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7 - 2025.03.23 / 수프와 이데올로기, 선의의 경쟁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지난 10주간 금요일의 약속을 일체 중단하게 만들었던 애플 TV+ 드라마 <세브란스: 단절> 시즌 2가 드디어 종영했는데요. 좋아하는 드라마의 새 시즌 막방을 보고난 직후, 애플 TV+가 2019년 서비스 론칭 이후 매해 꾸준이 10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다는 소식에 저는 조금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적어도 10달러만큼이라도 그들의 적자를 메꾸는 데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이 시리즈의 대단함을 좀 더 크고 부지런하게 떠들어서 애플 TV+ 가입자를 모객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물론 늘 마음만.. 앞서는 중입니다..) <세브란스: 단절>은 이용권 옵션에 따라 티빙에서도 보실 수 있는 작품이니 한 번 입문해보시기를 권하며, 오늘의 레터를 시작합니다. 

01.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02. U+모바일tv 드라마 <선의의 경쟁>

 01. 

수프와 이데올로기

#영화 #다큐멘터리 #닭백숙 #제주4.3사건

© 엣나인필름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향해 제기되는 부정적 반응 중 하나는 “1960년 제주라는 시공간적 배경에서 시작하는 이 드라마가 왜 제주 4.3 사건을 다루지 않는가”이다. 그동안 제주를 배경으로 제작된 한국 드라마들이 대부분 이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 않았는데, 폭싹만을 향한 비판이 온당하지 않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을 기점으로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가 우리 모두의 책장에 꽂히게 됐으므로, 3월 27일에 폭싹이 종영하고 나면 곧장 달력은 4월 첫 주로 접어들게 되므로, 그것은 4.3 사건 77주기가 다가온다는 의미이므로, 누군가가 외치는 이 아쉬움의 목소리에는 묘한 시의성이 담겨 있지만 외면하기 또한 어렵다.


 4.3 사건에 대해 잘 모르던 내가 미루고 미루다 꺼내본 건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2022)다. <라따뚜이>에 유능한 쥐 요리사표 토마토 스튜가 있다면, <수프와 이데올로기>에는 이 영화를 연출한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가 한솥에 끓여내는 닭 백숙이 있다. 푹 고아서 깊은 맛을 낸 결과물을 우리는 국물이라 부르지만, 영화 속 인물들에게 그것은 ‘수프’라 불린다. 그리고 수프 곁에는 자식으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모 세대의 완고한 ‘이데올로기’가 있다. 정치 얘기하다 밥상을 엎고 닭다리가 바닥에 쏟아지는 얘기인가 싶겠지만, 그보다는 한층 온건한 영화다. 


 1960년대 중반에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코리안 2세 양영희 감독은 2004년이 되서야 한국 국적을 얻었는데, 도쿄 집으로 독립하면서 오사카와 평양에 떨어져 사는 자신의 원가족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만 세 편을 찍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일본인 사위를 집안에 들이는 걸 극구 반대하던 어머니 강정희 씨는 어느 날 제주에 대한 기억을 딸 양영희 감독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비 장모님이 끓여준 닭 백숙을 놓고 수프 맛이 끝내준다며 긍정적 피드백 일색이던 그 남자는 양영희 씨와 결혼하여 강정희 씨의 하나뿐인 사위가 된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어린왕자>의 삼계탕 버전처럼 느껴지는데(이건 마치 “삼계탕아 네가 7시반에 완성된다면 나는 물을 올린 3시반부터 행복해질 거야” 랄까?), 후반부에서는 장르가 바뀐다. 4.3 사건을 경험한 생존자의 삶에 대해 차분히 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은 양영희 감독의 생애 전반에 걸쳐 4.3 사건이 영향을 끼쳤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어머니의 돌연 고백을 통해 그 세계를 알게 됐다. 무언가를 모르고 살던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된 이후에 그가 속한 세상이 온통 뒤흔들리는 이야기는 언제나 일정량의 고통을 머금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여기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쿠팡플레이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감상은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자세히 나누었다. 3월 마지막주 화요일에 업데이트 된다.




 02. 

