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작고 기특한 불행’이 나왔을 때, ‘오마이뉴스’에 한 서평이 올라왔다.



‘그녀는 사소한 단어로 시작해 특유한 의미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물레 위에 올려놓은 흙덩이가 노련한 도공의 손을 거쳐 수려한 그릇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글을 지독하게 잘 쓰는 사람이 쓴 서평이었다. 특히 이 문장을 읽고 우쭐해졌다. 내가 ‘특유의 의미’를 ‘구축’하는 ‘도공’같은 사람이라니. 멋진 사람이잖아. 혹독한 평론가의 문체로 비판이 아닌 칭찬만 건네는 글이 신기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사람은 ‘춤추는 바람’이라는 필명을 쓴다. 필명의 의미를 아직 물어보지는 못했다.



‘춤추는 바람’은 1년 전 여름, 나를 자신의 글쓰기 모임에 초대했다. 그리고 이 번 초여름에는 자신이 쓴 에세이의  추천사를 부탁해왔다. 늦여름이 되고, ‘춤추는 바람’의 글쓰기 모임에 다시 한 번 가게 됐다. 1년만의 만남이다.



글쓰기는 외로운 일이다. 마감을 앞에 둘 때는 사람들과 더없이 멀어지는 일이다. 글에서 아무리 친절하고 따뜻한 척 해봐야, 현실에서는 사람들과 약속 하나 잡지 못하는 정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다. ‘불특정 다수에게 쓰는 편지’에 답장을 준 사람은 꼭 붙잡아야한다.



‘춤추는 바람’의 글쓰기 모임에 가니, 일본 영화에 나올 법한 귀여운 작가이 앉아있다. ‘활쏘기가 취미인 부장님’,  ‘똑부러지는 대학생’, ‘웃기고 싶어하는 직장인’이 웃으면서 나를 바라 본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에서 마스다 미리는 갑자기 ‘버섯 특강’을 들으러 간다. 버섯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자신이 왜 버섯 특강에 가는지 스스로 대답할 수도 없지만, 그냥 간다. 그리고 버섯들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나도 그날 버섯들을 만났다. ‘춤추는 바람’과 버섯들. 글쓰기를 순수하게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 모임을 2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순수하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춤추는 바람’의 에세이 제목은 <쓰면서 사랑하게 된 날들>이다.



‘글을 쓸수록 슬픔은 슬픔을 명료해지고 기쁨은 기쁨으로 환해졌다.

무심해 보이는 삶의 표정을 섬세하게 구별하고 이름 붙여 줄 수 있었다.’



<쓰면서 사랑하게 된 날들>의 이 문장을 읽고, 결국 나도 ‘글쓰기’로 돌아온다.



글쓰기 모임의 유일한 대학생 재아씨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이런 답을 했다. “자꾸 미래를 생각하게 되어서, 글쓰기를 계속 하려고 해요. 글을 쓰면서 현실을 붙잡으려고요” (내 기억력때문에 조금 왜곡 되었을 수 있다) 우리는 이 대답을 듣고 모두 박수를 쳤다. 그래, 그래서 글을 쓰는 거지. ‘글쓰기’라는 종교가 있다면, 그 날의 모습을 닮았을 것 같다. 무심하다 못해, 자칫 표정이 없어지려던 요즘이었다. 모처럼 여러가지 표정을 지은 날이었다.



아래는, '춤추는 바람'님의 <쓰면서 사랑하게 된 날들>에 쓴 추천사 중 일부다.



‘쓴다는 것은 기도의 형식이다’라고 카프카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220여 쪽의 따뜻한 기도문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엄마의 뒷모습을 닮았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방 불을 꺼 주던 엄마의 뒷모습. 글을 다 읽고 다니, 오랜만에 단잠을 잘 것만 같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인연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는 느낌은 참 좋아요. '춤추는 바람'님의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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