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8. 노가리 클럽 : 살살 녹은 연휴 뒤에 남은 것들

노가리클럽 부원 여러분, 이번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사흘간의 달콤한 휴식이 마치 꿈처럼 사라졌어요. 솜사탕을 물에 씻어버린 너구리의 심정이죠. 현생의 스트레스를 가라앉혀 줄 이런 극적인 이벤트가 종종 있으면 좋겠는데, 세상은 참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없네요.

 

그렇기에 더더욱 콘텐츠의 재미가 필요한 것 아닐까 싶어요. ‘출근하는 수요일’은 전혀 기대되지 않지만, ‘수목드라마 하는 날’은 너무나 기다려져 빨리 왔으면 좋겠는 것 처럼요. 나를 위해 숨겨둔 선물처럼, 일상 곳곳에도 반짝거림을 발견할 수 있는 이벤트를 심어 놓으면 그래도 사는 재미가 생기는 듯 해요.

 

이번 호에서는 슴슴한 가을의 일상 속에서 느낀 발견의 즐거움을 나누고자 합니다. 희는 갓드의 냄새를 폴폴 풍기며 신호탄을 쏘아 올린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윻은 사유하는 시간의 기쁨을 알려준 <사유의 방>을, 슬은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 뉴스와 뜻밖의 연결고리를 형성한 영화 <킹스 스피치>를 소개합니다. 아직 연휴의 여운이 남아있다면 노가리클럽에서 함께 노가리나 마저 까시죠!


느슨해진 한드판에 기강 잡으러 온 세 자매

드라마 <작은 아씨들> by. 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종영한 후 한동안 볼 콘텐츠가 없어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노가리클럽 내에서도 “드라마 기근이다, 기근이야. 볼 게 없네.”라는 곡소리가 들렸더랬죠. 그때 구원자의 얼굴을 한 세 자매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드라마 <작은아씨들> 1화를 보고, '이건 된다!'는 걸 딱 느꼈어요. 물론 방영한 지 4화밖에 안 된 드라마를 선뜻 추천하기가 조금 망설여집니다. 노가리클럽 5화에서 에디터 슬이 드라마 <클리닝 업>을 추천하기 전, 열심히 밑밥을 깐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죠. 그렇지만 저도 뚝심 있게 세 가지 매력 포인트를 앞세워 영업해보겠습니다.


첫째, 웰메이드 여성 서사 드라마입니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인공도 세 자매고, 이들이 맞서 싸우고자 하는 빌런도 재벌가 여성이죠. 빌런의 오른팔도 강인한 성격의 여성이고, 세 자매를 돕는 조력자 친척도 여성이에요. 첫째 오인주(김고은 분)에게 700억을 안겨주면서 이 모든 스토리의 시작점이 된 주요한 인물도 여성이고요. 여자들이 다 해 먹는 드라마라니. 보는 내내 짜릿하고 재밌습니다. 사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영업 포인트가 되지만, 두 가지 이유를 더 들어 볼게요. 


둘째, 세 자매의 연기가 너무 쟁쟁해서 단번에 몰입하게 됩니다. 김고은의 연기는 1화 엔딩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한 언니의 죽음이 매우 슬프지만, 눈앞의 일확천금에 기쁘고, 순간적으로 기쁨을 느낀 스스로에 대한 자책 등 복합적인 감정을 소름 끼치도록 잘 표현했기 때문이죠. 배우 남지현이 연기한 둘째 오인경은 극 중 기자로 나오는데요, 뉴스 브리핑 장면에서 실제 기자인 줄 알고 두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가글 통에 테킬라를 넣어 근무 시간 중 홀짝거리는 모습마저 너무나 현생에 찌든 직장인 그 자체였고요. 막내 오인혜 역은 박지후 배우가 맡았는데요. 영화 <벌새>에서 보여준 것처럼, 어딘가 불안정하고 결핍됐지만 애써 이를 숨기는 10대를 잘 표현했습니다. 주먹을 너무 꼭 쥐고 살아서 톡 건들면 금세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인물을 연기로 잘 승화했죠. 

