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육군사관학교를 찾았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때문입니다. 이들은 “육군사관학교는 조국을 되찾고 겨레를 살리기 위해 몸과 생명을 바쳤던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없기에 육사가 2018년 수여했던 수치스러운 명예 졸업증서를 되돌려준다.”고 말했습니다. 독립운동가를 기리던 육군사관학교는, 어쩌다 ‘수치스러운 곳’이 되었을까요?

육군사관학교는 지난 8월, 교내 독립군, 광복군 5인의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여론의 비판이 심해지자 육사는 홍범도 장군 흉상만 교외로 이전하겠다고 밝혔으나, 논란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고요. 이번호 폴라리스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다룹니다. 이전을 주장하는 이유들에 대해 팩트체크하고, 현 정부 들어서 일어난 역사 왜곡 시도들을 짚었습니다. 더 나아가 흉상 이전 시도 배후에 있는 윤 정부의 ‘뉴라이트적 역사관’에 대해 지적한 후, 이전 정권들의 역사왜곡 시도들에 대해서도 살폈습니다.

정부의 왜곡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자랑인 평민 의병장·대한독립군 대장·북로정일제일군 사령관 홍범도가 부관참시당했다. -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역사단체 공동 성명서 中 -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결정에 이르기까지 육군사관학교 뿐만 아니라 여러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달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은 걸 미루어 보아, 흉상 이전이 정부 차원의 움직임으로 계획됐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한겨레 기사는 국방부가 발표한 성명문이 ‘허위와 무지의 소산’, ‘역사에 대한 몰이해’라고 비판하는데요. 기사가 지적하는 ‘몰이해’와 ‘무지’는 총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자유시 참변에 참여하고 무장 해제에 찬성했는가? No.

자유시는 러시아 내전 당시 잠시 만들어진 극동 공화국에 소속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독립군은 이 내전에 ‘손님’과 같은 입장이었고, 사망자를 낳았던 ‘무장 해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독립군에게는 없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2) 빨치산으로 활동한 기간은 독립운동 업적이 아닌가?

빨치산이란 말의 어원부터 정립해야 합니다.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Партизан)에서 온 외래어로, 비정규군이란 뜻입니다. 1919~22년 당시, 빨치산은 ‘독립군’ 혹은 ‘의병’을 지칭했는데요. 이후 등장한 ‘항일 빨치산(공산주의 무장 부대)’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반공’, ‘빨치산’ 단어에 머물러 있는 국민들의 역사 인식 수준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3) 1927년, 소련 공산당 입당 기록이 문제?

홍 장군은 59세의 나이에 공산당에 입당합니다. 전문가들은 60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고려한 입당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김일성의 ‘공산당’과 당시 소련이 표방한 공산당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요한 지점은 당시 소련 공산당이 독립운동의 우군이었고 많은 독립운동가가 소련과 제휴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는 겁니다. 실제로 레닌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을 위해 금화 200만 루블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이중 금화 60만 루블이 지급됐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범도>를 쓴 방현석 작가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와 그의 동지들이 모든 것을 바쳐 지키고 되찾은 이 나라가 정말 이래도 되는가. 그들이 남긴 나라에 사는 우리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발표 후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국방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국방 전문 기자들은 국방부의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며 거친 설전을 벌였죠. 이 기자회견 영상은 온라인에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첨예하게 탐구하고 논해야 할 역사 문제를 정부는 왜 "어설프게 역사적 식견도 없이" 발표했는지, 그 이유에 귀추가 주목되기도 했죠. 

이번 발표가 기시감이 드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역사 문제를 아무런 치밀함과 사회적 합의 없이 발표하고, 그에 따른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에서요. 지난 7월, 경상북도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는 한달동안 무려 3개의 동상이 지어졌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백선엽 장군,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주인공 입니다. 하지만 동상이 세워진 명분에 대해선 관광객도, 기념관 측도 모릅니다. 오로지 경상북도가 사업을 이어받아 추진했다는 것만 알려져있죠. 

경향신문은 해당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합의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설립 찬성의 목소리가 더 큰 데 따른 일시적 결과 라고 분석합니다. 왜 일시적 결과일까요? 기사는 그 이유를 경상북도 이철우 지사의 말에서 찾습니다. "(선진국의 영웅 동상의 경우) 공이 크고 과가 작으면 공을 위주로 그렇게 동상을 많이 세운다." 공과 중 무엇이 더 큰가를 평가할 기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논리대로라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평가를 바꿔도 문제될 것이 없다" 는 것이죠.

