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회 (2024.06.12)

바야흐로 일기의 시대입니다. 블로그에, SNS에, 앱에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씁니다. 일기를 기록한 책이 매주 출간되고 일기 시리즈가 기획됩니다. 일기에 미친 사람들… 원래 일기란 자기만 보는 것 아니었나요? 자물쇠를 채운 노트에 엄마 욕, 아빠 욕, 친구 욕을 쓰고 죽고 싶다… 아님 다 죽이거나… 끄적이는 거 아닌가요. 일기는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문학 장르라는 이유로, 궁극의 글쓰기 형식으로 여겨져왔습니다. 전설적인 작가들의 전설적인 일기들이 여전히 읽힙니다. 소설가 윌리엄 보이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진정한 일기는 작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출간될 수 없다. 사후 출간만이 정직함의 절대 조건을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대의 일기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보여주는 것을 전제로 일기를 씁니다.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기 위해 씁니다. 동시대 일기의 핵심은 내면의 진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뭘까요? 거짓과 위선? 인스타그램처럼? 과장과 위악? 트위터처럼? 하지만 마음속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대체 왜 일기를 읽고 쓸까요? 우리 모두 대 SNS시대의 관종이 된 걸까요?

일기장엔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의 일기가 적혀 있는데

그날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에 그 아이는 내내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쩌면 운 것도 같았는데

왜 일기장엔 ‘그 아이는 울지 않았다’고 쓰여 있을까

무엇을 커닝한 것은 아닐까

젯소*를 페이지 전체에 바른다

 

인도 슬럼가 골목에서 아이들의 눈을 본 적 있다

젖은 구슬 같았고

깔깔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르던 커다란 눈이

왜 스케치북엔 검정 색연필만으로 그려져 있나

 

젯소를 덧칠한다

 

하얗게 굳어가는 표면 앞에

망설이는 손이 있다

 

흰 겹들을 쓰다듬으면

느낌에 대한 느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 나는 또

‘옆집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동네서 가장 맛있는 막걸리도 사라졌다’고 적었다

할머니와 막걸리 둘 중 무엇이 먼저인지

순서도 모르면서 적었다

 

새 일기장 말고

젯소를 사기 위해 문방구에 간다

 

 

* 밑바탕에 덧칠하여 흰 바탕을 만드는 재료.


_박세미, 「흰  (『내가 나일 확률』)

             겹」

이 시에서 화자는 운 것 같은 아이를 울지 않았다고 쓰고, 할머니와 막걸리에 대해 마음대로 씁니다. 그리고 자기가 쓴 말 위에 덧칠을 합니다. 화자는 왜 진실도 아닌 일기를 쓰고 지우고 쓰다듬는 행위를 반복하는 걸까요.


영국의 소설가 존 파울즈는 평생에 걸쳐 스무 권 분량의 일기를 썼습니다. 그 일부는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파울즈는 자신의 글이 과학처럼 진실을 찾는 게 아니라, 진실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흰 겹”의 화자가 되찾으려고 하는 “느낌에 대한 느낌” 역시 진실에 대한 느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동시대의 사람들이 일기를 쓰고 공유하는 이유도 왜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일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로서의 진실이 아니라, 진실의 느낌입니다. 망각되는 일상 속에 잠깐이라도 진실이라고 할 만한 순간이, 서로의 삶이 있었다는 걸 느끼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일기를 공유합니다. 그것이 비록 이 미친 세상의 관음증과 나르시시즘의 일부로 타락할지라도, 잠시나마 삶의 기록을 통해 진실의 느낌을 갖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쓰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는 것 아닐까요.

정지돈 드림  

문학동네시인선 214 『당근밭 걷기』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슬픔도 결핍도 정면으로 마주하며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담아내는 안희연 시인, 시와 산문을 넘나들며 독자분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안희연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지금 온라인 서점에서 안희연 시인의 친필 사인이 담긴 사인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한 사람 안에 포개진 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거

_「긍휼의 뜻」에서

Q. 수록작 중 유독 마음에 남는 시가 있으실까요? 그 이유도 들려주세요.

시집 마지막에 자리한 「굉장한 삶」이라는 시를 꼽고 싶네요. 시집 제목으로도 고려했을 만큼 마음이 가는 시입니다. 시에 등장하는 ‘신기’와 ‘신비’는 언뜻 보기에 비슷한 단어 같지만 생각해보면 무척 달라요. 무언가를 신기하다고 말할 때는 팔짱을 끼고 멀찌감치 서 있지만 무언가를 신비롭다고 말할 때는 상체를 기울여 그 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삶은 신기한 걸까요, 신비한 걸까요? 저는 우리가 삶을 향해 상체를 기울여봤으면 좋겠어요. 거기 뭐가 있는지 봐야죠. 생각보다 굉장한 것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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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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