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차담회 리뷰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2부
『영문 조판 가이드북』 출간 《내가 좋아하는 한 글 전시》 참여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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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년으로 열리는 AGTC를 쉬어가는 올해 한글날에는 ‘차와 함께 한글과 글꼴을 이야기하는’ 차담회를 열었습니다. 10월 5일 플랫폼P에서 글꼴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UX/UI 디자이너가 모여 글꼴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먼저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연구원 조두경이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출시 소식을 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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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는 잡지 『마당』의 제호 레터링을 바탕으로 〈AG 초특태고딕〉의 너비를 줄인 글꼴입니다. 글자의 너비는 좁아졌지만 굵은 획과 무겁고 강한 인상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를 실험했습니다. 가로 폭이 좁아진 대신 글자의 위아래로 남는 공간을 십분 활용했고, 좁은 너비에 효과적인 글자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특히 섞임모임꼴이나 쌍닿자 계열의 공간 분배가 까다로웠다고 전했습니다.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개발기의 이전 이야기는 따옴표레터 8호와 AGTI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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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화면용 글꼴을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디지털 환경은 스마트 워치부터 대형 전광판까지, 눈과 화면의 거리와 화면의 크기도 천차만별입니다. 종이보다 화면으로 정보를 보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화면에 적합한 글꼴에 대한 요구도 많아졌습니다. 인쇄 환경과 달리 개발 환경에서 글꼴이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어떤 개발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지, 또 화면에 출력되는 상황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기존 글꼴은 개발자들이 필요한 사양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글꼴 사용에 불편함을 느낀 일부 UX 디자이너는 오픈소스 글꼴을 활용해 직접 글꼴을 제작했습니다. 디자이너 길형진의 〈Pretendard〉(이하 프리텐다드)와 디자이너 윤병선의 〈SUIT〉(이하 수트)가 그 예입니다.
〈프리텐다드〉와 〈수트〉가 진행된 배경과 세부적인 작업 내용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본고딕〉은 중립적인 인상의 다국어를 지원하는 오픈소스 글꼴로, 발표된 이래 수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많은 UI 디자이너 역시 〈본고딕〉을 즐겨 사용하지만, 〈본고딕〉으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선 수많은 조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디자이너와 개발자와의 언어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과 넉넉하지 않은 일정 등의 이유로 섬세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반영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길형진과 윤병선은 〈본고딕〉의 이런 UI적 사용성이 크게 떨어지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본고딕〉을 개조해 별도의 추가적인 조정 없이 높은 완성도를 낼 수 있는 UI용 글꼴을 제작했습니다.
두 디자이너는 〈본고딕〉의 한글에 각자 더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한 로마자와 기호활자를 섞어 〈프리텐다드〉와 〈수트〉를 제작했습니다. 두 글꼴에서 공통으로 조정된 부분 중 첫째로, 언어 간 글리프의 크기 비율과 정렬을 재조정한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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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꼴 디자이너는 각 글자들의 속공간 비율을 중요하게 보는 편입니다. 따라서 오밀조밀한 구조를 가진 한글과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진 로마자의 속공간 크기를 비슷하게 맞추다 보니, 한글에 비해 로마자의 크기를 작게 그리게 됩니다. 〈본고딕〉도 마찬가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한글이 로마자에 비해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덧붙여, 같은 언어권의 글꼴이라도 각자 그려진 크기는 모두 다릅니다. 같은 포인트(pt)에서도 각 글자 공간을 어느 정도로 활용했는지, 또 글자 속공간의 크기와 균형에 따라 크기 차이가 납니다. 〈본고딕〉과 〈Apple SD 산돌고딕 Neo〉를 비교해 보면 〈본고딕〉이 조금 더 크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프리텐다드〉와 〈수트〉 모두 〈Apple SD 산돌고딕 Neo〉의 한글 크기와 비슷하게 줄여 한 줄 안에 로마자와 한글이 비슷한 크기로 채워져 보이도록 조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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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한글과 로마자를 정렬할 때 한글의 중앙에 위치하지 않고, 중상단의 시각흐름선을 맞추고자 한글의 중심보다 조금 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숫자와 문장부호는 라틴에서 비롯된 글리프로 로마자의 높이와 획 굵기가 그대로 반영되고 로마자의 위치와 맞도록 그려집니다. 따라서 숫자와 문장부호 등의 기호도 한글의 중심보다 조금 위에 위치하게 됩니다. 물론 이 방법이 원칙이거나 정답은 아닙니다. 한글과 높이를 맞춰 로마자를 크게 그릴 수도 있고, 문장부호나 숫자도 한글에 우선적으로 어울리도록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라틴어권 사람이나 글꼴 디자이너의 눈에는 다소 어색하고 완성도가 떨어져 보여 적당한 크기와 위치로 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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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로마자, 문장부호를 조정한 〈프리텐다드〉와 〈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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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텐다드〉와 〈수트〉에서는 기호활자의 정렬을 한글의 중앙에 맞게 조정했고, 크기도 한글과 좀 더 어우러지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언어 간 크기 비율을 맞춘 후 글자의 정렬도 중앙에 맞게 재배치함으로써, 영문에 맞게 잡힌 레이아웃에 한글이 함께 적용되어도 글줄이 흐트러지지 않아 한 층 더 사용이 편리하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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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앱에서 한글 정렬이 틀어진 모습, ©프리텐다드 발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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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글자의 외부 공간을 조정한 내용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따옴표레터 10호와 agtc.kr로 전달됩니다.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도 화면용 글꼴로 〈AG 최정호 민부리 스크린〉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AG 최정호 민부리 스크린〉의 자세한 연구 상황은 온라인 기록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화면용 글꼴이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화면용 글꼴 개발에 있어서 글꼴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읽어주신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여러분 남겨주신 소중한 경험과 의견은 〈AG 최정호 민부리 스크린〉이 더 좋은 화면용 글꼴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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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는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를 출시한 뒤,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를 직접 사용해 본 두 디자이너의 후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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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 한만오
