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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긋하게, 여행 | 최갑수

배우 김의성과 함께 떠난 후쿠오카 여행 제2탄!!!

💬 지난 3월 14일 자, 배우 김의성과 함께 떠난 후쿠오카 여행기에 이은 제2탄입니다.

12시인데 벌써 2차입니다


   다음 날 일찍, 민숙집을 나와 키타야 양조장으로 향합니다. 사실 우리가 일본으로 여행을 온 이유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입니다. 일본 전역을 돌며 모든 사케를 마셔보겠다는 무지막지한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가능한 선까지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해봅시다!”

   우리는 강릉의 어느 횟집에서 이 무모한 결심을 언젠가 실행하리라 약속했고, 드디어 그 첫 여행을 떠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양조장으로 주섬주섬 찾아들었습니다. 야메는 규슈 제일의 곡창지대인 만큼, 좋은 양조장이 없을 리가 없겠죠. 

   우리가 찾은 곳은 키타야 양조장. 창업한 지 200년이 되는 유서 깊은 양조장입니다. 한국에서 이 양조장에서 만든 고구마소주인 ‘진쿠’와 보리소주인 ‘고쿠’를 마셔 본 적이 있습니다. ‘키타야 고쿠조 다이긴조’도 한국의 이자카야에서 맛볼 수 있는 사케입니다. 키타야 양조장의 대표 선수죠. 앳된 얼굴의 여사장은 2013년 IWC(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에서 사케 부문 최우수상이자 세계 챔피언을 차지했다”며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맛이 투명합니다. 우아한 향이 코끝을 감싸는 것이 계속 마셔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균형감이 특히 좋은 것 같아요. 아! 맛있네요.”

   김의성 형의 품평입니다. 키타야 고쿠조 다이긴조는 ‘시즈쿠 시보리’라고 하는 기법으로 만드는데, 이는 압력을 가하지 않고, 자연의 중력에 의해 술주머니에서 흘러내리는 만큼만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양조장을 나와 ‘사카구치’라는 가쿠우치로 향합니다. “12시인데 벌써 2차에요. 양조장에서 사케랑 소주를 제법 마신 거 같아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의성 형이 “아, 모르겠다. 일단 마시고 보자고.” 하며 포렴을 열고 들어갑니다. 

   가쿠우치는 서서 후다닥 마시는 다치노미야와 비슷한데, 주류도매상이라는 점에서 구분되죠. 아마 일본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술집이라면 가쿠우치일 것입니다. 가쿠우치에서는 즉석 안주를 파는데, 캔 제품이 흔합니다. 그냥 뜯어서 먹기도 하고, 더러 주인이 가볍게 요리를 해 주기도 하죠.

   사카구치는 키타야 양조장의 둘째 아들이 운영하는 가쿠우치라고 합니다. 우리가 들어서자 대뜸 가발부터 씁니다. 캐릭터가 독특한 친구입니다. 일본의 유명 개그맨을 흉내 낸 것이라고 하네요. 냉장고에서 대뜸 커다란 사케 두 병을 꺼내더니 잔에 따라줍니다. 그리고는 간장과 소금이 각각 담긴 조그만 종지를 내어줍니다. 

   “사케 한 잔을 마시고 간장과 소금을 약간씩 찍어 맛보세요. 이 사케가 간장과 어울린다면 회와 함께 마시기 좋은 사케고, 소금을 찍어 먹었을 때 맛이 더 좋다면 고기 요리에 어울리는 사케라는 뜻입니다.”

   와, 과연 그렇군요! 이 사케는 간장이 맛있고, 저 사케는 소금이 어울리는군요. 지금까지 일본을 여행하며 사케를 마셨지만 이 사실은 몰랐습니다.

   “사케라면 전부 회에 어울린다고만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김의성 형도 이렇게 말하며 사케 잔을 비웁니다. 소금 한 꼬집에 사케 한 잔, 간장 약간에 사케 한 모금. 취기가 약간 오릅니다. 관자놀이가 발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관자놀이가 붉어질수록 용감해지고 무모해지는 것. 술꾼들의 특징이죠. 

   “술을 마시겠다는 각오로 살았다면 우린 지금보다 더 훌륭한 인간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김의성)

   “지금도 그다지 못난 인간은 아닙니다. 충분히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한 인간들이죠. 그러니까 술병을 들고 앞으로 가시죠.” (최갑수)

   “한 잔 더 하러 갑시다!”  

좋은 것, 맛있는 것부터


   어느새 오후가 되었습니다. 술꾼은 오후를 좋아하는 법이죠.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찾은 곳은 ‘우오타카’라는 이자카야입니다. 전형적인 일본식 이자카야네요. 작은 바가 있고, 너덧 명이 어깨를 붙이고 앉을 수 있는 좌식 테이블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건너편에는 벌써 취기가 오른 술꾼 둘이 앉아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습니다. 

   ‘3종 세트’로 술을 주문합니다. 사케를 종류 별로 한 잔씩 시음할 수 있습니다. 안주는 고등어깨무침입니다. 좋은 안주죠. 자, 술이 나왔습니다. 술은 왼쪽부터 ‘약간 좋은 것 - 조금 좋은 것 - 많이 좋은 것’ 순으로 놓여 있습니다. 술은 안 좋은 것이 없답니다. 흠흠.

