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부터 덕후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어요. 10대 때는 애니메이션부 소속이어서 그림 그리고 소설 쓰기를 했고요. 무협소설 팬이기도 했고, 노래도 자주 불렀습니다. 그때 타로카드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해오고 있네요. RPG 게임에도 좀 빠져 있었어요. 또 각종 덕질도 했고요. 30대에 들어와서는 댄스를 시작했는데, 살사 동호회에도 들어가고 훌라 댄스도 배웠어요. 외국어 공부도 취미였고, 전통주를 좋아해서 전통주 모임 같은 걸 운영해 보기도 했어요. 요즘에는 재봉을 꾸준히 배우고 있고요. 최근에 치앙마이 자수를 처음 배웠는데 너무 재밌어서 그것도 아마 앞으로 계속 취미로 가져갈 것 같습니다. 

🦥 정말 화려한데요. (웃음) 각각의 취미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물론 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어떤 계기로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시는 것 같으세요?

제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게 적게 분비되는 사람이래요. 근데 제가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자극을 엄청 추구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검사를 해봐도 자극 추구가 98이나 100이라고 나오는 사람이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평정심을 잘 찾는 편이라 저를 차분한 사람이라고 보는 분들도 많아요. (웃음) 근데 그래서 오히려 자극이 항상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야 잘 흔들리고 계속 변화의 여지가 생기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새로운 체험을 찾게 되고, 이게 재밌다 싶으면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취미로 가져가게 되는 것 같아요.

🦥 그럼 원데이 클래스 같은 거 자주 들으세요?

네, 실제로 1회에 그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 듣다 보니, 어떤 걸 시작할 때 허들이 유난히 낮으신 것 같아요. 저는 그것도 또 다른 능력이라고 봐요. 저는 정반대거든요. 아무리 취미라도 시작하기 전에 너무 많은 걸 재고, 많이 망설여요. 근데 시작을 한 번 하면 좀 오래 하는 편인 거죠. 오래 할 걸 찾다 보니까 더 시작하는 허들이 높은 것 같아요. 내가 조금이라도 못할 거 같으면 시작을 잘 안 해요. 그래서 타마라님처럼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 분이 참 신기해요. 

아마 저는 여태까지 나오신 분들에 비해 취미의 범위를 굉장히 넓게 잡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근데 그 이유는 이걸 계속해야 된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 번 하고 말 수도 있고, 거기에 대한 의무감을 스스로 별로 부여하지 않다 보니까 '아니면 말고' 이런 느낌인 것 같아요. 

🦥 꼭 취미의 정의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극을 추구하시는 성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제가 오래 하는 성향인 이유가 안정성을 추구하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현대무용 배울 때도 원래 다니던 센터가 아닌 다른 센터 가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워했고, 하다못해 같은 센터 안에서 내가 잘 모르는 선생님 수업을 가는 것도 엄청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가요. '나한테 안 맞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 

저는 처음 훌라 댄스를 배울 때도 선생님을 계속 바꿔가면서 배웠어요. 제게는 자극 추구하는 면들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걸 안 해보면 기회비용을 놓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 저는 오히려 새로운 걸 했을 때 내 시간이 낭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내가 잘 알던 것 대신 모르는 걸 했을 때의 에너지, 시간 소모가 싫은 거죠. 어떤 거에서 효율을 찾느냐는 또 사람마다 다른 것 같네요.

그렇죠. 저는 가장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인풋을 갖고 오고 싶다는 니즈가 엄청 큰 사람인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걸 하면 그 시간에 훨씬 많은 것들을 알게 될 수 있잖아요. 

저는 항상 그래요. 계속 새로운 걸 하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절대 단골이 되는 기질은 아니에요.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커뮤니티 덕후기도 하거든요. 한 달에 커뮤니티 대여섯 개 하는 달도 있었어요. 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좀 대화 주제가 항상 한정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커뮤니티에 가면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잖아요. 어렸을 땐 그렇게 새로운 자극이 계속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좀 했었어요. 

🦥 근데 본업이 변호사시잖아요. 제가 느끼기에 변호사라는 본업은 굉장히 안정 추구형인 것 같거든요. 본업은 성향과 잘 맞는 편이신가요? 