기존 〈AG 초특태고딕〉은 네모꼴 내에 꽉 차 있고 무게가 느껴지는 활용성 높은 글꼴입니다. 다른 두꺼운 글꼴에서 보이는 뭉개짐이나 위태롭게 획끼리 맞닿는 부분이 없어서, 주로 타이틀 제목 목적으로 크게 세팅해서 명확한 인상을 주기 위해 활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글자가 꽉 차 있기 때문에 판형 내의 제한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글자를 넣기 위해서 자간을 줄이면, 글자의 균형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글자 크기를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는 그러한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AG 초특태고딕〉의 인상을 유지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고, 강한 인상을 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 디자이너 박민수 (안그라픽스 출판부 팀장)
기존 〈AG 초특태고딕〉의 기본적인 인상이 잘 유지되면서 좁은너비의 꼴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AG 초특태고딕〉이 가진 넓은 꼴이 조판에서 헐렁한 느낌을 줄 때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보완되어 보이며, 더욱 적극적으로 본문용 사용이 가능해 보입니다. 물론 두껍기 때문에 최소 크기의 제한은 있겠지만, 본문용으로 사용 시에는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과는 다르게 글꼴 크기가 작을수록 좋았고 양 끝 정렬일 때 보기가 좋았습니다. 보통 오른 끝 흘림 단락 세팅을 선호하는 분위기에서 양 끝 정렬이 편안한 조판 세팅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이 글꼴이 가지는 또 다른 장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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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디자이너 모두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가 좁아진 너비에서도 〈AG 초특태고딕〉의 굵은 인상을 유지하고 있어 공간 활용에 용이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AG 초특태고딕〉에 비해 220unit 좁아진 너비에서 균일한 회색도와 두꺼운 굵기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데요. 〈AG 초특태고딕〉과 다른 방식으로 구조를 풀이한 몇 가지 예시와 함께 발전 과정을 짧게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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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초특태고딕〉, 〈좁은너비 Beta〉,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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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 때, 째’ 처럼 세로획이 많은 쌍닿자의 가로 모임꼴의 경우, 좁은 너비에서 〈AG 초특태고딕〉처럼 첫 닿자의 가로 획을 띄우면 작게 봤을 때 회색도가 많이 떨어졌고, 가로 줄기가 극도로 짧아져 글자의 판독성도 부족했습니다. 틈을 주지 않고 가로 획을 한 줄로 이어 이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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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초특태고딕〉, 〈좁은너비 Beta〉,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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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인 모임꼴 ‘ㅝ,ㅞ’ 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AG 초특태고딕〉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며 너비를 좁히려고 하니 홀자의 곁줄기와 가로줄기가 지나치게 짧아졌습니다. 그로 인해 첫닿자의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어색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곁줄기와 ‘ㅜ’의 가로줄기를 서로 겹치게 하되, 획의 단차를 이용해서 형태를 구별했습니다. 이로 부족한 공간을 확보해서 획의 굵기와 인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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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초특태고딕〉, 〈좁은너비 Beta〉, 〈AG 초특태고딕 - 좁은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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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꼴을 개발하면서 ‘꽤’ 계열의 글자의 공간을 다루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기존 〈AG 초특태고딕〉에서도 ‘ㅗ’의 세로줄기가 아슬아슬하게 ‘ㄲ’ 틈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좁은 너비에서는 똑같은 위치에 세로줄기를 두면 작게 봤을 때 뭉치게 되면서 판독성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왼쪽 ‘ㄱ’의 세로획을 최대한 왼쪽으로 벌리면서 ‘ㄲ’과 ‘ㅗ’의 세로줄기가 분리돼 보이도록 유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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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안그라픽스에서 『영문 조판 가이드북』을 출간했습니다. 책은 기본적인 지식부터 시작해, 라틴알파벳 조판을 할 때 사람들이 자주 실수하는 부분의 개선 사례 및 해외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어 기초부터 심화까지 단계별 성장을 유도하는 구성입니다. 특히 영문과 국문의 섞어짜기, 한국어판으로 영어판 책을 만들 때의 주의해야 할 점과 타이포그래피 뒷이야기까지,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다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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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산돌에서는 한글날을 기념하여 《내가 좋아하는 한 글》 전시를 개막했습니다.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연구원들도 전시에 초대받아 참여했습니다. 이미지 좌측 상단의 ‘쉘’은 연구원 이주희의 작업으로 다양한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의 기능성을 표현했습니다. 우측 상단의 ‘집’은 연구원 조두경의 집으로 향하는 두근거림을, 좌측 하단의 ‘새’는 연구원 박한솔이 좋아하는 동물을 표현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어떤 이유로 해당 글자를 골랐을지 추측해보는 것도 전시의 관람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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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따옴표레터는 어땠나요? 후기를 남겨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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