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청춘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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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봄에 들뜬 마음으로 희곡 한 권을 집어 든 유령이. 주인공의 이름은 ‘청년’. 그런데 다른 등장인물들은 그를 청년이 아닌 ‘해일’이라고 부른다는데?!
👻: 오늘은 초연 당시 신인 배우였던 박해일을 인기 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은 희곡 <청춘예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령~
‘청년’ 역 박해일과 ‘간질’ 역 고수희, 출처: 극단 동숭무대
이게 청춘 맞아?! 🤷‍♀️
“너 퇴학시킨대.” 고등학교에 4년째 재학 중이지만 여전히 2학년에 머물고 있는 ‘청년’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요. 선생이 내준 <그리스인 조르바> 독후감 숙제도 뒷전이죠. 아들에게 퇴학 위기라는 말을 전한 늙은 아버지도 변변한 직장 없이 방에 누워 TV만 보고 있는 신세예요.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곤 이혼한 전 아내를 찾아가거나 을 마시는 게 전부죠. 그의 전 아내는 부부싸움 도중 그가 홧김에 뿌린 청소용 염산에 시력을 잃고 안마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그는 그런 그녀에게 용돈을 받아 술을 사거나,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저런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고. 

어느 날 청년은 변두리 다방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 ‘간질’을 알게 돼요. 그녀는 간질*을 앓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동료에게 놀림을 받고 다방에서도 쫓겨나게 될 처지였죠. 청년은 어쩌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요. 그녀가 자신이 임신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매달리자, 청년은 오갈 데 없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요. 아버지는 가진 것 없는 형편에 입만 하나 더 늘었다며 비아냥대고 욕하지만, 결국 내치지 못하고 셋은 좁은 방에서 함께 살게 되죠. 이후 아버지는 태어날 손주를 위해 천장에 야광별을 붙이고, 전 아내더러 꼭 같이 보면 좋겠다고 한번 집에 오라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고.      


*간질: 뇌 신경세포의 일시적 이상으로 의식 소실, 발작 등의 마비 증상이 발생하는 질환.


👻: 예상과 달리 암울한 분위기네령?! 그런데 많고 많은 책 중 <그리스인 조르바> 라는 소설로 독후감 숙제를 내준 특별한 이유가 있나령?
그리스인 조르바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는 남자 🫀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속 조르바라는 인물은 희곡 <청춘예찬>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어요. 60대 노인 조르바는 장사를 하고, 조국 그리스를 위해 전투에 나가고, 광산에서 일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는데요. 조르바가 살아온 인생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건 바로 자유 의지예요. 그는 하루하루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사는 자유분방한 사람이거든요.   

<청춘예찬> 속 청년은 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학교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다 앞으로는 학교를 열심히 다니겠다며 다 쓴 독후감을 들고 선생을 찾아가지만, 퇴학을 면치는 못하죠. 그런 그에게 선생은 자기도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기 위해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목수로 살겠다고 말하는데요. 학교를 다니는 삶은 안정적이지만,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자유 의지를 잃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 채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거죠. 그리고는 청년에게 독후감은 찢어버리고, 계절에 상관없이 갈대밭을 걸어 보라고 말해요. 선생은 청년이 불안하더라도 자유로운 공간인 갈대밭에서 방황해보면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길 바란 거예요.


👻: 청년의 방황에도 선생은 청년을 믿고 행복해지길 바랬군령… 그런데 이 작품, 아직도 우울하게만 느껴지고 제목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령!

‘아버지’ 역 윤제문, 출처: 나무엑터스
진짜 별은 따주지 못하지만 🌟
맞아요. 제목과 달리 <청춘예찬>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여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잔잔한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툭하면 거친 말을 뱉고 폭력적이던 아버지가 아기를 기다리며 천장에 야광별을 붙이는 모습에서도 나타나죠. 무료한 인생을 보내고 있던 아버지와 아들에게 아기라는 기다릴 만한 존재가 생기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가 올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된 거죠.

