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목소리를 가다듬어 작업으로 들려주는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보이스
마스크를 쓰고, 직접 대화를 최소화하며 지내다 보면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 목소리가 어땠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죠. 지금 잠깐 시간을 내어 내 목소리가 가진 개성과 매력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창작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나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하고 싶은 말도, 그 말을 꺼내놓는 방식도 모두 다른 우리. 이번 주 0% 레터에서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다듬어 작업으로 들려주는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용기내어 녹음한 첫 곡부터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 음악의 여정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집니다. <믹스테잎> 시리즈는 뮤지션의 진심을 음악과 함께 담는 기획입니다.
유발이 '유발이의 소풍'으로 인디 음악을 하고, 프랑스 유학&공연을 하다가 가수 'MIKA'와 함께 노래 부르고, 현재는 두 아이의 엄마로, 피아니스트로,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 지내는 음악인 '유발이' 입니다. 유발이의 음악은 어디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1 2 3 2 2 3 창문이 열리고 기지개를 켜고 핸드폰을 열고 큰 하품을 하고 아아 봄이 왔네 노란 머그잔에 흰 우율 따르고 내 피아노 위에 달력을 넘기고 아- 봄이 왔네 이어폰을 꽂고 기타 가방 메고 핸드폰을 열고 큰 하품을 하고 하아 봄이 왔네 노란 자판기에 캔커피를 뽑고 늘 같은 정류장 그 버스를 타고 하아 봄이 왔네
Track 1. 무얼 노래하고 싶은 걸까? ‘아, 피아노 전공 하길 정말 잘했어. 관객들은 표정, 손짓, 몸짓, 사람들은 가수의 작은 움직임에 집중하고 반응하고... 보컬은 얼마나 떨릴까. 저 부담감. 정말 대단해. 무대 위 긴장감을 적당히 즐기면서, 보컬의 매력을 제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고. 때로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내 친구 피아노가 앞에 있는데 뭐, 두렵지 않잖아. 피아노 연주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어!’ 몇년 후 피아니스트로 하루 하루 지내던 나는 작은 일탈을 계획했다. 작사 작곡 한 노래를 내가 부르고, 이왕이면 사람들 앞에서 부를 기회를 만드는 것까지 실천에 옮긴 것이다. 우연히 어느 대회에서 상을 받고 수상을 위해 ‘팀 이름이 어떻게 되죠?’ 라는 물음에 망설이다 이렇게 말했다. "유발이의 소풍이요." Track 2. 그렇게 소풍이 시작되었다. 정말 소풍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싱어송라이터’의 길은 생각보다 재미났다. ‘언어’로 표현된 나의 생각들이 ‘음악’을 만나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 하루하루 두근거리고 신나는 모험. 영화 속 주인공들 부럽지 않은 하루하루였다. 소박한 소풍길에 만난 사람들, 그들은 하나같이 개성있고 멋진 사람들이었다. 유발이의 소풍 3집 C'est la vie(2014) <어느날 내게 Me Too> 어느 날 내게 세모가 찾아와서는 내게 말해 넌 참 세모나구나 어느 날 내게 네모가 찾아와서는 내게 말해 넌 참 네모나구나 동글동글동글동글 동그라미가 굴러 와서는 내게 말해 넌 참 동그랗구나 반짝반짝반짝반짝 별님이 내게 말해 넌 참 별거구나 Track 3. 파리에서 살기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에게 다가와 친구가 되었다. 빨간 구두를 톡톡 두드리면 열리는 도로시의 다른 세상처럼 어리숙한 목소리로 무대 가운데 앉아 노래를 부르면, 함께 박수치고 웃고 울고, 꿈같은 시간이 펼쳐졌다. 그렇게 떠난 소풍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한 해, 두 해, 새로움으로 가득찼던 날들이 지나 무대 위 나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져 갈 즈음, ‘전부터 계획되었던 공부’라는 핑계로 프랑스 여행길에 올랐다. 생각만큼 낭만적인 날들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세느강변, 에펠탑이 보이는 광장, 울퉁불퉁 보도블럭 도로를 달리며 자전거와 함께 바라본 구시가지의 야경, 잔디밭에 누워 바라본 낮은 파란 하늘(개똥은 조심). Track 4. Paris, Lyon, London, Southampton, Cambridge, Essen, Hague, Brussels, even Cairo. 나의 은인 ‘음악’은 여전히 나를 도우사, 많은 음악 친구들을 만들어 주었고 그 순수한 영혼들의 보호 아래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음악 여행을 다녔다. 배낭을 메고 혼자 어느 도시에 도착해 준비해두었던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함께 한 그들과 어느새 친구가 되고, 다음 여정을 준비하고. 유발이의 소풍 in 인디 20 인디 20주년 기념 앨범 Part.3 (2015) <어쩌면 안녕(peut-être, Adieu)> 입술에 닿았던 설렘이 손끝에 닿았던 떨림이 가슴 속 스며든 향기에 미소가 머물던 순간이 눈가에 머물던 슬픔이 가슴 속 무거운 한숨이 계절이 떠나는 창가에 조금은 지친 내 모습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 몰라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 몰라 안녕 안녕 안녕 안녕 Track 5. 소풍은 끝났고 자유는 달콤했고 젊음은 찬란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고, 그것을 알았기에 나의 여행은 제법 치열했다. 사막의 밤하늘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을 세고, 알프스 산맥 어딘가 봉우리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 눈보라에 일주일을 갇혀 있었다. 