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랩레터 #004 더 늦출 수 없는 논의를 위해 
지난 9일 아산나눔재단 주최 비영리스타트업 컨퍼런스에서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의 발표 장면 

좀 늦었지만,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LAB2050의 윤형중입니다. 다음 주부턴 '보다 일찍' 발송토록 할게요.(죄송합니다. 목요일이 되었네요;) 


벌써 네 번째 수요랩레터입니다. 그동안의 랩레터가 어떠셨나요? 소감이나 의견을 보내주시면 무척 큰 힘이 됩니다.(뉴스레터 최하단에 그동안의 수요랩레터를 볼 수 있는 링크가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아산나눔재단이 주최한 비영리스타트업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전통적인 시민단체 문법에 익숙한 제게 '비영리'와 '스타트업'이란 조합이 처음엔 좀 어색하게 다가왔는데요. 비영리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을 들고서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조직이라 스타트업이란 이름이 붙었을까요. 실제로 발표하는 기관들도 전통적 시민단체라기 보단, 스타트업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아무튼 그 컨퍼런스에서 약간 어색함을 느끼며 LAB2050과 같은 민간 싱크탱크는 비영리이긴 한데, 스타트업일까. 비영리 스타트업은 이렇게 모이는 행사도, 지원하는 기관도 있는데, 민간 싱크탱크 생태계는 왜 이렇게 척박할까. 어떻게 존재를 증명해야할까라는 고민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사실 싱크탱크는 세상의 문제를 풀려고 존재하는 조직인데요. 저는 싱크탱크의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두 가지를 모두 하기가 쉽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지금부터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해 왜 민간 싱크탱크가 중요한지에 대해 길지 않게 얘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하늘이 밝아지는 '회광반조'(回光返照)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어둠을 대비조차 않고 있는 것이죠. 


한국 사회가 이전보다 밝아보이는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한국은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2021년 7월)한 유일한 국가이고, 넘기 어려운 벽과 같았던 일본마저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1인당 GDP 추월했고, 국내 대기업들은 십 수년 전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데다 한국의 음악과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뒤떨어지는 영역 자체가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 어두워지기 직전이라는 신호도 적지 않습니다. 자살율과 노인빈곤율, 자산 불평등(피케티지수 등) 등의 지표가 그냥 높은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을 오래 유지하고 있고, 한국의 저출생 고령화 추이는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수준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지적된지가 꽤 오래 됐는데요. 단 한번도 추세가 꺾이지 않고, 악화만 되고 있습니다. 기술 발달로 인한 사회 변화와 기후 재앙으로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응도 매우 시급하나, 관련 논의는 더디기만 합니다.


구체적인 정책 논의는 더 답답합니다. 국민연금의 기금은 2041년에 적자 전환할 예정(5차 추계)이고 더 앞당겨질 조짐도 있습니다. 의료비 증가율이 연간 10% 수준에 이른데다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의 건강보험 재정도 불안합니다. 자산을 세습받지 않은 청년이 수도권에서 주거 안정을 얻기 어려운 상황은 해결이 요원하고, 기후 대응도 답답한 수준입니다. 독일은 2030년에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80%을 목표로 하는데, 한국 정부는 목표를 기존 30%에서 21%로 낮춰 RE100을 맞춰야 하는 기업들로선 비상이 걸린 상황입니다. 부채가 200조원이 넘는 한국전력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이죠. 


이처럼 정책적 개입이 절실한 영역마다 필요한 논의는 미진하기만 합니다. 간혹 필요한 논의가 이뤄져도 관심을 받기도 어렵고, 지속하긴 더욱 어렵습니다. 이래선 문제가 필요한 영역에 자원이 동원되고, 정책적 개입이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언론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당도 정부도 정책을 중심에 두고 운영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논의를 촉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요? 저는 정책 논의를 공론장의 중심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기 위해선 정치 영역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민간 영역에서 싱크탱크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제에 대한 엄밀한 진단, 기존 정책에 대한 분석에 기반한 더 나은 대안 등이 논의에 꼭 필요한 재료이고, 그걸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 싱크탱크이기 때문입니다. 


민간 싱크탱크 중에서도 LAB2050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연구와 정책 제안', '정책 논의의 주류화', '연구와 활동의 접목'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LAB2050이 걸어갈 모습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수요 랩터뷰 - LAB2050이 주목하는 정책가를 만나다 
2022년 대전환포럼 송년모임에 참석한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세 번째 수요 랩터뷰의 주인공은 화제의 인물입니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9일 징계를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언론의 집중 주목을 받은 김윤 서울대 교수입니다. 김윤 교수를 지난 11월 14일(화)에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Q. 교수님. 수요랩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사협회가 징계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이번 랩터뷰로 교수님 섭외를 '추진'했는데, 이리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징계 추진 소식에 대한 소감부터 여쭐게요. 
A. 2020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의사협회가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발언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는데요. 그 일환이라고 봤습니다. 

Q. 그런 시도라면 오히려 이번엔 실패한 것 같은데요. 저도 이번에 교수님이 그동안 쓰신 글들을 더 꼼꼼히 보게 되었고요. 이렇게 인터뷰도 시도하게 되었죠. 언론의 주목도 이전보다 많이 받고 계시잖아요. 
A. 통상 의협이 이런 시도를 했을 때, 언론이 주목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런데 이번엔 의대 정원 증원 이슈가 맞물리면서 생각보다 많은 주목을 받은게 아닐까 싶어요. 아마 의협도 당황하지 않았을까요. 