선의의 경쟁

#16부작 #입시경쟁 #미스터리 #GL

© STUDIO X+U


 작년 연말에 지인의 독서모임에 일일 게스트로 참여해 요코미치 마코토의 <우리는 물속에 산다>(글항아리, 2023)를 읽은 적이 있다. 성인이 되어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를 진단받은 일본인 문학교수가 쓴 책인데, 그는 자신이 “대다수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책 곳곳에 물의 비유를 적극적으로 데려와 쓴다. 그중에서도 1장의 텍스트는 통째로 물 속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아니 어쩌면 가라앉아 있는 듯한 시구들이 서로 다른 사이즈의 서체로, 좌측 정렬도 우측 정렬도 아닌 자유로운 배치를 오가며, 기존의 단행본 내지 편집 방식을 파괴한다. 내가 참여한 독서 모임에서는 저자와 편집자가 이렇게 형식적 독특함이라는 합의에 이른 게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누구에게나 아무리 애를 써도 타인은 알아챌 수 없을 나를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U+모바일tv 드라마 ‘선의의 경쟁’의 여고생 ‘우슬기’(정수빈)도 하루 중 일부를 물속에서 산다. 깊은 수심으로 내려가 자기만의 안온해보이는 방울에 갇혀 수학문제를 푸는 우슬기의 일상은 사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초조함으로 가득차있다. 학원에 다니거나 개인 과외를 할 돈은 없지만, 우연히 접한 약을 복용했다가 집중력이 극도로 상승하는 순간을 맛 본 고3 우슬기는 무리한 비용 지출을 통해서라도 약에 의존하며 성적을 끌어올린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현직 교사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드라마 제작진은 국내에서는 주로 성인 ADHD 환자에게 처방되는 ‘콘서타’가 강남구 학군에서는 집중력을 개선시켜주는 ‘똘똘이 약’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처방이 오남용되고 있는 실태를 드라마에 녹여냈다. 


 ‘선의의 경쟁’은 매년 재학생 중 약 30%의 의대생을 배출하는 명문고 채화여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학원물이다. 외과 의사 아빠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교내 의학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는데다 고3이 되기까지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유제이’(혜리)는 재학생 대표로서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그것도 영어로. 물론, 얼마 전 사고사로 운명을 달리한 우도혁 선생님을 향해 짧게 묵념을 하자는 요청만은 우리말로 전하는 예를 갖춘다. 묵념의 시간이 10초나 지났을까. 다시 유제이의 유창한 영어 스피킹이 이어진다. 마치 CG처럼 빼곡히 오와 열을 맞춰 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을 향해 그는 “저 유제이의 후배가 되는 것 또한 여러분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같은 말을 서슴 없이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런 대단한 학교에 우슬기가 전학을 온다. 수행평가로 자전적 성장과정을 담은 '에세이'를 쓰면서도 반의 친구들이든 담임 선생님이든 누구 하나 자신의 삶이 어떤 모양인지 알아챌 수 없을 거라는 걸 아는 참담한 심정으로. 굴러들어온 돌 우슬기는 짱박혀 있던 돌 유제이로부터 친구가 될 자격을 부여 받고도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데, 역시 두 사람은 같은 학교 같은 과 입학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 모든 설정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앞으로 이들의 시간은 선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채로 흘러갈 것이라고. 그렇다면 하이틴 미스터리 드라마로서 '선의의 경쟁'이 가진 차별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차곡차곡 자신의 필모를 쌓아온 배우 혜리와 신예 배우 정수빈이 GL 장르가 유난히 척박한 한국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미개척지를 정복하러 나아간 데에 있다. 혜리 또한 '선의의 경쟁' 프로모션을 위한 자신의 유튜브 콘텐츠 두편의 썸네일 문구를 '머릿속에 온통 키스신만 가득한', '욕조 키스신의 비밀'이라 기재할 정도로 정공법 홍보에 진심이다.


💸 '선의의 경쟁’의 우슬기는 ‘콘서타’를 연상시키는 ‘콘소틴’을 복용한다. 드라마에는 X(트위터)를 통해 약물 거래를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종영 후에도 극중 약팔이 계정은 여전히 폭파되지 않고 남아있다.

🍡 이 드라마는 U+모바일tv 오리지널 시리즈로 LG U+ 이용자 대상의 전용 앱에서 선공개 되었는데, 3월 10일부터는 다른 여러 OTT에서도 볼 수 있다. 티빙에 전편이 공개 되었고, 웨이브와 왓챠에서는 매주 에피소드가 순차 공개되는 중이다. (3/24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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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7. 🤳 WEEK 11. 마츠시게 유타카 X 윤상 라디오,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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