일각에선 이번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두고 "역사논쟁이 아니라 역사를 재료로 삼은 정치투쟁"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성급하게 이전을 발표한 데에는 총선을 앞둔 지지층 결집 도모를 위해서라고 말하죠. 역사 수정의 수단으로 가장 효율적인 것은 기념관, 동상 건립입니다. 어떤 것이 역사가 되는 데는 사회적 의미를 매개하는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보수, 진보 정권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가 독립운동투쟁의 영웅으로 평가해온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철거 이전 위기에 처했고, 공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들의 재평가는 새로운 동상 건립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히 지지층 결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논란의 이면을 첨예하게 살펴보려면,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글 보러 가기

이런 일련의 사건 이면에는 ‘뉴라이트’라는 역사관이 있습니다. 뉴라이트는 2004년 동아일보에서 나온 “’뉴라이트’를 잡아라”라는 칼럼을 통해서 소개되기 시작했는데요. 이 칼럼은 뉴라이트가 본격적으로 주류 정치계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칼럼의 저자는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고요.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사례처럼, 현재 윤석열 정부에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인사들이 주요 결정권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영호, 김광동, 이배용, 정승윤, 강규형, 전희경, 나종남, 김문수 등이 있죠. 특히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의 경우 이 이유로 인해 임명부터 상당한 논란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뉴라이트는 말 그대로 ‘새로운 우파’라는 뜻인데요. ‘새로운 우파’, 즉 ‘신보수주의’는 1960년대 미국‧영국에서 일어났던 ‘신좌파(New Left)’ 운동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습니다. 신자유주의자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대표적 인사고요. 이들은 사회주의를 배격하며 시장을 강조하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뉴라이트가 등장했는데요. 당시 참여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햇살정책’을 펼치고, 국가폭력 사건들을 진상규명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죠. 뉴라이트 세력은 이에 대한 반발을 동력 삼아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뉴라이트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1948년 건국론’을 이념적 틀로 제시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일본 제국이 조선을 식민 지배하면서 근대 제도와 자본을 투자해 조선인이 조선 왕조 시절보다 더 잘살게 됐다는 주장이에요. 일제강점기가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는 거죠.

‘1948년 건국론’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다는 주장이에요.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이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따르고,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고 보고있는데요. 이중 임시정부가 출범한 1919년이 아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1948년이 진짜 건국 시점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해석하게 될 경우 임시정부에서 운영했던 광복군이나 임시정부 바깥에서 활동했던 독립군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사실이 부정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사례 역시 이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겠죠.

🧭글 보러 가기

뉴라이트적 역사관이 공공연히 정치인의 입에 오르고, 역사 왜곡이 자행된 건 비단 이번 정부만의 일이 아닙니다. 뉴라이트 논란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도 있었어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친미일, 반공, 친독재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뉴라이트가 이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뉴라이트 사관을 반영한 국정 교과서 편찬을 시도했죠.

예컨대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건국 60주년”을 강조하며 건국 후 60년을 ‘성공과 발전의 역사’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의 씨앗을 ‘건국의 영웅’인 이승만에게서 찾았죠.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적 업적을 부각하면서 유신 체제는 산업화를 위해 불가피했던 일로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1948년을 원년으로 하여 한국 현대사의 밝은 면만을 강조하는 ‘승리사관’은 일제강점기의 핍박과 독재정권기의 억압을 역사에서 지워버립니다.

이명박 정권기에 ‘좌편향’된 기존 교과서를 바로잡겠다며<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낸 뉴라이트 학자들은 박근혜 정권기엔 국정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헌정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치켜세우는 반면, 5.16 군사 쿠데타와 1965년 한일협정 등의 과오에는 대의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을 달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국정 교과서는 사실상 무산되었으나, 윤 정부에서도 관련 뉴라이트 인사들이 활동 중입니다. 실제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주도한 나종남 교수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집필진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도 했죠.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행해진 뉴라이트적 역사 왜곡은 한국 사회를 소모적 논란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대통령 지지율을 올린 것도 아니었고요. 윤 대통령 또한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 후 2% 내린 31%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한국일보의 칼럼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식민지 경험으로 훼손당했던 민족적 정체성의 복원은 역사적 과제다. 복원되는 정체성 구성의 중심에 독립운동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윤 대통령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역사 왜곡을 시도한 지난 정권들이 밟아온 실책의 역사와 함께 독립운동이 한국 역사에서 가지는 위상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글 보러 가기

“우린 적어도 반성하고, 기억하고 있어.”

독일에서 공부할 때, 나치 강제 수용소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수용소로 향했고 그곳엔 독일 친구도 한 명 있었습니다. 수용소를 관람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독일 친구에게 물었어요. “넌 이런 거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 질문을 들은 독일 친구는 잠시 침묵하더니 저렇게 말했다고 해요. 독일은 적어도 반성하고 있다고요.

해묵은 이념 논쟁이 2023년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이런 이념 논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꾸준히 반성하고 곱씹은 독일에서도 이런 논쟁이 계속 된다니, 전쟁과 이념의 여파는 참 길고 끈질긴 듯합니다. 최근 독일에서는 반이민, 독일 국수주의 등을 주장하는 ‘극우 보수 정당’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제가 공부하던 지역에서는 극우 정당 지지율이 무려 34%까지 육박하면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독일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를 보면서 역사란 계속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이렇게도 왜곡되고, 저렇게도 축소된다고 느꼈습니다. ‘객관적 사실’이라 여겨졌던 것도 시대가 지나면서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고요. 그리고 “홀로코스트 추모비가 부끄럽다”는 독일의 극우 정당 정치인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후세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상황에 대입해 봤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 장군 흉상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가 바뀌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먼 훗날, 미래 세대가 기억할 역사는 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내 자식이 일제 강점기에 관해 물을 때, 우리는 적어도 기억하고 곱씹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이들에게 예우를 다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이번 레터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