오래 틀고 있을 수가 없다보니 더 그렇다.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하는 데도 자고 일어나면 옷이 땀에 젖어 있다.

8/14

밤새 계속 머리가 아파서 잠을 푹 잘 수 없었다.
결국 4시부터 계속 깨다 자다 12시까지 잠자리에 누워있었고, 꿈도 뒤숭숭했다.
코가 뚫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벽히 맛을 느낄 수 없고, 소화도 잘 되지않아 무언가를 먹고 싶은 욕구가 잘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약사가 반드시 식사 후 약을 먹으라고 했기 때문에 그나마 쉽게 넘길 수 있는 죽을 배달시켰다.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서 약을 먹을 수 있을 정도만 겨우 먹었다.

아직 이틀이나 더 자가격리 해야하고, 그 이후에 외출은 되지만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운동이나 학원은 이번 주까지는 쉬어야 할 것 같다. 나 스스로는 괜찮지만 내가 누구에게 코로나를 옮기게 되는 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에 비해 아주 심하게 앓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고 잘 회복해서 얼른 원래의 생활싸이클을 이어가고 싶다. 

🤘정유정 <완전한 행복>
: 여전한 흡입력에 빨려들어가고 싶지만....🤘

오늘은 내가 이 뉴스레터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한국 작가의 책을 리뷰해 보려 한다.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외국 추리소설에만 심각하게 편중되어 있는 나의 독서 습관에서 조금이라도 밸런스를 맞추고자 최근 한국소설의 베스트셀러들을 엿보다가 <종의 기원><7년의 밤>등의 장편소설로 한국 대중문학계의 스타 작가로 자리잡은 바 있는 정유정 작가의 신작 <완전한 행복>을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두껍지만 속도감과 스릴 덕분에 몰입도 높은 소설인 <7년의 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보통의 대중소설보다 약간 두꺼운 책의 두께에도 개의치 않고 곧바로 독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완전한 행복>은 크게 어린 여자아이 지유, 지유의 이모 재인, 그리고 지유의 새아빠라는 세 명의 등장인물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7년의 밤>에서 밤안개와 댐이라는 배경 장치가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서늘한 서스펜스의 맛을 살렸다면, 이번 <완전한 행복>은 지유의 할머니가 남긴 유산인 어느 시골의 작은 집과 그 집 근처의 늪지대 그리고 늪지대에 사는 오리들을 배경으로 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유의 친엄마 신유나는 전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어린 지유를 혼자 키우다가 러시아 여행에서 역시 이혼남이자 싱글대디인 지유의 새아빠를 만나 재혼한다. 유나는 딸 지유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하며 절대적인 복종을 하도록 지유를 억압하는데, 엄마인 유나가 절대적인 신이자 보호자일 수밖에 없는 지유의 시점에서 그러한 유나의 가스라이팅은 마치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서 그렇다는 듯이, 엄마 말을 따르지 않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듯이 자책하며 서술되어 더더욱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유의 새아빠는 이혼녀인 새 며느리와 그녀의 딸을 미워하는 자신의 어머니, 심각한 천식을 앓는 어린 아들 노아,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정을 붙이지 않는 유나 사이에서 진저리를 치고 지유는 그 속에서 더더욱 고립되어 간다. 혹시 책임감 없는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꼬집으려는 내용인가 싶을 즈음, 노아가 돌연사하면서 소설은 갑자기 스릴러로 장르를 전환한다. 