그래서 본업에 있어서도 저는 점차 저한테 맞는 쪽으로 갔던 것 같아요. 변호사도 굉장히 여러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에요. 처음에는 로펌으로 들어가서 소송을 했었어요. 근데 저는 좀 빨리빨리 대응하고 변하는 걸 좋아하는데 소송은 길면 막 몇 년씩 하잖아요. 그게 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다음 번에는 스타트업 쪽으로 갔어요. 스타트업은 좀 검증이 안 된 부분에서 위험한 걸 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회사에서 원하는 거랑 저랑 잘 맞았어요. 그렇게 저한테 성향에 맞는 쪽으로 계속 옮겨갔던 것 같아요. 

🦥 취미를 하다 보면 원래도 알았지만 '역시 난 여기서도 이런 사람이군' 싶은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현대무용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춤의 이미지는 좀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느낌? 그래서 색다른 걸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초기에는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또 이 안에서도 나는 맨날 배우던 선생님, 듣던 장르, 듣던 곳에서만 계속 하고 있더라고요. '나는 여기서도 안정 추구형이네' 싶었죠. 그래서 새로운 장르도 잘 도전해 보지 못하고, 바운더리를 벗어나려면 매번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근데 그게 또 장점이 되잖아요. 엄청 딥하게 들어갈 수 있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장점인 거죠.

제가 요즘에 취미생활을 오래 하다 깨달은 게 있는데, 저 같은 사람이 뭔가를 길게 하려면 못 해야 해요.

🦥 너무 신기해요. 그건 왜 그렇죠?

왜냐하면 빨리 잘하게 되면 이게 금방 식어버리거든요. 잘하는 상태로 그냥 있는 거는 재미가 없어요. 성장하는 게 재미있는 거죠. 춤은 제가 못하는 걸 너무 잘 알아요. 댄스 스튜디오에는 사방에 거울이 있거든요. 특히 군무면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얼마나 못하는지 보인단 말이에요.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일단 적응만 되면 나는 이제 지금의 나보다 잘할 여지밖에 없는 거죠. 내가 앞으로 이만큼이나 이 취미를 즐길 수 있다는 게 보여서 더 길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저는 잘하지 못하면 절대 못 견디거든요. 원래 인정 욕구가 큰데, 취미로 한다고 해서 그게 놓아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현대무용 5-6년 차 때 될 때까지도 초급반에 머물러 있었어요. 좀 더 올라가 볼 수 있었는데 무서웠던 거죠. 뭐든 레벨업을 하려면 그 레벨업 된 반에서 못하다가 점점 잘하는 게 맞잖아요. 그 과정을 못 견뎠어요. 취미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싫기 때문에 항상 그냥 제가 잘 알고 잘하던 데에서만 놀고 싶었던 거예요. 진짜 저랑 정반대네요. 

🦥 타마라님이 정의하는 취미란 무엇인가요?

일단은 '목적성 없이 과정이 재밌어야 된다', 그게 조건 1이고요. 두 번째 조건은 '세 번 이상 해봤고 앞으로 해볼 용의가 있다' 그 두 가지인 것 같아요.

🦥 그러니까 약간의 지속성과 그 과정의 중요성. 이렇게 요약될 수 있겠네요. 그럼 타마라님은 모든 사람이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사실 다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각자의 정의가 달라서 그렇지, 일단 제 기준에서의 취미는 다들 갖고 있지 않을까요? 하다못해 멍 때리기라도요.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느라 내가 발산하고 싶어 하는 어떤 욕구를 자제하고 있었던 걸 회복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게 취미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너무 에너지를 많이 써서 그 에너지를 회복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저 같은 사람한테는 자극이 너무 없었어서 자극을 충전하는 시간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내가 나로서 있기 위해서 소모되었던 것들을 다시 회복하는 활동을 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본업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나의 어떤 부분은 소진되거나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걸 취미에서 푸는 거죠. 

그리고 뭔가를 좋아해서 그 활동을 하는 사람한테서는 항상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너무 좋거든요. 그 얘기를 했을 때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말도 막 신나게 하고...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아서 취미라는 것이 주는 그 힘이 짧든 길든, 잘하든 못하든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저도 그래서 항상 여기 나오시는 분들의 유난히 반짝거리는 눈빛과 잔뜩 적어 오신 무언가를 계속 보시면서 말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만해지곤 해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취미 샤브샤브러'로서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아이돌 덕질 저도 얕게 하지만 저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분들도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누굴 열렬하게 사랑하는 것도 에너지와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거든요. 특히 오프라인 행사를 가고, 사진도 찍고 보정까지 하시는 것도 대단하구....... 세 분도 사랑이 많고 귀여우신 분들 같네요 ㅎㅁㅎ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 왈가왈부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봅니다🥰 (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