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아이와 국내 또는 해외 다른 도시에서 함께 지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이번 레터는 18개월 송이 아빠 현 님이 썼어요. 마침 현재 부산에서 송이랑 한 달 동안 체류 중이라고 하네요. 왜 부산에서 지낼 결심을 했을까요? 어쩌면 지난 레터의 정우님처럼 도피와 구원을 찾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요.

이번 레터는 바다가 보이는 부산의 어느 카페에서 쓴다. 지난 5월 중순에도 같은 카페에 있었다. 그때는 나 홀로 휴가 중이었고,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내려왔다. 어쩌다 달콤한 휴가 중에 아이와 부산에서, 그것도 감히 단 둘이 한 달을 지낼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도 복기가 필요해 기억을 짚어본다.

전업 주부에게도 휴가는 필요하다. 직장인도 이직하면서 일주일은 쉬는데 지난 4월 초, 바쁘게 일하다가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전업 직장인에서 전업 주부로 ‘이직’했다. 아내는 이미 연초에 4박 5일 휴가를 사용한 터라, 나의 휴가 요청을 결재해줬다. 단, 조건이 있었다. 5월에 2박 3일만 쓸 것.

어디에서 휴가를 보낼지 고민하다 부산이 떠올랐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매년 한 번씩 들러 익숙한 도시다. 마침 가족 돌잔치 사진을 찍어준 사진작가 부부가 해운대구에 살고 있고, 가까운 출판사 대표와 편집자도 워케이션 중이었다. 해운대 근처의 저렴한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보다는 유스호스텔에 가까운 모양새였지만 나름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푹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여행 준비는 거의 하지 못했다. 아이가 잠든 뒤 밤부터 짐을 쌌다. 지저분한 부엌을 정리하고 젖병 설거지까지 마치니 새벽 4시 10분. 맥주 한 캔을 땄고 소파에서 한 시간 눈을 붙이고 공항으로 가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겨우 3일 치 자유인데, 군 복무 시절 휴가 복귀 직전의 심경과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때 쓴 일기를 보면 이렇게 자유를 애타게 갈망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운 새벽 시간은 나에게 자유일까, 마지막 발악일까. 그게 잠시 깨어있을 자유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챙기는 고요가 소중하다.” 그때 적은 문장 중 일부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산에 있는 동안, 하루 평균 17,400보씩 걸으며 부동산을 알아보러 다녔다. 문득 가을쯤 아이와 부산에서 지내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난봄, 여름 동안 아내의 업무가 한창 바쁠 때라 잠시나마 독박 육아를 해보니, 한 달 정도는 온전히 나 혼자 아이를 돌볼 수 있겠다는 무모한 용기가 생겼다. 물론,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걸 보면서 그게 미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한 번쯤 도전해볼 법한 미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바다 가까이 살면서 모래사장에서 노는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시기는 10월로 정했다. 유일하게 가족 행사와 명절이 없는 달이었다.

목표를 세우니 시한부 자유보다 가까운 미래에 아이와 다시 내려올 준비를 마치는 게 더 중요해졌다. 부산 출신 지인에게 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부산에서 한 달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동네에 살고 싶으세요?’ 돌아온 답은 다양했다. 그중 한 명이 남천동을 추천했다. “바닷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좋겠군요. 광안리 근처는 어떠세요? 제가 유년기를 보낸 남천동은 ‘빵천동’이라 불릴 정도로 베이커리랑 카페가 많이 있어요. 지하철 2호선도 있어서 해운대와 서면 접근성도 괜찮고요.” 병원이 가깝고 월세가 너무 비싸지 않으며 가급적 유아차를 끌기 편한 평지일 것. 비상시 도움받을 만한 지인이 있는 곳 등으로 조건을 깐깐히 추리니 결국 해운대, 광안동, 남천동 정도가 남았고 그중 광안동으로 숙소를 정했다.

부산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보름이 되어간다. 어느 도시를 관광차 방문하면 지역 맛집이나 명소를 찾게 되지만, 아이와 지낼 목적으로 오면 동네 소아과와 마트, 놀이터, 안전한 산책 코스부터 찾게 된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몸은 몹시 고단하겠지만, 그만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자 한다. 동시에 두 가지 화두를 고민할 예정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부산은 어떤 도시로 기억될까. 다시는 놀러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기억으로 남을지, 딸이 더 크면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도시로 남을지 나도 모르겠다. 기왕이면 즐거운 이야기를 썬데이 파더스 클럽 독자들에게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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