 앞서 어린 지유를 가스라이팅하는 유나의 모습과 얼핏 보면 행복한 재혼가정인 듯 보이지만 언제라도 금방 터질 듯한 폭탄들이 숨어 있는 지유네 새 가족이 마치 본격적으로 폭우와 태풍이 몰아치기 전에 윙윙거리며 부는 쎄한 바람 정도의 빌드업이었다면, 노아의 돌연사 장면을 기점으로 소설은 급격하게 속도에너지를 얻으며 내달린다. 이후 유나와 끔찍하게 사이가 안 좋은 유나의 언니이자 지유의 이모인 재인은 독자를 대신하여 이야기 속에서 그녀를 둘러싼 의문들을 추적하는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교묘하고 영리한 화법으로 부모를 지배할 줄 알았던 유나는 성인이 되어서는 자기가 선택한 남자가 자신에게 철저히 복종하도록 만든다. 재인은 대학교 시절부터 유나가 만나는 남자들은 관계가 끝난 이후 석연치 않은 사고사 등으로 전부 죽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유나의 전남편조차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이후 실종 상태임을 알게 된다. 재인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꼼짝 못하게 유나에게 지배되고 있는 지유를 구하려 하고, 유나의 새남편 역시 노아의 돌연사가 그녀의 짓임을 알게 되고 그녀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7년의 밤>과 다소 비슷한 전개를 보이는데, 우선 무대부터가 <7년의 밤>에서는 댐이었듯이 <완전한 행복>에서는 작중 중요한 배경이 되는 지유 할머니네 시골 집과 늪지대이다. 재인은 결박당해서 시골 집 옥상에 갇한 채, 그리고 유나의 새남편은 수면제를 먹고 유나에게 끌려가며 이미 그녀에게 살해당했던 그녀의 전 연인들, 전남편 그리고 유나와 재인의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맞을지도 모르는 장면을 몰입감 있게 연출한다. 이후 <7년의 밤>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오영태의 부인이 숨겨놓은 장치 덕분에 등장인물들이 목숨을 구했듯이 <완전한 행복>에서는 재인이 지유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하여 새남편을 늪지대 바닥에 묻어버리기 직전에 그를 구하고, 유나는 산속에서 자살한다.

 글로써 대충 정리해 보니 이야기의 전개뿐 아니라 ‘메인 빌런’ 및 주요 등장인물들까지, <7년의 밤>과 <완전한 행복>의 유사성이 더욱 잘 느껴지는 건 나의 과잉 해석일까? 겉으로는 완벽한 아빠이자 남편을 연기하지만 뒤에서는 아내와 딸을 극단적으로 통제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희열을 느끼는 전작의 오영태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뜻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극단적 자기애의 소유자이자 타인의 심리를 능숙하게 조종하여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그것을 채워주지 못하는 사람은 그게 연인이든 남편이든 혹은 아버지든 간에 가차없이 죽이는 유나는 성격도 행동양식도 그리고 그들의 악(惡)이 현실적이기보다는 극적으로 과장된 픽션임이 명백하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아이의 시점(<7년의 밤>: 현수의 아들 서원, <완전한 행복>: 유나의 딸 지유)과 그 아이들의 직접적인 부모는 아니지만 보호자가 되어 주는 존재이자 독자를 대신하는 관찰자의 시점(<7년의 밤>: 승환, <완전한 행복>: 재인)까지도 비슷하게 다가오는 건 작가의 전작을 내가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 창작물에 대한 판단과 감상은 수용자의 자유이니 나 역시도 이러한 유사점들을 지적할 자유가 있다고 믿으며, 책을 덮으며 느꼈던 기시감과 약간의 아쉬움을 공유해 본다. 다만 ‘좋은 유사점’을 들어 이 책을 변호하자면, 보통의 장편 대중소설보다 꽤나 두꺼움에도 불구하고 초반부의 배경 및 인물 설명 부분만 넘어가면 그 속도감과 몰입감이 대단하다는 것. 스릴러로 분류되는 소설이 아님에도 이만큼의 긴박하고 숨 쉴 틈 없는 서스펜스를 연출하는 건 역시 정유정 작가만이 가진 역량이라 할 것이다.

 기왕 리뷰를 하는 김에 마음에 걸렸던 하나만 더 논해 보고 싶다. 자존감과 자기애가 과하다 못해 남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는 나르시스트들은 분명 존재하며 유나가 주변인물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방식인 가스라이팅이 최근 흔하게 쓰이는 용어로 자리잡는 등, 유나의 캐릭터성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왜 그 악(惡)을 하필 남자를 유혹해서 이용하고 멋대로 휘두르는 ‘악녀 꽃뱀’의 이미지와 결부시켜 활용했는지가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가정 내 살해 등은 남자 쪽에서 저지르는 경우가 절대 다수임에도 그 역할을 여성에게 부여하는 바람에 결국 유나라는 메인 빌런이 그저 ‘남자 이용해 먹다 죽이는 악녀’ 수준으로 평면적인 이미지만 남았다는 찝찝함이 감돈다. 그런 악녀 꽃뱀이야말로 남자들이 욕망하면서도 사회적으로 단죄하기를 원하는 대표적인 여성상 아니던가. 