셋째, 연출이 기막힙니다. 웬만한 영화보다 훌륭해요. 특히 첫째 오인주가 친한 언니인 진화영(추자현 분)의 집에 들르는 시퀀스가 인상적입니다. 인주는 여행 간 화영의 부탁대로 물고기에게 밥을 주다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껴 어항 옆 전신 거울을 바라보는데요. 거울에는 인주의 등 뒤편에 놓인 옷장이 비치고, 옷장 안에 빼곡히 걸린 옷 아래로 공중에 매달린 빨간 하이힐이 보입니다. 하이힐 주인의 발목에는 난꽃 타투가 파리하게 남아있고요. 이 장면을 보고, 마치 국밥 먹는 아저씨마냥 “으어, 연출 죽인다”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또, 아름다운 미장센이 연출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함께한 류성희 미술감독이 미술을 담당했습니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소품인 파란 난꽃과 푸른 색감 연출이 만나, 푸른 아름다움을 추구해요. 거대하고 치열하게 돌아가는 서울 한복판에서 세 자매의 모습이 시리도록 푸르게 담깁니다.

 

스틸컷을 오만 장 첨부해지고 싶어지니,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물론 10화쯤 되어서 스토리가 산으로 갈 수도, 믿었던 캐릭터가 붕괴될 수도, 갑자기 가히 밤이 침투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용두용미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달려봅니다. 같이 정주행 달리실 분?


*<작은 아씨들>은 현재 tvN에서 방영 중이며, 넷플릭스에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하는 시간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by. 윻


매달 발행일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노가리클럽 채팅방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나의 메시지가 올라옵니다. 던지는 사람은 매달 달라져도, 멘트는 똑같습니다. "정하셨나요." 네, 맞습니다. 바로 뉴스레터에서 무엇을 다룰지 정했는지를 묻는 것인데요. 혹시 이걸 읽고, 저희에게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4번 타자가 매번 홈런을 치고, 천만 배우가 늘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듯이 노가리클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넘쳐흐르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거짓말처럼 "이건 무조건 꼭 소개해야해!" 하는 무언가를 만나는 달이 있는가 하면, 소득 없이 초조함만 더해가는 달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번 달이 특히 그랬습니다. 좋은 콘텐츠들이 제법 있었지만 어쩐지 소개하려고 보면 마음에 딱 들어차지 않아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그러다 문득 <사유의 방>에서 본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반짝하고 떠올랐습니다. 내 얘기를 하라는 듯 말이죠.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마련된 <사유의 방>은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입니다. 처음 국립중앙박물관에 반가사유상만을 위한 전시 공간이 따로 생겼다고 했을 때도 꽤 놀랐었는데요. 고려시대 이후로 반가사유상이 오랜만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단 소식에 더욱 놀랐었습니다. 반가사유상 굿즈가 나왔는데, 심지어 매진? 부처님도 이 광경을 보시면 좋은 의미로 '나무 관세음보살...'을 읊조리시지 않을까 싶었달까요. 전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시의 적절한 마케팅과 BTS 효과가 적절한 시너지를 낸 것이겠거니 하고 조금 얕잡아 봤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고 나니 이런 마음을 가졌던 것조차 아둔한 중생의 어린 마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유의 방을 향해 가는 길은 어슴푸레 어둠이 깔린 낯선 오솔길을 걷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문명의 밝은 빛은 저 멀리에 있고, 머리 위로 뜬 이름 모를 별들만이 밝혀주는 길을 걷노라면 마치 다른 우주에 와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죠. 끝없이 순환하는 물을 벗 삼아 천천히 길을 걸어 들어가면, 어둡고 고요한 사유의 방 안에서 조용히 빛나는 두 반가사유상이 낯선 이를 맞이합니다. 

저 멀리 있는 반가사유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멀고 높게만 보이던 반가사유상은 차츰 낯선 중생과 눈높이를 맞춰옵니다. 실제로 사유의 방은 반가사유상에서 멀어질수록 낮아지는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요. 반가사유상을 따라 천천히 주위를 돌다 보면 달라지는 높이감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시야를 느낄 수 있어 놀라웠습니다.
 
