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그럼 기획위원회는 어떻게 꾸리세요? 특히 실무자들을 꼭 한 명 이상 섭외하시던데 개별 편집자들이 각자 일하는 방식이나 하고 있는 생각을 보여 주면서 일하지는 않잖아요. 일을 잘한다고 딱히 티가 나는 것도 아닐 테고, 출판사에서 우리 회사에 있는 이 편집자 일 정말 잘한다고 알리지도 않고.
연·슬 일단 출판 관련 기사를 항상 주시하고 있습니다. 출판 관련 이슈, 요즘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책이 많이 거론되는지를 수시로 검색하고, 그렇게 화두를 찾은 다음에 그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아요. 그 사람에게서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사람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거죠. 당연히 기사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아니까 주변에 자문을 많이 구해요. ‘올해 에디터스쿨 기획위원회를 꾸려야 하는데 어느 분이 적합할까요?’ 하고요. 그러면 한 분이라도 누군가를 추천해 주세요. 그럼 그분께 연락드려서 그해 기획 방향을 말씀드리고 참여 제안을 드리면서 또 다른 분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요. 그렇게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모으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분들이 꽤 많아졌고, 매년 강연자로 섭외했던 분들 또는 섭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 섭외하지 못했던 분들 리스트를 정리해 뒀어요. 차곡차곡. 그럼 어느 해엔가는 그 리스트 속 어떤 분께 딱 맞는 주제가 선정되거든요. 그럼 기획회의에서 그분 이야기를 꺼내 보죠. 다른 기획위원님들도 올해는 그분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게 좋겠다 하고 의견을 모아 주시면, 정말 정성들여 메일을 보냅니다.
맥 저 그 메일 받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잘 쓰셔서요.
연 그게 제 스트레스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한데, 꽤 긴 시간을 들여서 긴 메일을 쓰는 편이에요. 그 메일이 그분과의 첫 만남이잖아요. 다행히도 출판도시문화재단과 파주 에디터스쿨, 이 행사의 취지를 알고 계시는 분이면 얘기가 쉽게 통하지만 그게 아닌 경우에는 왜 올해 당신의 이야기가 의미 있는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니 당연히 공을 많이 들여야죠.
맥 섭외 원칙이나 섭외한 분들, 아쉽게 섭외하지 못한 분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연 작년·재작년과 겹치지 않게, 다양한 강연자를 섭외하자는 게 나름의 원칙이라면 원칙이에요. 인상 깊었던 강연자는 지금 다산북스에서 일하고 계신 성기병 편집자님이요. 성기병 편집자님 강연이 저에게는 조금 충격이었어요. 그전까지의 강연은 대부분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형태였든요. 뭔가를 잘하거나 이뤄 낸 선배 출판인이 실패 경험과 성공 경험을 공유하고 이렇게 했더니 잘됐다, 좋더라 하는 경험을 나눠 주는 형태가 많았던 거죠. 반면 성기병 편집자님은 거의 처음으로 좌절과 고민을 공유하셨어요. 나는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이런 요인 때문에 이런 것들이 힘들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신 거죠.
그때 ‘아, 맞다. 파주 에디터스쿨에는 이런 자리가 필요하지. 여기 아니면 편집자들이 이런 얘기를 대체 어디서 할 수 있지?’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 강연을 계기로 제가 많이 느꼈고, 이런 이야기를 좀 더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졌고, 그런 이야기를 꾸준히 해야 파주 에디터스쿨이 편집자들, 출판인들 마음을 좀 더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작년에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시도했어요. 강연 형태가 아니라 간담회·집담회 형태로 자기 이야기를 더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요.
맥 그렇구나. 저도 그런 맥락에서 좋았던 강연이 있어요. 2021년 읻다 김준섭 편집자님 강연이랑 2023년 헬북 양선화 편집자님 강연이요.
연·슬 맞아요. 두 분도 정말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죠.
맥 저는 편집자뿐 아니라 출판일을 하시는 분들 중에 일 잘하는 동료, 멋진 선배가 정말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하는 법이나 방식은 비밀이 아니잖아요? 비밀스럽게(?) 일하시는 분들도 잘 못 봤고요. 근데 출판사들끼리 교류하거나 같은 일 하는 다른 직장 동료 만날 자리가 거의 없으니까 비밀도 아닌 이야기들을 듣거나 나눌 자리가 너무 없는 거예요. 분명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고, 먼저 고민한 사람 중에 나보다 나은 사람은 엄청 많을 텐데! 물어보면 다 알려 줄 텐데! 그리고 사람들이 대체로 나서질 않잖아요. ‘이게 무슨 가르치고 배워야 할 거냐, 대단한 지식도 아닌 걸’ 하면서 말을 아끼고 묵묵히 일하고. 이런 면도 물론 멋있지만, 어찌됐든 그래서 더 뵙기 어려운 분들을 에디터스쿨이 차근차근 모셔와 주셔서 좋았어요.
연·슬 작년에 강연하신 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특히 많았어요. 누가 봐도 멋지고 대단한 분들인데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하시면서 조심스럽게 강연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희가 감동받아요.
맥 동료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해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내가 그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지? 하는 마음이 들면 저도 조심스러울 거 같아요.
선생님들 1년 달력이 궁금해요. 올해 계획도 좋고, 매년 반복되는 행사들을 작년 기준으로 알려주셔도 좋아요. 1월부터 12월까지 어떤 일들을 꾸리고 계세요?
