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름다운 버섯은 독버섯
어젯밤에는 잠이 안 오더라고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다가… 이번주가 레터를 쓰는 주였던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아침에 다시 달력을 확인해 보니 맞았습니다. 레터를 쓰는 주!
2주 전에 레터를 보내던 금요일은, 10월 9일 한글날이었어요.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서둘러 혜화역으로 갔습니다. 그날이 페미니즘 책 축제가 열리는 금요일이었거든요. 1회였기도 하고, 부랴부랴 준비된 페미니즘 책 축제, “책 읽는 여성은 위험하다”라는 카피가 메인 카피였어요. 정말 그럴까요. 정말로 책 읽는 여자는 사회에 위험할까요. 아무래도 이상하고 참신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요즘은 남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 집에 사는 남자만 봐도 그렇거든요. 성공도 중요하고 자기 계발도 중요하고 주식도 중요한 요즘이지만, 아무래도 저랑 같이 사는 남자는 책에도 페미니즘에도 영 관심이 없는 듯해요. 저는 그냥 서울 여성회에서 주최하는 북페어라고만 귀뜸을 해두었습니다. 간만에 쉬는 휴일까지 책을 파는 와이프 때문에 자꾸만 아이들 돌봄이 늘어나는 그에게 뭔가… 조금 미안하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미안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반대로 들어요.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때로는 주말도 온전히 아이들을 돌보고 먹을 것을 챙기고, 학원이며, 숙제며 무의식적으로 다 챙기고 있는데 말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 반박하고 싶기도 하지만, 요즘 통 몸이 안 좋은 그의 사정을 잘 알기에 이번에는 아주 많이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참고로 이 이후에 작은 수술까지 했네요… 남편의 몸이 그 이후 더 안 좋아지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의사가 그래서 저도 남편도 살짝 멘붕이 왔습니다. 그동안 너무 잠도 안 자고 대충 먹었던 지난날을 반성해야 합니다.)
페미니즘 책 축제는 2회가 열린다면 또 참가하고 싶은 북페어였어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온 독자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오늘은 꼭 여기서 책을 사리라, 하고 온 독자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가 그냥 들려 보려고 온 것은 아닐 것이라, 꼭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겠다, 라는 눈빛이 보였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은 눈빛을 가진 독자들을 만나 수월하게 책을 팔았습니다. 완판까지는 아니어도 시간 대비 많은 독자를 만난 날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느린서재 책을 사간 독자들은 그 책을 읽고 위험하다고 생각할지, 안전하다고 생각할지 궁금해집니다. 책 속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면 좋겠어요.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이 이야기가 과격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바꾸고 싶은 내 주변의 이야기이면 좋겠어요.
짧았던 축제 시간이 다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창경궁에 갔습니다. 가을을 맞아 음악회를 준비 중인 창경궁, 한복을 입고 모인 사람들, 외국인들… 그렇게 창경궁은 북적였습니다. 예전에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첫째를 데리고 창경궁 야간 개장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장소에서 7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을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섯 살 어린이가, 이제는 훌쩍 커서 어느새 엄마 키를 넘보는 소녀가 되었더라고요. 마냥 아이일 줄 알았던 큰애가 성큼성큼 커버린 게 느껴집니다. 그 사이, 저도 늙었고 동생도 생겼고 우리는 두 번의 이사를 했어요. 시간이 우리를 다시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게 신기할 뿐입니다. 사실 그날은 창경궁에 갈 예정은 아니었는데 저녁 식사 시간이 애매해서 잠시 들른 것이었거든요. 우연히 방문한 창경궁, 그리고 비슷한 가을 저녁, 바뀐 것은 우리의 늙음, 느린서재와 둘째의 탄생입니다. 가족은 셋에서 넷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느린서재의 책들이 지금의 제 앞에 있더군요. 생각해 보면, 24년 전 그때, 혜화 거리를 거닐 때에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친구와 걷던 그 골목 거리, 자주 가던 술집들은 전부 사라지고, 2002 월드컵을 함께 봤던 언니들의 소식은 전혀 알지 못한 채, 혹시라도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전혀 알아보지 못할 선배와 후배들… 그 거리가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해 이상하고도 익숙했습니다. 또 20년이 지나 혜화역에 가면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그곳에서 만나게 될까요. 어떤 것들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문득 옛 생각을 하게 된 한글날이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예스24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에 다녀왔어요. 책의 주제는 ‘돈’ 과 관련된 것이고, ‘돈’에 관한 책이라면 무엇이든 읽고 가지고 와서 소개해도 되는 모임이에요. 하나의 책, 같은 책을 읽는 모임이 아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와서 소개를 하는 독특한 형식이었어요.(메인 주제는 ‘돈’이면 되고요) 그 모임에서 마름모 출판사의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책을 메인으로 소개한다고 해서, 신청을 했어요. 고우리 대표님도 오신다고 해서 오랜만에 얼굴도 뵐 겸 해서,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오신 분들이 소개하는 책의 면면을 살펴 보니 이 세상엔 돈 이야기가 아닌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편 소설집을 소개하신 분들도 두 분이나 있었는데요. 역시나 소설에서도 사랑보다 돈 이야기지, 아니 사랑 이야기에도 돈이 필요하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각자 가지고 온 책을 소개한 뒤에는 서로 책 교환을 할 수 있어요. 저는 <반 고흐의 마지막 획> 소설을 소개했고요. <안녕이라 그랬어> 책을 교환해서 가져왔습니다. 읽고 싶었는데, 베스트셀러라서 제 돈 주고 사기는 좀 손이 안 가는 책이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이렇게 만나려고 그동안 사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지우 작가의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책을 읽다가… 이상하게도 많이 울컥했어요. 자기계발서 포지셔닝인 이 책을 읽으며 왜 자꾸만 마음이 아프고, 감동하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지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 책을 만들고, 때로는 의미와 가치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서 책을 만들지만… 그래서 내게 남은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거든요. 무엇을 위해서 흔들리면서도 계속 책을 만드는 걸까 싶은 요즘, 저에게 필요했던 책이었나 싶네요.
“너무 좋은 것은 독약일 가능성이 높다. 너무 아름다운 버섯은 독버섯이다. 우리는 사실 너무 좋은 것을 놓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 아이러니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일 우리가 선택할 것은 오늘보다 '살짝'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혹은 오늘보다 '살짝' 더 나쁜 것이 온다면, 또 그것에 감사할 필요도 있다. 결국 그런 살짝 나쁜 것들이 내게 면역력을 길러 주며, 살짝 더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지킬 수 있는 힘들로 쌓여가기 때문이다. 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원칙을 끝내 지켜내고야 말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은 책이지만, 저도 다시 한 번 추천하고 싶습니다.
가을이 가나 봅니다. 오늘 아침엔, 급하게 차가워진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모두 독감 예방 접종 꼭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