   “어느 것부터 마시겠어요?” 김의성 형이 제게 묻습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좋은 것부터 마시겠습니다.”

   “왜요?”

   “나중에 먹으니까 진짜 맛을 모르겠더라구요.”

   옛날엔 좋은 건 아꼈다가 나중에 먹었는데, 지금은 좋은 것부터 먹습니다. 살면서 배우게 된 것이죠.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처음 할 때의 그 기분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나중이 되면 흥미가 떨어지고 심드렁해져요. 이젠 좋은 건 안 아낍니다.

   가장 맛있는 술을 깨끗하게 비우고 안주 한 젓가락. 그리고 그다음 술로 다시 넘어갑니다. 또다시 안주 한 젓가락. 이런, 벌써 배가 부르군요.  

포만감은 인생의 아주 중요한 감각이죠


   “포만감, 기분 좋은 포만감은 인생의 아주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김의성 형이 술 한 모금을 마시고 이렇게 말합니다.

   “포만감을 사랑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인생이죠. 요즘 사람들은 포만감을 죄책감으로 받아들이는 게 참 안타까워요. 옛날에는 아주 희귀한, 느끼기 드문 감각이었죠.”

   그렇습니다. 적당히 취하고, 배가 부른 것보다 좋은 인생은 없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살아온 길 위에 무엇이 남았을까 하고 뒤돌아보는 것이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내 앞에 놓인 술 한잔과 음식 한 접시가 더 중요하죠. 거기에 만족하면 되는 겁니다. 폐 끼치지 않고, 골목의 아늑한 술집에서 좋은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죠.

   술집을 나왔습니다. 어느새 해는 졌군요. 우리는 노을이 지는 거리를 걸어갑니다.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즐겁습니다. 인간이 살면서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즐거움입니다. 훌륭한 인생도 좋지만, 즐거운 인생만큼은 못하죠. 기억하세요. 잠들기 전, 우리 몸에 희미한 전류처럼 남아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그 감각은 오직 즐거움뿐이라는 것을요. 🍶

📺 김의성의 후쿠오카 술집만행 영상으로 보기

최갑수는 작가 겸 기획자다. 매일 매일 글을 써서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배우 김의성과 함께 틈날 때마다 먹고 마시는 일본 여행을 다니고 있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ssuchoi

💻 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  김유정

나이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150여 명 규모의 스타트업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나이 많은 순으로 TOP 3정도 안에 들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나이를 말하지 않는 분위기라 서로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누가 나이가 제일 많을까 하고 순위를 정하다가 제가 그 정도 순서에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온 동료 개발자는 스무 살이었죠. 20살이 넘게 차이 나는 동료와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이로 서열을 정해지도 않고, 직급도 없는 조직 문화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그만둔 스타트업에서 친해진 동료와 종종 만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동료는 저희 팀 막내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저희는 무척이나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 없이 동등한 위치로 사적인 이야기도 편하게 나누고 서로 배려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스타트업을 다니지 않았다면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았을 것 같아요. 10살 어린 친구도 생기지 않았을 것 같고요. 나이를 내려놓으니까 오히려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나이에 따라 경험치가 같지 않고, 지혜로움도 거기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저보다 10살이 어려도 배울 점이 많을 수 있고, 저보다 10살이 많아도 배울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기존에 다니던 스타트업 중 한 곳은 시니어 관련 스타트업이라 50대 이상의 고객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슬로건인 회사였는데, 만난 고객분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전통적인 형태에 익숙한 분들이라서 상대적으로 어린 직원인 저희에게 반말을 하거나, 가르침을 전해주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대화는 일방적이고, 조언을 해주려고 애쓰셨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랬다는 건 아닙니다.

 

저 역시 저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왔던 적이 있어서 그분들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나잇값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사전적인 의미로 나잇값은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점잖은 척, 내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아한 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달까요.

 

하지만 지금은 나잇값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경험치와 나이의 무게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경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충고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이를 내려놓고 모두를 스승이라 여기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배우려 하고 겸손해야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요.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이나 말이라는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고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이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삶의 방법이 아닐까요.

 

처음 스타트업에서 나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를  OO님이나 영어 이름을 부를 때는 속으로는 속상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보다 최소한 10년은 더 경력이 더 많은데, 왜 내 의견에 반대하는 거야? 니가 뭘 알아?’

‘내가 쌓아 온 경력은 무시당하는 거잖아. 동등하다고 강요하느라 진짜 인재를 못 알아보네?’

 

이렇게 생각한 적도 정말 많았습니다. 제 경험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진짜 보여줘야 하는 건 실력이더라고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실력을 증명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일에 임하다 보니까, 어느새 저도 나이와 경험, 경력 같은 건 잊고 오직 현재의 저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스타트업에 있으며 가장 크게 배운 점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는 겁니다. 경력이나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면서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나이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었고요. 사십 대 김유정이 아니라 그냥 인간 김유정으로 살 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김유정은 그동안 여행 에세이 소설여행과 가이드북 두근두근 여행 다이어리 북 시리즈 8권을 썼다.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여행과 술, 커피를 좋아한다.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writer_kim_u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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