 또한, 고부갈등 사이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나 하며 입 꾹 다물고 회피하는 남편들이야말로 픽션이 아닌 한국사회에 실존하는 악임에도 마치 그들이 여자들 등쌀에 시달리는 피해자처럼 감정이입하게 묘사된 부분들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몰입을 방해했다. 작가가 그런 남자들의 나약함과 회피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어 비판적 반응을 이끌어낼 의도였다면 성공이지만, 창작자의 진짜 의도는 본인 말고는 알 수 없으니 독자로써는 있는 그대로 해석할 수밖에. 게다가 유나는 전남편이 ‘지유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며 거짓말해서 양육권을 박탈하고, 현남편이 지유를 달래기 위해 다가가자 ‘내 딸에게 손대지 마’라고 하는 등 남자들이 실제 하지 않은 성추행을 거짓으로 이용한다는 내용까지 있다. 실제로는 성범죄보다 빈도가 압도적으로 낮은 성범죄 무고죄가 요즘 남자들 사이에서 발작스위치마냥 핫한 토픽임을 생각해 보면, 친아빠와 양아빠한테까지 딸 성추행을 뒤집어씌운다는 내용은 빌런 유나의 ‘익녀 꽃뱀’으로 만들어주는 더더욱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요약하자면 창작물을 해석하고 받아들일 때 어쩔 수 없이 성별과 엮게 되는 나의 특성상, 빌런이 좀더 신선하고 독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처럼 젠더의식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몇몇 설정은 요즘 시대의 니즈와는 너무 다르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꼽은 4대 천왕(!)
도서 팟캐스트🤘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독서라고 답한다. 대외용으로 무난한 답변이기도 하지만, 그때문만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스스로 완결성을 가진 행위라서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다. 누군가와 공유할 필요도 어떤 결과물을 내놔야 할 필요도 없다. 책을 고르고 읽고 가끔 감상을 쓰면 그만이다. 

극내향형 인간은 십수년째 회사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본래 가진 사회성의 120%를 꺼내 소진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여가 활동마저 외부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책 읽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자극이 전혀 없다면 지속이 불가능하다. 첫째, 어떤 책을 읽을지 선택하기 어렵다. 보통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쭉 훑어보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보내주는 메일을 살펴본다. 단순하게 표지나 제목이 맘에 들 때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거나 MD의 추천이 인상적이어서 메모해놓을 때도 있다. 결국 취향대로 고르게 된다. 일종의 '자체 알고리즘'이 형성되어 낯선 도전은 성사되지 않는다. 세계는 확장은커녕 유지도 어렵고 축소된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은 매달 나오는 것이 아니고 표지가 예뻐 들었던 책 중에 사할 정도는 다시 내려놓게 되는 내용이었으니까. 결국 나의 성향을 잘 아는 누군가, 혹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누군가가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나에게 추천해주면 좋다. 취향이 비슷하지 않아도 된다. 나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그런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둘째, 책을 다 읽고 나서 남는 것이 없다. 나에게 독서가 꼭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읽은 책을 또 읽다가 중간쯤 아, 이거 읽지 않았나? 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기억이나 감상이 내 안에 새겨져 있어야 하는데, 혼자 읽고 나면 그대로 증발되어버리곤 한다. 때로는 정말 좋았던 책이었는데 이것이 왜, 어떻게, 얼만큼 좋은지 표현하지 못하고 혀끝 손끝에서만 맴돌다 흩어져버리는 것이 아쉽다. 또 가끔은,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흐지부지되는 것이다.

주변에서 독서모임을 추천받기도 하고 실제로 독서모임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보며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역시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방황과 고민 끝에 내 나름대로 찾아낸 방법이 독서 팟캐스트다.