끝나지 않는 낮이 있는 여름 밤, 산등성이가 선명히 비추는 호수에서의 수영,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작아진 빙하, 몇시간 째 같은 풍경의 도로, 쉼 없이 내리는 겨울비, 그리고 사람들. 제법 분주했던 내 삶의 자유시간을 알차게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더이상 이방인일 수 없다. 소풍은 끝났고, 긴 여행에서 배운 용기로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빈 악보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다. 나는 누군가에 기억 속에서 어색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마냥 음악을 다시 쓰는 것이 어색해져 버렸다. 기억나지 않고 기억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돌아옴의 무게와 함께 다시 시작의 설레임과 함께 써 내려가야지. 한 글자, 한 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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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 안에서도 늘 음악과 함께 했는데, 어떻게 입술을 뗘야 하나.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까. 소풍을 마치고 여행을 마쳐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거창한 다짐도, 어른스러운 변화도 없는데. 무얼 써야 하나, 무얼 노래해야 하나. 유발이 EP '?'(2019) <무얼 노래하고 싶은 걸까?> 살며시 사라져도 좋을 내가 이 길에 서있는 이유는 스르르 희미해진 어제처럼 뿌옇게 흩어지지 않고 노래 부르는 이유는 그 이유는 무얼까 그 이유는 무얼까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도 식은 찻잔에 따라 무심한 입술로 삼켜버리는 내게 뭐랄까 무얼 노래하고 싶은 걸까 무얼 듣고 싶은 걸까 Track 6. '계속 음악하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유는 묻고, 답을 찾지는 않기로 했다. 갈 수 있는 길을 걷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그렇게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싱어송라이터가 되기’, ‘언젠가 파리에서 살기’ 보다 더 멋진 꿈, ‘계속 음악하기’. 전보다 더 신중한 척 하는 생각과 함께, 전보다 더 여유있는 척 웃는 마음과 함께. 낯선 도시, 혼자 걷는 밤길에서의 용기보다, 아쉬운 일상을 두고 꿈같은 언젠가를 향해 떠나는 불안함보다 평범한 하루하루 안에서의 수많은 다짐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싱어송라이터’라는 낯선 이름표를 단지 10년이 지나간다. 여전히 어색하고 새로운 아침들을 맞이한다. 두려움도 조금 커지고, 자신감도 제법 작아진 평범한 어른의 모습으로 뚜벅 뚜벅 뚜벅 오늘도 걷는다,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그동안 ‘피아니스트’, ‘작사,작곡가’, ‘싱어송라이터’, ‘누군가의 선생님’, ‘두 아이의 엄마’까지 여러 이름이 새로 생겼지만 나에겐 ‘유발이’라는 귀여운 예명이 있으니 있는 그대로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유발이 EP 마담꾸꾸(2021) <Coucou> Coucou 꾸꾸 Il fait beau ce matin 오늘 아침, 날씨가 좋네 Le soleil me sourit et dit 햇님이 나를 보며 방긋 웃어 Coucou Coucou 꾸꾸 Je dis bonjour papa 난 아빠한테 인사해. 봉쥬 Je dis bonjour maman 난 엄마한테 인사해. 봉쥬 Les jacinthes épanouies me saluent 활짝 핀 꽃들이 나에게 인사하네 (중략) Coucou Coucou 꾸꾸 Coucou Coucou, ça veut dire ‘Salut, ça va?’ 꾸꾸, 잘 지냈니? 라는 말이야 Coucou Coucou, c’est à dire ‘Comment vas tu’ 꾸꾸, 어떻게 지냈어? 라는 말이지 Coucou Coucou, en fait tu m’as manqué 꾸꾸, 사실 널 보고 싶었어 Track 7. Coucou Coucou, en fait tu m’as manqué 꾸꾸, 사실 널 보고 싶었어 2021년,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음악인 유발이는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담아 프랑스어로 풀어낸 재즈 동요 프로젝트, ‘마담꾸꾸(Madame Coucou)’를 발간했습니다. 이 과정을 계기로 텀블벅에서 펀딩을 시작하며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고, 이제는 마담꾸꾸의 음악들이 담긴 ‘사운드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글이 당신에게 닿게 되었네요.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당신.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당신. 나의 음악에 자신의 이야기를 비추어 줄 당신. 기다릴게요, 음악과 함께. 응원합니다. 여러분과 저 모두의 지금을. 음악인 유발이, 지켜봐주세요, 함께 해주세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UB "잡지의 ‘잡(雑)’은 퀴어와 닮았습니다. 그만큼 퀴어는 얽히고 설켜 있는 다종다양함입니다." — 분류 불가능한 당신을 위한 퀴어예술매거진 <them> 퀴어페미니즘을 기반으로 기획하는 아트콜렉티브 <them>은 굳이 '종이로 된 퀴어 잡지'를 새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퀴어들의 이야기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조명하며, 특히 퀴어 내에서도 자신의 분류 불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퀴어 예술을 고민하는 조용한 비평가들의 이야기를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을 함께하는 페이스메이커처럼, 프로젝트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펀딩 준비와 진행 과정을 솔직하게 전달합니다. 프로젝트 스토리에 미처 담기지 못한 창작자의 고충, 도전, 성취를 페이스메이커 연재를 통해 만나보세요.
