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목표량은 유지하되, 산업계의 부담을 줄이고 대체기술과 국제협력을 활용하는 것. 이번 정부가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의 골자입니다.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발표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르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여전히 유지됐습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탄소배출을 40% 감축해야 하는 것이죠.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치는 줄었고, 대신 원자력발전·신재생에너지 활용과 탄소포집·저장·활용(CCUS)기술, 국제협력등을 통한 감축목표가 늘었습니다.

이 감축목표량 대부분은 2027년 이후인 차기정부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탄녹위의 연도별 계획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남은 임기동안 전체 감축량의 약 25% 가량만을 감축하고, 남은 75%는 차기정부가 3년간 감축해야 할 몫으로 미뤘습니다. 책임 전가라는 비판과 함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환경단체들은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 아니냐며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기술발전에 따라 더 큰 폭의 감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기술발전 가능성은 확신할 수 없기에 불확실한데다 현행계획은 초기에 더 많은 양을 감축해야 한다는 IPCC(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권고에도 맞지 않죠. 무엇보다 차기정부로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전가한만큼, 결국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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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목표감축량의 상당량을 다음정부에 떠넘긴 건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제감축’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이 그 믿는 구석이었죠. 과연 이 대안들은 믿을만할까요. 경향신문의 ‘꼬꼬탄’ 시리즈는 이 질문에 부정의 답을 내놓습니다. 실효성이 낮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국제감축을 ‘불확실’ 그 자체라고 지적합니다. 국제감축은 개발도상국의 쓰레기매립장에서 메탄을 포집하는 등의 방식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돕고 그렇게 감축된 실적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나눠 인정받는 제도인데, 감축실적을 어떤 비율로 나눌지 국제기준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돈과 기술을 투자해 5대5는커녕 더 적은 감축비를 적용받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에 “확실히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산업부문을 두고 국제감축을 선택한 건, 불확실한 책임만 떠안은 것”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옵니다.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배출권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불확실성으로 작용합니다. 국제감축을 하려면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배출권을 구매해야하는데, 개발도상국도 온실가스를 감축해야하는 건 매한가지이기에, 우리나라에 배출권을 판매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안타깝게도 이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는 자국의 감축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배출권을 발행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고, 실제로 재작년엔 배출권 발행을 잠정 중단했기 때문이죠.

CCU(탄소 포집·활용)와 CCS(탄소 포집·저장)로 나뉘는 CCUS도, 온실가스 감축의 획기적 대안으로 불리기엔 불확실성이 큽니다.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는 CCU기술은 엄밀히 따지면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현재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탄산음료나 드라이아이스를 만드는데 쓰이는데, 이 방식으론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나가는 시점을 조금 늦출 뿐입니다. 이산화탄소로 광물이나 화학제품을 만든다면 온실가스가 감축되겠지만, 아직 그런 기술은 상용화돼있지 않죠.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땅이나 바다에 묻는 CCS기술은 그럴싸해 보입니다만, 한 보고서는 “CCS기술로 포집되는 이산화탄소보다 포집되지 못하고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훨씬 많다”고 말합니다. CCS기술이 온실가스 감축의 책임을 해소해주리라는 생각은 과도한 낙관이라는 의미죠. 온실가스를 감축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국제감축과 CCUS라는 확실치 않은 대안을 앞세운 채 ‘편법’을 쓰고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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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감축과 CCUS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 부문이 책임져야 할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감소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러한 기본계획을 반길까요? 당장 한숨 돌렸다는 업계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많습니다. 국제 사회가 추진하는 탄소중립과 배치되는 이번 계획안이 되레 기업을 방해한다는 건데요.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부과하는 탄소국경세(CBAM), 수입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국제적 페널티가 대표적입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게 산업 부문인 만큼, 기업들이 온실 가스를 대폭 감축하는 것이 탄소중립에 가장 효과적일 텐데요. 발표된 기본 계획을 두고 정부가 산업계 눈치를 보느라 탄소 감축 목표치를 낮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활용 비중이 낮은 한국 산업계에 CBAM, IRS는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서 언급한 CBAM은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할 때 ‘간접 배출량’도 함께 계산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독일 폭스바겐에 한국이 자동차용 강판을 수출할 경우, 이 강판을 만들 때 사용한 전력이 화력발전인지, 재생에너지인지 따집니다. 이렇게 되면 2032년에 한국 철강업계는 유럽에 한화로 약 7200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계산도 나옵니다.

감축 목표치를 낮춘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너머에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번 기본계획이 기업에 혼란을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는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세계적 흐름에 맞게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탄소를 감축해야 합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내 산업계 탄소 감축량을 감소한 이번 기본계획은 기업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습니다. 2018년, 정부와 기업은 국제 흐름에 따라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습니다. 포스코는 2040년 50% 감축을 목표로 ‘탄소중립 담당 상무’직을 신설하고 이후 탄소를 덜 배출하는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SK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기업도 탄소 감축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정부의 메시지가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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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온실가스 감축량을 소극적으로 설정한 것, 그리고 산업계에 특혜를 주는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은 탄소중립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입니다. 탄중위를 구성하는 민간위원에 기후변화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농민 같은 이해당사자들은 빠지고, 산업계 관계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죠.