연·슬 정기 행사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건 많이들 아시는 어린이책잔치와 파주북소리예요. 어린이책잔치는 5월, 파주북소리는 9월에서 10월 사이에 열리고, 어린이책잔치에는 국고와 파주시비, 파주북소리에는 파주시비가 지원돼요. 올해 사업은 아직 계획 중이라(2023년 12월 기준) 작년·재작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출판도시 인문학당 프로그램은 연중 상시 운영해요. 파주 에디터스쿨은 매년 사업계획에 따라 개최되는 날짜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는데, 여름·가을에 걸쳐 1학기·2학기를 나눠 운영한 해도 있고, 학기를 나누지 않고 9월 전후에 쭉 진행한 해도 있어요. 작년에 처음 기획한 행사도 있어요. 북시티 국제 그림책 어워드인데요, 주목할 만한 일러스트 작품이나 그림책을 선정해서 시상하고 책을 지혜의숲에 비치해서 많은 분들께 세계 곳곳에서 이런 그림책이 나오고 있다는 걸 알리는 사업이에요. 출판도시 인문학당·파주 에디터스쿨·북시티 국제 그림책 어워드는 모두 국고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사업이고요.
맥 본 적 있어요! 출판도시 인문학당이 주말에 지혜의숲에서 강연 형태로 진행하는 사업이죠?
연·슬 크게 두 방향이에요. 출판도시문화재단 내에서 강연이나 워크숍, 전시를 기획하고 출판도시 내 지혜의숲에서 진행하는 행사도 있고요, 전국 작은 책방들로부터 ‘이런 행사를 해 보고 싶다’ ‘이런 저자를 모시고 강연을 해 보고 싶다’ 같은 형태의 기획안을 받으면, 저희가 검토해서 일정 강연료 또는 워크숍 운영비를 지원해 드리는 식으로도 운영했어요.
맥 지원받은 국고를 연결해 주는 형태로 운영했다는 말씀이시죠? 매년 몇 군데 정도의 서점과 협업하셨어요?
연·슬 적게는 25곳, 많게는 50곳 정도요. 강좌는 30개에서 150개 정도까지 지원해요.
맥 행사 기획은 서점에서 하고?
연·슬 네. 문체부 산하 진흥원을 통해 따낸 국고를 전국의 작은 서점들과 나누는 거죠.
맥 좋은 취지인 거 같아요. 어쨌든 작은 서점에서 일일이 국고를 따내기는 어려울 텐데, 재단에서 복잡한 일들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예산은 여기저기로 나눠서 공유하는 거니까. 출판도시 인문학당 사업 통해서 전국에 있는 서점들과도 인연을 많이 맺으셨어요?
연·슬 그럼요. 멋진 서점들이 정말 많죠. 그리고 경기 스토리작가 창작소(전 경기스토리작가하우스)를 1년에 두 기수씩 운영하고 있어요. 매해 3월쯤 경기도에 거주하시는 시나리오 작가님 열 분을 모시고 지지향이라는 공간을 창작공간으로 제공하면서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요, 8월이나 9월에 다음 기수 작가님들을 모셔서 동일하게 운영해요. 이건 경기도비 지원을 받는 사업이에요.
맥 사업이 진짜 많네요. 작년에 두 선생님을 보면서 느낀 건 두 선생님이 굉장히 조율할 일이 많고 늘 바빠 보이셨는데 불행해 보인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김먼지 편집자 말대로 거의 12구 짜리 멀티탭, 책갈피처럼 일하고 계신데 늘 즐거워 보였어요. 어떻게 늘 그래요?
슬 저희가,, 단순해요.
연 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되게 행복한 거 같아요.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저희 일 중에 대부분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거든요. 하다 보면 당연히 스트레스가 생기는데 신기한 게 또 그 사람들 덕에 그게 다 치유돼요. 매해 에디터스쿨 주제가 정해지면, 그해 주제를 공유하면서 섭외 메일을 드리는 일이 시작되죠. 그럼 왜 그런 주제를 잡았냐, 왜 꼭 내가 강연을 해야 하냐 같은 회신을 많이들 하시는데, 그 메일에 답하고 전화나 메시지로 소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보내도 전부 다른 회신을 주시는데 그에 따라 또 다시 메일을 보내고 보내고 하는 이 과정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주제로 할 수 있는 더 깊은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도 하고, 그분이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을 제가 깨닫게 되기도 하고. 이런 걸 강연자들을 섭외하고 강연 자료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느끼다 보니까 결국에는 재밌는 거죠. 그리고 몇 번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이듬해에 똑같은 일을 시작할 때는 더 이상 부담되지도 않더라고요. 결국 또 재밌을 거니까요.
슬 전 일을 찾을 때, 배울 게 있는 일인지 아닌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배울 게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좋아도 배울 게 없으면 그 일에는 흥미가 점차 떨어지는 것 같고,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거기에 배울 게 있으면 그 일을 오래 좋아하면서 할 수 있다고 느껴요. 좋아하면 힘들어도 즐겁고요. 여기서 일하면서는 배우는 점도 많고, 힘들다가도 강연자님들 덕에 감동받을 때가 있어요. 예상치 못하게 울림이 큰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하고, 하다못해 마음에 들어오는 단어 하나라도 얻어 가게 되고. 그런 게 정말 좋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