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현녕입니다.

요즘 매일 밤 악몽을 꿉니다.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기 어려워 유튜브 채널을 여기저기 돌아 다니다 잠들기를 반복합니다. 오춘기가 찾아온 듯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얼 해야 할지 여전히 어렵습니다. 안 해도 될 고민까지 미리 하는 탓일까요? 

독자님은 잠에서 자다 새벽에 깨면 어떻게 다시 잠에 드시나요. 불면이라곤 모르고 살았는데 역시 마음 건강이 중요한가봅니다. 

오늘 밤, 숙면하세요!

김의 빨간 스웨터

‘물건에는 죄가 없지, 애틋하게 사랑했던 우리가 헤어졌을 뿐.’

이 : 언니, 그 빨간 스웨터는 얼마나 입었어? 소매가 많이 닳았네.

김 : 오 년은 넘었어. 매년 겨울에 옷을 하나씩 사들여도 꼭 입게 되는 건 이 옷이야. 분명 자주 손이 가는 옷이 있어. 옷장 귀신이 이 옷에만 불을 켜서 보여주는 것 같아.

이 : 맞아. 옷걸이가 부족할 정도로 옷은 넘쳐나는데 손이 가는 것만 입어. 근데 그 스웨터는 어디서 산거야? 

김 : 선물 받았어. 크리스마스 선물. 남자친구가 준 건데 사실 비싼 선물도 내 취향 아니면 몇 번 안 입게 되잖아. 다 똑같이 생긴 상의도 미세하게 내 체형에 따라 다른 거 알지? 근데 이건 어디 맞춤으로 산 것처럼 어깨선이며 소매 길이까지 딱 내 거야. 스웨터인데 부해 보이지 않는 핏에 이 스웨터 하나 때문에 겨울이 기다려지기도 한다니까.

이 : 아니 그러면 기분이 어떨까?

김 : 뭐가?

이 : 언니 전남자친구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언니를 봤어. 근데 ‘어라? 내가 그때 사준 스웨터를 오 년이 지난 아직도 입고 다니네?’ 물론 아직 미련이 남았으리라곤 생각하지 않겠지.

김 : 그래, 그건 너무 갔지.

이 : 알아. 아니 근데 또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언니는 생각해봐. 언니도 사귀면서 선물 많이 했을 거잖아. 근데 그게 스피커, 이어폰 이런 거랑 옷은 또 느낌이 달라. 옷은 온종일 살에 닿는 물성이라 그런 걸까? 내 몸을 품는다는 것, 소중한 곳을 가린다는 것, 나를 보호한다는 것 뭐 그런 거 말이야.

김 : 오~ 너 지금 의미부여 좀 심한데?  난 실제로 전애인이 내가 준 옷이나 신발을 아직 걸치고 다니는 걸 보면 처음엔 ‘오?’ 싶다가도 ‘에이, 뭐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었나보네. 쟤는 취향 한결 같네’ 정도로 지나갈 거 같아. 지나가버린 시간에는 힘이 하나도 없더라. 물건에 무슨 죄가 있겠어. 헤어졌다고 버리는 것도 엄연히 환경오염 아니냐고.

이 : 오~ 언니 대자연 지구촌세상 환경까지 걱정해? 의미부여 좀 심한데?

김 : 애틋하게 사랑했다 헤어진 연인들이 서로 주고받은 물건이 게다가 옷이나 신발이나 장신구나 세상에 그런 게 얼마나 많겠냐. 다 그냥 다음 사람한테 모른 척 숨기기도 하면서 아끼니까 입고, 신고, 걸치고 하는 거지 뭐. 물건에는 죄가 없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헤어졌을 뿐이야.

이 : 한 번 묻은 추억이 그 옷에서 아예 사라지는 것도 아닐 걸?

김 : 추억마저 사랑해야지. 아니다, 추억보다는 그냥 그 옷이 좋아서 입는 거야. 그냥 그런 걸로 하자.

이 : 에이. 자기 마음이 뭔지도 잘 모르는구나. 그래, 스스로를 속이며 살 때가 편하지. 안 그래 언니?

김 : 오~ 너 의미부여 또 심한데? 이 스웨터 하나로 무슨 스스로를 속이는 것씩이나 생각하니? 일요일에 뭐해 너. 겨울옷이나 좀 사러 가자. 입을 게 없네.

김은 과연 그 스웨터의 원단과 사이즈가 꼭 자기에게 맞아서 찾게 되는 것인지, 추억의 향기를 자꾸만 맡고 싶었던 것인지 처음으로 스스로 질문했고 입을 옷이 없다며 겨울옷을 잔뜩 사고는 그 해 겨울부터 스웨터를 찾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이듬해 겨울, 김에게 빨간 스웨터는 얼마나 손에 잡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