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지영 팀장 1주기 특집호 2023년 8월 16일, 발전대안 피다의 전문위원이자 옛 ODA Watch의 실무 책임자였던 윤지영 님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함께하는 모두에게 따뜻했던 그의 1주기를 맞아 활동가 윤지영을 기억하는 네 편의 글을 피움 독자 여러분들께 부칩니다. 국제개발협력 정책 활동가로서, 그리고 인권평화 활동가로서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삶을 추념하며, 그가 실천하고자 했던 가치를 다시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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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사람과 연대하는 정책활동가 윤지영 (8월 27일) ④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현장활동가 윤지영 (9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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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에서 정부의 정책변화를 목표로 애드보커시 활동을 수행하는 이들이 있다. 소수인 이들을 정식으로 부르는 명칭은 없다. 굳이 부르자면, 시민사회 내 타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도주의 활동가나 구호활동가 같은 명칭을 고려할 때 정책활동가 정도가 적절한 것 같다. 발전대안 피다의 전신인 ODA Watch가 활동을 시작했던 2006년 당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내에서 정책활동가라 불릴 만한 이들은 매우 소수였다. 이 글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ODA Watch에서 정책활동가로 활동했던 윤지영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2023년 8월 우리 곁을 떠나 안식의 길에 들어선 윤지영의 활동을 돌아보며,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정책활동가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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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청년들이 대학생 시절 자원활동가로 개발 NGO에서 활동하며 개도국 현장에 대한 경험을 가진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전업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활동가의 길을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을 하는 가운데 본인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새로운 길을 떠나기도 한다.
윤지영도 그랬다. 정치 철학을 즐겨 공부하던 정치외교학과 학생 시절 후원 아동 서신 번역 봉사와 필리핀 자원활동을 경험했다. 대학 졸업 후 월드비전에서 인턴을 했고, 외교안보연구원에서도 근무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던 윤지영은 2006년 ODA Watch의 청년활동가 프로그램인 YP(Young Professional) 2기에 합류했다. 그리고 현장을 경험하고자 2007년에 지구촌나눔운동 베트남 사업장에서 1년간 NGO 봉사단 활동을 하고, 귀국 후 한국청소년진흥센터 해외봉사단 담당자로 근무했다. 개도국 현장과 한국 본부 근무를 마친 윤지영은 2009년 3월 ODA Watch 간사로 합류하며 본격적인 시민사회 정책활동가의 여정을 시작했다. 자원활동가, 인턴, NGO 봉사단원 그리고 간사.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 이야기지만, 윤지영이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은 2024년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다수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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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개발의 주체가 되는 현장을 위한 정책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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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활동가들은 다양한 일을 한다. 현장에서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본부에서 사업 관리나 회계, 모금, 홍보 등의 일을 담당한다. 사업을 수행하는 활동가들은 개발협력이나 인도적 지원, 세계시민교육, 봉사단 파견 업무 등을 담당한다. 소수의 단체에서 일하는 소수만이 정부의 정책 변화를 위한 애드보커시 활동을 한다. 윤지영은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왜 정책활동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ODA Watch가 2006년부터 발간해 온 소식지인 OWL(현 발전대안 피다의 '피움')을 보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윤지영은 ODA Watch에 합류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느꼈던 NGO간 네트워크의 한계, 옹호 사업(advocacy) 부족 문제를 ODA Watch를 통해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왜 우리가 개발 사업을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가졌고, 베트남에서 1년 동안 활동하며 "개발은 개발의 대상이 되는 지역 주민들이 개발의 주체가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윤지영은 ODA Watch의 역할이 "적어도 그들에게 개발된 사회에 대한 정직한 설명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간 부족했던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우리의 워치 활동이 정부, 개발 NGO는 물론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에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장기적인 목표"라고 생각을 밝혔다.
그동안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2009년 정책활동가 윤지영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여전히 발전대안 피다 안에 흐르고 있다. 개발과 발전에 대한 근본적 질문, 한국이 아닌 현지를 위한 한국 국제개발협력, 감시와 옹호를 통한 정책의 변화,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시민사회의 연대는 활동을 시작한 2009년의 윤지영과 2024년 발전대안 피다의 정책활동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핵심적 활동 방향이다. 이는 현재 한국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내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정책활동가들이 가지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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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전후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한국은 2010년에 OECD DAC에 가입했고, 2011년에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HLF4)를 개최했다. 이 당시 정부는 국제사회 규범 체계 가입을 통해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제도화를 위한 노력을 전개했다. 2010년에는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을 제정했고,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을 작성했다. 한국 시민사회는 이같이 급변하는 국제개발협력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2010년에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 연대체인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을 결성했다. 이 연대체에 많은 개발 NGO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합류해서 연대 활동을 전개했다. 윤지영은 실무를 담당하는 정책활동가로 시민사회 연대 활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한국 월드비전 등 개발 NGO들과, 참여연대, 인권재단, 한국여성운동단체연합 등 다양한 범주의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들과 연대해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변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2011년 개최된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HLF4)에서는 기존에 공여국들이 강조하던 원조 효과성 외에 개발 효과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 자리는 DAC 회원국 외에 신흥 공여국들이 제기한 다양한 주장들이 서로 경합하는 자리였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도 이 행사에 참여하며 국제적인 흐름을 학습하고, '부산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담론과 규범 그리고 정책적 교훈을 한국 국제개발협력과 시민사회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이 시기에는 많은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고, 정책 보고서가 발간됐다. 새로운 개념이 소개됐고, 용어들도 등장했다. 사람들은 흐름을 선도하는 듯한 새로운 이론과 정책들에 압도되면서도 이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정책활동가 윤지영은 이같이 국제 규범이 형성되고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지영은 2012년 ODA Watch 소식지 OWL에 ' 부산 파트너십이 실패하지 않으려면'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녀는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HLF4) 이후 개최된 시민사회 간담회의 내용을 소개하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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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원하고 있는 대상자들, 즉 주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행사하고 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우리가 정부와 기업, 국회를 만나 파트너십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 2012년 OWL 69호 '부산 파트너십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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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고 요구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과 내용을 검토하고, 이행을 감시하는 시민사회의 정책활동가들이 잊지 말아야 할 근본적인 가치 중 하나다. 윤지영은 정부가 발간한 정책 문서의 엄밀함이나 국제 행사의 화려함에 함몰되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향하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기저에 놓여 있는 본질에 주목했다.