책 관련 팟캐스트는 보통 방송 회차마다 한두권의 책을 중심적으로 다루게 되는데, 따라서 제목만 봐도 어떤 책을 읽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제목만으로는 끌리지 않았는데 방송을 듣다가 홀린듯 온라인 서점 결제를 하거나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끔 나 혼자 짝사랑하듯 읽고 좋아하던 책이 선정된 회차에서는 아껴두었다 듣기도 한다. 어느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는지, 어떤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타인의 정제된 언어로 듣다보면 한 번 더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작가님 본인이 출연했을 땐 더 즐거워진다. '그' 문장, '그' 장면, 나아가 책 자체를 쓰게 된 의도를 설명하고, 뒷 이야기를 풀어주면 꼭 책을 한 번 더 읽은 기분이 들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애초에 우리나라 출판 시장이 크지 않은 만큼 도서 팟캐스트도 거기서 거기라 추천의 의미가 없긴 하지만, 스스로의 독서 생활을 돌아보는 차원에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감히 말해보자면,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도서 팟캐스트의 기준이지 않을까. 팟캐스트를 알게 되고 빨간책방을 들었던 건지, 빨간책방을 듣기 위해 팟캐스를 알게된 것인지 그 전후 순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나에게 팟캐스트=빨간책방이던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가장 사랑했고 내 독서 생활에 큰 영향을 준 팟캐스트였다. 소개된 작품은 물론이고 공동 진행자인 김중혁 작가나 이다혜 기자의 저서들도 찾아읽게 되었다. 특히 나의 눈부신 친구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같은 경우 이미 주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었지만,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다. 빨간 책방이 아니었다면 인식하지 못했거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설국이나 데미안이 왜 고전인지, 총균쇠와 사피엔스를 왜 읽으면 좋은지 설명해주는 동시에, 13.67이나 강남의 탄생, 아날로그의 반격같은 책의 재미도 선사해주었다.

빨간책방을 듣다보니 다음 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관련 카테고리를 기웃거리다가 발견하게 된 게 책읽아웃이다. 첫화부터 이다혜 기자가 함께했고 최민석 작가가 출연한 회차를 들으면서 충성 청취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빨간책방이 진행자인 이동진 평론가의 요약과 해석 위주라면, 책읽아웃은 작가가 게스트로 출연해 직접 말하기 때문에 상반된 매력이 있었다. 특히 진행자인 김하나 작가가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주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오은 시인, 황정은 작가, 이혜민 크리에이터 삼인 체제인데 각 진행자별로 개성이 뚜렷하고 구성이 색달라 챙겨듣게 된다.

책읽아웃을 들으며 왠지 비슷한 결의 제목을 가진 팟캐스트가 눈에 띄었다. 책 이게 뭐라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굿라이프, 평균의 종말 같은 책들은 이들의 호들갑섞인 감상을 통해 호기심이 생겼고, 김민식 PD나 유시민 작가들이 청산유수로 이야기할 때 책 너머의 이야기들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진행자들과 제작진은 책을 읽고 구글 닥스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정리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다각도로 이슈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의견도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유투브가 급격하게 성장, 활성화되면서 팟캐스트들 역시 포맷 확장이나 변경을 고려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쉽지는 않았는지 많은 팟캐스트들이 막을 내렸다. 빨간책방은 온전히 마침표를 찍었고, 책 이게 뭐라고는 진행자 한 명이 남았지만 더 이상 업로드되고 있지 않다. 책읽아웃 또한 변화를 겪으며 과도기 중에 있었는데, 이 시기 찾게 된 것이 YG와 JYP의 책걸상이다. 처음엔 들을 건 정말 없고 이건 대체 뭐야 싶어 방황하다가 찔러본(!) 콘텐츠였는데, 주례사 비평을 거부하고 재미가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고 편안하게 표현하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고 김혼비 작가나 박혜진 평론가의 정돈된 의견이 좋기도 해서 계속 듣고 있다. 가끔 아저씨들의 고집스러운 태도나 멘트에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전신이나 커피 정도는 나오는 시대배경이어야 한다거나 400쪽이 넘어가면 읽기 힘들다거나 하는 반응에 괜히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유발 하라리에게 질투를 느낀다는 말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른 도서 팟캐스트들도 있겠지만, 내가 즐겨듣고 좋아했던 것은 이렇게 네개다. 처음엔 독서라는 취미의 확장 차원에서, 책을 고르기 전에 또는 책을 읽고 나서 감상을 확인하며 들었다면 이제는 팟캐스트 그 자체가 재미있는 콘텐츠가 된 것 같다. 가끔은 팟캐스트에서 들은 내용만으로 그 책을 읽은척 하기도 하고, 도서가 아닌 다른 분류 팟캐스트를 들으며 읽을 책들을 꼽아보기도 한다.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나아가 활용할지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책을 읽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면 가볍게 팟캐스트부터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듣다보면 그 책을 읽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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