‘탄소중립기본법’ 제15조에 따르면, 탄소중립위원회는다양한 사회계층을 대변하는 중앙행정기관 공무원과 시민단체 및 학계 인사인 민간위원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특히 민간위원의 경우, “청년, 노동자, 시민사회 등 각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되도록 구성”해야 하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출범한 2기 탄녹위는 청년·노동자·농어민 등 기후위기 피해 당사자들의 대표성이 반영되지 않은 건 물론, 민간위원은 기존의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77명에서 오직 전문가 위주로 한 32명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마저도 원전을 포함한 각종 산업계를 중심으로 구성됐죠.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기후위기로 피해를 얻게 될 다수의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행사하는 민주주의를 복원, 혹은 실현하는 것이 기후정의의 목표” 입니다. 탄소중립 정책과 이행과정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점검하는 역할을 시민들이 해야 된다는 것 인데요. 이러한 시민참여적 거버넌스를 제도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발판 마련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기후시민의회로 예를 들어볼까요? 영국의회는 인구대표성을 반영한 무작위 추첨으로 시민의원 108명을 선발했습니다. 이들은 2050년까지 영국이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논의했고, 의회 정책 권고안의 토대가 될 50여개의 제안을 보고서로 제출했습니다.

사실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닌게, 2년 채 안되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우리나라도 1기 탄소중립위원회에 국민참여분과가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4차례에 걸친 설문조사를 통해 탄소중립 조기달성 목표,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기대/우려하는 점 등을 관찰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이해 관계자들과 정책 논의를 하고 실시간으로 논의 과정들을 공유해왔습니다. 결정 권한의 한계도 있습니다. 시민의회가 자문 기능에 그친다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죠. 하지만 다양한 층위를 포함하는 거버넌스 구성의 시도는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고 기사는 설명합니다. 현재 2기 탄중위에는 국민참여분과가 없습니다.

기후위기는 곧 경제위기, 시장위기 라는 어마무시한 말들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후위기는 주거권, 노동권, 건강권 등을 침해하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더욱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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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함께 살기 위해 멈춰” 구호를 외치며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사거리를 행진하던 3000여명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도로 위에 누웠습니다. 기후 위기가 모든 인류와 생명을 위협한다고 경고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였습니다. 

기후위기 대응과정과 경제사회구조의 전환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후정의파업 행진 참여자들이 탈성장을 외칠 때 단순히 경제성장으로부터의 탈출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경제 성장을 중심으로 나머지를 도구화 혹은 착취해온 삶의 양식 전반을 비판했습니다. 

이때까지의 삶의 양식이 지구생태계와 인간에게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한가지 정답은 없지만, 탈성장론자인 독일의 경제사학자 마티아스 슈멜처에 따르면, 탈성장을 통해 "개인은 ‘과시적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기본적 필요를 채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관점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고 (사적 충분성), 동시에 넘치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유자원으로 만들어 더러 부족할 수 있는 개인의 필요를 보완 (공적 풍요로움)" 할 수 있습니다. 

공적 풍요로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저는 이번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하며 공공성 강화라는 구호가 머리속에 자꾸만 맴돌았습니다.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 삶, 모두가 풍요로울 수 있는 삶, 기후위기로 인해 다른 존재의 안전이 위협받게 될 때 그것이 나의 안전의 위협으로 이러질 수 있다는 전제. 레터를 쓰며 떠오르는 키워드를 정리하다보니, 탈성장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공공재, 공공의 풍요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공공의 풍요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에너지, 물, 토지와 같은 자원의 공공성 강화 뿐만 아니라 서로의 위기에 응답할 수 있는 관계, 서로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정치적/제도적 기반 만들기도 뜻할 수 있겠죠.

탈성장에 대한 구체적이고 첨예한 이야기들은 이미 많은 학자들과 단체들이 해와서 레터의 끝은 극히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상상으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사치를 위한 경쟁, 각자도생, 끊임없는 이윤 창출이라는 목표에서 벗어난다면, 단절된 관계가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탈성장, 기후위기 담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학자는 아니라 뜬금없게 들릴 수 있지만 주디스 버틀러라는 철학자는 신체의 취약성을 이야기하며 삶의 상호의존적인 조건들을 말합니다. '나의 삶의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과 연루되어 있다' 는 것을요. 독립된 개체로서가 아닌, 서로가 연루되어 있는 관계망을 지키고 서로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탈성장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착취하지 않는 체제, 공공의 필요와 풍요를 누리는데에서 멈추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공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사회를 상상하며 레터를 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