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퇴직연금 강국이 된 까닭은?
글.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매년 글로벌 연금 리그 테이블에서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영미형 퇴직연금을 대표하는 호주와 유럽형 퇴직연금을 대표하는 네덜란드입니다. 호주는 아태지역에서 최고의 퇴직연금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호주 퇴직연금은 10년 장기수익률 8%대, GDP의 1.5배에 이르는 운용자산, 연금사업자보다 연금가입자에게 유리한 경쟁시장 구조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연금개혁 논의가 한창인 요즘 호주처럼 좋은 퇴직연금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반문할 때입니다.
미국, 영국보다 영미형 퇴직연금의 후발 주자인 호주가 어떻게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이라는 독창적인 제도를 갖게 되었을까요?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는 1992년 이전 퇴직연금제도가 호주 다층연금제도의 핵심으로 제도화되는 과정, 그 이후 퇴직연금제도가 혁신하며 제도의 경쟁력과 완결성을 높여가는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92년 이전은 호주의 연금제도가 퇴직연금 중심으로 재편된 시기입니다. 호주는 영연방 편입과 함께 도입한 기초연금(Age pension)제도가 1992년 퇴직연금 도입 때까지 사실상 유일한 국가연금제도였습니다. 자산조사를 실시해 재정으로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외에 가입자의 보험료로 연금을 주는 보험성 연금은 전무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국민연금 도입을 시도했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오일쇼크로 인해 시작됐습니다. 오일쇼크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생산성 하락을 거치면서 기초연금의 지속가능성과 노후빈곤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보험성 연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국민연금이 아닌 강제퇴직연금(Superannuation Guarantee)이라는 결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호주 퇴직연금은 국민연금 성격과 개인연금 성격까지 더한, 그야말로 보편연금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1층 연금과 3층 연금의 특성을 두루 지닌 강력한 퇴직연금(2층 연금)은 정부와 근로자에게는 좋은 대안일지는 몰라도 기업주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런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법제화에 성공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사회적 합의 기제가 작동했습니다. 하나는 노정의 대타협입니다. 산업계 이해까지 고려하는 정부와 노동조합은 1단계로 임금 상승을 물가상승률 범위 내로 제한하는 데 합의하고, 다음 단계로 생산성 향상분 중 일부를 임금이 아닌 퇴직연금 보험료로 퇴직연금에 기여하는 역사적 합의에 성공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산업계의 고충을 반영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산업계로선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또 다른 사회적 합의가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노정의 합의에 산업계가 반발하며 제기한 위헌 소송에서 대법원이 노정 합의에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이해가 상충하는 제도 개혁은 사회적 대타협이란 큰 고비를 넘겨야 성공할 수 있음을 호주 사례가 보여줍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호주 퇴직연금에 대해 1993년 세계은행은 가장 모범적인 연금개혁 사례로 극찬했습니다.
1992년 이후의 시기는 퇴직연금에 경쟁력이라는 날개를 달아준 과정입니다. 핵심 수단은 2005년 도입된 경쟁 촉진을 위한 기금 선택제(fund choice)입니다. 자신이 속한 회사가 가입한 기금 대신 근로자가 선호하는 기금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한 것입니다. 선택제로 인해 기금 간 수익률과 서비스 경쟁이 촉진되었으며, 기금 간 인수합병(M&A)도 활발해졌습니다. 호주의 BIG 2 퇴직연금기금인 Auastrian Super와 Auastrian Retirement Trust 모두 성장 동력이 인수합병이었다는 점은 호주 퇴직연금제도를 평가할 때 흥미로운 점입니다.
송홍선 서울대 경제학 박사.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기재부 기금운용평가단 등을 거쳐 국민연금 리스크관리위원회, 고용노동부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추진단,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 선임연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