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머스크’ 향수를 다루면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흔한 향보단, 특별한 추억거리가 될 만한 향들만 소개해 드렸죠. 이번 취향 콘텐츠 역시,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찾아 나서는 이고진 구독자분들께 도움이 될 만한 향수들을 가져와 봤습니다. 

파우더리 향은 콕 집어서 하나라고 말할 수 없어요. 앞서 소개해 드린 머스크나 우디처럼 딱 부러지게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파우더리 향이 복합적이고, 그 종류도 여러 가지로 꼽히기 때문인데요. 

엄마의 화장대 위를 오랫동안 차지했던 분을 연상케 하는 클래식하고 고전적인 향, 꿈나라로 빠져드는 귀여운 아기에게서 날 것만 같은 뽀송뽀송하고 순한 향, 갓 씻고 나왔을 때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부드러운 비누 향 등. 정확하게 ‘파우더리다’, 라고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포근하고 편안한 향은 대부분 파우더리 노트를 포함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로 정의를 내려보자면 벨벳과 같은 관능적인 향과 아기의 살냄새와 같은 순수하고 달콤한 이미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샤넬 향수하면, 사실 가장 유명한 건 'No.5'입니다. 샤넬의 상징과도 같은 향수죠. 평소에 무엇을 입고 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릴린 먼로가 남긴 대답, ‘샤넬 넘버5 몇 방울만 걸쳐요’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샤넬 넘버 5가 유명한 데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당시 샤넬의 조향사였던 에르네스트보는 최고급 자연 유래 성분과 당시에 생소했던 합성 분자인 ‘알데하이드’를 조합합니다. 인공향 알데하이드는 다른 향과 섞이면 향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증강 효과가 있기 때문. 마치 딸기에 레몬즙을 뿌리면 딸기 고유의 향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이 ‘알데하이드’ 분자 지금까지 샤넬 향수의 DNA라고 불리고 있어요. 

우리에겐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라는 이름보다 ‘코코 샤넬’이라는 애칭이 더 익숙하죠. ‘샤넬 가브리엘 오드 퍼퓸’은 ‘가브리엘’이라는 본명이 붙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주목할 만합니다. 100여 년 가까이 유지한 Vo.5 코드에서 탈피한 것. 

이것만으로도 샤넬 향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할 수 있죠. 당시 ‘여성’이 걸어야 했던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아간 가브리엘 샤넬, 그녀의 이름이 그대로 붙은 이 향수는, 오늘날 운명을 개척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헌사하는 선물인 듯합니다.

가브리엘 샤넬 향수를 입는 다는 것은, 자신만의 강렬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을 뽐내며 꿋꿋이 앞을 향해 걸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죠. 공기처럼 가볍게 분사하는 순간, 향수에 녹아든 샤넬의 영혼과 정신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터.

영국 왕실의 향수라고 불리는 펜할리곤스. 로고에 있는 왕실 문양은 영국 왕실로부터 왕실 조달 허가증(Royal Warrants)를 받았다는 걸 자랑스럽게 내세웁니다. 동그란 유리구슬 향수 캡과 귀여운 보틀, 앙증맞은 색색의 리본, 바라만 봐도 마음이 흡족해지는 패키징. 특유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이 느껴지죠.

영국 남서부 땅끝마을 펜잔스의 바버숍에서 일하던 창업자 윌리엄 펜할리곤(William Penhaligon). 펜할리곤은 바버샵에서 귀족들을 위한 향수를 판매하기 시작하는데, 특유의 창조적인 감각으로 승승장구합니다. 그리고 1870년, 런던 피커딜리 거리에 정식으로 ‘펜할리곤’을 설립하죠. 당시 귀족들 사이에선 터키식 사우나, ‘하맘(Hammam)’이 유행했는데, 펜할리곤은 이 때 그곳의 풍광에서 영감을 받아 첫 향수 ‘하맘 부케’를 탄생시킵니다. 하맘 부케의 중독적인 매력 덕분에 펜할리곤스는 단숨에 성장, 그 이후로 향수 업계에서 꾸준한 입지를 다지게 돼요.

펜하리곤스에 대한 왕실의 애정은 윌리엄 왕자가 반해버린 ‘블렌하임 부케’ 향수에서 비롯됐습니다. 1902년 영국 공작의 블렌하임 대저택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화려하고 품격 있는 시트러스 향수에요. 그 후 펜할리곤스는 100가지 넘는 향수를 출시하고, 그 외에도 비누, 양초, 애프터쉐이브, 보디 용품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어요. 유명한 유리병과 보타이 장식은 최초의 디자인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모든 제품은 현재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전통적 가치를 품은 문화적 소산. 펜할리곤스는 아직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며 국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브랜드로 오늘날 자리매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