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에 소개했던 종목을 다른 소재로 다시 가져왔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하나의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동시에 두 지상파 방송에서 한 제작사의 드라마를 방영하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닙니다. <동백꽃 필 무렵>이 18.4%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 중인 가운데, <두 번은 없다>는 구현숙 작가의 필력이 다시 한 번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최근 OTT 신규 사업자의 등장으로 좋은 콘텐츠를 공급할 역량이 있는 콘텐츠 기업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해당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겠습니다.

이번 주 님이 알아야 할 경제 이야기입니다.

요즘 갑자기 ‘비정규직이 늘었다!’는 기사가 많이 뜨는데요. 회사 잘 다니던 정규직이 갑자기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제기준을 적용해봤더니, 이전에 정규직으로 부르던 계약이 사실은 정규직으로 보기 좀 어렵더라는 거예요. 

이렇게만 써두면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늘었다’는 단어에는 숨은 뜻이 있어요.

‘우리 교회에 신도가 늘었다’는 문장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신도가 늘어나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실업자였던 사람이 비정규직이라도 취업을 하는 건 꽤 괜찮은 소식입니다. 정규직이면 더 좋았겠지만, 실업 상태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정규직이었던 사람이 비정규직이 됐다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나쁜 소식이죠.

언론은 비판했습니다. ‘성장을 희생해서라도 일자리의 질을 높이겠다더니 지난 정부들보다 못한 성과’라며 난리가 났어요. 

정부는 해명했죠. ‘통계 기준이 바뀌었을 뿐이다, 앞으로 그간 미뤄왔던 ILO(국제노동기준) 핵심 협약에 가입해야 하는데, 그때를 대비해서 좀 더 정확한 ILO 기준에 따라 파악해봤더니 숫자가 그렇게 나왔을 뿐이다’라면서요.

과장되긴 했지만 비정규직은 늘었습니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ILO 기준으로 조사해보니 ‘어, 나 정규직인 줄 알았는데 비정규직이었네' 하게 된 사람이 대거 나타난 거예요.

이렇게요.

왜 그렇게 늘었냐고요? ILO 기준을 적용하면서 정규직으로 계약한 사람에게 ‘고용예상기간’을 택하라고 했는데요. 정규직 응답자들이 정년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4년, 10년, 11년, 이런 식으로 대답해버린 거예요.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가임기 여성이라면 앞으로 경력단절이 될 것 같아 그쯤 되면 어떤 핑계로든 잘리겠지, 하고 대답했을 수도 있고요. 

앞으로 이 회사 망할 것 같은데 여기서 오래 일 못 하겠지, 했을 수도 있고요. 계속 승진 못 하고 후배들한테도 밀렸는데 곧 잘리다시피 관두겠지 싶어서 대답했을 수도 있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경제성장이 뭔지, 그리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질은 꼭 연결되는 건지 짚어볼게요. 

경제성장이 무엇인지는 이전 머니레터에서 설명했었죠. 경제성장 시기에는 채용이 늘어나고, 채용이 늘어나면 월급을 받으니 물건을 많이 사고, 물건을 많이 사니까 많이 만들게 되는 순환이 계속됩니다. 

물건이 안 팔리면 반대의 악순환이 되겠죠. 결국 일자리는 늘어나게 됩니다.

잠깐, 월급이나 근무시간은 여기서 말하는 ‘일자리의 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일자리의 질을 따지는 기준은 오직 맨 위에 언급했던 ‘고용안정성’뿐이죠. 

경제성장과 일자리의 질의 상관관계에서 확실한 건 이 둘 뿐입니다.

① 경제성장을 해야만 일자리의 질을 높일 수 있다.

② 경제가 침체되면 신규채용이 줄어들고 해고가 늘어난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명제가 현실에서 나타날 때는 아주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① 경제성장을 했지만 채용만 늘리고 일자리의 질은 높이지 않는다.

② 경제성장을 했지만 기존 노동자의 월급을 올려주는 동시에 야근을 생활화한다.

③ 경제성장을 했지만 채용을 늘리지 않고 번 돈으로 AI를 도입해 기계에게 일을 시킨다.

④ 경제성장을 했지만 핵심 인력 복지만 높여주고 신규인력은 계약직으로만 채용한다.

⑤ 경제성장을 해서 채용과 일자리의 질을 동시에 높인다.

⑥ 경제성장을 했는데 새로 발전된 분야에선 복지를 높이고 기존 분야는 도태시킨다.

…

이렇게 쓰다 보면 끝이 없기 때문에, 이어서 설명할 7번만 추가하고 그만 쓸게요.

경제가 침체되면 사장님들은 회사 규모를 줄이고 싶어 하게 됩니다. 그런데 경제성장과 경제침체는 왔다갔다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회사가 잘 나가는 3개월은 사람을 썼다가 자르고 다음 5개월은 아무도 채용을 안 하는 식으로 모든 회사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월급 받아 먹고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장기계획이란 걸 세울 수가 없겠죠. 해고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각종 부당한 대우나 저임금도 참아야 할 거고요. 

그래서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 있습니다. 회사 성과와 관련 없이 일상적으로 언제나 해야 하는 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에요. 

