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환적인 겨울을 선사할 3가지 MUSK향

EDITOR'S LETTER

개인적으로 스타일링의 마무리는 향수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무거운 듯한 옷 들로만 연출한 것 같다면, 가벼운 스니커즈를 통해 캐주얼한 느낌을 더해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종종 경쾌한 향을 더해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무게감을 덜기도 해요. 이 뿐만 아니라 향수는 하루의 기분을 결정해주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맛있는 음식냄새가 나면 반응하듯, 고된 하루에 내가 아침에 뿌린 향수의 잔향이 나를 감싸 위로해주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향수를 참 좋아하는데, 이유는 좀 다릅니다. 향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올해 초,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처음 바이레도 향수를 선물 받고 나서였죠. 저에게 어울릴 향수를 고심하고 선물했을 그분의 마음이 예뻐서, 외출 전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습니다. 향수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누군가의 코끝에 향기로움을 다시 선물하는 행위란 걸, 저와 일상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제 향기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 걸 보고 알았어요.

향기로 몸을 감싸는 행위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는 것, 향수를 좋아하는 이고진 구독자들이라면 이미 알고 계셨을 터. 그래서 준비했어요. 새하얀 낭만의 계절을 맞아 저번 우디(WOODY) 향수 소개에 이어, 이번에는 ‘취향(香: SCENT)’ 콘텐츠로 따뜻하고 몽환적인 향, ‘머스크(MUSK)향수’ 3가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저희가 소개해드리는 향수들이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약으로, 혹은 주변 이에게 전달되는 따스한 온기가 되길 바라요. 날씨가 추워 피부가 건조해지면 낮에 뿌린 향수가 금세 날아가기 마련. 머스크는 특히나 잔향이 오래 남아 겨울에 쓰기에 좋을 겁니다.

MUSK fragrance

머스크 향. 사향이라고도 합니다. 동물성 향료 중에서도 가장 귀한 향으로 취급되고 있고, 복잡한 구조 덕분에 향의 증발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몸에 뿌리는 거의 모든 것에 사용되죠.

사향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미 시기가 다가온 수컷 사향노루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수컷 사향노루의 생식기 옆 사향선에서 나오는 특유의 냄새가 발달하고, 그 냄새로 암컷을 유혹하죠. 그때 얻을 수 있는 사향선이 대략 50g. 지린내가 나는 사향선을 알코올에 희석시키면 우리가 아는 ‘머스크’향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이 매우 적은 양의 머스크를 얻기 위해 많은 사향노루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죠. 1973년부터 사향노루는 보호를 받기 시작했고, 향수 제조자들은 수십 년 동안 완벽한 합성 대체 물질을 만들려고 애써 왔습니다.

완벽한 복제물을 찾지 못했으나, 현재는 사향과 나무와 비슷한 성질을 지닌 갈락소라이드와 버살라이드 등의 인공적으로 만든 합성 물질이 사용되고 있어요. 혹은 암 브레트 시드와 같은 식물성 머스크를 활용한 크루얼티 프리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머스크는 태생부터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향인 셈.

실제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냄새가 매우 흡사하고, 마치 사람의 체취 같아서 이성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호감을 증폭시키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해요. 여러분도 낯선 향기에 괜히 가슴 설레본 적 있으실 테죠. 장담하건대, 대부분은 베이스가 머스크일겁니다.

1. Original Musk Kiehl`s for women and men

인적 없는 버스 정류장을 삼켜버린 새하얀 눈.

얼어붙은 시간을 녹여주는 건

옆자리에서 풍겨오는 노곤한 향기.

주변을 에워싸는 추위와 어둠 대신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이 순간만.

뉴욕 기반 친환경 코스메틱 브랜드 키엘, 한때는 동네 약국이었습니다. 창립자 ‘존 키엘(John Kiehl)'이 동네의 작은 약국을 매입하고 이름을 키엘 약국(Kiehl Pharmacy)라고 지으며 시작됐죠. 존 키엘은 그가 가지고 있는 약학 지식을 바탕으로 천연 허브 성분만을 사용한 연고 등을 제작, 판매하면서 키엘 약국을 키워냅니다. 그의 수제자인 어빙 모스(Irving Morse)도 함께 이국 식물들에서 추출한 물질들을 활용하여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 내죠.

이후 1921년, 존 키엘이 은퇴하고 약국을 인수한 어빙 모스는 키엘 상표를 붙인 서브, 꿀, 차 등을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향수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랜 사랑을 받아온 키엘의 대표적인 향수가 이때 탄생했다는 것. 1920년 첫 제조 당시, ‘사랑의 묘약’이라는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답게 지나치게 관능적이라는 이유로 창고에 감춰졌지요. 하지만 1958년 매장 리뉴얼과 동시에 우연히 발견된 이 향수는 1963년, 오늘 소개해 드릴 주인공, ‘오리지널 머스크’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고 합니다.