Q. 의사협회 보도자료를 보니 '의사 명예훼손과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 징계 사유고, '의협을 돈 많은 개원의를 대변한 것처럼 호도'하고 '밥그릇 지키기 등의 표현이 명예훼손'이며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교수님을 비판하더군요. 
A. 의협이 특정 집단을 대변한다는 것은 많이 나온 얘기이고, 저만 한 얘기도 아닙니다. 밥그릇 지키기와 같은 표현이 명예훼손인가요? 객관적 사실에 기초했는지는 따져보면 되는 일이고요. 

Q. 아까 2020년에도 의협이 징계 추진하다가 철회한 적이 있었는데요. 살펴보니 그때 징계추진 사유는 교수님이 한 칼럼에서 '영국, 이탈리아와 같이 공공의료 발달한 나라보다 민간의료가 발달한 한국이 코로나에 잘 대응했다는 주장에 반박'하며 "전체 병상의 10%인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의 3/4을 수용했다"고 썼기 때문이었어요.
A. 사실을 제시한 것이 왜 명예훼손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의 3/4을 수용했다는 데이터를 당시 칼럼에서 처음 제시한 것이기도 했어요. 

Q. 그럼 의대정원부터 다뤄보죠. 의협에선 세 가지 주장을 하더군요. 일단 현재도 의료서비스가 국민들에게 충분히 제공되고 있고, 지금 문제가 되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가 증원으로 해결되지 않고, 의사 수 늘어나면 의료비가 폭증한다 등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좋은 의료접근성은 대도시 거주자, 경증환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의료취약지 입원화자의 사망률은 전국 평균보다 1.3배 높고, 골든타임 놓쳐 사망할 가능성이 커지는 중증 응급환자가 연간 3만명이 넘습니다. 

Q. 증원해봐야 소용없다는 문제 제기는요? 증원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도 하던데요. 
A. 저는 의대정원 증원과 의료체계 개선을 함께 얘기하고 있는데요. 왜 의대 증원만으로 문제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반론으로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저를 마치 '정원만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레이블링(딱지 붙이기)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Q. 의료비 증가에 대한 우려는요? 
A. 그건 개연성이 있죠. 우리나라는 연간 의료비 증가율이 10% 정도인데요. 18년간 의대 정원이 늘지 않았죠. 의사수도 OECD 평균보다 훨씬 낮고요. 의료비는 의사수와만 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 복잡한 변수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기계적으로 연결할 일만은 아니고요. 지금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무너지는 상황인데, 의료비 증가가 무서워 의사 수를 늘리지 말자고 할 순 없죠. 오히려 돈이 낭비되는 다른 곳에서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Q. 교수님은 그동안 기형적인 의료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많이 하셨고요. 또한 시도별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이 참여하는 '필수의료기관 네트워크'를 만들어 상생과 협력의 '지역의료생태계'를 만들고, 늘어난 전공의와 교수를 네트워크에 참여한 병원이 함께 활용하는 체계, 대학병원은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동네 병원은 경환자를 진료하는 역할분담 체계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셨는데요. 이 대안이 적절한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의료체계가 녹아내리고 있는 이 시점에 대안 논의를 더 이상 늦출 수 없음에도 잘 진전이 안 되는 느낌이에요. 
A. 이런 문제 제기에 반대하는 의사협회의 영향력이 크다고 봅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의사협회가 그동안 주장해 오던 내용들이 제대로 검증되지가 않고요. 전문가들도 의사협회와 다른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언론도 제대로 검증할 만한 전문성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국민들이 정책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문제가 바뀔 수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전문가들도 사회적 발언을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하고, 언론의 수준도 올라가야 한다고 봐요.  

Q. 교수님 말씀 듣다보니, 정책 논의에서 당사자 집단, 이해관계자, 이익단체 등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고 조정하고 제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네요. 특히 이해집단의 반대를 뚫고 나가야 하는 개혁은 정말 쉽지 않겠다는 우려도 하게 되고요. 공론화가 중요하단걸 다시금 깨닫습니다. 
A. 이익단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장치는 당연히 있어야죠. 중요한 것은 논의 과정의 투명성입니다. 논의 과정에서 이익집단이 비합리적인 주장을 한다면 신망을 잃을 것이고, 설득력이 있는 주장을 편다면 영향력을 얻겠죠. 앞으로 의대 정원 증원과 의료개혁 논의에서도 과정의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봐요.  

인터뷰를 하기 하루 전인 13일에 정부는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2025년~2030년 입시의 의대 희망 증원 규모를 수요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발표는 돌연 연기됐다. 의사협회는 최근까지 '정부가 수요조사 내용을 일방적으로 발표한다면 강경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앞으로 논의는 어떻게 진행될까. 의대 정원 증원 이슈를 넘어 의료 개혁까지 논의는 진전될 수 있을까. '더 늦출 수 없는 논의'를 촉진하기 위해 싱크탱크는 무엇을 해야할까..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랩터뷰 끝. 

'LAB2050 소식'과 '토론2050'은 한 주 쉽니다. 
수요랩레터는 매주 수요일, LAB2050의 새로운 소식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연구활동가들의 문제해결 플랫폼을 지향하는 LAB2050은
2050년에 더 나은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알리는 비영리 민간 정책연구소입니다. 
LAB2050은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 수요랩레터 지난호 
LAB2050
hello@lab2050.org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9안길 36-1 3층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