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지요? 유월입니다. 저는 오늘 돗자리를 들고 친구와 친구네 강아지와 공원에 찾아갔습니다. 공원에 가면 사람들이 매일매일 공원에서 노닥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나만 빼고, 거기에서 늘 배드민턴을 치고 늘 둘러앉아 김밥을 먹고 지내는 것 같지요. 너무도 비현실 같아서 제법 현실적으로 하루하루를 촘촘히 살고 있던 저에게 찬물을 끼얹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찬물은 아니고 따뜻한 물에 가깝지만 아무튼. 이런 감정을 지칭하는 말을 지어내보고 싶습니다. 오늘밤이라면 저는 이런 유의 감정을 ‘손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문보영 시인의 시 제목에서 빌려와서 말입니다. |
|
|
초여름의 일요일에 돗자리를 챙겨들지 않는다면,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강아지와 오후의 햇볕 아래를 거닐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초여름을 낭비하는 일이고 일요일을 낭비하는 일이지요. 모두가 바쁘고 모두가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지만, 어느 날의 오후에서는 분수처럼 다른 모양으로 솟구칠 수 있습니다. 물줄기를 마음껏 낭비하며, 낭비를 만끽하며…… 만약, 분수처럼 솟구치는 우리의 요란하고 희한한 자태를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면, 분수처럼 우리가 도모하는 낭비를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면, 그것만한 낭비도 없겠다 싶습니다. |
|
|
물이
무릎까지 솟아올랐다
꺼진다
분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내가 분수를 보지 않으면
분수는 낭비된다
물속에 희미한 빛이 있다
네가 낭비되지 않도록 너를 가만히 바라본다
떠나며 뒤돌아본다
수압이 강하여 부상의 우려가 있으니 접촉하지 마세요
분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이런 말은
작별인사나
안부 인사로 어떤가
우거진 길을 걸어나가
호두나무를 지나가
나무가 굽이쳐
썩게 놔두기로 한다
지나간 곳을 다시 지나가는 것은
일종의 복습이다
분수가 더이상 나를 보고 있지 않으므로
나도 얼마간 낭비되고 있다
_문보영, 「손실」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
|
|
우리가 문보영을 사랑하는 이유는 낭비를 만끽하는 분수 같은 용맹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용맹함을 우리가 지켜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낭비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
|
|
시인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아직 잠들지 마/ 우리는 현실을 사냥해야 해”(‘시인의 말’)라고. 문보영에게 시인이란 현실을 사냥하는 사냥꾼입니다. 현실을 그 누구보다 집요하게 주시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 주시의 결과가 반현실이 될 가능성을 문보영은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시인이 그리는 장면들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아이처럼 어처구니없다 느껴지는 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어처구니’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어처구니가 없으면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온다”라는 예문이 적혀 있네요) 우리를 깔끔하게 설득해내는, 기가 막히는 능력을 발휘하고야 맙니다. |
|
|
우리의 잠재워진 갈망이 깨어나는 느낌. 버려버린 상상들이 다시 복구되는 느낌. 우리의 숱한 포기들이 부활하여 제 소원을 이루는 느낌. 우리의 것이었던 그 많던 세계를 짐짓 현실적으로 지워버려온 것이 얼마나 큰 낭비였는지를 일깨우지요. 이만하면, 문보영의 반현실은 현실에 대한 완벽한 적응의 결과겠구나 싶어집니다. 내가 만약 ‘현실’이라면, 현실을 대하는 여러 시인들의 태도 중에서 문보영의 태도에 가장 반색할 것 같다 생각되는 밤입니다. |
|
|
🔖 임승유 시집 『생명력 전개』 출간!
임승유 시인이 4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 『생명력 전개』가 출간되었습니다. "이야기에는 한 사람 이상이 등장한다. 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가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는 한 사람이 되기를 반복했다."(「시인의 말」) ‘시인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시집 제목의 ‘생명력’은 원래 있는 것,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관계를 통해 부여되고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가능성에 가깝습니다.
|
|
|
Q. 시집 제목 '생명력 전개'가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
|
|
이번 시집엔 용기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쓴 시가 적잖이 담겨 있습니다. 더 나아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중얼거리고 있는데, ‘생명력 전개’는 저에게 그다음도 있다는 감각을 갖게 해주는 제목입니다. 이번 시집 화자에게 ‘생명력 전개’에 대해 물어보면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라는 대답을 할 겁니다. 직전 시집에서 시인의 말을 빌려 “생활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화자거든요. 겁이 많긴 하지만 관계를 향해 조금씩 걸어나가고 있으며, 입김을 불어넣어 면적을 넓히듯 발화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관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는 사람이지요.
|
|
|
💌김소연 시인과 함께하는 편지 이벤트 안내드립니다.
<우시사> 구독자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우시사>팀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라는 안부 인사를 시작으로 매주 시의 아름다움을 전해주시던 김소연 시인의 <우시사>는 6월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김소연 시인과 함께 지나온 계절도, 마침내 당도한 여러분의 여름도 시의 아름다움으로 찬란하게 물들었길 바라봅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김소연 시인께 편지를 보내주세요. 평범한 일상 이야기도, 특별한 사연도 좋습니다. 공유하고 싶은 시를 적어주셔도 좋고 추천받고 싶은 시가 있다면 사연을 남겨주셔도 좋아요! 혹은 시인께 전하는 짧은 안부 인사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6월 10일(월) 자정까지 lovepoem@munhak.com으로 보내주세요.
편지는 김소연 시인과 <우시사>팀이 소중히 읽어보고, 6월 셋째 주, 김소연 시인이 마지막 편지로 답장 드릴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편지와 답장은 <우시사> 구독자분들과 함께 읽을 예정이라는 점을 꼭 유념해주세요!
그럼, 구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편지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오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소중한 피드백은 우시사를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