반가사유상이라는 이름은 상이 취한 자세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흔히 '가부좌'라고 부르는 '결가부좌' 자세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를 반가라고 부르는데요.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반가사유상이라고 합니다. 한쪽 뺨에 손가락을 대고,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반가사유상은 그 자체로 해탈과 번뇌 그 가운데 있는 수행자와 보살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요.  당장에라도 나머지 다리를 접고, 수행을 계속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긴 깨달음 끝에 마저 접은 다리를 풀고 진리를 전파하기 직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사유의 방 입구에 적혀있던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말이 관람 내내 관람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사유'는 생각할 사자에 생각할 유자를 씁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내내 반가사유상과 그 시간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한참을 머무른 날이었습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곱씹기보다 당장 닥쳐오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에 익숙한 현대인의 삶에서 사유의 방이 주는 사색의 시간은, 어쩐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반가사유상은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나를 핑계 삼아 바쁜 마음을 잠시 쉬어가면 그마저도 좋은 사유의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하늘이 높고 맑은 가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남산타워가 보이는 아주 크고 멋진 액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 가을을 핑계 삼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반가사유상과 함께하는 사색의 시간을 위해 나들이를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 국립중앙박물관 운영시간 10:00 ~ 21:00 (유료 기획 전시 제외 관람료 무료)

새 시대의 시작 -희망 편-

영화 <킹스 스피치> by.슬


‘God save the queen’


영원할 것 같았던 영국의 국가 제목이 ‘God save the king’으로 바뀐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공교롭게도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 며칠 전에 영화 <킹스 스피치>를 감상했는데요. 영화에 훗날 엘리자베스 여왕이 될 꼬마 소녀가 나오기 때문에, 서거 소식이 한층 더 묘하게 다가왔답니다.


<킹스 스피치>는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의 실화를 담은 이야기예요. 조지 6세는 선왕의 둘째 아들로, 어릴 때부터 언어 장애를 앓았다고 해요. 왕자 시절(당시엔 ‘요크 공작’이라고 불렸습니다) 연설을 해야 할 순간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말을 심하게 더듬어 청중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죠. 그는 멀끔한 형과 대비되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다행인 점은 그의 곁에 현명한 지지자가 있었다는 건데요. 아내가 찾아낸 호주 출신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 그는 그동안 어려워서, 부끄러워서 삼키기만 했던 소리들을 힘껏 내뱉기 시작합니다. 혀를 튕기고, 창밖에다 악을 쓰고, 때론 화를 못 이겨 로그에게 억지를 부릴 때도 아내인 엘리자베스는 그와 함께했어요. (네, 이 공작 부부를 콜린 퍼스와 헬레나 본 햄 카터가 연기합니다. 짜릿한 미모 합!)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고요하면서도 길게 이어집니다. 히틀러의 연이은 유럽 국가 침공에 결국 전쟁을 선포한 영국.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잠식된 국민들에게 희망과 단결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조지 6세가 마이크 앞에 섭니다. 불시에 튀어나오는 자음 부스러기들을 목뒤로 삼켜내며, 단어 하나하나 꾹꾹 눌러 내뱉는 연설은 자연스럽게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실제로 이 연설은 영국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고 하는데요. 이는 조지 6세의 이후 행보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는 버킹엄 궁전 정원에 폭탄이 떨어졌는데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킨 왕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국민들처럼 음식 배급을 제한받았고, 난방이 안 되는 궁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선 선대 왕이 ‘왕실의 위상은 밑바닥이 됐고 이제 광대와 다름없다’고 자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에 (당시) 요크 공작은 ‘왕실이 아니라 회사죠’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마케팅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지만, 절망한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긴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70년간 재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인들의 마음에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요?


찰스 3세가 즉위와 함께 왕세자실에서 함께 일했던 100여 명의 직원들을 해고했다는 기사를 보며 한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합니다. 불경하게도 남의 나라 국가 제목을 불퉁한 표정으로 쳐다보게 되네요. 지금 필요한 구호는 ‘God save the people’ 같아서요.

내입엔영
스우파 처돌이를 처돌게 한 허위 매물 by. 희

<퀸덤>이 잘 되니 <킹덤>을, <미스트롯>이 대박을 치니 <미스터트롯>을. 여자 예능으로 테스트해보고 성공하면 더 디밸롭해서 남자 예능으로 나오는 꼴을 보며, 제발 <스트릿 우먼 파이터>만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심지어 <스맨파>에 출연할 크루를 선발하는 프리-프로그램 <비 앰비셔스>로 발판을 만들어 아주 체계적으로 진행했더라고요. <킹덤>에 출연할 남자 아이돌을 선발하기 위해 <로드 투 킹덤>을 선 방영 했던 것처럼요. 방송국 놈들은 왜 모르는 걸까요? 앞선 프로그램들이 잘된 이유는 ‘여자들이 나와서’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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