약봉지와 연고통을 연상케 하는 키엘의 패키징, 개개인의 피부 타입에 맞춰 제품을 추천해 주는 개인 맞춤화 서비스, 매장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가운 입은 직원들, 그리고 천연 성분만을 사용한다는 원칙하에 화장품을 제조한다는 오래된 철학까지. 약국으로 시작된 브랜드답게, 키엘은 지금까지도 그 자긍심을 지키는 것은 물론 팬들의 신뢰 역시 꾸준히 쌓아가고 있습니다.

상큼한 오렌지 꽃과 베르가못 꿀 향이 섞인 불꽃이 남기는 강렬한 첫인사.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단숨에 그들을 제압하는 응축된 머스크.

다른 향수에는 주로 베이스로 쓰이는 머스크이지만, 여기서는 유난히 고집스럽습니다. 로즈, 일랑일랑은 진가를 발휘하는 진지한 머스크의 의지를 꺾진 못할 겁니다. 우린 이미 설득 당했거든요.

2. Frederic Malle Musc Ravageur

정신까지 아득하게 헤집어 놓는

관능적인 살 내음.

기억을 넘어 무의식까지

애타게 찾아보지만 알듯, 말 듯

잔상으로만 남아 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향에 타협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강한 캐릭터의 향수를 제작하는,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 크리스찬 디올 향수를 만든 세르주 에틀러의 손자인 조향사 프레데릭 말이 2000년에 창시한 브랜드로, 향수 업계 최초로 ‘출판’의 개념을 들였어요. 우리가 베스트셀러를 논할 때 출판사가 아닌 작가의 철학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처럼, 조향사들이 브랜드가 아닌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각자의 향수를 만드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향사 각자가 만든 제품보다는 브랜드 이미지에만 중점을 뒀던 1990년 중반 당시 업계 최고의 능력 있는 조향사들에겐 한 줄기의 빛과 같은 브랜드였죠. 덕분에 그들은 마케팅이나 마감 기한 등에 쫓기지 않고 최상의 재료로 자기만의 색깔을 담은 특별한 향을 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프레데릭 말은 향수 공병의 라벨 최 상단에 조향사의 이름을 기입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프레데릭 말 뮤스크 라바줴을 볼까요. ‘모리스 루셀(Maurice Roucel)’이라는 조향사가 제조했습니다. ‘퇴폐적인’, ‘사창가’ 혹은 ‘매춘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불어 라바줴(Ravagear). 상당히 도전적인 그 이름에 퇴폐적인 머스크를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겠네요.

관능적인 라벤더 속에 숨겨진 상큼한 시트러스. 곧 스파이시한 클로브가 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할 겁니다. 말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오래된 친구처럼, 시간이 지나 베일처럼 부드럽게 위로해 주는 바닐라와 머스크.

향이 어렵다고, 복잡하다고 느껴질지 언정 그것이 의도한 바. 희미한 안개 속 한 그루의 나무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싶다면 이 향이 제격일 터. 극한까지 올린 부드러운 관능미, 그리고 그에 반하는 절묘한 밸런스를 느껴 보시길.

3. Tom Ford White Suede

딱딱한 말투와 다양하지 못한 표정,

게다가 마음을 비친 적 없어

멀게만 느껴졌던.

그런데 딱딱한 가죽 자켓에서

향긋한 섬유유연제 향을 맡은 순간 깨달었다.

아, 모든 건 내가 만든 편견이었으니.

의류로도 유명하지만, 못지않게 향수의 입지도 돈독한 톰 포드. 향수는 글로벌 코스메틱 회사인 에스티 로더와 합작하여 만들어지고 있죠. 타 향수 브랜드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흔하지 않는 향으로 현재 대중의 관심을 사고 있습니다. ‘훌륭한 매너와 좋은 향은 남자를 신사로 만든다’는 톰 포드의 말처럼 톰 포드 향수의 대부분은 고급스러우면서도 묵직하고, 또 우아한 섹시함을 겸비한 향이 많습니다.

화이트 스웨이드 향수. 색감과 재질이 담긴 네이밍이네요. 스웨이드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느낌의 원단입니다. 이름답게 톰 포드의 화이트 스웨이드는 잔잔하면서 고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머스크 계열의 향이에요. 이중적인 느낌으로 쾌활한 느낌도 들어, 사람마다 여러 가지 해석을 하기도 하죠.

초록빛을 단비를 머금은 꽃과, 그 밑에 자리한 어두운 그늘. 스윗하고 가벼운 플라워 향 아래, 무게감 있는 관능적인 머스크가 동시에 느껴질 것.

‘머스크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아요. 대신 향기로운 사람이 머문 곳에 슬프게 남아 있는, 그런 은은한 자취와 같습니다. 향을 맡은 누군가라면 괜히 그 사람의 메마른 속 사정을 알고 싶어질 터.

EDITOR: 허아란

DESIGNER: 황예인, 유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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