정규직은 회사를 말아먹는 수준의 잘못을 하지 않고선 웬만해서는 해고가 어려워요. 노동법이 보호하고요, 노조가 보호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단점도 있습니다. 한 번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면 웬만하면 안 잘리니까 내 실력을 갈고닦을 모티베이션이 적습니다. 고인 물이 되어 썩는 경향도 발견되죠. 

이런 문제를 겪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회사가 사람을 잘 뽑아놔야겠죠. 성실하고, 자기를 갈고 닦는 성향에 유능하기까지 한 사람으로요.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한국 회사들은 면접 볼 때 업무능력과 별 상관 없는 질문을 주로 하죠…

무튼, 정규직이 회사에서 나오게 되는 경우는 단 두 가지입니다. 자발적으로 그만두거나, 회사가 망해버리거나.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정규직이 회사를 나올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니까 이렇게 안정적인 게 우리나라의 정규직인데, ILO의 국제 기준을 갖다 대보니 영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겁니다. 

우리나라는 아주 빨리 경제성장을 한 나라예요. 경제성장(산업화)과 더불어 민주화까지 해냈죠. 

우리나라 민주화를 이끈 노동운동은 지금 큰 노동조합인 중화학공업 노조가 아니라  가발공장이나 봉제공장 같은 경공업 노동운동 위주로 시작됐어요.

경공업 노동자들은 주로 여성이었습니다.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하기는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 공장원들의 월급은 오르지 않았어요. 근무시간은 늘어났고요. 위의 선택지 중 ①에 해당하는 ‘성장했지만 채용만 늘리고 일자리의 질은 높이지 않는’ 경제성장이죠. 

그러다가 경제구조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넘어갔습니다. 중공업은 경공업에 비해 돈이 많이 되는 고급 기술 업종이에요. 여기서는 ①이 잘 안 먹혔습니다. 

좀 ‘배운 사람들’을 써야 돌아가는 산업이라 한 번 일에 숙련된 사람을 마음대로 자르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마구 채용할 수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경제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서 사람이 모자랐어요. 

사태는 ②, ‘월급을 올려주지만 인건비를 최대한 적게 쓰기 위해 야근 등을 생활화한다’로 나아갔습니다. 이 즈음 민주화도 이루어졌어요.

그러다 ⑤의 시대, 즉 ‘경제성장으로 채용과 일자리의 질을 동시에 높이는' 시대가 오는 듯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주머니에 여유도 생기고 민주화도 됐으니 좀 교양 있게 굴어야 할 것 같고 철학도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⑤가 제대로 자리잡기 전에 그만... 

살아남아야죠. 회사는 벤처니 정보화니 신기술 신산업을 마구 시도해봅니다. 여유가 없는 상태로 시도해서 비용을 최대한 적게 들이고 성공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예전에 뽑아놨던 정규직은 보호받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새로 뽑는 사람은 되도록 계약직으로 뽑습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시기를 겪다 보니(?) 웬만한 선진국은 다 가입해서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ILO의 협약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 상황이 변했습니다. 더는 ‘라떼는~ 워라밸이 뭐야 다 갈리면서 일했어~’라면서 미룰 수 없는 단계가 되었어요. 그래서 ILO 기준을 도입했더니… 아이고,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났네요.

정부 해명대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규직 계약서가 사실은 비정규직 계약서였다고 생각하게 됐다면… 불안정성은 당연히 높아지겠죠.

이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경쟁이 심해질까요, 아니면 노조를 만들거나 선거에서 노동친화적인 후보를 뽑게 될까요? 

어떤 추세로 들어서느냐에 따라 시장 모습이 많이 달라지겠어요. 노동자 보호와 노동유연성. 둘 다 적정선을 지나면 장단점이 뚜렷합니다.

② ILO 협약 비준도 입장차가 상당히 엇갈리고 있어요. 

기업과 경영자들은 매우 싫어하고 있고요, 노동계는 환영하면서도 아직 부족하다고 하죠. 하지만 언제나 편법은 존재하기 때문에, 협약이 지켜진다면 노조의 힘이 좀 강해질 겁니다. 

다만, 이번에 도입되는 협약에는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등 기존 거대 노조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비정규직도 실업자도 노조의 보호를 받을 길이 열립니다. 이제 노총들의 실력을 볼 차례네요.

내 상태가 어떤지, 무슨 권리가 있고 어떤 책임이 있는지 깨닫는 건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실업자나 비정규직이라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을 확률이 커집니다.

사람이나 사회나 어려운 상황을 죽을 힘을 다해 기력을 쥐어짜내서 극복하면 심신에 많은 문제가 생겨요. 

우리나라가 가난을 극복하고,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GDP 3만달러 부자나라가 되기는 했지만... 그게 다 쥐어짜서 이룬 것이라 다른 방법을 도입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가야 하느냐? 그건 그것대로 불가능한 일이에요. 

여기서 걱정과 불안이 더 많은지, 그럼에도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하는 게 바로 정치적 성향일 거예요. 

교과서적인 이야기로 결론짓자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세부적으로 어떻게’가 중요하겠죠. 언제나 좋은 방법은 커다랗게 빛나는 딱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수많은 디테일에 있답니다. 

어피티는 언제나 머니레터 독자 여러분이 종사하는 직종 분야분야마다 좋은 해결사가 되시길 바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