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영어권 여자 뮤지션 셋을 꼽아본 적 있다. 레이디 가가, 라나델 레이, 플로렌스 웰치(플로렌스 더 머신의 보컬, 4대 뮤지션으로 꼽던 ‘Birdy’는 활동이 부진하여 탈락), 셋이다. 나는 이들을 나의 3대 뮤즈라 불렀다. 이런 작업은 자칫 쓸모없어 보이지만 내가 어떤 추구미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다. 레이디 가가처럼 기똥찬 마이웨이를 걷고 싶고, 라나델 레이처럼 인디와 메이저 사이의 경계 없는 포지션을 지향하며(퇴폐적인 매력도 닮고 싶네), 플로렌스 웰치처럼 와일드하고 히피스러운 가치관으로 살아 가고 싶다.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다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을 샅샅이 파악하는 일이 골치 아플 뿐.
요즘 머리 속에 또 하나의 뮤즈 집단이 자리 잡았는데, 바로 3대 동물 뮤즈님들이다. 동물이라하면 강아지, 고양이부터 생각나지만, 나에게 그들은 가족이므로 제외하도록 하겠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로운 동물들. 그들 중 3대장을 호명하도록 하겠다. 에헴.
- 오리너구리
- 비버
- 카피바라
오리너구리의 경우 <작고 기특한 불행>에서도 밝힌바 있듯, ‘오리너구리종 - 오리너구리속 - 오리너구리’라는 그의 탁월한 고유성에 처음 반했다. 그럼에도 합성어로 이름이 지어지고, 사람들로부터 무수한 오해를 받는 오리너구리는 사실 미세 자기장을 감지하는 제 6감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충격적인 신경독이 있어 공격력도 출중한 동물이다. 귀여운 외모에 숨겨진 힘. ‘힘을 숨긴 찐따’로서의 오리너구리는 동경하지 않을 수 없는 뮤즈다.
비버는 약 2년 전, 한 영상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꽤 굵은 비가 오는데, 비버가 짧은 두 팔로 당근과 양배추를 가득 쥐고서 뚜벅 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동화 속 삽화같은 장면이었지만, 정말 살아있는 비버였다. 일본의 어느 샤육장에 살고 있는 비버였다. 그 사육장에서는 그 후로도 비버가 야채를 가득 들고 걸어가는 영상을 올려줬다. 흔히 시지프스 신화에 우리 인생을 비유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야채를 옮기는 비버’에 내 인생을 비유하겠노라 생각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반고흐 그림처럼, ‘야채를 옮기는 비버’라는 거대한 그림을 거실에 걸어둘 수 있다면!
옛날에 어떤 시험을 망치고 주눅들어 있는 내게, 언니가 해준 말이 있었다. 세상에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도 결국은 다 ‘먹고 사는 일’을 할 뿐이라고. 그러니 주눅들 필요도 없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 ‘먹고 사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어떤 비버는 영상 속에서 자꾸만 야채를 떨어뜨렸다. 포기한 당근도 있었고, 다시 주워가는 양배추도 있었다. 그 선택들로 인해 비버가 굶어 죽거나 배터져 죽지 않는다. 비버는 내일도 계속 야채를 옮길 것이다. 그래서 그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나를 보는 것 같아 안아주고 싶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 싶기도 하다. 쿵푸 팬더에 나오는 작은 레서판다 스승처럼. 비버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
마지막으로 카피바라. 요즘 가장 핫한 동물이 아닐까. 카피바라 노래가 따로 만들어지고, 수많은 밈이 탄생하고 있다. 카피바라는 남미에서 온 설치류다. 근데 내가 카피바라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그들이 온천 물에 들어가 뜨거운 폭포를 맞고 있는 영상이었다. 찾아보니 일본의 어느 동물원에 사는 카피바라들이다. 남미 출신이라 추운 겨울을 유독 힘들어해서 뜨거운 온천에 들어가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도를 닦는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폭포를 맞던 카피바라. 꽤 거대한 머리통 때문에 폭포수가 한방울도 남김없이 카피바라 위로 떨어졌다.
또 다른 영상에서 카피바라는 잔디밭에 누워있다가 갑자기 연못으로 뛰어든다. 그들은 잠영도 가능한 설치류다. 공격 능력이 거의 없는 카피바라는 누군가 자신을 공격해오면 연못으로 뛰어드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행여나 악어를 만난다면, 그냥 어쩔 수 없이 죽는 것밖에 방법은 없다. 어떤 동물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카피바라. 그에게는 숨긴 힘도 없다.
비버처럼 묵묵히 살아가며, 카피바라처럼 유하게 즐기다가, 필요할 때는 오리너구리처럼 맹독을 발사할 수 있다면!이 세 동물 중 하나를 타투로 할까 고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