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을 먹자!

십 년 전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경험했던 많은 것들이 지금의 저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다양한 관점처럼 커다란 부분부터 사소하게는 입맛까지도 영향을 많이 받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중국에서 발견한 제 입맛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중국 음식 좋아하시나요? 이제는 옛날처럼 중국 음식이라하면 정작 중국에는 없는 형태의 짜장면과 짬뽕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마라탕, 꿔바로우처럼 실제 중국인들도 즐겨 먹는 음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꾼 것들을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년 전이지만 그때 제가 중국에서 갔던 ‘하이디라오’ 라는 훠궈 가게는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중국이라면 어딘가 지저분하고 불친절 할 거라 생각했는데, ‘하이디라오’는 그 편견을 바사삭 깨뜨렸습니다. 머리가 긴 손님에게 제공되는 머리끈, 휴대폰에 음식물이 튈지 몰라 준비해준 작은 지퍼백, 대기를 해야 하는 손님에게는 각 자리마다 재미있는 보드게임이 준비되어 있고 무료로 네일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까지.

이렇게까지 서비스 정신이 좋을 수 있다니, 2013년 중국에서 말이예요. 세상을 좁게만 보고 내 안에서 만든 선입견이 빚어낸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서비스에 이렇게 놀랐다면 아직 시작도 하기 전입니다. 그 다음은 ‘맛’이었어요. 유독 향신료를 좋아하고, 이국적인 요리에 관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처음 먹어 보는 것임에도 어쩜 입에 착 달라 붙어 계속해서 생각이 나던지요. 특히 ‘토마토탕’과 ‘버섯탕’ 그리고 ‘쏸라-면’은 지금도 여전히 중국을 떠올리면 파블로브의 개처럼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맛들입니다.

또 어느 날에는 중국에 살고 계신 친척어른과 동네주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맛집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제 생각대로 아주 허름한 노포에 메뉴판에는 당연히 음식 사진이 없고 중국어만 가득했습니다. 알고 있는 한자의 모양에 뜻을 떠올려 가봤자 ‘소, 닭’ 수준에 그쳤고 그마저도 시켜보니 제가 생각했던 요리의 형태는 아니었지요. 그날 그 곳에서 처음으로 ‘마라탕’을 접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마라-’라는 이름을 붙여 마라떡볶이, 마라우육탕면, 마라맛 과자, 온통 마라가 유행하는데 제가 처음 먹어본 마라탕은 지금 한국에서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처음 마라탕이 나왔을 때 아주 크고 깊은 국수그릇에 갈색 또는 검붉은 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진한 고추기름이 어디까지 있는지도 모르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 안의 내용물로는 선지도 있고, 숙주도 있고, 두부피, 목이버섯, 연근 등 수십 가지의 야채들이 있었고요. 한 입 살짝 입에 댔을 때 얼얼함과 ‘화-!’한 그 느낌은 “중국인들은 왜 이런걸 먹지!” 했습니다. 그래 놓고는 한 달, 두 달 지날 때마다 그 마라탕이 계속 생각나는 거 아니겠어요? 누군가 나를 속이는 것처럼 좋지 않은데 자꾸 좋아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보다 중국의 ‘찐’마라탕 맛을 좋아하고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이디라오’가 서울에만 있었을 때에는 일 년에 몇 번 가지 않는 서울이지만 갈 때마다 하이디라오에 꼭 갔습니다. 낯설어하는 친구들에게 토마토탕을 마치 내 것처럼 소개하고 그들이 나처럼 중독되어 갈 때마다 뿌듯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장거리 연애처럼 서울에 있는 하이디라오를 그리워했는데, 이제 하이디라오는 부산에도 생겨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이 되었지요. 가격이 비싸 자주 가진 못 해도 마음먹고 그곳을 찾으면 저는 십년 전 중국에 가 있는 기분을 느낍니다. 이번 주, 십년 전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와야겠습니다. 하이디라오, 좋아하시는 독자님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