코옵은 게임문화연구자와 미술비평가 2인으로 이루어진 문화예술 기획팀입니다. 우리 일상의 가장 사소한 것들이 가진 예술적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는 순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공명하다: 함께 울리다
3부 | 박이선 (코옵)
나는 친구와 함께 2년간 소프트웨어 ‘플래시’(Flash)의 죽음을 추모하는 <R.I.P. FLASH>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프로젝트의 내용은 오래 전 한 온라인 기술이 발생시킨 국내 기술문화의 기록과 사람들의 기억을 남겨놓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사용자,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글을 얻었다. 올해 초 플래시가 최종적으로 죽고 난 뒤,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는 작업의 성격으로 그동안 수집해온 이야기들을 책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책으로 남겨놓는다면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다른 곳에 전달되기도 쉽고 플래시를 기억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방법으로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를 선택했고, 책 제작을 비롯한 추모 과업들을 정리하여 텀블벅에 소개했다. 35일간의 기간 동안 235명의 후원자들 참여와 함께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텀블벅은 프로젝트의 취지를 홍보하고 창작자가 약속한 목표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매개자였다. 텀블벅에서 얻은 것은 후원금뿐 아니라 감동과 응원의 메시지였다. 프로젝트를 게재하고 온라인상에서 많은 응원과 의견들을 받을 수 있었는데, 텀블벅 메시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웹사이트 방명록 등지에서 전해진 반응들은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공유하는 것과 함께 “어린 시절 소중했던 기억을 되새겨주어서 고맙다”, “이렇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해주어서 감사하다” 등 말로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전해진 공명은 그동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고생했던 기억들을 잊게 해줄 정도로 큰 힘이 되었다. 프로젝트 마감 후 며칠 뒤 창작자는 후원자의 정보를 텀블벅으로부터 전달받게 된다. 리워드 제작 및 배송을 위해서 후원에 참여한 분들의 성함과 주소가 포함된 간단한 정보인데, 나는 이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배송 주소를 보면 내가 생활하고 있는 서울, 경기권 외에도 부산, 경남, 충북 등 전국 팔도 각지의 주소들이 적혀있다. 나의 프로젝트가 플래시를 추모하는 작업인 점을 감안했을 때 물리적 위치를 관통하는 인터넷 문화의 특성을 느꼈다. 우리는 먼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지만 동시대에 살면서 플래시라는 하나의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방과 후 집에서 플래시 게임을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학교 컴퓨터실에서 선생님 몰래 게임하기, 혹은 자신이 플래시 프로그램을 만지며 무언가를 제작한 경험일지라도. 플래시라는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문화적 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한국의 2000년대 기억으로 매개된 인터넷 공동체와 같다. 누구든 마음속 품고 있던 일들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전공인 문화연구를 쓰임새 있게 발휘하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에서 착안한 문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돌이켜보면 나와 팀원은 텀블벅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많이 성장했다. 제품을 제작하거나, 글을 쓰거나, 게임을 만들거나,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등 모두가 멋진 프로젝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텀블벅의 경험은 사람들의 힘을 얻고 목적을 일궈나간다는 점에서 창작자 자신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뻔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매우 값지다. 살면서 한 번쯤 창작자가 되어보는 경험은 여러모로 괜찮아 보인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FIN 다음 주부터 조선판타지 괴물 추리게임, <청구야담 : 팔도견문록>을 만드는 코스닷츠 창작자의 연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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