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 풀어봤's UP/ 넷플릭스 드라마 <알라와비 여고>로 보는 요르단 사회와 여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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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드라마 “알라와비 여고”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지만, 읽고 나서 드라마를 보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넷플릭스 좋아하시는 분 손! 오늘은 넷플릭스 드라마 “알라와비 여고(AlRawabi School for Girls)” 속 요르단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알라와비 여고는 요르단에서 두 번째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데요. 21년 9월에 시즌 1이 6개 에피소드로 방영됐고, 인기에 힘입어 시즌 2도 제작한다는 소식이 올해 6월에 발표됐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들어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한국어를 포함해 3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190개국에서 상영되는 성공을 거뒀어요.

이 시리즈는 알라와비 여학교라는 요르단의 상류층 사립학교가 배경이에요. 그래서 처음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땐 아랍판 가십걸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하이틴 드라마라는 외형을 쓰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감독과 작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제작진이 여성으로, 여성의 시선을 통해 학교 폭력과 족벌주의, 여성에 대한 차별 등 요르단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한 수작이죠. 

드라마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조금은 생소한 나라 요르단에 대해 먼저 간략히 알아볼까요?

출처: whereig.com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요.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나라들과 인접해있어 위험한 지역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과 외교부 여행등급이 비슷하고 각종 국제기구 사무소가 위치해 있기도 해요. 입헌군주국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왕의 권한이 막강하고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개도국 분류상 상위 중소득국(Upper Middle Income Countries)에 해당하며, 국민의 90% 이상이 수니파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예요.

드라마의 주인공인 마리암(가운데)과 친구인 디나(좌), 노프(우)

드라마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고등학교에서 시작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답게 1화부터 교내 따돌림에 의한 유혈사태가 벌어지는데요, 왕따의 대상은 바로 주인공인 마리암입니다. 이 드라마의 특징은 주인공을 마냥 무력한 피해자로 그리지도, 가해자인 왕따 주동자를 무조건적인 악역으로 그리지도 않는다는 점이에요. 마리암은 당한 만큼 갚아주기 위해 친구인 디나, 노프와 함께 치밀한 복수를 계획합니다. 

복수의 대상은 바로 왕따의 주동자이자 학교 최고의 실세인 라얀, 그 절친인 라니아와 루콰이야, 그리고 이들의 만행에 흐린 눈을 한 교장 선생님입니다. 마리암 3인방과 라얀 3인방 간의 복수와 반격이 거듭될수록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은 다소 모호해지고, 라얀 패거리 역시 영원한 빌런이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구조 안의 피해자라는 점이 드러나죠.

드라마의 빌런인 라얀(가운데)과 그 최측근인 라니아(좌), 루콰이야(우)

마리암은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라얀 패거리에게 구타를 당해 구급차에 실려가지만, 라얀의 거짓말로 오히려 성추행 가해자로 몰려 정학 처분을 받아요. 선생님과 친구들, 믿었던 부모님도 등을 돌려 정신과 상담도 받기 시작하죠.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문제와 비교해 그 심각성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920명의 만 11-12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7%가 따돌림을 경험했다고 답변했어요(Al-Bitar et al., 2013). 유네스코가 2019년 발표한 전세계 학교폭력 및 따돌림 통계에서도 요르단의 따돌림 발생빈도가 41%로 높은 편이었고요. 

이처럼 요르단에서 왕따를 비롯한 학교폭력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관련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태예요(Al-Sawalgah & Momani, 2019; Kazarian & Ammar, 2013). 고쳐야 할 문제라기보다 생활의 일부라고 여기는 시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알라와비 여고’ 이전에는 미디어에서 왕따 문제를 직접 공론화한 사례도 거의 없었고요.

그런데 사실 알라와비 여고에 나오는 왕따 문제를 이해하려면 학생들 간의 갈등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사회적 맥락을 읽을 필요가 있어요. 극 중 왕따 주동자인 라얀을 학교에서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라얀의 아버지 때문이거든요. 라얀 아버지는 구체적인 직업이 나오지 않지만 “높은 자리”에 있다고 언급되는데요, 영향력 있는 부족 사람임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요르단을 비롯한 중동 사회에서는 역사적으로 부족의 영향력이 매우 강합니다. 척박한 사막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족과 씨족에게 충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죠. 서구 열강 역시 이 지역을 식민통치하고 근대 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요 부족들을 적절히 이용했습니다. 요르단의 전신인 트랜스요르단도 영국의 주도 하에 강력한 부족들이 왕가에 협력하고, 그 대가로 특혜를 약속받으면서 수립됐어요.

이러한 부족들은 이후로도 왕국의 중앙집권화를 뒷받침하며 현대 요르단 사회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지만(홍미정, 2005), 부족에 대한 충성심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우선하는 사례들이 생기면서 정당정치와 같은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Lloyd, 2019).

부족주의와 함께 꼭 알아야 할 중동 사회의 특징이 바로 와스따(Wasta)인데요. 한국어로는 인맥, 연줄로 번역되지만 협상이나 중재, 청탁, 뇌물 수수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에요. 생존을 위해 부족 간 협상과 교환이 필수적이었던 역사적 환경에서는 와스따가 갈등 조정과 안보 유지, 물자 획득을 책임졌고, 현재까지도 이런 관습이 뿌리 깊게 남아 있어요.

