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오지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까지,
나는 내 이름의 뜻이 아래와 같다고 믿었다.
지혜로울 智
윤택할 潤
지혜롭고 윤택하라.
윤택하다는 것은 ‘부자가 되어 윤택하게 산다’라는 의미였다. 나는 이 뜻이 좋았다. 특히 ‘윤택하게’ 산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이름이 비빌 언덕처럼 느껴졌다. 커서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이름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다. 아빠는 늘 의기양양하게 ‘윤택할 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몹시 든든했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에 이름의 의미에 대해 글을 쓸 일이 있었다. 그 수업이 끝나고 국어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학생들의 과제와 학생부에 적힌 한자 이름을 굳이 대조한 그가 내게 말했다.
- 지윤아, 너 ‘윤택할 윤’아니야
- 네? 저 ‘윤택할 윤’맞아요. 아빠가 자주 말씀하셨어요
- 아닌데. 그럼 삼수변이 들어가야해.
- 그럼 전 뭔데요?
- 너는 ‘솔직할 윤’이야.
그 날 저녁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저녁 식사 중에 나는 아빠에게 따져 물었다.
- 어떻게 한자 의미를 헷갈리고 지을 수 있죠?
그러자, 아빠는 절대 아니라고 우겼다. 분명히 ‘윤택하다’는 의미가 있다고. 자기가 실수했을리 없다고. 그래서 나는 옥편을 찾아봤다. ‘솔직할 윤’ 한자에는 8가지 의미가 있었다. 1번째 의미는 ‘솔직함. 믿음’이란 뜻이었고, 8번째 의미가 ‘윤택하다’라는 뜻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왜이리 솔직한지 이해가 되었다. 이름 때문이었구나. 그리고 내가 윤택하게 살거라는 비빌 언덕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없었다. 솔직한 건, 별로 쓸 데가 없지 않아요?
그 후, 솔직함 때문에 사람을 얻기도 하고, 솔직함 때문에 사람과 멀어지기도 했다. 솔직함 덕분에 책도 냈지만, 솔직함 때분에 긁어 부스럼 난 일도 많았다. 워낙 내 이름의 의미를 믿으며 살아서 그런지, 지금도 이름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때때로 한다. 최근에 북토크에서도 '이렇게 솔직하게 글을 쓰면 걱정되는 부분은 없나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
조카가 다음 달이면 세상에 나온다. 임신한 언니의 배가 뾰족하다. 추석에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 내내, 가족들은 조카 이름의 아이데이션을 했다. 지오, 태서, 태리. 여러가지 이름이 오갔다.
나는 이 남자 아이의 이름이 중성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같기도 하고 남성같기도 한 이름이면 좋겠다. 어느 쪽으로든 노골적이지 않고,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든 어울릴듯 어울리지 않는 그런 이름이면 좋겠다. 나의 이름처럼 비빌 언덕이 되지도 잃어버릴 언덕이 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별의 별 이름이 다 나오다가, ‘초록’이라는 이름도 나왔다. 누구나 초록색을 보면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좋은 이름같아. 애가 빨강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도 있겠지. 이름이 초록이어도 다른 색을 좋아할 수 있어. 그건 상관 없어. 나는 열변을 토했다.
"너가 그렇게 글을 쓴다고, 초록이라고 짓는다는 건 아니야.”
언니는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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