윤지영은 원조투명성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동료 정책활동가들과 연대했다. 원조투명성은 2008년 가나 아크라에서 개최되었던 제3차 원조효과성고위급포럼(HLF3)에서 중요하게 제기된 이슈다. 이 행사를 계기로 출범한 국제원조투명성기구(IATI)는 현재까지 원조 투명성과 책무성 증진을 위한 중심 기구로 역할하고 있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커뮤니티는 원조 투명성에 대해 비교적 늦게 관심을 가졌다. 한국 정부는 OECD DAC에는 2010년 가입했지만, IATI에는 6년 후인 2016년에 가입했다. 발전대안 피다는 ODA Watch 시절부터 원조 투명성이 한국 국제개발협력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라고 판단하고 다양한 대응 활동을 전개했다. 영국의 시민사회 단체인 'Publish What You Fund(PWYF)'가 시행하는 전 세계 주요 원조 공여기관에 대한 '원조투명성지수(Aid Transparency Index, ATI)' 검증의 한국 파트너로 활동했다. 발전대안 피다는 '원조투명성지수'를 활용하여 2012년부터 한국 정부 원조 시행 기관의 원조 투명성을 검증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IATI 가입을 위해 시민사회와 연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윤지영은 그 연대 활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윤지영은 2013년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이 주관하고 ODA Watch와 참여연대 그리고 월드비전이 주관한 '한국 원조 투명성 캠페인 - 34,900원 행방 찾기'를 주도했다. 윤지영과 동료 정책활동가들은 캠페인을 하는 7월부터 10월까지 100일 동안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지구촌의 어려운 나라 이웃을 돕는 원조(ODA)가 다른 목적으로 남용되지 말아야 하며, 원조를 받는 나라와 국민들이 원하는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원조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구호를 거리와 온라인에서 외쳤다. 윤지영과 동료들은 이 작업을 통해 원조 투명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한국 정부의 IATI 가입을 촉구하는 청원 서명을 요청했다. 그 결과 총 8,719명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전달했다. 그리고 국회와 함께 토론회를 개최해서 정부 부처와 원조 시행 기관들이 원조 투명성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향후 개선을 위한 국회의 관심과 정부 기관들의 범정부적인 노력을 요구했다. 윤지영과 동료 정책활동가들은 개발원조의 날인 11월 25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IATI 가입 청원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의 메시지를 알리고, 한국 정부의 IATI 가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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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IATI 가입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윤지영은 원조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 활동을 전개하며, 한국 정부의 IATI 가입이 국제 규범 체계 가입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2013년 '한국 원조 투명성 캠페인 - 34,900원 행방 찾기' 캠페인의 성과에 희망을 담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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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지구촌의 아픔을 진심으로 보듬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한 국민이자 활동가로서 바라건대,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 정부가 '우리나라 원조, 깨끗하게 맑게(투명하게)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당당하게 국민들 앞에 설 수 있으면 한다."
- 2013년 OWL 84호. 원조투명성 특집.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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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에 찬 당당함. 그것은 한국 정부가 투명한 원조를 전개했을 때 국민들 앞에서 가질 수 있는 자세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난 정책활동가 윤지영이 원조 투명성 이슈를 넘어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는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우리 활동가들에게 남긴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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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사회가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0년 전후이며, 국제개발협력 정책 애드보커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6년경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급격하게 확대했다. 정부는 본격적으로 외교 정책과 국제개발협력 정책을 연계하며, 외교의 전략적 하부 수단으로 국제개발협력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개발협력과 인도적 지원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가지만, 기술적 전문성과 효과성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향이 크다. 국제개발협력에서 독립적 행위자이자 정부 파트너로서의 시민사회의 역할 또한 증대해 왔지만,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을 하는 연대체나 개별단체는 여전히 소수고, 정책활동가는 몇 명 수준이다.
정책활동가 윤지영은 이제 우리와 함께 정책 문서를 분석하거나 성명서를 작성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뜻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행사하고 요구할 수 있도록 돕는 한국 국제개발협력', '연대하는 활동가', '투명함에 기반한 자신 있는 한국 ODA'. 이 같은 가치가 실현되도록, 우리 정책활동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연대할 것이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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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한재광은 윤지영이 ODA Watch에 몸담았던 2009년부터 2015년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로, 연대하는 정책활동가로서 윤지영을 돌아보며 현재 각자의 영역에서 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함께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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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님이 생전에 활동했던 단체인 발전대안 피다, 피스모모, 해외주민운동연대(KOCO)가 협력하여 라오스와 캄보디아, 미얀마의 개발, 인권, 평화활동가들을 1년에 두 명 선정하여 2년간 매달 50만 원을 지원하는 인권평화활동가 윤지영펠로우십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윤지영 님이 꿈꿨던 사람의 존엄을 귀히 여기는 사회, 생명의 무게를 중히 여겨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시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모금 주관단체: 사단법인 피스모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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