현지인들은 와스따가 생활에서 뗄래야 뗄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비타민 W”라고 부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지인이나 친척의 인맥을 이용해서 일자리를 얻거나 관공서의 허가를 받는 일이 매우 흔한데요, 서양의 관점에서는 족벌주의(nepotism, 친족 우선주의)이라고 비난받을 일이지만, 요르단에서는 그저 비타민 W를 이용해 곤란에 처한 주변인을 도와준 것에 불과합니다. 와스따는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각종 일처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쓰이는데요, 2014년 요르단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위해 와스따가 필요하다고 한 응답자가 65%나 됐습니다.

출처: Saudi Gazette

같은 설문에서 와스따를 부패의 한 형태라고 응답한 비율도 83%에 달해, 요르단에서도 와스따를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와스따를 보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거죠.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역시 2016년 발표한 왕실 토론 문서(Royal Discussion Paper)를 통해 선진국과 개도국을 구분하는 요소는 법치주의라며, 와스따와 족벌주의는 법치의 공정성을 무너뜨려 국가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강조했고요. 

이런 행태를 근절하고 모든 시민이 인맥에 관계없이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게 하기 위해서는 와스따를 범죄화하는 것이 필요해요. 와스따가 지인을 돕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Jones, 2016)라는 인식도 더 널리 퍼져야 하고요.

오늘은 본격적인 드라마 속 사건사고를 다루기에 앞서, 그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준비해봤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히잡과 사이버불링, 명예살인까지 굵직굵직한 이슈들을 다룰 예정이에요. 기다리시는 동안 드라마를 먼저 보고 오셔도 좋겠죠?

세 줄 요약

#1

넷플릭스에서 미국, 한국 드라마만 보셨다면

우리에게 생소한 중동 사회를 보여주는

요르단 드라마 “알라와비 여고”를 추천합니다!

#2

요르단 사회에서 학교폭력과 따돌림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에요.

#3

요르단을 비롯한 중동 사회의 뿌리깊은

부족주의와 와스따(인맥) 문화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는 요인이에요.

※이 글은 익명의 현지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엔아국 인터뷰 시리즈, 오늘은 ‘우바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시며 아프리카와 세계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계신 승훈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봅니다 🧑‍🏫

📸 처음 뵙겠습니다, 승훈님🙌  워낙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대해 글을 써오셨고, 김치앤칩스에도 주기적으로 승훈님의 글이 종종 소개되었지만, 아직 승훈님을 모르시는 김치앤칩스 구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

안녕하세요, 김치앤칩스 구독자여러분 🙇 저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 아프리카를 이야기하는 블로거, 연구하는 대학원생, 팟캐스트 <방구석 개발협력>의 월간게스트, <국개협UP>의 멤버, <김치앤칩스>의 구독자 등 국제개발협력과 아프리카를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우승훈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내일을 위한 아프리카 공부>라는 책을 발간하여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 우-와😬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하고 계시군요!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시면서, 책까지 발간하셨다니…! 일단 너무 축하드립니다 👏👏👏 사실 저는 승훈님이 ‘우바리’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계신 브런치의 오랜 팬인데요! 소개글을 보니, ‘독립연구자’로서 본인을 소개해주고 계시더라고요!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그 부분은 업데이트가 좀 필요한데 💦 작년에 제가 5년간 근무했던 NGO에서 퇴사를 한 뒤, 얼마 전까지는 특정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활동들을 해왔어요.

말씀해주신대로 아프리카와 관련된 글을 페이스북이나 브런치에 쓰기도 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책도 발간하고, 아프리카 관련 행사의 보도자료를 쓰기도 했고요. 소셜벤처나 NGO 등 국제개발협력의 다양한 주체들이 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할 때 같이 고민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제가 해왔던 이런 일들에 대해 어떻게 한 단어로 명명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컨설턴트’는 아닌 것 같고, ‘독립활동가’는 너무 웅장해보이고,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결국 ‘독립 연구가’로 저를 소개하게 되었네요 😄

하지만 최근에는 서강대 비판적글로벌스터디즈에서 박사과정을 하고있어요. 이제는 소속이 있는 대학원생이 되었기에 완전한 독립연구자는 아니겠죠 🙂

📸 ‘독립연구자’라니, 너무 멋진 소개예요😲 저도 언젠가는 저를 그렇게 소개하고 싶기도 하고요. 승훈님이 이렇게 다양하고 멋진 활동들을 하고 계시는 중심에는 ‘아프리카’라는 키워드가 있는데요.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요.

처음 아프리카 대륙을 방문했던 것은 2011년이었어요. 단기 해외봉사로 10일 정도 케냐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전까지는 해외에도 나가본 적이 없었으니, 제 첫 해외경험을 아프리카 케냐에서 한 것이었어요. 그렇다보니, 케냐에서의 활동들이 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해도 제가 알던 아프리카는 전쟁, 기아처럼 부정적인 인상이 강한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케냐에 도착해서 보니, 그곳의 사람들 역시 우리랑 비슷한 점이 많고 통하는 것이 많더라고요. 이 곳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뒤로는 케냐를 한번 더 가보고 싶어서 기회를 찾다가 옆 나라인 탄자니아에서 ODA 인턴으로 1년간 일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