또,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조각조각 깨지고 파탄 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하고 있는데요. 청년은 아버지에게 욕을 하지만, 아버지가 있는 집에 돌아와 함께 술을 마셔줘요. 그리고 아버지의 욕설과 빈정거림 속에는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있고, 쓸데없는 핑계로 그가 계속해서 전 아내를 찾아가는 이유도 그녀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때문이죠. 진심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이 가족관계는 암울하지만 보는 사람에게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켜요.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과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청춘을 예찬한다 고 해요. 한편, 극 중 묘사된 수동적인 여성상과 폭력에 대한 미화적 표현이 요즘 대중들의 인식과는 동떨어졌다는 평가도 있다고.     


👻: 아하! 이제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령.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궁금해지는데령?

연출가이자 극작가 박근형, 출처: 매일신문
무심하게 아픔을 쓰다듬는 연극인 💊

<청춘예찬>을 쓴 박근형은 극단 76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연극계에 발을 들였어요. 이후 연출가로 활동 범위를 넓혔고, 1999년에 <청춘예찬>의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죠.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청춘예찬>은 백상예술대상 희곡상을 포함해 당시 연극계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는데요. 현재는 극단 골목길 대표로 연극 활동을 꾸준히 이어 나가며(👻: 2월 연두부 에서 극단 골목길의 <코스모스>를 소개하기도 했어령~), 한국예술종합대학의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도 이바지하고 있다고.       


박근형의 작품은 그만의 특징을 띠는데요. 먼저 등장인물들이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들로, 하나같이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평범하지 않죠. 또,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은 배려가 넘치는 행복한 가족이라기보다는 불행한 편에 가까워요.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고된 삶에도 희망을 심어두는데요. 당장은 비참하고 초라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도 내일에 대한 작은 기대는 남아있죠. 어둡고 우울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작품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고. 


👻: 현실적이라 더 마음에 와닿는 거 같아령! 이번에도 지만지드라마 편집자님께서 희곡 <청춘예찬>에 대한 칼럼을 남겨주셨어령~

💁: ‘청춘’은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보(牛步) 민태원 선생은 <청춘예찬>이란 글에서 그 시절의 좋고 아름다움을 열렬히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보면 봄철 갑작스런 추위가 한겨울 혹한보다 가혹할 때가 많았고, 찬란하게 빛나기만 할 것 같던 청춘의 때에도 시련과 고난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봄이라고, 청춘이라고 예찬만 늘어놓을 수가 있을까요.


희곡 <청춘예찬>은 예찬할 수만은 없는 청춘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청년’과 ‘간질’이 만나 가족을 이룹니다. 그렇게 ‘청년’과 ‘아버지’가 살던 좁은 단칸방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전엔 둘이 덮던 이불 한 장을 이제 셋이 나눠 덮어야 하니 살림은 더 궁색해진 편입니다. ‘청춘예찬’이란 제목은 찬양할 수 없는 청춘에 보내는 자조 같은 거였을까요.


희곡을 끝까지 읽고 나면 ‘청춘예찬’은 결국 실망, 분노, 두려움으로 위축된 청춘을 응원하는 구호였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청년’과 ‘간질’이 함께 누운 좁은 단칸방 천장에 야광별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두 사람에게 암담한 날들뿐일 거라는 불경한 예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가올 ‘봄철’이 자조보다는 응원을 담아 ‘청춘’을 찬양할 수 있는 계절이길 바랍니다.

💁: 오늘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아요!

힘든 나날들이 하루아침에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죠.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가슴에 작은 희망을 안고 살아요. 그리고 그 작은 희망과 기대가 하루하루 쌓여서, 우리의 삶을 바꾸죠. 마치 천장에 붙은 아주 작은 야광별처럼요. 

플로터의 인생에서 야광별처럼 빛났던 소중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 유령이 플로터의 야광별이 궁금해령!
문화인들 집중 💎
희곡 <청춘예찬>

마냥 예찬할 수만은 없는 청춘들의 아픔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희곡 <청춘예찬>. 항상 밝기만 한 청춘 이야기가 뻔하고 멀게 느껴진다면, 지금 바로 지만지드라마에서 <청춘예찬>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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